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34화 (534/956)

We are the Future(4)

-------------- 534/952 --------------

“쟤는 왜 안 들어오고 저기 서 있대?”

명수의 혼잣말에 단유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의 도하라면 거침없이 들어와서 말을 걸든지 했을 테니 말이다. 아무래도 들어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도하라 단유가 일어나 다가갔다.

“너답지 않게 왜 여기 서서 불러?”

빙긋 웃는 도하.

“너 그렇게 웃고 있으니까, 징그럽고 무서운 거 알아?”

단유 곁에 따라온 명수가 몸을 떠는 시늉을 하며 말하니까 도하가 피식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며?”

“침 맞을 짓이라도 했냐?”

“아니라곤 못 하겠다.”

“뭐?”

도하는 단유와 눈을 맞췄다.

“이런 거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다.”

단유와 명수는 서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다시 도하에게로 고개를 돌리니, 꽤 머쓱해 하는 도하였다.

확실히 가을이 되니 선선해진 바람에

“금연?”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왜?”

명수의 물음에 도하가 되물었다.

“그럼 계속 피워?”

“그런 말은 아니고. 그러니까 내 말은···.”

단유가 명수 대신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갑자기 금연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

도하는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여자친구가 담배피지 마래.”

“뭐?”

이건 금연보다 더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여자친구 생겼어?”

“응.”

“언제?”

“방학 때.”

명수는 이마를 짚으며 한탄했다.

“난 방학 때 뭘하고 지냈던걸까?”

단유는 명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뒤 도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주면 돼?”

“특별히 도와줄 건 없는데,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해서 하는 거야.”

방학 때, 금연을 위해서 ‘5일 금연학교’를 찾아간 도하는 그곳에서 지키라고 내려준 수칙에 따라 행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5일간 이어진 금연 교육을 받고, 일주일에 1회 방문하여 니코틴 수치를 측정하며, 한 달에 한 번 금연을 선언한 학생들끼리 모여 집단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언제부터 금연을 했는데?”

“지난 주?”

“뭐야, 고작 1주일 밖에 안 지난 거야?”

명수의 불퉁한 반응에 도하가 발끈했다.

“1주일 참는 게 쉬운 줄 알아?”

“나야 모르지.”

이번엔 도하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단유였다.

“다른 거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운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다른 거? 아하.”

피식 웃는 도하의 모습에 명수가 눈썹을 세웠다.

“너 웃는 거 안 어울려.”

고작 1주일, 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도하에게서 늘 풍기던 역한 냄새가 옅어졌음은 분명했다.

“아직 완전히 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꼭 금연할거다.”

“응원할게.”

“네 코가 개코란 거 아니까 부탁하는 거야. 만약에 내가 다시 담배를 핀다 싶으면 확실히 말려줘.”

“네가 내 말을 들을까?”

“내가 네 말은 잘 듣지 않았나?”

“글쎄? 잘 모르겠는데.”

“모르면 됐고. 아무튼 도와줘.”

“알았어. 우선 가방에 있는 담배부터 버리지?”

“내 가방에 담배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아?”

“어쩐지 너라면 아직 들고 있을 거 같아서.”

“···넌 나를 너무 잘 아는 거 같애.”

담배를 끊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금단증상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하지만 일단 지금의 도하는 확실히 금연에 대한 의지가 있어 보였다.

“여자 친구랑 헤어지면 다시 필걸?”

명수는 그 말을 끝으로 도하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너도 여자 친구 사귀면 되잖아?”

“내가?”

단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자가 있어야 사귀지.”

“사귀고는 싶고?”

“당연하지! 나도 남자야!”

“그럼 고백해.”

“누구한테 고백을 해?”

“그걸 모르면 영원히 이대로 지내는 거고.”

명수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5교시가 시작되었기에 단유도 그 문제를 더는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교시간이 될 때까지 명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표정이었다. 그 이상 단유가 개입하는 건 오버라는 생각에 단유는 공부에 집중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시작된 2학기의 교실 풍경은 1학기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인문계-일반계와 실업계-특성화고로 진학 고교가 벌써 나눠진 것처럼 학생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보였다.

“넌 어디 갈 건데?”

