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32화 (532/956)

We are the Futur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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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에게 사소한(?) 당부를 마친 후, 심 대표는 소소한 이야기로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거지만, 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쨌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지금이야 조직 생활이 불편해 보이고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이들이 부럽게 보일 수 있겠지만, 살다 보면 또 생각이 바뀔 수 있지 않겠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거라.”

“네.”

“사실 난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상대의 처지도 고려하지 않고 젠체하는 인간들을 싫어하는 편이거든. 시쳇말로 ‘꼰대’라고 하는 짓, 나도 싫어해. 그런데 넌 아주 남 같지도 않고 영특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다 보니 걱정이 앞서 주제넘게 충고를 한 거다. 이 점 이해해주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불필요한 말을 집어넣어 대화가 길어지는 것을 막는 건, 단순히 상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Yes’만 이야기하면 된다. 간혹 흥이 나서 말을 끊을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의 이야기에 혹시라도 흥분해서 반박을 하거나 한 마디라도 보태면 정말 대화만으로 하루를 다 보낼 기세로 쏘아붙일 수 있다. 그러니 최대한 뒷말이 나오지 않게, 단답형으로 대답하여 상대의 말을 줄인다.

“인생,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 있지? 노력하면 그만큼 정당한 보상이 있을 거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경험해 본 일이니 믿어도 될 거다.”

물론 단유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노력에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말은 듣기엔 좋다. 하지만 모든 노력에 보상이 ‘반드시’ 뒤따르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판단은 또 다른 문제다. 만약 보상이 반드시 있었다면, 단유는 이미 ‘대마법사’가 돼야 했고, 모든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 과제를 이미 수십 번은 넘게 해결했을 것이며, 이 세상에 불공평한 것들은 사라졌어야 옳다.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한 난제는 수없이 많으며, 코피를 쏟으며 공부를 했음에도 취업을 하지 못한 이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세상이다. 수십 년을 회사를 위해 온몸을 바쳤다가도 ‘회사의 사정’으로 쫓겨나는 사람이 있고, 쪽잠을 자는 수고를 감내하며 노력했음에도 뜨지 못해 쓸쓸히 단칸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또 설령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았더라도 그 보상이 정당한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누가 정할까. 최선을 다했음에도 최저시급을 받는 것에 만족하라며 월급을 쥐여 주는 사장님이 정하는 것일까? 성적이 초라하다고 하소연하는 학생에게 노력이 부족했다고 꾸짖는 부모가 정하는 것일까?

성과가 부족하다면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난하고, 소박한 보상에는 ‘미래의 보상’으로 유예 시키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잘못일까?

“네.”

당연히 심 대표와 이런 주제로 토론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단유는 짤막한 대답과 과하지 않은 끄덕임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의 생각과 자기 생각의 차이를 좁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관계였으니까.

****

“여보세요?”

―운동 중이야?

“응.”

―몇 시에 끝나?

“아마···5시쯤 끝날 거 같은데?”

―끝나고 바로 집에 가?

“응. 그럴걸? 왜?”

―한 게임 하자고.

명수는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넘어갔는지 ‘왜 웃어’라고 묻는 상미의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계속 게임만 한다고 집에서 혼났다며?”

―한 번 혼났다고 그만두면 진정한 게이머가 아니지. 그리고 나도 마냥 노는 게 아니라고. 이런저런 게임을 하면서 나도 꿈을 키우는 중이야.

“스트리머?”

―응.

“근데 지난번에 네가 스트리머가 된다고 해서, 나도 여자 스트리머 방송들을 찾아봤었거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괜히 듣기 싫어지는데?

“나쁜 소리 아냐. 너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치? 네가 생각해도 나 정도면 잘할 거 같지?

“응. 넌 게임도 잘하고, 말도 잘하니까 단순히 게임 리뷰 방송만 해도 사람들이 많이 볼 거 같은데? 게다가 얼굴이 되잖아?”

―너 진짜 갑자기 왜 그래? 대놓고 칭찬하니까 괜히 무섭잖아?

“무섭긴. 그냥 내가 느낀 대로 이야기한 거야.”

―그래서 이번 방학 때 짧게나마 해 볼까 생각 중이야.

