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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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실을 나와 학교 본관을 나오니 명수가 그늘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운동장을 보고 있었다. 단유의 인기척을 느낀 명수가 돌아보며 물었다.
“다 끝났어?”
“응.”
“안 가기로 했어?”
“응.”
“아쉽지 않아?”
“별로.”
“그럼 다행이고.”
명수는 단유에게 음료수를 던졌다.
“가자.”
단유는 음료수를 한 손으로 가볍게 잡아챈 후, 학교를 바라보았다. 붉은 벽돌이 외벽을 꾸민 4층짜리 건물이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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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은 형사들을 만나기 위해 생활지도부실로 이동했다.
“장계중학교 교장 허창완이라고 합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의 장 형사는 교장과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을 꺼냈다.
“유우성군의 학교생활과 주변 교유 관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교장이 눈길을 돌리자 생활지도부 선생님이 바로 입을 열었다.
“유우성 학생은 성적이나 품행 면에서 문제가 있는 학생이긴 했지만, 최근에는 특별히 언급할만한 사건은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을 듣고 저희도 꽤 놀랐습니다.”
“혹시 이 학교의 일진이었다거나···.”
“일진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군요. 주위 학생들과의 사소한 마찰이 빈번히 일어나는 정도라고만 언급할 수 있겠네요.”
‘빈번’하다는 표현이 쓰일 정도라면 문제가 많다는 것을 학교 측에서도 인지하고 있다는 말일 테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리하고 있었나요?”
그 말에 교장이 헛기침을 한 후 답변을 대신했다.
“학교는 군대가 아닙니다. 군대에서처럼 관심 병사로 지정해서 관찰 및 관리를 하는 식이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비록 학생이 문제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학교는 최대한 학생의 자율권을 우선시 생각하여 학생을 통제하려는 행위를 최소로 합니다. 그 때문에 늦장 조치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 학생들을 모아 놓거나 ‘관리’하는 것은 반인권적인 처사지요.”
“그럼 유우성 군에 대해서도 학교에서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우리는 그 학생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기에 미리 관리해야 한다는 예방적 조치를 하지 않습니다. 특정 학생을 관찰, 통제하는 행위는 반민주적 행위이니까요.”
장 형사는 갑자기 ‘반민주적’이란 용어가 나오니 자신이 뭔가 잘못 말했나 싶은 생각에 겸연쩍어했다.
“하지만 그 학생으로 인해 다른 학생이 피해를 보아서도 안 되겠지요. 그래서 저흰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지키도록 교육하는 동시에, 여기 계신 선생님들이 매일 수고하시는 겁니다.”
생활지도부 선생님은 괜히 머리를 숙였다. 틀린 말은 없지만,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했던가를 반성하는 마음이었다. 한편으로는 교장 선생님이 ‘수고’를 천명한 만큼 자신이 이제껏 해온 것들이 인정받는다는 기분도 들었다.
“네, 일단 알겠습니다. 아무튼··· 저기, 선생님.”
머쓱한 기분에 뺨을 한 번 쓸어본 장 형사는 담임 선생님을 향해 물었다.
“유우성 학생의 교우관계는 어떤가요? 특별히 친한 친구나 혹은···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에 있는 학생이 있나요?”
최대한 표현을 순화해서 묻는 장 형사의 물음에 담임 선생님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3학년에 오른 뒤로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어서요.”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고요?”
“그게···.”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던 담임 선생님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반 학생들과 충돌이 난 적이, 제가 아는 한에서는 없어요.”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일까, 객관적인 사실을 언급하기 위한 노력일까.
“그 말씀은 선생님이 보지 않았을 때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학교에서는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만약 학교에서 문제가 났다면, 담임인 제가 모를 수 없으니까요.”
“아이들이 모두 쉬쉬할 수 있지 않나요?”
왕따 문제나 괴롭힘과 같은 학교 폭력이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학생이 힘으로 누르면, 다른 학생들은 기가 죽어서 말을 못할 수도.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옛날과 달라요. 한 아이가 힘으로 반을 장악하고 공포로 아이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없어요. SNS나 단톡방 등으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이에요. 만약 그 반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표출이 되지요.”