“집에서는 일반고로 가라는데, 솔직히 난 공고를 가도 상관없을 거 같애.”

“취업 때문에?”

“어차피 내 머리로 대학가는 건 무리고.”

“우리 집은 가난해서 대학가기 어려울지도 몰라.”

“장학금 받으면 되잖아?”

“장학금은 아무나 주나? 그리고 요즘은 대학교 가도 취업하기 힘들다잖아? 그냥 기술 배워서 취직하는 게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

“벌써 그런 생각하냐? 대단하다.”

“대단하긴.”

“그런데 요즘은 대학 안 가면 취업하기 힘들다잖아? 그래도 대학가는 게 낫지 않나?”

“우리 동네 형이 그러는데 대학 가서 돈 낭비하고 몇 년 동안 백수로 지내느니 차라리 공고나 상고 가서 취업하는 게 좋을 거래.”

“난 그냥 일반고 갈 건데.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

“네가 대학이나 갈 수 있겠냐?”

“고등학교 올라가면 마음 잡고 공부해야지.”

“네가? 퍽이나.”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문제는 고등학생들이 대학교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당사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과 여유는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 대부분 학생들은, 자의든 타의든, 당연히 일반고로 진학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했으며 소수의 몇몇 아이들은 특성화고, 공고나 상고, 혹은 특수 목적고의 진학을 고려했다.

개인의 적성과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여 고등학교를 고르는 경우는 보기 드물었다. 굳이 기준을 따지자면 ‘대학’을 갈 사람은 일반고, 가지 않을 사람은 특성화고로 진학을 고려하는 수준이었다. 더러 대학 진학을 위해 특성화고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학생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니, 그 모든 선택들이 대부분 부모의 선택이었다.

“반장, 넌 어디 갈거야?”

단유는 대답에 앞서 질문한 친구의 말을 정정했다.

“나 이제 반장 아니야.”

“그냥 반장 해. 너 말고 할 사람도 없는데.”

“장담하지 마. 반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우리 반에서?”

친구는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넌 어디 갈 거야? 과학고? 사립고?”

“반장 정도면 과학고 가는 거 아냐?”

“요즘은 사립고가 더 좋다던데?”

“반장은 수학 잘하니까 과학고 가겠지.”

그 말에 단유는 대답 대신 물음을 던졌다. 자신이 ‘수학’을 잘한다는 이유로 과학고를 가는 게 당연시된다면, 너희들은 어떤 이유로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이냐고.

예상했던 대로 신통치 않은 대답들이 이어졌다. 줄곧 들어왔던 이유들. 엄마가, 집에서, 대학은 가야 하니까, 고등학교는 가야 하니까.

설익은 꿈과 여물지 못한 희망은 시스템의 흐름에 묻혀 흘러갔다.

“다음 주부터 진학 상담을 할 테니까, 미리 집에서 부모님과 상의들 하고 와라. 알겠니?”

담임의 말씀을 끝으로 하루 수업이 모두 끝이 났다. 왁자지껄 떠들며 가방을 챙겨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학생들 틈에서 단유는 명수와 함께 담임 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너희 보호자 분은 학교에 오실 수 있겠니?”

“저희 선생님이요?”

“그래.”

처음에는 어색하게만 들렸던 ‘선생님’이란 호칭이 한 학기를 지나고 나니 익숙해진 담임이었다.

“오전이라면 괜찮겠지만, 오후에는 어려울 텐데요.”

“그럼 오전으로 시간 약속을 잡아야 겠구나.”

“네.”

“그런데, 혹시 넌 어디로 가겠다고 정한 게 있니?”

“전 그냥 일반고로 가려고요.”

“과학고로 가도 괜찮지 않겠어?”

사립고의 경우는 비용이 커서, 고아인 단유네가 감당하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해 아예 배제한 담임의 물음에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확신할 순 없지만, 굳이 과학고를 가야 할까 싶어요.”

선생님은 ‘굳이’란 단어에서 단유의 생각을 읽었다.

“물론 네가 평소에 혼자서 곧잘 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체계적인 수업을 들으면 더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미 방학 동안에 알아볼 만큼 알아본 단유였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통학하기도 불편하고, 기숙사에 들어가기는 싫더라고요.”

