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yes on m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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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을 위해 나선 단유와 명수는 평소와 달리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다른 친구들과 함께, 멀리 자전거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평소라면 늦잠을 자고 있을 지태나 채윤도 모처럼 일찍 일어나 가벼운 가방을 등에 메고 단유네 오피스텔 앞으로 왔다.
“으, 춥다.”
지태는 두 팔로 자신을 감싸고는 하얀 입김을 후후 불어냈다.
“달리면 금방 몸에 열이 오를 거니까 참아.”
채윤이 지태를 다독일 때, 오피스텔의 문이 열렸다.
“일찍 왔네?”
“우리도 지금 왔어.”
“지태를 이 시간에 보다니,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명수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내가 뭐? 난 이 시간에 일어나면 안 되냐?”
“됐고. 아침은?”
“난 아침 잘 안 먹어. 채윤이 넌 먹고 왔냐?”
“간단하게 과일 몇 개 집어 먹었지.”
명수는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단유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서 한강까지 가려면 꽤 오래 가야 할 텐데, 배 좀 든든하게 채워놔야 하지 않나?”
“가다가 분식집이라도 있으면 잠깐 들리던가, 아니면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먹자.”
“그럴까?”
명수는 자전거에 발을 올렸다.
“그럼 고!”
난지 공원에서 시작해서 광나루 한강 공원에 이르는 코스를 모두 돌아보자는 무모한 도전은 불과 이틀 전에 결정되었다.
“추억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래. 추억이 되겠지. 그런데 왜 매번 이렇게 여유 없이 결정하는 거야?”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건 젊음의 특권이라고!”
명수가 단유를 돌아보며 물었다.
“쟤 뭐라는 거야?”
“그냥 놀고 싶다는 핑계.”
“단유 너까지 왜 그러냐? 너라면 날 이해해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해해.”
이해하니까 지태의 즉흥적인 제안이 ‘핑계’라고 짚어낸 것이다. 지태는 심각하고 진지하게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것은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즐겁게, 흥겨운 기억만으로 가득한 친구들이었다. 그 기억을 계속 간직하고 싶다는 바람을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고, 또 원하고 있었다.
“그럼 도시락이라도 싸야 하나?”
“에이, 무슨 초등학생 소풍 가는 것도 아니고 도시락은 무슨. 그냥 편의점에서 간단히 때우고 그 날은 계속 자전거만 타는 거야. 이름하야 폭주 자전거 데이!”
“그게 네 개그의 한계구나.”
명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차자 지태가 발끈했다.
“뭐, 어때서?”
“둘 다 그만둬. 만약 그 코스로 돌려면 꽤 일찍부터 움직여야 할 거야. 채윤이는 그래도 믿을 수 있겠지만, 넌 조금 불안한데?”
“내가 그렇게 신뢰가 없어? 두고 봐라. 내가 제일 먼저 나올걸?”
지태는 자신의 말을 지켰고, 그래서 가장 먼저 단유네 오피스텔 앞에 와서 기다렸고, 그래서 네 사람은 제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다.
“아이고, 힘들다.”
아직 한강에 도착하기도 전이지만 지태는 물론이고 채윤까지 체력의 부족을 느끼며 페달을 느리게 밟았다.
“아침을 제대로 안 먹고 와서 그럴 거야. 그래서 사람은 밥심이라고 하는 거잖아?”
결국 한강에 도착하기도 전에 네 사람은 식당을 찾았다. 편의점도 괜찮다는 아이들의 말에 단유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먹는 건 제대로 먹자. 편의점 김밥 질린다.”
“오오, 역시 알부자.”
“이래서 사람은 돈을 벌어야 하는 거야.”
“나도 고등학교 올라가면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해야겠다. 엄마한테 손 안 벌리고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니가 퍽이나 하겠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말도 안 통할 텐데 무슨 아르바이트를 해?”
“캐나다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라. 지금 랭귀지 스쿨 들어가야 한다고 요란 법석이다.”
지태가 골이 아프다는 투로 투덜대니 명수가 키득거리며 지태의 어깨를 두드렸다.
식당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문을 연 식당을 보기가 힘든 탓이었는데, 식당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게 귀찮았던 지태와 명수는 물론 채윤까지 지친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그냥 저기 가자.”
