안녕, 친구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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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올 듯 올 듯하면서 오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눈이 내릴 확률이 60%, 혹은 70%라고 말을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눈은 내리지 않았다. 흐린 하늘을 보며 하얀 김을 뿌려보던 명수가 ‘이럴 거면 차라리 눈이나 내리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손을 호호 불더니 철봉을 붙잡았다.
“하나, 둘, 셋···.”
옆에 선 단유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횟수를 세었다. 어느 날부터 명수도 턱걸이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어깨나 팔 힘이 부쩍 늘어나 단유의 평소 운동 패턴을 잘 따라오는 편이었다.
“열넷, 열···다섯.”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명수는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열아홉, 스물.···한 개만 더.”
그러나 명수는 끝내 손을 놓고 바닥에 내려섰다.
“아우, 손바닥.”
“그러니까 장갑을 끼지 그랬어. 장갑 끼면 5개는 더했을 거야.”
“장갑 꼈다가 벗었다 하기 귀찮아서 그랬지.”
이번에는 단유가 명수가 섰던 자리에 섰다. 장갑 낀 손을 한 번 쥐었다 편 뒤 뛰어올랐다. 가뿐하게 스무 개를 넘어선 단유는 30개 즈음에서 내려왔다.
“장갑 끼고 해.”
“알았어.”
명수는 단유가 건넨 장갑을 끼고 심호흡을 한 뒤, 철봉에 올랐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명수의 몸도 이제는 또래 중에서 꽤 큰 편이라 할 만큼 커져 있었다. 본래 힘이 좋은 편이기도 했지만, 근육도 살뜰하게 들어차서 단유가 예상컨대,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 시합을 뛰더라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감독님이 상체 운동도 열심히 하라고 하셨거든. 몸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그래야 나중에 해외 선수들이랑 붙어도 밀리지 않을 거래.”
명수의 꿈은 점점 더 커지고 발전해나갔다. 그저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축구 선수가 될 것인지, 그리고 그런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추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넌 분명히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몸만 갖고 되냐? 기술도 있어야 성공할 수 있어.”
“기술은 앞으로 배우면 되지.”
명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웃었다.
“그래.”
물론 단유도 명수가 생각하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누구는 축구 유학을 간다고 하고, 누구는 유명 유소년 클럽에 들어가 훈련을 받으면서 기량을 쌓지만, 명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주워들은 명수는 오직 그 믿음 하나로 계속 자신을 단련해 나갔다.
‘넌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단유는 명수가 반드시 그의 꿈을 성취하길 바랐다.
“이제 들어가자. 학교 갈 시간이야.”
“그래.”
명수는 헉헉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 질주?”
“응.”
겨울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두 소년이 거리를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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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전 수업만 끝나면 하교 시간인지라 급식을 먹을 일이 없어진 3학년 학생들은, 매점을 사용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달리 쉬는 시간을 메울 일이 별로 없었던 탓이다.
단유 역시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매점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우연히 학교 주위를 돌던 교장 선생님과 마주친 아이들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은 푸근한 미소를 고개를 끄덕이다 그사이에 단유가 있음을 확인하고 그를 불렀다.
“단유 군, 오늘 수업 끝나고 잠시 교장실에 들리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래요. 다들 조심해서 걸어요. 매점 근처에 보니까 빙판길이 있던데.”
“네.”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야, 교장 선생님이 널 왜 불러?”
단유는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교장 선생님과 친하다니. 역시 전교 1등 클라스!”
지태가 단유를 보며 입을 둥글게 모으고 소리를 냈다.
“그런 거 아니다.”
“아니긴? 아닌 게 아닌데?”
하지만 정말 이유를 모르기도 하거니와, 교장 선생님과 ‘친하다’고 불릴만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단유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왜 보자고 하신 걸까?’
수업을 마치고 단유는 명수에게 먼저 가라고 일렀다.
“안 기다려줘도 돼?”
“상미가 기다릴 텐데?”
“아, 그러네? 그럼 나 먼저 갈게.”
명수는 순순히 단유의 말을 들었다. 그 뒤 단유는 교장실로 향했다.
“왔어요?”
책상에서 일을 보던 중이었는지, 서류를 보던 교장 선생님은 보던 것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는 안 고픈가요?”
“괜찮습니다. 집에 가서 먹으면 되거든요.”
“단유 군 덩치만 보면 어디 운동부 소속이라 해도 믿겠어요. 그 몸을 유지하려면 먹기도 많이 먹어야 할 거 같은데.”
“먹는 걸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많이 먹는 편도 아니에요.”
“그래요?”
짧은 웃음과 함께 교장은 단유의 맞은 편에 앉았다.
“길게 이야기할 건 아니고요, 사실 이제 방학하고 나면 졸업인데, 그러면 볼 일도 없을 것 같아서 잠시 시간 좀 내달라고 했어요.”
교장은 미소를 지으며 단유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단유 군을 지켜보면서 꽤 즐겁기도 했고, 제가 앞으로 어떤 교장이 되어야 할지,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어떤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었어요.”
“저를요?”
교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단유 군처럼 전교 1등하고 공부만 하기를 바란다는 건 아니에요. 단유 군도 그랬잖아요? 전교 1등을 위해서 공부하는 건 아니라고.”
“네.”
“교장으로 오기 전, 단유 군이 인터넷에 나와서 했던 말을 봤다고 했었죠? 그리고 이후에도 간간이 단유 군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바를 말하는 거예요.”
“네.”
“학교도 작은 사회고,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시스템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시스템이 바르게 작동하길 바란다는 단유 군의 말은 꽤 오랫동안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였어요.”
단유는 지난번에 교장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 중에 잠깐 나왔던 이야기를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이야기를 중요하게 판단하고 생각했다는 사실에 조금 더 놀랐다.