단유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가 싫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혼자 자유롭게 공부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요.”

수없이 많은 과제에 치어 살게 되면 자기 공부를 할 틈이 없을 것 같다.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르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찾아 공부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단유는 판단했다. 자신의 최종적인 목표는 역시 ‘마법사’였으니까.

“일단 그 문제는 너희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구나.”

“네.”

만약 단유가 과학고에 들어간다면, 학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다. 플랜카드를 걸어 학교를 홍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담임이 무슨 자격으로 강요할 수 있겠는가.

****

“생각이 바뀌진 않았고?”

“네.”

하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이 문제로 틈틈이 이야기해왔던 터라, 단유나 명수의 결정에 딱히 놀랄 일은 없었다.

“그런데 명수는 스카우트를 받은 그 학교로 갈 거니?”

“네.”

“너무 멀지 않니?”

단유가 손을 들었다.

“그 문제 때문에 말인데요.”

“응.”

“저희 이사 가죠.”

“이사?”

갑작스런 단유의 발언에 하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명수랑은 몇 번 이야기했는데, 제 생각에는 명수네 학교가 있는 쪽으로 이사를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생각, 이란 말은 명수의 생각도 있다는 말인데?”

명수는 쭈뼛대다 대답했다.

“전 반대요.”

“왜?”

“여기서 별로 먼 것도 아니라서 굳이 그쪽으로 이사 갈 필요가 없기도 하고요, 단유나 선생님이 저 때문에 사는 곳을 옮겨야 한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아요.”

“흐음.”

하은은 턱을 받치고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단유가 명수의 뒤를 이어 말했다.

“저야말로 어차피 어느 고등학교를 가든 상관이 없지만, 명수는 그 학교를 가야만 하잖아요. 문제는 선생님이신데, 선생님 학원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질 지가 문제일 거 같아요.”

“만약 그 동네로 옮긴다 하더라도 난 상관없어. 어차피 차로 이동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뿐이지 별 차이는 없을 거야.”

명수는 좀 더 망설이는 얼굴이 되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여기서 3년을 살았잖아요? 굳이 옮길 필요가 있을까요?”

“3년을 살았다 해도, 편의에 따라서는 옮기는 게 나을 수 있지. 그리고 우리가 전세를 사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이 집은 단유 명의로 된 집이니까 옮기는 건 문제가 아니지. 문제는 어느 집을 구할 수 있느냐가 문제겠지.”

“여기 아는 사람도 많고···.”

명수의 말끝이 흐려졌지만, 단유는 명수가 무엇을 망설이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단유도 조금 걸리는 문제긴 했다. 바로 친구들.

이사를 가게 되면 아무래도 친구들과 떨어져야 했다. 명수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은은 손끝으로 탁자를 두드리다 팔짱을 끼고 명수를 바라보았다.

“나도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닌데.”

그리고 단유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네 문제도 솔직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아무 학교나 고를 수 없는 게 당연하잖니? 보나 마나 뺑뺑이를 돌릴 텐데, 만약 집에서 멀게 잡히면 어떡하니?”

“그건 여기서도 마찬가지잖아요.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움직여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옮겨도 상관없어요.”

각자 생각하는 것은 비슷했다. 어쨌든 서로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려는 것. 단유나 하은은 명수에게 유리한 쪽으로 옮기는 게 맞다는 입장이었고, 명수는 굳이 자신의 학교 때문에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탐착치 않은 것은 물론 가족의 ‘희생’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이사를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 명수의 반대에도 두 사람은 이사를 가는 게 좋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만약 옮긴다고 하면, 빨리 결정을 해야 돼. 나도 직업상 대출을 받기가 힘드니까, 이 집을 내놓고 다른 집을 사야 하거든?”

집이 빨리 팔려야 돈을 마련할 수가 있다, 는 하은의 설명이었다.

“돈은 저도 보탤게요.”

“너 요즘 돈 자랑 너무 하는 거 아니니? 돈 번다고 유세 떠는 것 같다?”

웃음이 섞인 하은의 말에 단유는 열이 오른 볼을 긁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