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he Futur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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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가 마법을 배울 때 핀체노가 분명히 그랬다. 마법은 ‘라티오’에서 ‘가져오는’ 것이라고. 가져온다 하여 그 대상을 온전히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복제’하여 가져오는 것. 즉, 복제품이다.
다만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져와야 하는지를 정확히 해야 한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고 집히는 대로 가져오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와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대로 상상하여 그 물건을 ‘소환’ 해내는 것이 바로 마법이다. 때문에 대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명확한 정보, 그리고 선명한 상상력이 중요하다.
방에 들어간 단유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떠오르는 포르마에 집중했다.
그리고 마법 구현의 순서에 따라 눈앞에 그 포르마를 생성시켰다. 그러자 책상 위에 대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모자였다. 익숙한 그 모자는 바로 도연이 지선에게 주려 했던 그 모자였다. 단유는 그 모자를 집어 들어 앞뒤로 뒤집어 보았다. 안과 겉이 원래의 모자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모자였다.
물끄러미 모자를 관찰하던 단유는 손을 한 번 툭 털었다. 그러자 모자가 사라졌다. 단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이번에는 책상의 빈 공간에 시계가 만들어졌다. 그 시계는 론이 나무로만 만들었던 바로 그 시계였다. 만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완성이 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도왔기에 그 구조와 외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던 단유였다. 그래서 눈앞의 시계와 그 시계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단유는 천천히 손을 가져가 그 시계의 겉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다 손을 떼자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시계였다.
사실 단유가 사용한 마법은 대상의 실체를 구현하는 마법이 아니었다. 단유가 재현한 것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허상’이었다.
허상이란 실제로는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 보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마법이란 힘을 이용해 단유는 상상을 현실화, 아니 가시화시켰다. 다만 그냥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유의 의지 내에서 실제로 ‘작동’을 하는 ‘허상’이란 게 특이한 점이랄까?
원리는 간단하다. 라티오가 아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도, 마법의 구현 원리에 따라 ‘복제’를 한다. 다만 복제되는 원형의 성질상 실체를 지니지 못하는 ‘허상’이 만들어질 뿐이었다. 비유를 들자면 거울과도 같다. 거울 바깥에는 실체를 지녀도 거울 안쪽, 대상을 비추는 면은 그저 대상을 똑같이 ‘반사’해내는 것일 따름인 것처럼 말이다. 비록 단유의 의지 내에서 잡을 수 있고, 움직일 수도 있지만, 결국 ‘허상’인 마법이었다.
“단유야.”
“응?”
단유가 고개를 돌리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명수가 보였다. 방금 샤워를 했는지 머리가 살짝 젖어 있었다.
“상미, 어떻게 도와줄 거야?”
“내가 도울 방법이 없을 거 같은데? 알다시피 컴퓨터는 내 종목이 아니니까.”
“그래도 우리 중에서 네가 제일 똑똑하니까, 네가 도와주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상미 앞에서야 투덜대며 불친절하게 굴었지만, 속내는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안달이 난 명수였다. 그리고 명수가 도움을 부탁할 사람은 단유 밖에 없었으니, 저렇게 적극적으로 달려와 의논을 청하는 것일 테다.
“이번 기회에 컴퓨터 좀 공부해라. 요즘 컴퓨터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안 그래?”
“너한테서 공부하란 소리 들으니 신선하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지? 그러니 평소에 열심히 좀 하지 그랬어?”
“그럴 걸 그랬다.”
명수와 단유는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방금 네 책상에 뭐가 있었던 거 같은데?”
“뭐?”
“그게···에이, 몰라. 착각했나보다.”
“뭐냐, 그게.”
“졸린가? 아닌데.”
머리를 긁적이던 명수는 몸을 돌렸다.
“선생님 올 때까지 게임이나 할란다.”
“오늘 충분히 하지 않았어?”
“나도 상미 도와주려면 좀 알아야지.”
“핑계 좋다?”
“그냥 넘어가자. 넌?”
“책 좀 보다 자야지.”
“그래. 잘 자.”
“너무 오래 하지 마?”
“오래 안 해. 내일도 훈련 있어서 좀만 하다가 잘 거야.”
명수는 손을 한 번 흔들고 방문을 닫았다.