“현재 한국 교육 시스템을 제가 마음대로 바꿀 순 없으니, 그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학교 내에서만큼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차별받지 않고 꿈을 키울 수 있게 해보고 싶어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듣기엔 좋았지만, 그걸 왜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단유였다. 그러나 입 밖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그러나 나이 든 교장 선생님은 단유의 무표정 속에서 그런 의문을 읽어낸 모양이었다.
“저는 단유 군을 보면서 교육의 중요성도 느꼈지만, 학교라는 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 학교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학교를 ‘정상화’ 시키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교육부에 있을 때, 학교가 얼마나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고서로 읽었거든요. 그래서 잘못된 길로 가는 학교를 바로 잡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교사가 학생을 체벌하고, 체벌 받은 학생은 뇌사로 숨을 거뒀다. 또 야구방망이가 부러질 때까지 학생을 때리는 행위로 인해 뉴스를 타고, 교사는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자택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또 학생과 교사가 교실에서 서로 주먹질을 하는 참상이 벌어지기도 했고, 초등학생에게 과한 체벌을 가한 탓에 뇌진탕에 걸려 식물인간이 되기도 했다.
학생끼리 서로 때리게 한 교사가 있는가 하면, 따돌림으로 자살한 학생이 줄을 잇기도 했고, 복수를 위해 가해 학생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교사가 여학생을 성추행하거나 선배 학생들이 후배 여학생을 집단 강간하는 사례도 있었다.
학생인권센터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피해 상담과 고발이 이어졌다. 교육부에는 교사의 피해 사례가 쏟아졌고, 뉴스에는 공교육 붕괴가 뉴스로 보도되었다.
“학교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는 생각은 학생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똑같이 하고 있어요. 특히 교사들은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죠. 하지만 모두 어떻게 학교를 바꿔야 할지 그 방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똑같아요. 이 학교를 어떻게 이끌고 나가야 할까, 하는 점에서요.”
교장의 자조적인 서술에 단유도 잠시 자신이 바라본 학교가 어떠한가를 떠올려보았다.
“사람은 그래요. 상대방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사건을 이해하거나 풀이하는 방식은 본인 위주로 돌아가기 마련이거든요? 저도 말로는 학생들을 위해서, 라고 하지만 어쩌면 제가 쌓은 경험과 기억에 의존해서 학교를 바라봤던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가장 익숙한 방식과 경험을 올바른 것으로 생각했던지도 모르겠고요.”
이를테면, ‘아침 조회’와 같은 것이다. 전교생에게 교장 선생님이 훈화를 건네는 아침 조회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잔재지만, 구성원의 화합을 위한다는 명목과 경륜이 많은 교장 선생님의 말씀으로 ‘교화’를 한다는 핑계가 여지껏 조회를 계속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니고,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테다. 하지만 조회라는 예식을 통해 교사와 학생들을 통제하는 방식이 교장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목적이며, ‘수직적 관계’와 ‘복종’을 체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분명 지적되어야 할 악습이다.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아이들은 떠들면 안 되고, 자리에서 벗어나서도 안 되고, 딴짓해서도 안 된다. ‘복종’해야 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단유 군이 그랬죠? 꿈을 꿀 시간이 없다고. 전교 1등, 모든 학부모들이 바라마지 않는 성적을 유지하고 모든 선생님이 칭찬해 마지않는 모범생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꿈’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었죠.”
단유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았으니까. 하지만,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을 때 했던 그 대화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학교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하물며 다른 학생들은 어떨까요. 학교는 학생들에게 단유 군과 같은 자세로 학교생활을 하길 바라면서 그것이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추상적인 희망만 제시해 줄 뿐인데 말이죠. 꿈꿀 시간을 주지 않으면서 꿈을 꾸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었던 셈이죠.”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교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도 습관인가 봅니다. 지루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버릇이요.”
“아뇨, 지루하지 않았어요.”
“단유 군은 제게 그걸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그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단유 군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나중에 우연히 보게 된다면 어렸던 단유 군에게 감화되었던 한 늙은이가 이런 학교를 만들었노라 자랑하고 싶다는 치기(稚氣)입니다.”
교장의 눈은 잠시나마 현재가 아닌 미래의 어느 날을 그려보고 있었다. 다시 만난 단유에게 떳떳한 교육자로서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오늘보다 더 나은, 더 훌륭한 어른으로서 성장해 있을 단유 군을 볼 수 있겠지요. 그렇죠?”
“···자신이 없는데요?”
“허허, 꼭 그렇게 될 거예요.”
교장은 웃음을 터뜨린 후 품에서 펜을 하나 꺼냈다.
“어린 학생들이 이런 펜을 쓸지 모르겠지만.”
펜보다 펜을 건네는 교장의 굵고 주름진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선물이에요. 미리 주는 졸업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나요?”
“됩니다. 이 선물은, 일종의 증표라고 생각하세요.”
“증표요?”
“제가 지금보다 더 훌륭한 교장으로서, 더 좋은 학교를 만들어 보이겠다는 다짐을 상징하는 증표이고, 단유 군이 멋있는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하는 증표지요.”
“그런 것이라면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선물은 말이죠, 기억하는 것이에요.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 선물을 볼 때마다 준 사람을 기억하고, 선물을 준 사람은 그 선물을 떠올리며 받은 사람을 기억하는 거죠.”
펜은 특별히 고급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투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제가 20년간 사용했던 거라 조금 낡긴 했지만, 쓰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소중히 간직할게요.”
“그래 주면 고맙죠.”
교장은 그동안 대화 상대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며 악수를 청했다. 단유는 교장의 손을 붙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흘렀다. 손이 차가우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던가요, 라는 농담을 건네며 교장 선생님은 단유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