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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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
장 형사는 아는 얼굴이라고 친한 척 손을 들어 단유에게 인사를 했다. 단유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디 가는 길이니?”
“친구 집에요.”
“친구 집?”
“저녁 먹으려고요.”
“아, 그렇구나.”
장 형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옆에 선 후배를 돌아보았다. 돌아본들, 후배라고 무슨 생각이 있을까? 장 형사는 다시 단유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혹시 잠깐 시간 좀 낼 수 없을까? 잠깐이면 되는데?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다.”
단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대답했다.
“시간은 많이 안 걸리나요?”
장 형사와 후배는 얼른 단유의 뒤를 따라 탔다.
“어, 그래.”
1층 버튼을 누른 단유가 장형사를 돌아보았다.
“그럼 로비에서 이야기하시죠.”
딱히 앉을 데도 없는 로비였지만, 바깥보단 시원하다. 로비에서 ‘잠깐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불편하신가요?”
“응? 아, 아니. 괜찮아. ‘잠깐만’ 이야기할 건데.”
후배는 장 형사가 왜 이렇게 좋은 사람 시늉을 하며 너그럽게 허허 웃기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작년에 네가 가르쳐 준 거 말이야. 미스디렉션. 그거 꽤 재미있었는데.”
“아.”
단유도 곧 장 형사가 말하는 것을 떠올렸다. 사실 그때는 마법으로 장 형사를 속인 것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역시 일종의 미스디렉션이이었다.
“그때 어떻게 했던 건지, 이제 좀 가르쳐주면 안 될까?”
“죄송하지만 좀 곤란하네요.”
“난 솔직히 TV 보면서 마술사들이 전부 게스트랑 짜고 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얘한테 한 번 당해보니까, 이야! 마술 그거 제대로 하면 일반 사람들은 절대 눈치 못 채겠더라.”
‘내가 지금 미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너도 당해보면 내 심정을 이해할 거야’라는 장 형사의 넉살에 후배는 건성으로 반응하며 단유를 보았다.
다른 애들은 물론이고, 좀 논다고 하던 애들도 형사를 만나면 긴장을 하기 마련인데, 눈앞의 아이는 너무 태연하게 행동한다. 오기 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저 모범생인 아이라고만 했었는데. 의심스럽다.
단유는 핸드폰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제 친구가 기다려서요.”
그러니까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라는 말임을 왜 모를까.
“하하,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도 저녁을 안 먹어서 그런지 배고프네. 우리도 후딱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네, 선배.”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장 형사가 단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입꼬리를 끌어올린 장 형사가 물었다.
“유우성 알지?”
“네.”
“어떻게 알지?”
“작년 같은 반이었어요.”
“올해는?”
“다른 반인데요.”
“만난 적 없어?”
“같은 학교에요. 당연히 오며 가며 만나지 않았을까요?”
“학교 밖에서 말이야.”
“얼마 전에 만났어요.”
장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태 들고만 있던 수첩을 펼쳐 보였다.
“지난 6일 이 동네 근처에서 인근 파출소로 신고가 들어간 정황이 있더라. 학생들이 소란을 피운다고 했었는데, 정작 경찰이 나왔을 때 알아보니 고등학생 한 명이 여중학생의 핸드폰을 뺏어서 달아나더라, 는 거였어.”
“제 친구였어요.”
“그래. 시원여중 3학년 유상미. 그리고 당시 그 아이를 도와준 게 네 친구인 인명수라는 학생이고.”
“네.”
“이후 응급실로 이송되어 간단한 치료를 받았고.”
“네.”
“그런데 말이야. 그때 넌 어디 있었지?”
단유는 장 형사의 눈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옆에 있었어요.”
“현장에?”
“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래?”
“저랑 명수가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골목에서 누군가가 쫓고 쫓기는 장면이 목격됐어요. 명수가 말릴 새도 없이 자전거를 끌고 가서 달아나던 고등학생 형과 부딪혔고요. 전 그 뒤를 따라가려다 근처에서 그 장면을 구경하고 있던 우성이랑 만났죠.”
“구경을 하고 있었다고?”
“네. 그래서 왜 여기 있느냐, 뭐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도망을 가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니? 쫓아갔니?”
“아뇨. 제 친구가 쓰러져 있는데, 그게 더 걱정이 되더라고요.”
