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he Future(5)-수정(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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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까운데?”
“네?”
“거기 오피스텔 위치가 좀 아까워요? 놔두고 월세로 받아도 좋을 텐데.”
“저희가 이사를 가야 하는데 돈이 없거든요.”
“어디로 가는데요?”
“아직 정해진 건 아닌데···.”
하은이 동네를 이야기하자, 숏 커트의 아주머니는 혀를 차며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를 검색했다.
“오피스텔 월세 주면 그게 또 쏠쏠하니 좋은데. 사실 예전에는 오피스텔에 부가세를 매겼어요. 그런데 요즘은 사무실로 쓰든, 주택으로 쓰든 부가세를 안 매겨도 되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데.”
아주머니는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지만, 들으라고 하는 말임을 모를 수 없었다.
“어디, 아파트로?”
“네, 일단은 아파트로 알아보려고 하는데.”
“여기는 그 돈으로 사긴 힘든데.”
반말과 존대가 뒤섞인 중개사는 모니터에 떠오른 차트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하지만 하은은 중개사의 설명에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숫자와 그래프에 익숙한 하은이지만, 지금 모니터에 뜬 그래프를 보고서 앞으로의 전망을 예측하긴 어려웠다.
“요즘 이 동네가 전세가율이 높아서 정부가 규제를 강화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거든. 그럼 당장은 가격 상승세가 꺾여서 매매는 좋을 수 있을지 몰라. 그런데 그래도 한동안 많이 올랐던 터라 그 가격으로 매매할 만한 물건이 있을지 알 수 없다고요.”
“저기, 저희는 거기 들어가서 살 집을 구하려는 거지, 딱히 수익을 거둘 생각은 없는데요.”
“지금 당장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나중에 집값 떨어져 봐요. 그때는 아깝다는 생각에 땅을 칠걸?”
아주머니는 안타깝다는 얼굴을 하고 매물을 찾아봐 주었다.
“그래도 동네가 동네다 보니 다 비싸네. 여기 보이죠?”
섬네일과 매물 가격이 주르르 매겨진 모니터 화면을 보며 하은은 옆머리를 긁었다.
“뭐, 여기 정도면 대출 좀 보태면 살 수 있겠네. 여긴 어때요?”
“저기 그런데 이 오피스텔은 지금 얼마 정도에 팔리는데요?”
그런 것도 미리 알아보지 않고 왔냐는 표정이 드러났다. 젊은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거예요, 라고 따질 법도 한데 워낙에 이쪽 방면으로는 아는 바가 없던 하은인지라 일단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솔직히 지금 오피스텔이 금값이라 내놓으면 금방 팔리긴 할 거예요.”
한 이 정도, 라며 중개사가 제시한 금액에 하은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단유를 쳐다보았다. 단유는 들어도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하은의 난감한 얼굴을 보면 돕고 싶기도 하지만, 자신이라고 아는 바가 있겠는가.
사실 단유는 별로 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전혀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거니와, 하은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은은 엄연히 단유가 명의자이고, 자신의 재산이니 어떻게 거래가 되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단유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하은이나 단유나 비슷한 얼굴을 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하은은 주워들은 거라도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결과는 도긴개긴이었다.
복잡한 법을 강의하는 것도 아니니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세가율’이니 ‘규제 강화’니, ‘취득세’, ‘양도세’, ‘부가세’ 등의 숫자들이 붙는 말들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와중이었다. 하은이 부동산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걸 알게 된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이것저것을 설명하다, 양도소득세 문제가 나오면서 명의자가 이 집을 몇 년간 소유하고 있었던지를 묻게 되었다.
“아, 저기 그런데 이 집의 명의가 이 아이로 되어 있거든요.”
“응?”
중개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이 이름으로 되어 있어?”
“그건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요.”
“아들처럼 보이진 않는데.”
“아무튼, 그럼 어떻게 매매할 수 있죠?”
“부모는?”
하은이 단유를 흘깃 본 후,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미성년자지? 그럼 법정대리인이 하면 돼.”
이 시점에서 중개사의 눈빛이 살짝 바뀌어 있었다. 의심이 가득한 눈빛. 하은은 괜히 이상한 오해를 받는 기분이었지만, 굳이 설명하려 들진 않았다.
“법정대리인, 은 아니지만 제가 보호자인데 대리로 할 순 없나요?”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 중개사의 시선에 하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상담 아닌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단유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하은에게 말을 건넸다.
“다른 방법이 있겠죠.”