“요컨대, 이제는 교실에 엄석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교감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이 사람들, 미리 준비라도 했나? 왜 이렇게 호흡이 좋아?’
장 형사는 일단 고개를 끄덕인 후, 질문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유우성 학생은 고등학교 일진 아이들과 같이 있다가 피해를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노는 아이들 축에 끼었던 셈이죠. 선생님은 유우성이란 학생이 그런 ‘일탈’을 하고 있었음을 몰랐나요?”
담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생활 지도부 선생님이 대신 변명을 했다.
“교감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요즘 학교는 옛날 우리나 형사님 세대의 학교와 달라요. 담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란 말이지요. 학교 밖에서의 일탈까지 담임이 일일이 캐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자리가 담임의 관리 책임을 성토하는 자리도 아닌 바, 더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했다.
“반에서 친한 친구는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생활지도부 선생님이 나섰다.
“예전에는 같이 다니던 아이들이 있었는데, 2학년 때 갈라선 것으로 보입니다.”
“갈라서요?”
“2학년 초까지는 세 명이 몰려다니면서 힘자랑을 했었어요. 하지만 그 무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한 학생이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그 무리에서 나온 뒤로는 흐지부지됐어요.”
“그 학생이 누군가요?”
“진도하라고, 지금은 착실···까지는 아니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학교 생활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학생입니다.”
“진도하, 그 학생 좀 볼 수 있을까요?”
“저기, 이미 하교 시간이라 모두 집에 돌아갔을 텐데요.”
“아, 그런가요? 그럼 내일 다시 오도록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교감 선생님이 또 끼어들었다. 장 형사는 뒷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보았다.
“말씀하세요.”
“저기, 듣기로는 고등학생 일진이 죽은 사건이라고 들었는데, 왜 저희 우성군의 주변 인물을 묻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 생각에는 그 살해된 학생의 주변을 살펴야 하지 않나 해서요. 너무 주제넘은 참견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의아하네요.”
“학교의 교육이 선생님들 몫이듯, 수사는 저희 몫입니다. 교감 선생님의 참견은 주제넘은 게 맞는 것 같군요.”
장 형사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을 곤란케 했던 선생님들을 향해 독설을 남기고 일어섰다.
“아, 그리고 내일은 이렇게 단체로 마중 나와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교감 선생님과 생활지도부 선생님이 헛기침하는 소리를 들으며 장 형사와 후배는 생활지도부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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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장 형사는 다시 학교로 찾아와 도하를 만났다.
“네가 진도하냐?”
“네.”
경계하는 도하에게 장 형사는 수첩을 펼치며 물었다.
“유우성 알지?”
“네.”
“친하니?”
“별로요.”
“선생님 말씀으로는 꽤 친했다던데?”
“작년 초까지는 그랬는데, 이제는 별로 안 친해요. 말도 잘 안 나누고요.”
“그래? 그럼 혹시 우성이랑 친한 애나 혹은 우성이한테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친구가 있는지 아니?”
“우성이랑 친한 애는, 진태라고 있었는데 걔도 작년부터 우성이랑은 별로 말 안 하고 지냈을걸요?”
“그럼 친한 애는 없어?”
“제가 알기론, 별로 없을 거예요. 겨울방학 때부터 고등학교 선배들이랑 지내느라고 바빴을 테니까요.”
“넌 걔가 방학 때 아르바이트 한 것도 알아?”
“당구장이요? 듣긴 했어요.”
“넌 별로 안 친하다면서 그건 어떻게 알아?”
“친하지는 않아도 그런 이야기는 다 알아요. 원래 그런 이야기는 다 돌고 도니까요.”
“그럼 들은 이야기 중에 혹시 우성이나 그 선배들에게 앙심을 품은 아이는 있어?”
“한둘이어야 말이죠.”
“한둘이 아니다?”
도하는 답답하다는 눈치로 장 형사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세요. 온갖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닌 애들인데 좋아할 애들이 있을 거 같아요?”
“그래도 개중에 특별히 싫어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도하는 피식 웃었다.
“형사님.”
“왜?”
“형사님 지금까지 범인들 많이 잡으셨을 거 아네요? 그 사람들 중에 형사님한테 앙심 품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요?”