명수는 상미의 도전에 의문을 품었다.

“중학생이 해도 돼?”

―시험 방송인데 뭐 어때?

“···너희 어머니가 강종(강제종료)하시는 거 아냐?”

―잠깐만 하는 거라고 하면 돼.

“나 못 도와준다.”

―도와달라고도 안 했다.

“안 도와줘도 돼?”

―당연히 도와줘야지! 의리 없게 너 혼자 빼기냐?

“거기서 의리가 왜 나와?”

―아무튼!

그때 멀리 운동장 가운데 선 코치가 외쳤다.

“인명수! 언제까지 쉴 거야!”

“나, 가봐야겠다.”

―끝나고 우리 집 와. 밥 줄게.

“니가 주냐? 너희 어머니가 주시는 거지.”

“인명수!”

다시 한번 코치의 외침에 ‘갈게요!’라고 외치는 명수.

“야, 나 진짜 간다?”

그런 뒤 통화를 마쳤다.

****

심 대표와 대화를 마친 후, 단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매니저가 뒤따랐다.

“도연이가 그러던데, 넌 여태 도연이한테 개인적으로 사인 부탁한 적이 없다며?”

“네.”

“다른 멤버들 꺼도 필요 없고?”

“그게 왜 필요하죠?”

“···하여튼 넌 정말 이상한 애다. 요즘 애들 같지가 않아.”

단유는 다른 대답 대신 손에 든 쇼핑백을 들어 보이며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동생에게 잘 전달할게요.”

“그래. 알았다.”

회사를 나온 단유는 곧바로 지선의 집으로 향했다. 승민은 바깥 일이 있어 나가고 사모님이 단유를 반겼다.

“지선아, 여기.”

“뭐야?”

쇼핑백을 받아든 지선은 내용물을 확인하고 무척 기뻐했다.

“고마워, 오빠.”

“우리 지선이 좋겠네?”

곁에 선 사모님도 지선의 함박웃음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단유도 기분이 좋아졌다.

남을 돕겠다고 했지만, 사실 아무나 도울 뜻은 없었다. 누구라도 도울 순 있지만, 오지랖 넓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성격상 맞지 않은 단유였다. 그리고 돕더라도 최우선은 바로 단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될 터였다. 바로 지금처럼.

지선은 사모님의 도움을 받아 본래 붙어있던 브로마이드 옆에 새 브로마이드를 붙였다. 세 멤버의 사인이 붙어있는 그 브로마이드를 보며 입꼬리를 내릴 줄 모르는 지선은 가녀린 손끝으로 도연이 준 모자를 쓰다듬었다.

“한 번 써보지그래?”

“못 써.”

“왜?”

“도연 언니가 쓰던 거잖아.”

“그게 뭐?”

“그냥 이대로 간직할 거야.”

“모자는 쓰라고 있는 거야.”

지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또 히죽 웃었다.

“도연 언니가 여기 같이 있는 거 같아.”

모자에 어떤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는 것인지 대충은 알 거 같다. 어쩌면 사인이 된 브로마이드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건 리본 소녀 세 사람의 사진이 인화된 종이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수천, 수 만장 이상이 인쇄되어 배포되었을 브로마이드였지만, 지선에게는 그 종이 이상의 의미가 부여된 ‘보물’일 것이다.

그 순간, 단유의 머릿속에 번쩍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원본을 복제한 사진, 수많은 복제품 중의 하나.’

원복과 복제의 관계, 그리고 복제된 것의 기능적 의미 이상의 의미가 가치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가능성.

****

집에 돌아갈 때쯤, 전화가 왔다.

“상미네 집에서 밥 먹어.”

단유도 상미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단유는 방학 때도 바쁘구나.”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어머니의 말씀이 딸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치껏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많이 먹어.”

이미 숟가락을 놀리고 있던 명수가 단유에게 물었다.

“지선이 집에 갔다 왔어?”

“응.”

“지선이 엄청 좋아했겠다.”

“그렇더라.”

둘의 대화를 듣던 상미가 물었다.

“왜?”

명수가 지선의 사연을 이야기해주고 단유가 리본 소녀의 사인을 받으러 갔다 왔음을 알렸다.