불볕더위가 이어지다가 날이 축축해지더니, 태풍이란 놈이 가까이 와서 물 폭탄을 전국에 던져 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더위가 시작되나 싶었는데, ‘입추’라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운동장을 계속 뛰어야 했던 명수네 축구부는 더위가 가신 대신 많아진 운동량에 더 지친 얼굴을 드러냈다.
방학이 끝날 무렵 돌아온 채윤은 기숙학원에서 많이 시달렸는지 눈이 퀭한 느낌이었고, 할아버지를 따라 절에 들어갔던 지태는 마른 뺨을 드러낸 채 나타나 채윤과 서로 자기가 제일 힘들었노라 배틀이 붙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씻자마자 공부하는데 죽는 줄 알았다.”
“난 4시 반에 일어났거든? 일어나자마자 법당 가서 불공드리는데 끝날 때까지 적응이 안 되더라.”
“하루 종일 스파르타식으로 공부하는 게 더 힘들어.”
“절에 할아버지랑 스님밖에 없었거든? 말 한마디 안 하고 하루를 지내는 게 쉬운 줄 알아?”
지태의 수다 본능을 잠재울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넌 뭐했냐?”
“얼굴 보면 몰라?”
“아! 얼굴이 더 새까맣게 변했네? 밤에 보면 이 밖에 안 보이겠다.”
키득대던 채윤이 단유에게 물었다.
“넌?”
“얘 도와주느라고 공부 좀 했다.”
열심히 콜라를 마시는 상미를 가리켜 보였더니 지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공부? 과외라도 했어?”
“방송.”
“방송?”
“인터넷 방송.”
상미는 짧게 트림을 하고―명수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대답했다.
“나 이제 스트리머야.”
명수가 픽, 하고 비웃었다.
“고작 한 번 하고 스트리머냐?”
상미는 발끈하며 말했다.
“앞으로 계속 영상 올릴 거야!”
“조회수가 100도 안 나오더만.”
“원래 처음에는 그래. 꾸준히 하다 보면 천천히 오를 거야.”
지태는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단유 넌 뭘 도와줬단 건데?”
“프로그램 설치하고, 설정 잡아주고, 편집 프로그램으로 편집하는 거랑···뭐 잡다한 거.”
“뭐야, 그게.”
상미가 히죽 웃으며 단유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우리 방송국 프로듀서.”
“프로듀서?”
“야! 나는?”
“너? 넌···내 조수나 해라.”
상미와 명수가 투닥거리는 사이, 단유는 채윤과 지태에게 지난 방학동안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진짜 방송을 했어?”
“응.”
“대박. 그래서? 어땠는데?”
“들었잖아? 조회수 100도 안 나오는 영상 만든 게 다야.”
“실시간으로는 안 하고?”
“실시간으로도 하긴 했는데, 컴퓨터 사양 때문인지 렉도 심하고, 얘가 생각보다 버벅거려서 10분 만에 껐어. 프레임도 잘 안 나오고, 그러니까 사람들도 보기 힘들다며 금방 방에서 나가더라고. 그래서 녹화분은 폐기하고, 새로 게임 리뷰 방송 몇 개만 시험적으로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지.”
지태와 채윤이 입을 쩍 벌렸다.
“단유 네가 그런 말 하니까 신기하다.”
“왜?”
“몰라, 그냥···너랑 안 어울리는 거 같아.”
“맞아. 어쩐지 넌 수학이나 과학 같은 거 설명하는 게 잘 어울려.”
“뭐래.”
단유는 햄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렇게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여름 방학이 지나가나 싶었다.
“여행 가자.”
“여행이요?”
“이대로 여름을 보내기엔 내 젊음이 너무 아까워.”
하은이 주먹을 쥐고 허공을 휘저었다.
“바쁘시잖아요?”
“휴가받았어.”
남들은 다 월초에 휴가를 받는데, 하은은 다른 사람의 휴가에 밀려 중순도 다 지난 시기에 휴가를 가게 되었다.
“너희도 보니까 다들 바쁜 것 같고, 특히 명수 넌 방학 훈련 때문에 어디 가기가 힘들었잖아? 이제 훈련도 끝났으니까 같이 갈 수 있지?”
당연히 명수는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하은의 제안에 환영의 뜻을 보였다.
“어디로 가시고 싶으신데요?”
“솔직히 시간이 많으면 해외로 나가고 싶은데, 그럴 시간은 별로 없으니까 가까운 데로 잠깐 갔다 오자.”