“······.”
“어린 놈이 말버릇하곤!”
후배가 나서려는 걸 한 손을 들어 말린 장 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럼 다시 질문할게. 네가 아는 한에서, 그 애들을 죽이고 싶어할 사람, 그리고 진짜로 행동에 옮길 사람은 몇이나 되냐?”
“음, 글쎄요.”
도하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뜸을 들였다. 한동안의 정적 후 도하가 말했다.
“너무 많네요.”
“많아?”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상납한 아이들, 강간당한 딸의 부모님, 수백만원 어치의 물건을 도둑맞은 가게 사장님, 맞아서 고막이 나간 동생의 형. 따지면 너무 많지 않나요?”
장 형사는 입을 다물었다.
“살인이 별건가요? 요즘 뉴스 보니까, 말다툼하다가도 죽이고, 자기 무시했다고도 죽이고, 시끄럽다고 죽이고, 째려본다고 죽이고, 그냥 이유 없이도 죽이던데요. 작정하면 뭔들 못하겠어요.”
장 형사와 후배 형사는 도하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도하를 돌려보낸 장 형사는 담배를 물려다가 교내임을 자각하고 다시 담배갑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요즘 아이들은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대요?”
후배의 한 마디에 장 형사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너희 때도 똑같았어, 임마. 저 나잇대 애들은 다 저래.”
“그래도 말이에요. 애들이 어른 무서운 줄 모른다니깐요.”
“살인이 별거냐고 말하는 아이인데 어른이 무섭겠냐?”
“···그렇네요.”
“하아. 정말 애들이 무서워지는 건지, 세상이 무서워지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게요.”
“이래서야 어디 경찰 짓도 해먹을 수 있겠냐? 밤길에 칼 맞는 건 둘째치고 대낮에도 해코지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해야 할 세상이다.”
치안을 책임져야 할 경찰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로 어울리진 않지만, 진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떡하실 생각이시죠?”
“현장에서는 다른 증거 나온 거 없다지?”
“네.”
“나 참.”
장 형사는 한숨을 내쉬다 문득, 작년의 일이 떠올랐다.
“그 애도 이 학교 학생이었지?”
“누구요?”
미스디렉션을 가르쳐 준 아이.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보라고 가르쳐 줬던 아이. 사실 장 형사가 이 학교에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살해당한 아이는 고등학교 일진 학생이지만, 다른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당시 현장에 있었던 아이들의 조사는 물론 그 주변 인물까지 샅샅이 알아보는 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범인의 실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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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뚝배기 깠다.”
“개피, 개피!”
“오른쪽으로 가서 양각 잡자!”
“오케이!”
피시방에서 나란히 앉아 현란한 마우스 콘트롤로 에임을 잡고 총을 쏘는 소년 소녀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게임에 집중한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몰랐다.
“인명수.”
“응?”
명수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오늘 시험 공부한다고 했었지?”
단유가 짐짓 화난 표정으로 명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그, 그랬지. 금방 끝내고 가려고 했어, 정말이야!”
그때,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상미가 소리쳤다.
“야, 나 기절이야, 살려줘!”
단유는 상미의 헤드폰을 벗겼다.
“뭐, 뭐야? 응? 아, 단유네?”
“너 오늘 우리집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다며?”
“응? 아, 그랬지.”
“여기가 우리집이니?”
“···엄마가 전화했어?”
“응.”
“···엄마한테 이야기 안 할거지?”
“지금 바로 일어나면.”
아쉬운 듯 모니터로 고개 돌린 상미는 죽어버린 자신의 캐릭터를 발견했다.
“죽었네.”
명수의 캐릭터도 이미 죽어서 회색빛으로 물든 화면이었다.
“끝났네, 가자.”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힘없이 일어나는 소년 소녀를 보며 웃음을 참는 단유였다. 부쩍 가까워진 두 사람을 보니, 괜히 마음이 즐겁다. 하지만 공부는 그와 별개다.
“오늘은 문제집 다 풀기 전까지는 집에 못 갈 거야.”
상미는 울상을 지었고, 명수는 눈꼬리가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