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yes on m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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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나 2학년 때나 3학년 때나, 전체 조회가 있는 날의 교실은 언제나 어수선했다. 추측하기에 그건 고등학교에 올라가도 마찬가지일 것만 같았다.
“으흠.”
교장 선생님을 비추는 카메라에는, 마이크를 피해 기침을 하는 교장의 모습이 잡혔다.
“목이 많이 아프신 것 같은데, 그냥 조회 넘어가면 안 되나?”
잔기침과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안쓰럽다기보다는 그저 형식적인 조회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교장 선생님은 가을 감기에 걸리셨는지 마른 목을 축이려 연신 물을 마셨지만, 그런다고 목이 금방 낫지는 않았다. 마른 논이 갈라지듯 목소리가 갈라져 듣고 있는 학생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일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중 한 명이 명수였다.
“좋아?”
단유가 물었다.
“좋지, 그럼.”
명수는 히죽 웃으며 교실 앞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교장 선생님의 앞에는 2학년 학생 한 명이 서 있었는데, 바로 명수의 후배이자 현 축구부 주장을 맡은 아이였다.
장계 중학교 축구부는 올해 가을에도 우승을 거뒀다. 지난봄 대회에서는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해서 연승을 잇지 못했지만, 잃었던 왕좌를 이번 가을에 되찾았다. 여름방학 동안 고생했던 2학년들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교감 선생님이 읽고 교장 선생님이 건넨 상장을 받으며 2학년 후배는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쟤 너무 긴장한 거 아냐?”
“어디 저런 자리에 서 봤어야 말이지. 애가 낯을 많이 가려서, 처음에는 주장도 안 하려고 하더라고. 그런데 내가 말했지.”
“뭐라고?”
“네가 주장을 해야 내가 안심을 한다고. 쟤가 날 되게 존경하거든.”
“존경?”
단유의 되물음에 명수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익살 궂게 웃었다.
“왜 이래? 후배들 중에 나 존경하는 애들 많다?”
“걔들이 그래? 너 존경한다고?”
“그럼.”
세상에, 아무리 친한 명수지만, 명수를 존경하는 후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놀랍다. 물론 축구 실력만 보면, 그러니까 경기장 위에서 날뛰는 명수를 본다면, 명수를 존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의 명수를 보고 과연 존경한다고 할 수 있을까?
단유는 고개를 모로 젓다가 물었다.
“그런데 넌 저런데 서고 싶지 않아?”
“뭐?”
“상 받는 장면이 카메라로 나오는 거.”
“에이. 난 싫어.”
하긴 단유 본인도 저런 자리에 나가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은 싫으니까.
“쪽팔리게 고작 중학교에서? 난 싫어. 하려면 공중파 TV 정도는 돼야지.”
“···아, 그런 뜻이야?”
“나중에 프로선수 돼서 방송국 카메라 많은 데서 박수갈채 받으면서 받아야 폼이 나지. 이런 데서? 에이, 싫어.”
명수는 스케일이 크구나.
****
늦은 시간, 일을 마치고 돌아온 하은이 단유를 불렀다.
“우리 집 말이야.”
지난번에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들렀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었다. 하은이 알아서 해결하겠노라고 말해서 이후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구하셨어요?”
“그게 말이야.”
하은은 머리를 긁적였다.
본래 이 집의 매매에 대한 결정권은 법정 대리인인 재훈에게 있었다. 그러나 본인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재훈의 복대리인인 재훈네 집안 변호사가 하은을 만나게 되었다.
“재훈씨는 이 집의 매매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네. 그래서 만약 매각을 원하신다면 알아서 하시라고 합니다. 거래시 제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거고요.”
“잘됐네요.”
어차피 법무사에게 등기 대리를 맡겨야 하는데, 변호사가 해준다면야 하은이 신경 쓸게 줄어서 좋다.
“그런데···.”
“네?”
“만약 다른 집이 필요하신 거면 굳이 팔지 말고 하나 더 사주시겠다고.”
“네?”
변호사는 핸드폰을 꺼내 몇 번 누르다가 곧 액정에 뜬 것을 눈으로 훑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 집의 명의가···김단유 군의 것으로 되어 있다지요? 그리고···같이 동거하는 아이 중에 인명수란 아이도 있다면서요?”
