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17화 (517/956)

나무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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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단유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하나 왔다. 단유는 문자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래?”

옆자리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던 명수가 낌새가 이상했던지 물어왔다.

“별거 아냐.”

“그런데 왜 그렇게 인상을 써?”

“누가 좀 이상한 걸 물어서.”

“누구? 여자야?”

“응.”

“도대체 넌 어디서 여자를 만나고 다니길래, 그렇게 끊임없이 연락이 오냐? 나랑 매일 같이 지내는 것 같은데 몰래 바람 피냐?”

단유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명수를 바라보다 한 마디 던졌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상한 거 아니고 진짜! 완전 신기해! 작년에 그, 일 있고 나서 만나는 사람 없잖아?”

“작년에 자유학기제 홍보대사 공모제 때 만났던 애야.”

“우와, 작년에 봤던 애랑 계속 연락하고 지냈어?”

“그런 거 아니고. 며칠 전에 우연히 연락이 닿아서 그래.”

“그래서? 만날 거야?”

“모르겠어.”

“왜? 만나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굳이 만나서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고 그냥 무시할 이야기도 아니고.”

그 말에 단유가 받았다는 문자의 내용에 호기심이 생긴 명수는 그 내용을 물었다.

“무슨 문자였는데?”

단유는 머리를 긁적이며 보여주었다. 차마 본인 입으로 읽기 곤란한 문자였다.

―너 리본 소녀 도연이랑 사귀니?

명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단유를 바라보았다. 단유가 왜 쳐다보냐는 눈으로 명수를 바라보니, 명수가 혀를 찼다.

“도대체 세상을 몇 번 구했길래···.”

“무슨 소리야?”

“혹시 연예인만 좋아하는, 뭐 그런 거 아니지?”

단유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명수를 바라보다 손을 들어 올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더니 허겁지겁 몸을 빼는 명수.

“그런 거 아니다.”

“아닌데, 그런 문자가 왜 와? 진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냐?”

“없어.”

“만약에 진짜면, 우리 반 애들은 물론이고, 전국의 열혈 팬들이 널 가만두지 않을걸?”

“그럴 일 없어.”

“장담하지 마. 만약에 인터넷에 그거 비슷한 소문이라도 나면 넌 그냥 매장이야. 솔직히 예전의 댓글들? 그건 장난일 걸?”

현재 아이돌 가요 시장의 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대세 그룹 리본소녀. 그 중에서도 희귀성을 담보로 인기몰이를 하는 그룹의 막내 도연과의 열애설은 도연 뿐만 아니라 단유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적지 않다 뿐일까?

“그런데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거 맞아?”

“아냐. 네가 내 옆에 계속 있었으니까 알 거 아냐?”

“노노.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난 여전히 네가 그런 여자들과 연락하고 지낸다는 게 너무 미스테리거든.”

“연락하고 안 지냈거든?”

“모르지. 나한테 말 안 하고 몰래 연락하고 다닐지.”

단유가 벌떡 일어서자, 명수는 빠르게 발을 놀려 교실 뒷문으로 달아났다.

“이리 와. 애들 들어오는 거 방해하지 말고.”

마침 점심을 먹고 난 후 교실로 돌아오던 아이들은 갑자기 길을 막는 명수 때문에 걸음을 멈춘 상황이었다.

“아, 미안.”

명수는 얼른 길을 비켜주고는 단유를 향해 한소리 했다.

“너 요즘 너무 과격해진 거 같아. 무슨 말만 하면 손을 들어 올리고 말이야. 왜 그래?”

“오버하지 말고, 얌전히 좀 있어. 목소리도 좀 낮추고.”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깐죽거리는 명수는 분명 심심해서 저러는 것일 테다.

“그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 하니까, 상미가 너한테 말을 안 하는 거야.”

“응? 무슨 말이야, 그게?”

단유는 마치 아무 말도 안 했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물고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야, 그게 무슨 말이야고? 왜 말을 하다 말어? 야, 김단유!”

