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10화 (510/956)

요령(3)

-------------- 510/952 --------------

‘난 왜 살인이라는 선택지를 골랐을까?’

살인. 그것은 매우 극단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며, 일반적으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중 가장 최악인 범죄이다. 사람이 같은 생물학적 존재를 죽인다는 건, 여름밤 팔에 붙은 모기를 때려죽이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행위, 라고 인식된다.

살인에 관한 도덕적, 윤리적 고찰을 하자면 끝도 없다. 살인을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다. 무엇보다 현대 사회에서 살인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성을 얻기가 힘들다.

단유도 그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단유는 고민했고, 선택했다. 그것은 사소한 이유로 다툼이 벌어져 충동적으로 칼을 들어 올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행위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람이 모기와 다르다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과 삶이 위협받는다면, ‘살인’이라는 방법은 유효한 선택지다. 다만 단유가 느끼는 불안감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다.

상상력의 문제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을 빌자면, 단유는 그의 존재가 자신에게, 또는 자신의 주변인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100%는 아니더라도, 거의 그 정도에 준하는 위험성이 있기에 자신의 조치는 정당했다고 믿었다. 믿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상상의 문제였다면, 그래서 자신의 판단 준거가 불확실하다면 자신의 선택 역시 불확실한 가정 속에 성급히 답안지를 작성한 셈이다. 답이 틀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불안감의 원인이다.

“저는 제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단유의 한 마디에 교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단유군, 자네는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더 많은 교육과 더 많은 경험을 쌓게 된다면, 더 많이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그 재능이 모든 일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라는 말 들었죠? 아무리 뛰어난 머리가 있다고 해도, 렘브란트, 피카소 같은 화가나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가 될 순 없는 법이거든. 모든 재능은 자기만의 영역이 있고 그 영역 내에서만 발휘되는 거예요. 영역 외에서 자신의 재능이 쓸모없다고 여길 순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교장은 어리지만 어리지 않은 단유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심각한 폭력의 피해자로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단유를 보며 이런 표정을 지으면 안 될 것 같지만, 이번 일을 극복했을 때 단유가 어떻게 성장해나갈지 그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교장은 기분이 좋았다.

교장의 역할은 바로 단유를 비롯한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일에도 흔들림 없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학교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해나가는 일이 교장의 임무이며, 의무였다.

“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그 모든 과목을 모두 잘하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사람마다 가진 특성과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그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재능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많은 학문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음악, 체육, 미술은 물론이고, 사회, 역사, 국어, 수학, 영어 등 이 많은 학문 들이 우리 삶에 모두 필요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재능과 관심이 어느 방향으로 뻗어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죠.”

“하지만, 학교는 늘 시험을 치고 정답을 요구하지 않나요?”

이런 순간에도 단유답다, 고나 할까?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 교장은 이런 단유를 봐 왔기에, 오히려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은 하겠다는 단유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걸 고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비록 지금 당장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해도, 언젠가는 고쳐질 거예요. 그리고 단유군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나중에 커서 교사가 된다면, 그리고 그 교사들이 다시 학생들을 가르칠 즈음에는 단순히 정답만을 강요하는 선생님과 학교는 없지 않겠어요? 그렇게 미래는 여러분들이 바꿔 가는 거죠. 좋은 방향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말이지요.”

책임을 여러분들에게 떠넘기는 것 같아 미안해지는군요, 라며 낮은 웃음을 흘리는 교장이었다.

****

거친 머플러 소음과 함께 학교 정문에서 오래된 구형 차 한 대가 나타났다. 털털거리며 학교 운동장 주변의 길을 따라가던 차는 이내 주차장에 도착해서 멈췄다. 머플러 소음이 멎자, 주변이 일시에 조용해진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차 언제 퍼질지 겁납니다, 선배.”

“야, 내 차 사는데 돈이라도 보탠 거 아니면 조용히 해.”

“차 안 바꾸세요?”

“내 차 바꾸길 기다리기 전에 니가 차를 사는 게 어때?”

“에이, 제가 돈이 어딨다고요.”

“그럼 나는? 너나 나나 다 거기서 거기다.”

“형수님이 돈 잘 벌지 않으세요?”

“그 형수가 요새 장사가 안된다고 밤마다 우는소리를 해서 미칠 지경이다.”

“하긴 요즘 꽃 장사 같은 게 잘 될 리가 없죠.”

“아주 악담을 해라?”

“아이고, 애들이 아직 많네요.”

지나가며 수군거리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을 돌리는 후배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두드린 장 형사는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례합니다.”

“아, 예. 어쩐 일로?”

“경찰입니다.”

장 형사는 경찰증을 보인 뒤, 용건을 말했다.

“교감 선생님 좀 뵐 수 있을까요?”

“저기 저쪽에···.”

“감사합니다.”

장 형사는 경찰증을 품에 집어넣고 후배와 함께 교감에게로 향했다. 이미 낯선 외부인이 등장할 때부터 모두의 시선이 몰린 틈이었다. 교감 역시 자신에게 다가오는 장 형사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든 표정으로 ‘어떻게···.’라고 물어보는 교감에게 장 형사는 ‘유우성 학생 문제로 왔습니다’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교감 선생님이 바뀌었나요?”