장 형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후배가 슬쩍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사실일까요?”
사실 장 형사는 우성에게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전해 듣지 못했다. 우성이 아직도 혼수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주변 인물들을 탐색하던 도중 ‘김단유’란 이름이 나왔고, 마침 그날 운종의 패거리 애들이 낮에 사고를 쳐서 파출소에 신고가 들어갔었다는 내용까지 알게 된 탓에 단유를 찾아온 것이다. 뜻밖의 인물이 이 사건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오늘 하루 종일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증거를 수집했다.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 단유와 그의 친구들에게서 결정적인 한 가지를 찾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범행 동기였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의 대화는 주변에 머무를 뿐이었다. 그리고 단유 역시 그것을 느꼈다. 단유는 겉도는 대화의 결과를 짐작해본 뒤,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장 형사과 후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미스디렉션은 사람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한곳으로 쏠리게 해서 중요한 부분, 마술사가 트릭을 섞거나 구사하는 부분에 시선이 가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에요. 그런데 조금 다른 의미로 부주의맹(Inattentional blindness)이란 게 있어요.”
“부주의맹?”
“어떤 주제에 몰입한 나머지, 너무나 잘 보이는 물체도 보이지 않는 현상을 말해요. 예를 들면 전경(前景)에 집중하면 배경이 보이지 않고, 배경에 집중하면 전경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거죠.”
“미스디렉션과 비슷한 거네?”
“비슷하지만 달라요. 미스디렉션이 마술사의 의도적인 조작에 의한 현상이라면, 부주의맹은 그런 마술과 달리 심리학적으로 어떤 외부의 요인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그 말을 하는 건 또 내게 가르쳐 줄 게 있다는 거냐?”
“부주의맹말고 한 가지 더. 변화맹(Change Blindness)이란 게 있어요.”
변화맹은 주변을 보는 방식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데, 눈앞에서 어떤 시각적인 장면 변화가 일어나도 의식적으로 알아채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선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뇌 때문이에요.”
“그걸 왜 지금 이야기하는 거지?”
후배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단유를 쏘아보았다.
“형사님들의 수고는 알겠지만, 계속 주변만 살피시는 게 아닌가 해서요.”
“그게 무슨···.”
후배의 말을 장 형사가 손을 들어 막았다.
“똑똑하다고 하더니, 정말 눈치가 보통이 아니네.”
“똑똑한 것과 눈치는 다른 포인트지만,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혹시 더 해줄 말 있냐?”
단유는 장 형사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단유가 자리를 뜨자, 그 뒤를 지켜보던 후배가 선배에게 푸념을 했다.
“아니 선배, 왜 그렇게 오냐오냐 해주십니까?”
“오냐오냐는 무슨.”
장 형사는 수첩을 덮고는 그 수첩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가려움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쟤 눈치 깠어.”
“뭘요?”
“우리가 건성으로 조사하는 흉내 내고 있다는 거 말이야.”
장 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건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 수집이다. 증거 없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살인사건에서 증거도 용의자도 없이 송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경찰은 애초에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 감식에서부터 명확한 물증 혹은 의심의 여지가 있는 증거를 수집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살인사건 혹은 다수의 학생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현장을 증빙할 증거품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상황이다.
게다가 더욱 미스터리는 운종의 부모였다.
“죽을 놈이 죽은 것을.”
여태 얼마나 많은 사고를 치며 살았는지 경찰이라 모르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식이 살해당했는데 부모가 잘 죽었다는 태도를 보이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는 부모를 의심할 정도였고, 실제로 알리바이를 조사했다. 하지만 부모는 알리바이가 확실해서 혐의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경찰 측은 난감하고 답답한 마음이었다.
“부모가 저러니 애가 비뚤어질 수밖에 없지.”
“하여튼 요즘은 부모가 문제에요, 문제.”
“죽은 애만 불쌍하지.”
운종의 부모가 매달리든 매달리지 않든 사건의 조사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사건 수사에 비협조적인 것은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는 그저 자교 학생의 죽음을 쉬쉬하려고만 들었고, 죽은 운종의 평소 행실은 그의 죽음이 당연한 결과였다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학생들, 학교, 그리고 부모가 모두 그의 죽음을 거의 방관하듯 하니, 수사는 더욱 난항에 빠졌다.
“덮지 못해 가는 거지.”