이번에는 단유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네 사람은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서 모닝 메뉴를 시켜서 간단히 배를 채우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
단유와 명수가 아침 일찍부터 ‘소풍’―자전거 하이킹, 이라고 정확히 설명했지만, 듣기에는 그냥 소풍이나 다름없었다―을 간다고 요란을 떨 때도 방 안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하은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왔다. 일주일의 단 하루는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게 보장되어야 다시 일주일을 열심히 보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고, 하은은 믿었기 때문이다.
거실로 나섰을 때, 그녀를 반긴 것은 혀를 내밀고 촐싹맞게 꼬리를 흔드는 호빵이었다.
“밥은 먹었니?”
호빵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하은을 바라보며 헥헥거릴 뿐이었다. 목이 마른 걸까 싶어 바라보니, 이미 부지런한 단유가 물을 가득 채워놓고 나간 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니까 아침도 먹은 거 같은데, 더 못 줘. 단유한테 혼난다.”
호빵은 킁킁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자기 방석이 있는 곳으로 총총 걸어갔다. 푹신한 방석 위에 자세를 잡고는 고개를 푹 숙여 하은을 졸린 눈으로 바라보는데, 이럴 때 보면 정말 저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주인을 닮아서 똑똑한가?”
이 집 주인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똑똑한’ 편이니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호빵의 행동 양태를 분석한 하은은 머리를 긁으며 주방으로 갔다. 시원한 물 한 컵으로 남아있던 잠기운을 깨끗이 씻어 보낸 그녀의 다음 일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것이었다.
리모컨을 찾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거실을 정리해놓는 단유 덕택이었다. 가끔은 단유가 결벽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여서 물어보기도 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단유 덕분에 늘 깨끗하게 정리된 거실에서 안락함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 늘 행복한 하은이었다.
소파 앞 거실 탁자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켠 뒤, 하은은 소파에 앉는 대신, 베란다로 향했다. 케이블 뉴스 채널이 켜지면서 어제 저녁에 들었던 뉴스의 재탕 같은 몇몇 뉴스와 ‘한낮의 온도가 예년보다 많이 떨어져 야외 활동을 하실 때 두꺼운 옷을 입으시길’ 바란다는 기상 캐스터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유리에 가로막혀 정말 그만큼 추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몇 주 전과 다르게 삭막한 분위기를 주는 거리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구름이 많이 끼지 않은 밝은 아침이라 밖에서 자전거 타고 놀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소파로 돌아온 하은은 오늘이나 어제나 별다를 게 없어 재미없는 뉴스 대신 잠시라도 엔돌핀이 솟구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줄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돌렸다. 홈쇼핑 채널에서 구이용 대하를 쩝쩝 소리 내며 먹는 모델들의 모습을 20여 초간 보며 입맛을 다시다가, 리얼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의 막장 스토리를 보며 자신이 놓친 앞부분을 유추해보고, 해외에서 유행하는 브랜드의 스타일리쉬한 트래킹화를 보며 자신의 뱃살을 살짝 움켜잡았다가 놓기도 했다.
해외 야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리모컨을 놓고 빠져들 채널도 단 1초의 고민 없이 넘기고, 해외여행 패키지 광고 채널은 고민하지 않기 위해 넘기고, 드라마 연속 방영을 하고 있던 채널은 자신이 잘 모르는 배우들이 나와 어색한 말투로 이해 못 할 대사를 늘어놓기에 관심을 끊었다.
“심심하네.”
리모컨 채널을 누르는 손가락은 쉴 새 없이 버튼을 누르고, 눈은 잠깐잠깐 머무르는 순간의 장면을 보고 해석하며 시간을 보냈다. 호빵이 하품을 하며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는 모습이 살짝 보였지만, 저 아이에게도 휴식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 건들지 않기로 했다.