“···미안하다. 이렇게 기초적인 것도 몰랐다니.”
여전히 법정대리인은 재훈으로 되어 있었고, 하은은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아니에요. 우리가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었잖아요.”
“어른이 돼서 이런 것도 몰랐다는 게 창피하다.”
“모를 수도 있죠.”
“못 봤니? 아까 그 중개사가 날 한심하게 쳐다보던 거?”
“선생님이 우릴 위해서 얼마나 헌신했는지 몰라서 그렇죠. 그나저나 저도 이제부터는 뉴스 좀 봐야겠어요. 아까 그 아줌마가 하는 이야기 10%도 못 알아듣겠던데.”
단유는 일부러 말을 돌렸다. 하은은 씁쓸한 미소를 입에 띄며 단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일 전화해볼게. 부탁하면 들어줄 거야.”
누구에게 전화한다고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단유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금 한국에 없어서 만나기 어려울 거 같은데.”
“뭐?”
친구이자 연성 재단 내에서 팀장 직급으로 근무 중인 주영에게 전화를 건 하은은 재훈이 국내에 없다는 이야기에 당황하고 말았다.
“집 옮긴다고?”
결국 주영에게 사정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응.”
“벌써 애들이 고등학교 갈 나이가 됐구나.”
“그렇지.”
“···잘 크고 있지?”
“너무 잘 커서 걱정할 일이 없다.”
“너 방금 무슨 학부모 같았어.”
“그랬나? 하긴 반쯤은 그런 생각으로 살아.”
“···많이 변했구나? 너.”
“내가 뭘?”
“네 과거를 생각해봐라.”
한군데 오래 있지 못하고, 잠깐잠깐 일하다 지치면 그만두고 지칠 때까지 놀다가 돈이 떨어지면 또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 떠돌았던 하은이었다. 적당히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할 때까지는 남부럽지 않게, 놀 거 다 놀아보자는 마인드였다.
“내가 그렇게 심했나?”
“오죽하면 내가 너 때문에 다크서클이 생겼겠어?”
“지도 같이 놀았으면서.”
“너랑 같이 놀아주느라 다크서클이 생겼다고!”
“몰라. 지나간 일은 왜 또 꺼내고 그래. 아무튼, 그래서 어떡하지?”
“사내변호사님 보낼게.”
“변호사?”
“재훈 오빠의 법률대리.”
말하자면 복대리였다. 민법 제123조에 의거, 복대리인으로서 지정된 변호사는 재훈의 법정대리권을 대리할 수 있었다.
“아주 단단히 준비하고 나간 거구나.”
“오빠가 챙겼겠니? 회사에서 법률적 문제가 나올 걸 미리 다 체크해 뒀으니 그런 거지. 그럼 그 집은 팔고 나갈 거야?”
“그래야 하지 않을까? 옮기려고 하는 동네가 워낙에 비싸서 대출받아서 사야 할지도 모른다는데.”
“그래? 음···그 문제도 우리 변호사랑 상의해보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그 집 팔기는 좀 아까울 거 같은데.”
“왜?”
“왜긴? 요즘 오피스텔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가지고 있으면 그게 다 돈이야.”
“나만 몰랐구나.”
그 뒤로 사소한 이야기가 오간 뒤, 변호사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정해 만나기로 약속하고 통화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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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간다고? 전학?”
“아니. 일단 졸업은 여기서 하고 겨울에 이사갈 거 같아.”
명수는 시무룩한 얼굴로 상미에게 말했다. 상미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럼 방송은?”
“무슨···네 방송?”
“그럼 내 방송이지, 누구 방송이겠어? 도와주기로 했잖아?”
“그건 뭐.”
상미는 명수 곁에 앉은 단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도와주기로 했잖아?”
도와달라고 생떼를 쓰는 모양새지만 그 속내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미련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단유는 말을 아꼈다.
“학교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그렇지. 명수는 축구 선수가 돼야 하니까.”
상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이 꿈을 가지고 준비하듯, 명수도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으니, 그걸 이해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게다가 자기보다 더 오래되고 확고한 꿈이었다. 자신은 그것을 응원해야 했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리고 굳이 얼굴 안 봐도, 게임에서 만나서 어울리면 되니까. 그렇지?”
“그래. 그렇지.”
명수도 히죽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단유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화장실?”
“아니. 오늘 볼 일이 있어서 나 먼저 가야겠어.”
“어디?”
명수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딜 가! 나 혼자 두지 마.’