하은의 눈가가 살짝 굳기 시작했다.
“재훈 씨의 말을 전하자면, 인명수란 아이의 명의로 집 하나를 더 사도 된다고, 그러시더군요.”
하은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하은의 표정을 마주하면서도 변호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핸드폰을 끄고 다시 안주머니로 집어넣을 때, 하은의 냉랭한 목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이게 뭐하자는 거죠?”
“네?”
“우리가, 아니 애들이 무슨 거지인가요? 무슨 적선하듯이···.”
“적선이라뇨? 아시겠지만, 서울의 집값, 결코 거지에게 적선할 푼돈 정도로 여기기 어려울 텐데요.”
“그러니까요! 집이 무슨 애들 장난감도 아니고···이렇게 쉽게 건넬 물건이냔 말이에요!”
변호사는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재훈 오빠, 아니 연재훈 씨가 집을 준다고 하면 우리는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넙죽 받으면 되는 건가요?”
“그런 의미로 드리는 선물은 아닙니다.”
“선물, 이요?”
“···죄송합니다. 말이 헛나왔군요. 아무튼, 재훈 씨의 의사는 그렇습니다.”
도대체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렇다고 변호사에게 화를 낼 성질의 것은 아니란 생각에 하은은 심호흡을 했다.
“이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준다고 넙죽 받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1만원 짜리 문제집이라면, 그래 성의를 생각해서 받아준다 할 수 있다. 하지만, 1억, 아니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를 금액의 ‘집’을 무상으로 준다는 걸 받아들이긴 어렵다.
하지만 생각에 잠겨 잠시 입을 닫은 틈에 변호사가 꺼낸 말에서 하은은 눈썹을 추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아이들의 법적 권리에 관한 내용으로 의논이 필요한 경우, 저에게 연락 주시면 됩니다.”
“···무슨 뜻이죠?”
사실 이번 기회로 ‘복대리’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된 하은이었다. 대리인의 대리인이라니. 마치 난 너희들 보기 싫다, 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외치는 것 같지 않은가. 해외에 있어서 이야기 나누기 힘들다는 말도 핑계로만 들렸고. 사실 국내에 있다 하더라도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긴 했지만, 그것과 이건 다르다.
‘차는 것과 차이는 건 다르잖아.’
그런데 변호사의 말은 재훈이 대놓고 ‘난 빠질래’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책임한···.’
이를 꽉 깨무는 하은에게 변호사는 명함을 건넸다.
“이 전화로 전화 주시면···.”
하은은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의 그것처럼 사납게 명함을 채갔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의논하고 연락드리죠.”
“그러십시오.”
변호사는 일어서며 양복 앞 단추를 여몄다. 하은은 변호사를, 그 뒤에 선 그림자를 노려보듯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집을 새로 사준다고요?”
“응.”
단유와 명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쉽게 입을 열진 않았다.
“일단···그 사람 말로는 단유는 이 집이 있으니까, 명수에게도 집을 주겠다는 건데···.”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명수가 말을 잘랐다. 단유와 하은이 명수를 바라보니, 평소의 명수와 다른 모습이었다.
“말하자면, 저한테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거네요.”
그 말에 하은이 당황했다.
“아냐, 그런···뜻은 아닐 거야.”
“어차피 전, 단유 옆에 꼽사리로 들어온 거잖아요. 재훈이 형, 저한테 별로 관심 없었는걸요. 그런데 그런 저한테 집을 사주겠다는 건···.”
명수는 단유를 바라보았다.
“저희랑 아주 연을 끊겠다는 거 아닌가요?”
하은이 손을 저었다.
“그런 건 아닐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 돈이 많잖아? 돈이 많으니까, 그래서일 거야. 그 사람한테는 집 한 채 사는 건 별로 무리가 아니란 거겠지. 그런 걸 거야.”
단유는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결국 두 사람 다, 재훈이 ‘선의’로 집을 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셈이었다. 모두가 말은 안 했지만, 그때 그 일로 가슴에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은 것이리라.
“그리고 저 그거 안 받을래요. 재훈 형과 계속 보고 싶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받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 형한테 계속 대가 없이 받는 것도 싫고요.”
명수의 대답과 단유의 무언의 동의를 확인한 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 제안은 받지 않는 거로 하자.”