“네? 네. 연초에 교장 선생님과 함께 바뀌었죠. 그런데 어떻게?”

“아, 다름이 아니고 작년 초에 여기 사건이 있을 때, 제가 조사를 담당했었거든요.”

“작년에요?”

“이사장 살인···.”

“아, 맞아요. 기억나요. 어쩐지 얼굴이 익다 했어요.”

작년에는 학생 주임이었다며,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교감의 말을 자르며 장 형사가 물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유우성 군에 대한 생활기록부나 학교 내에서의 문제 등을 듣고 싶은데요.”

“아, 예.”

아침에도 교장 선생님과 그 문제로 이야기를 나눈 상황이라 교감은 난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일이야 어쨌든 다른 선생님도 있는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순 없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장 선생님께 보고를 해야 할 문제였고.

“일단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나누시겠습니까?”

“그러죠.”

그리고 뒤에 선 후배를 돌아보았다.

“넌 유우성 담임 선생님 만나봐.”

교감은 살짝 당황한 얼굴로 장 형사를 바라보았다.

“아, 저기. 저희가 담임 선생님을 불러드릴 테니 일단 함께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장 형사가 바라보자, 교감이 속을 털어놓았다.

“최근에 학교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조금 있는 와중이라 학교가 괜히 소란스러워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학기 기말고사가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인데 괜한 일로 학교가 들썩거리면 학생들이 집중을 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학생들을 위한 조치이니 협조해달라, 는 교감의 말에 장 형사는 동의했다.

“그러죠. 따라와.”

후배는 그러려니 하며 장 형사와 교감의 뒤를 따랐다. 교감은 생활지도부실이 비어있음을 확인한 후, 우성의 담임 선생님과 생활지도부 선생님을 불렀다.

****

“아까의 질문에 답하자면, 단유군 스스로의 재능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는 천천히 알아가도 됩니다. 단유군은 아직 어려요. 벌써부터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고 조급해할 나이가 아니란 말이죠. 단유군이 무언가를 이뤄야 할 나이가 될 때까지는 학교와 사회가 학생을 보호해 줄 겁니다. 가진 재능이 무사히 개화될 수 있도록 돕는 게 학교와 저의 역할이니까요. 그러니 학교를 믿으세요.”

단유는 교장을 바라보았다. 교장의 표정에서 거짓의 틈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다시 말해, 교장은 진심으로 자신을, 학교를 믿으라고 말하는 셈이다.

학교를 믿는다? 아니 그 전에, 믿으라는 말을 꺼내는 자신감에 단유는 살짝 놀랐다. 교장은 자신이 이 학교를, 학생들이 믿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셈이었다.

돌아보면 학교란 공간은 단유에게 믿음의 대상은 아니었다. 단유 뿐 아니라 거의 모든 학생에게 그렇다. 학교가 학생을 보호한다? 만약 진실로 보호하려 했다면, 작년 말 그런 학생 시위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학생 개개인의 사고와 가치관을 획일화시키는데 주력했던 학교의 강압은 결코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학교를 믿어라? 이제 갓 부임한 교장의 포부는 기대하고 싶지만, 선뜻 신뢰하기엔 이제까지의 경험이 벽이 되었다.

그리고 애당초, 학교를 못 믿어서 자신의 재능을 못 키웠던 게 아니다. 단유 본인의 재능은, 단유가 말하는 능력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재능이고 학교가 보호할 수 없는 범위의 것이었다.

“단유군은 무엇이 되고 싶다, 라는 꿈이 있나요?”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다. 예전 같으면 모르겠다, 라고 대답하겠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정했어요.”

교장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진실한 사람이요.”

“진실한 사람?”

“네.”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 위선이나 위악마저도 철저히 배격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성과 양심에 따르는 사람. 철저히 진실을 따르는 사람.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사람이요.”

“···기대하지 못했던 대답이군요. 그렇지만···아마 그 길은 굉장히 험난할 것 같군요.”

“네. 그래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가야 한다? 가고 싶다가 아니고요?”

“네.”

그것이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보존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한다.

“가끔 단유군과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돼요. 어쩌면 이리 어린 나이에도 그런 바른 생각을 가졌는지 말이죠. 학생 스스로의 자질도 자질이지만, 집에서 함께 생활하시는 분들이 모두 바른 생각을 가졌기에 그런 영향도 있겠죠?”

“그럴 겁니다.”

영향이 없진 않다. 하은과 명수, 두 사람 모두 솔직하기로는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때론 너무 솔직해서 탈이라고 느껴질 정도니.

“알겠습니다. 단유군의 의견을 존중해서, 일단 이번 IMO 출전은 거절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내년,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꼭 나가보길 권할게요. 세계 대회에 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단유 군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굳이 성적을 내지 않더라도 그런 대회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식견을 넓히는 것이 단유 군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대화를 마무리하고 단유는 일어설 때, 교장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교장 선생님.”

교감이 들어오다 단유와 눈이 마주쳤다. 단유는 정중히 인사를 올린 뒤 돌아섰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수고하세요.”

교장이 온화한 미소로 배웅해준 뒤, 교감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교감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형사가 왔습니다.”

교장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단유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이 마치 동화를 읽는 기분이었다면, 이제 다시 어른의 세계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어쩌면, 이런 기분 때문에 더 단유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