단유는 두 사람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 명수도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다면, 굳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
“강남에.”
실제로도 번역 회사에 들러 일을 봐야 했다. 지난 여름쯤에 맡았던 번역도 끝이 나서 엊그제 메일을 보낸 상태였다. 그랬더니 회사에서 한 번 찾아오라고 연락이 왔었다. 마침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약속한 날짜는 아니지만,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찾아가 볼 마음을 품었다.
“굳이 오늘 가야 돼?”
“응. 상미야, 나중에 다시 보자.”
“진짜?”
“그래도 중학교 마지막 기말고사까지는 내가 도와줘야지. 안 그럼 너 본격적으로 방송하기도 전에 너희 어머니 반대에 아무것도 못 할걸.”
“역시 김단유! 내 친구!”
“그래, 나도 네 친구고 명수도 네 친구니까, 친구끼리 재밌게 놀고 있어.”
단유는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인 뒤 등을 돌렸다.
****
“괜찮을까요?”
―그럼? 괜찮지. 김 프로는 언제 와도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오도록 해. 아니면 온 김에 같이 저녁이나 할까?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괜찮아요.”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뚝 끊어진 핸드폰을 보며 단유는 피식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번역 회사에 가서 새 일감을 받으러 가던 단유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며칠 전의 일 때문인지, 새삼 이 동네가 다르게 보였다.
‘여기가 서울에서 제일 땅값이 비싼 동네 중 하나란 말이지?’
그저 높은 건물과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번잡하기까지 한 거리, 라고만 생각해왔던 곳이 문득 다르게 보였다. 마치 금을 바닥에 묻어두고 사는 동네랄까?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리는 것일까?
“학생?”
단유는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학생한테 좋은 이야기 전하고 싶은데, 잠깐 시간 있어요?”
푸근한 인상을 가진 아주머니가 검은색 백을 들고 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아주머니는 곁에 선 마르고 하얀 얼굴의 여성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은 뒤, 단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린 위험한 사람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거야. 이사야 서에 보면···.”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 이러지 마시고 저기로 옮기시죠. 거리 한복판에서 이러시면 통행에 방해가 되니까.”
“학생이 마음도 곱네. 몇 살이에요?”
“중학생이에요.”
“···네?”
“중 3인데요.”
“진짜?”
“네.”
“어쩜, 요즘 중학생들은···.”
똑같은 레퍼토리. 낯선 얼굴이 호선을 그린 붉은 입술을 손으로 가리고 웃음소리를 냈다.
“잠깐 시간 되죠?”
“아니요.”
옆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을 때만 해도, 단유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순순히 들어줄 거라고 여겼던 두 아주머니는 당황한 표정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단유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 그러니, 지금은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네요.”
“잠깐이면 되는데.”
“죄송해요.”
“아니, 그럼 연락처라도 주겠니? 우리가 연락을 할게.”
“그러실 필요가 있나요?”
“이게 다 학생을 위해서에요. 요즘 사회가 워낙 흉흉하죠? 그 이유가 뭐 때문일 거 같아요? 그게 모두 사람들이 좋은 말씀들을 듣지 못하고, 그릇된 사고와 우상을 섬겨 그런 거예요.”
단유는 양해를 구하고 떠나려는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단유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어?”
단유의 시선을 따라간 아주머니는 저도 모르게 바보같은 목소리를 냈다.
“어라?”
곁에 선 다른 아주머니도 이상함을 느껴 고개를 돌렸다가 그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늘에 환하게 빛나는 빛. 태양과 다르게 빛나는 발광체는, 너무 환하고 밝아서 차마 눈을 크게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거기서 쏘아낸 빛은 두 아주머니의 눈을 가렵게 만들었다. 실눈을 뜨고 바라보던 한 아주머니가 탄성을 내뱉었다.
“설마!”
어렴풋한 실루엣과 오라 같은 빛은 두 아주머니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을 정도로 익숙한 형체의 그것이었다.
“오! 주여!”
두 손을 맞잡고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손을 비는 두 아주머니의 머리에 이미 단유는 없었다. 이를 지켜보다 단유는 몸을 돌렸다.
“저 아줌마들 뭐야?”
“몰라. 왜 길 가운데에서 울고불고 그러지?”
“신흥종교인가?”
단유가 임시변통으로 만든 환상에 홀린 두 아주머니로 인해 길 위에는 잠시 소란이 있었고, 그 사이 단유는 유유히 거리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