그나마 장 형사는 제대로 보고 제대로 수사를 하고 싶었다. 모두가 그를 외면할 때, 자신만이라도 그의 억울···할지도 모를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 해주고 죽인 범인을 찾고 싶어 했다.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요.”
“네?”
“어떤 도구가 쓰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무슨 원한을 가진 귀신이 와서 죽이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그 집에 귀신 붙었다고 소문났던데요?”
검시관의 우스갯소리는 장 형사의 의욕을 꺾을 뿐 아니라, 경찰의 수사 의지도 꺾었다.
“대충 서류 작성해서 송치시켜.”
서두에 말한 바와 같이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증거 없이 검찰에 송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만약 아무런 증거 없이 검찰에 송치하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 수사권을 포기하는 상황. 범인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경우다.
만약 드라마나 영화였다면, 이런 상황에서 열혈 검사가 나타나 판을 뒤집어 엎거나 누구도 찾지 못한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겠지만, 현실은 서류에 붉은 사인펜 몇 줄 들어가고 담당 검사의 사인과 함께 서류보관함 속에 오래오래 묵고 썩어갈 것이다. 동시에 운종의 억울···할 사연도 함께 묻히게 될 테고.
사실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지, 일반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대부분은 범인이 잡힌다. 하지만 범인을 잡지 못하거나 증거가 없어 미제로 끝나는 사건도 상당수 존재하는 현실이다.
게다가 불량학생의 죽음은 국민들의 관심과 동정을 받기 힘든 사건이다.
“죽은 놈만 불쌍하지.”
장 형사는 쯧, 혀를 차며 말했다.
“가자.”
약 한 달이 채 못 되는 시간 동안 매달렸던 이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끝난 겁니까?”
“···모르지. 검찰에서 다시 조사할 수도 있고.”
물론 장 형사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런 사건은 그냥 이대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장 형사 본인도 계속 매달릴 순 없다. 그가 수사해야 할 사건은 이것 말고도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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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늦었어?”
“아, 일이 좀 있었어.”
“무슨 일?”
“그런 게 있어.”
주방에는 고기 굽는 냄새로 가득했다. 명수가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을 흔들었다.
“아줌마는 정말 고기를 잘 굽는 것 같아요.”
“내 생각도 그래.”
옷을 갈아입고 나온 상미 아버지도 명수의 말에 동의했다.
“만약 식당이었으면 대박이었을 거예요.”
고기의 맛은 단순히 고기 자체의 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고기를 어떻게 굽느냐에 따라서도 맛은 크게 변한다.
“이렇게 맛있는 돼지고기는 식당에서도 먹기 힘들다고요.”
상미의 어머니는 접시에 구운 고기를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먹기도 전부터 그렇게 부담을 주고 그러니?”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른 거 같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먹기는 제일 많이 먹을 녀석이.”
“엄마! 명수 많이 먹는다고 구박하는 거야?”
“이 녀석이? 구박은 무슨 구박이야!”
“명수야, 많이 먹어.”
“응.”
이미 볼이 불룩하게 솟아오른 명수였다.
“단유야, 너도 많이 먹어. 사실 수고는 우리 단유가 제일 많이 했는데.”
“제가 뭘요.”
“그럼. 쟤가 뭘 했어? 공부는 내가 했는데?”
“아이구, 이 녀석아. 정말 네가 내 딸이라는게 이럴 때 부끄러워!”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
“됐고. 그냥 고기나 먹어. 꼭꼭 씹어 먹고.”
떠들썩한 식탁 위에서 단유는 조용히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부들부들한 육질의 잘 익은 돼지고기 맛이 고소하게 입 안을 채워야 할 테지만, 어쩐지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겠다.
“크, 맛있다.”
상미의 아버지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감탄을 하는 모습과
“명수야, 이것도 먹어.”
라며 답지 않게 친절을 베푸는 상미.
“너도 많이 먹어.”
고기를 먹는 순간에는 쉽게 눈 돌리지 않는 명수가 상미를 챙겨주는 보기 힘든 장면도 단유의 눈엔 흐뭇함으로 다가왔다.
“왜 그러니? 맛없어?”
상미의 어머니가 단유에게 물었다.
“아뇨, 그냥···입맛이 없어서요.”
단유는 쓴웃음을 지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아무 일 없어요. 정말요.”
정말이다. 아무 일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