하은은 빙긋 웃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중요했다. 우린 잘 지내고 있다고, 당신이 그런 싸구려 동정심을 보이지 않아도 잘 사노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싸구려치고는 터무니없이 비싼 값이지만.’
분위기도 바꿀 겸, 하은이 자신의 허벅지를 찰싹 때리며,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이번 주말에 새로 옮길 집이나 보러 갈까?”
“다 같이요?”
“그래! 우리가 다 같이 살 집이니까, 당연히 같이 봐야겠지?”
“좋아요!”
명수가 입을 길게 찢으며 좋아했다.
****
“이 집입니다.”
하얀 카라티에 감색 정장 재킷을 걸친 수더분한 인상의 중개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25층 아파트 중 21층인 이 집은 비워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도 입구부터 자욱하게 쌓인 먼지가 세 사람을 반겼다.
“원래 사람이 관리하지 않는 집은 금방 더러워지는 법이죠.”
일부 중개사들은 집을 보러오는 손님의 구매의욕을 높이기 위해 집을 청소해놓기도 하지만, 지금 이 중개사는 그런 수고를 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워낙에 수요가 많은 동네라서 살 사람은 뭘 해도 살 거라고 생각하는 중개사였다.
집 안으로 발을 들인 하은과 두 아이는 먼저 거실로 향했다.
“좀 작네?”
이전의 오피스텔에 비해 거실이 조금 작았다. 하지만 그건 이 아파트의 평수가 오피스텔보다 작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파트 자체가 방의 크기를 키운 구조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거실이 좁아진 탓도 있었다.
“전에 살던 신혼부부는 그냥 이대로 썼는데, 여기 베란다를 확장해서 쓰면 넓게 쓸 수 있어요. 요즘 다 확장해서 쓰잖아요?”
말이 나온 김에 베란다 쪽으로 나간 명수는 높은 고층의 아파트에서 오는 아찔함에 한 발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우와. 여기 되게 높구나.”
이전의 오피스텔도 높은 층수이긴 했지만, 여긴 거의 두 배 이상 높은 곳이었다.
“요즘은 낮은 곳보다 높은 곳을 더 선호하는 거 아시죠?”
모르겠다. 하은을 쳐다보니, 하은도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딱히 싫다는 것도 아니어서, 하은은 베란다에서 물러나 방 안을 구경하러 갔다. 그 사이 단유와 명수는 베란다에서 바깥을 내려다봤다.
“남산 타워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모습이겠지?”
“남산 타워가 더 높겠지만, 비슷할지도.”
명수는 처음에 물러섰던 것과는 달리, 창에 붙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멋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그때 바람 부는 소리가 크게 들리며 바깥 들창이 들썩거렸다. 창에 손을 짚고 있던 명수는 그 떨림이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얼른 손을 떼며 허공을 내다보다가 단유에게 물었다.
“이거 안 깨지겠지?”
“응. 아마도.”
그렇게 허술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이렇게 높은 아파트를 짓는데 나라에서 허투루 승인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니까. 그리고 만약 사고가 났다면 벌써 예전에 뉴스에 났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고층 아파트에서 안전 문제로 뉴스에 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너희들도 방 좀 구경해.”
방을 둘러보던 하은의 말에 단유와 명수는 베란다에서 등을 돌렸다.
“막상 본다 해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없는 방인데.”
“그 방에다가 자기 책상이며 침대며 이런 걸 배치한다고 상상하면서 보면 돼. 어디에 어떻게 가구들을 놓을지 상상하는 거, 재미있을 거야.”
머리를 긁적이며 방 안을 힐끔 쳐다보는 명수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려 보일 뿐이었다.
이후 몇 집을 더 돌아본 뒤, 하은과 두 아이는 맘에 드는 집을 고르지 못한 채 다시 원래의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우리 집이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여기가 적응돼서 그래. 나중에 이사 가서 적응하면, 그때는 거기가 더 좋을걸?”
“그럴까요?”
“그럼. 사람은 적응하기 나름이거든. 사소한 결점은 조금씩 고쳐나가면 되고.”
명수는 괜히 집을 둘러보며 아쉬운 듯 말했다.
“차라리 여기서 통학할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여기서 거리가 얼만데.”
명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단유는 그런 명수의 머리를 한번 휘저으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고 말했고, 명수는 그런 단유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