음악 채널이 나왔지만, 한동안 대중 가요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요즘 어떤 노래가 유행하는지, 어떤 가수들이 무대를 꾸미는지 알지 못했다. 잠깐의 호기심에 리모컨 버튼 누르기를 쉬고 바라보니, 기본적으로 가수들 대부분이 그룹이었다. 남자들이 우르르 나와서 대형을 갖추고는, 격렬한 댄스와 화사한 미소, 격정적인 감정을 흉내 내고는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그 뒤에는 다시 여자애들이 우르르 나와서 대형을 갖추고는, 깜찍한 댄스와 애교 섞인 몸짓, 지금 당장 나를 보지 않으면 안 될 걸, 하는 표정을 짓다가 인사를 하면 화면이 바뀌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양새가 마치 평일 아침 지하철의 개찰구에서 줄을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것만 같다. 개찰구에 카드를 찍는 그 순간을 제외하면 모두가 바쁘게 발을 놀려 어디론 가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잠시 무대에 섰다가 사라졌다. 대부분 빠른 비트에다가 귀를 타박하듯 쏟아지는 가사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늙은 거겠지.’
문득 옛날의 노래들은 가사도 쉽게 외우고 따라부르기도 쉬웠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의 노래가 예전의 그것보다 음악적으로 세련되고 발전되었겠지만, 자신의 감수성은 예전의 그것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었다.
어르신들 말처럼 ‘정신 사나운’ 노래를 더 듣고 있기가 힘들어, 채널을 돌리려던 하은은 그냥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아무래도 지금의 자신은 TV를 보며 엔돌핀을 느끼기가 어려운 상태인 것 같았다. TV를 끄고 대신 핸드폰으로 노래를 찾았다. 그리고 스피커에 연결하여 음악을 틀었다.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의 ‘Traume’(from Wesendonk-Lieder)가 흘러나오며 소프라노의 고고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엔돌핀을 포기하고, 휴식과 안정을 택했다.
****
한강에 도착하니 벌써 11시가 다 되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쓴 탓도 있지만, 지구력이 부족한 두 친구와 호흡을 맞추다보니 도착하는데 만도 시간이 이렇게 걸린 것이다.
“나 벌써 배고프다.”
“배가 고픈 거야, 지친 거야?”
“솔직히 말하면 둘 다인 거 같다.”
지태는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고 벤치에 앉았다.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친구는 말도 길게 잇기가 어려웠는지 상체를 숙이고 숨을 헐떡였다. 땀을 식혀주기 위해 따로 바람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차가운 강바람이 꽤 세게 불어오고 있던 탓이었다.
“너무 오래 쉬면 땀이 식어서 감기 걸리니까, 조금 쉬었다가 다시 가자.”
단유의 말에 채윤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서 쉬고 있어. 내가 가서 물 좀 사 올게.”
지태가 손만 들어서 흔들었다.
“같이 갈까?”
단유는 명수에게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 갈게. 넌 애들이랑 여기 있어.”
그리고 단유는 다시 페달을 밟아서 죽죽 나가기 시작했다.
“단유 쟤는 진짜 철인 아냐? 어떻게 저렇게 힘이 넘쳐?”
지태가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단유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아침마다 운동을 했어. 웬만한 운동부 애들보다 체력은 더 좋을걸?”
“저건 웬만한 수준이 아니야. ···너도 그렇고. 너희 둘은 진짜 괴물 같애.”
“친구한테 괴물이 뭐냐?”
“나한테 너희들이 그렇게 보여. 넌 안 그래?”
채윤이 피식 웃으며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명수는 넌 분명히 축구 선수로 대박 날 거야. 심장이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인 사람이라고 부를지도 몰라.”
“오버하지 마. 다른 애들도 이 정도는 해. 너희들이 너무 약한 거야.”
지태는 절대 아니라고 부정했다.
“우리가 평균이야. 대부분 애들은 다 우리 정도라고. 아니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혓바닥 함부로 놀리는 거 아니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먹으로 툭 미는 명수의 손짓에 지태는 반항할 의지가 없는지 힘없이 밀려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바람이 불어서 다행이야. 만약에 여름에 이 짓을 했으면 여기까지 절대 오지 못했을 거야.”
채윤의 말에 지태가 맞장구쳤다.
“그니까 말이야.”
그리고 대화가 끊어졌다. 명수도 지치긴 마찬가지였기에 지태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렇게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은 다리를 쭉 펴고서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런데 사람 많다.”
한강 공원에는 공을 차는 사람과 나들이 나온 사람들, 조깅 하는 사람들과 단유네처럼 줄지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