단유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니, 명수는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얼굴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친구의 연애는 그 둘에게로 맡기기로 하고 단유는 문자에 대해 다시 고민했다. 문자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할 거리가 없다. 사실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그 내용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흘러가는 것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떻게 참아보자고 가정하자. 단유는 연예인도 아니고 도연 측에서야 회사 차원에서 적절한 대응을 할 테니 단유가 나설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아무런 조짐 없이 그런 소문이 났다는 것과, 그 소문을 자신에게 전달한 사람이 정유진이라는 것이었다. 작년의 공모제 때 본 이후로 연락이 쭉 없다가 며칠 전 우연히 연락을 한 번 했을 따름이었다. 즉, 전혀 ‘친밀한 관계’가 아닌 이에게서 가쉽에 가까운 소문을 확인받는 문자를 받는다는 게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다.

‘가정하면, 진짜 소문이 났고 그 소문을 확인하려 했을 가능성이 하나. 다르게는 그런 소문이 난 적도 없지만, 일부러 소문이 있다고 거짓말로 연락했을 가능성이 하나.’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냐고 물으면, 당연히 없다고 해야 하지만 워낙에 이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세상이고 보니 그런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학교를 마친 후, 단유는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오랜만이다?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귀를 쨍쨍하게 울리니 살짝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야 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이야, 오랜만에 전화해서는 안부도 안 묻고 바로 본론이니?

“너도 아까 문자 보낼 때 그런 안부 없었잖아?”

―그건 문자니까 그런 거지. 말 나온 김에 내가 먼저 묻자. 너 진짜 도연이랑 사귀니?

“그보다, 왜 그 누나한테 ‘도연이’라고 불러? 혹시 두 사람 친구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다들 그렇게 부르잖아. 너야말로 ‘누나’라고 부르는 게 되게 친해 보인다?

“촬영하면서 그렇게 부르는 게 입에 붙어서 그래.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런 소문은 도대체 어디서 난 거야?”

―너 되게 수상하다? 왜 대답은 안 하고 말을 돌려?

단유는 엄지로 이마 옆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눌렀다.

“말 돌리는 거 아니고, 안 사귄다. 그런 관계 전혀 아니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넌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던 거야?”

―그냥 며칠 전에 스튜디오에서 녹화 준비하는데 촬영 스태프들이 그러더라.

“너희 촬영 스태프?”

―응.

지금 유진이 촬영하는 장소는 얼마 전 단유에게도 찾아왔었던 실프 프로덕션의 웹드라마 촬영현장이리라.

―아, 맞다. 그때 너한테 우리 조연출 갔었다면서?

“응.”

―그 조연출이 나한테 와서 되게 뭐라고 하더라.

“뭐라고?”

―너 되게 싸가지 없대. 인성도 문제가 있는 거 같더라고 하더라.

뒤에서 입방아 찧을 것은 예상한 바였다. 뒷담화를 통해 한 사람의 약점을 캐거나, 그 사람의 사소한 비밀이나 문제를 드러내어 공격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뒷담화에 참석한 이들과 공통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뒷담화를 즐긴다. 또한, 타인의 약점을 지적하며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는 심리적 자위를 즐기기도 한다.

집단주의에 매몰된 이들은 끊임없이 집단을 만들거나, 자신을 집단에 속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

―도대체 두 사람, 뭐 했길래 그 조연출 오빠가 와서 눈을 부리부리 뜨고 널 욕하니?

“정신승리라도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지.”

―뭐?

“그런 게 있어.”

단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 부분은 넘기며 물었다.

“아무튼 진짜 넌 그냥 듣기만 했다 이거지?”

―그럼 듣자마자 사실인지 궁금해서 너한테 문자 넣은 거야.

“그럼 다른 누구한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지?”

―당연하지. 그런데···다른 사람한테 왜 말하지 말래? 수상한데?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 수 있어.”

―너 나 협박하는 거니?