“야! 그럼 내 것도 받아주지.”

“네가 아프냐?”

“꼭 아픈 사람만 사인받니?”

“아픈 사람을 대신해서 가준 거니까.”

“난?”

“네가 직접 가서 받으면 되지.”

“내가 어떻게 가?”

“그럼 못 받는 거고.”

“명수 너, 나한테 왜 그래?”

“뭘 왜 그래? 있는 사실을 말한 건데?”

상미는 단유를 쳐다보며 물었다.

“얘, 사춘기야?”

“으이구, 이 철없는 딸아. 듣는 내가 다 부끄럽다.”

“엄마가 왜?”

“얘는 진짜 언제 크려고 그러나?”

단유는 우물거리던 것을 마저 삼키고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고구마줄기 이거 맛있는데요?”

“그러니? 나중에 집에 갈 때, 싸줄게.”

“선생님이 좋아하실 거예요.”

“어쩜, 이렇게 마음 씀씀이가 다를까?”

“우리 엄마는 단유만 좋아해.”

“에휴.”

어머니의 한숨 소리를 뒤로하고, 상미는 단유에게 명수와 나눴던 이야기를 꺼냈다.

“방송?”

“그냥 방송 아니고 인터넷 방송. 방학 때 잠깐 해 볼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그거 이상한 거 아니지?”

“아이참! 엄마! 그런 거 아니라니까?”

단유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명수가 몇 번 보여줘서 어떤 건지는 알겠는데, 그걸 네가 진짜 하겠다고?”

상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나중에도 스트리머가 될 거거든.”

“왜 그걸 하고 싶은 건데?”

“난 게임을 좋아하잖아? 어차피 할 게임인데 이왕이면 돈도 벌면서 하면 좋잖아?”

“그걸로 돈을 벌어?”

어머니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상미에게 물었다.

“잘 버는 사람은 한 달에 몇억도 번대.”

“억?”

그 말에 명수가 태클을 걸었다.

“그렇게 버는 사람은 외국의 유명한 스트리머들이나 그렇지, 다 그렇게 버는 건 아니에요.”

한 달 내내 매일 방송해도 한 달 수입이 몇만 원은 물론이고, 아예 수입이 없는 경우도 있다. 명수의 설명을 들으며 어머니가 그럼 그렇지, 라며 고개를 주억거릴 때 상미가 날 선 목소리로 명수를 타박했다.

“친구가 하면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왜 계속 걸고넘어져?”

“도와주려고 왔잖아?”

“와서는 계속 안 되는 이야기만 하고 있잖아!”

똑똑, 단유는 식탁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그 소리에 상미와 명수가 돌아보았다.

“식탁에서 싸우지 마. 그리고 그 문제는 내가 잘 모르니까, 하라 마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할 거야. 그냥 테스트 삼아. 본격적으로 하는 건 나중에 고등학교 때 하면 되지.”

“공부는 언제 하려고?”

“틈틈이?”

어머니의 한숨 소리만 깊어졌다. 상미는 친구들이 집에 있음을 감사해야 했지만,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못했다. 그녀의 신경이 온통 인터넷 방송에 몰린 까닭이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단유는 상미나 명수나 참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비록 현시점에서 그 직업을 완전히 가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으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주변의 학생들을 보면, 상미나 명수 같은 경우를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만화를 좋아해서 웹툰 작가를 꿈꾸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별을 좋아해서 천문학을 전공해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로, 아무런 꿈도 꾸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비단 단유만의 일이 아니라, 대학만을 향해 일로 정진하도록 채찍질하는 학교에서 자신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아직 고등학교를 들어가진 않았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지금보다 더 많은 학과목을 감당해야 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목전에 닥친 입시가 고등학생을 목조를 텐데 그 상황에서 자신의 미래와 꿈을 헤아릴 여유가 올까?

‘아니야. 미리 예단하지 마.’

지금이 이렇다고 해서, 나중에도 그럴 거라고 미리 속단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이미 그 과정을 거쳐 사회로 나간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다들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했기에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금은 그런 미래에 대한 추측보다, 현재 머릿속을 간지럽히는 이미지, ‘포르마’를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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