“가까운데 어디요?”
“음···부산이나 제주도?”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다는 뜻이리라. 단유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컵에 따랐다. 그리고 하은과 명수 앞에 각자의 컵을 건넨 후 말했다.
“선생님 가시고 싶은 데로 가요.”
“나보다··· 너희들이 원하는 곳 없니?”
“저는 딱히?”
단유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명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는 어디든 좋은데요?”
“그럼 제주도 갈까?”
명수가 끼어들었다.
“비행기 타고 가요?”
“당연하지.”
“안 비싸요?”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그리고 저렴한 항공사를 이용할 수도 있다. 명수는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말에 혹했다.
“그럼 제주도요!”
“오케이! 가자, 제주도.”
단유는 정확한 계획을 물었다.
“그런데 언제요?”
“이번 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어때?”
“2박 3일이요?”
“응. 그리고 갔다 와서 일요일 쉬고 월요일 출근하면 되니까. 너희도 일정에 문제없지?”
“여행사 통해서 가는 건가요? 아니면 자유 여행인가요?”
“여행사는 무슨. 그냥 숙소 하나 잡아 놓고 돌아다니면 돼. 다니면서 맛집도 찾아보고, 관광지도 보고 그러는 거지.”
“저도 돈 보탤게요.”
“네가 무슨 돈을 보태? 됐어. 넌 그 돈으로 고등학교 학비에나 써.”
“전 장학금 받잖아요.”
교육부 홍보 영상 덕에 장학금을 받기로 되어 있던 단유였다.
“아, 그러네? 그래도 그건 나중을 위해서 모아 둬. 그리고 제발 내 돈 걱정은 하지 말아줄래? 나도 쓸 만큼 벌고 있거든? 왠지 네가 그런 걱정 하면 내가 정말 못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거든?”
“알았어요. 그럼 목요일 가는 거로 하고, 뭐 특별히 준비할 게 있나요?”
“준비는 무슨. 외국 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갈아입을 옷만 대충 몇 벌 싸서 가면 돼.”
모처럼 세 사람이 함께 여행한다고 생각하니 들뜨는 기분인지 하은은 기분 좋게 가위 바위 보를 외쳤다. 그리고 더 기분 좋게 명수의 등을 두드리며 식탁에서 벗어났다.
“수고해라!”
명수는 한숨을 내쉬며 싱크대 앞에서 고무장갑을 손에 끼었다.
“수고.”
단유도 명수의 등을 툭툭 두드린 후, 방으로 돌아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물이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단유는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단유가 눈을 떴을 때, 책상 위에는 새까만 돌하르방 하나가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서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뭉실한 느낌을 주는 조각상이었다.
‘실제로도 비슷하겠지?’
아무래도 영상과 책으로만 접한 터라 실제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아무래도 다를 수 있으니, 가서 보면 이 ‘환상’도 더 리얼해질 것이다.
지식이란 그런 것이다. 책으로, 영상으로 간접적으로 얻는 지식도 지식이지만, 직접 보고 겪는 것만큼 확실한 지식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지식도 완전하고 100% 옳은 것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이다.
흐릿한 환상을 구체화 시키듯, 단유의 꿈도 그렇게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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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잘들 보냈니!”
“네!”
“다들 기운이 넘···치는 건 아니구나. 왜 이렇게 처져 있어?”
“방학 끝났잖아요!”
“그래. 방학 끝났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마음 잡고 공부해야지?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해야 고등학교 올라가서 후회 안 한다. 알지?”
담임 선생님의 대답에 다들 야유를 보냈다.
“하여튼 이렇게 공부 싫어하는 애들은 두 번 다시 보기 힘들 거다.”
피식 웃으며 출석부를 손에 든 선생님은 교탁을 탁탁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방학 동안 늦잠들 많이 잤지? 수업 시간에는 졸지 말고 빨리 적응하도록 해.”
시커멓게 탄 얼굴들을 뒤로 하고 선생님은 교실을 나갔다. 아이들은 못다 한 경험담들을 꺼내고 수다를 떠느라 교실이 벅적거렸다.
“단유야.”
“응?”
단유는 읽던 책에서 눈을 뗐다. 눈만 하얀 명수가 눈짓을 하니 마치 자동차 방향지시등이 켜진 것 같았다. 명수의 신호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교실 뒷문 쪽에 서 있던 도하가 빙긋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