“내가 아니라, 도연 누나네 회사에서 말이야. 나야 그런 소문이 나든 말든 상관없지 않아?”

―왜 상관이 없어? 넌 도연이가, 아니 도연 언니가 헛소문에 시달려도 상관없다는 말이야?

가끔 이상한 논리로 이야기를 전개 시켜 나가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줘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지금 내가 너에게 말한 건 근거 없는 이야기를 조심성 없이 퍼뜨리는 행위를 삼가라고 충고를 해준거야. 그런데 거기서 협박은 왜 나오고, 도연누나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왜 나와? 엉뚱한 이야기로 계속 말을 끌지 말고 할 말만 해.”

―어쩜, 전에도 느꼈지만 너 진짜 말빨 하나는 끝내준다야.

“됐어, 그게 궁금해서 전화했던 거니까, 그만 끊어.”

―아, 잠깐만.

“왜?”

―혹시 시간 되면, 한 번 만나지 않을래?

“왜?”

―그냥 친구끼리 얼굴 한번 보자고.

“친구?”

―우리 친구잖아?

“아닌데.”

―···너 되게 냉정하다?

“정확한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난 너랑 한 번, 우연히 만났을 뿐이야. 어떤 이야기도 제대로 나눈 적 없이 이런 식의 대화를 한다는 것도 사실 신기하긴 하지만, 아무튼 우리가 ‘친구’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아?”

―···확실히 도연, 언니랑 안 사귀는 게 맞구나. 너같이 여자 마음도 모르는 남자랑 사귈 여자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거야.

단유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끊을게.”

단유는 그렇게 해프닝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유진에게서도 문자나 전화는 오지 않았고, 아예 그쪽으로 귀를 닫고 살았으니 단유는 방학이 될 때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했다.

그러나 방학식 전날, 핸드폰으로 뜬금없는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린 여자 아이의 목소리에 단유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누구세요?”

―아, 내 목소리 못 알아듣네.

자조 섞인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단유의 기억을 자극했다. 하지만 선뜻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잘 지내니?

“네.”

단답형 대답에 한동안 핸드폰 너머에서는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궁금한 거 없어?

“네.”

―나한테 할 말 없어? 왜 전화했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네.”

물어볼 말도 없고, 물어서도 안 될 거 같았다. 괜히 통화가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저기, 나 말이야,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단유는 핸드폰 너머에서 수화기를 붙들고 있을 사람의 표정을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몇 번 만나지는 않은 사이라도, 함께 연기 수업을 하면서 표정을 자주 마주쳤더니 저절로 그녀의 표정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과 부탁은 별개다.

“뭘 도와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누나네 회사에서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공중전화로 전화하는 거요.”

―······.

“전화번호는···도경이 누나가 알려줬나 봐요.”

예전에도 도연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단유와 핸드폰 번호를 교환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연락할 수 있었던 이유라면 역시 도경이 도와준 덕분일 테다.

―많이 불편하니?

불편하다. 그쪽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고 싶은 심정이다.

가장 큰 이유는 단유의 생활리듬을 파괴하는 일정 때문이다. 새벽에는 운동을 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자기만의 공부에 전념하는 게 단유만의 생활리듬이었는데, 그쪽은 밤낮 가리지 않고, 시간 되는 대로 촬영 스케줄을 진행했다. 그러니 단유의 생활 패턴이 완전히 꼬일 수밖에 없었고, 운동이든 공부든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감정적 소모가 심한 직업이란 점이었다. 애초에 감정을 크게 사용하지 않는, 무덤덤한 생활을 지속해온 단유에게 수많은 사람들과 엮이며 작업을 해야 하는 환경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간 겪었던 여러 갈등들도 결국, 감정적 소모가 심한 환경이란 사실 때문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누가 먼저 인내의 바닥을 보이는가’를 눈치게임 하듯 살피게 되는 현장이었다.

―미안해. 그런데, 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래.

단유는 깊고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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