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09화 (509/956)

요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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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정중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허락에 이어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단유였다.

“아, 단유군. 들어와요.”

“바쁘신데 방해가 아닐까요?”

“아뇨, 괜찮아요. 우리 학생들이 찾아오는데 바쁘다고 내쫓을 순 없지요.”

따지고 보면, 교장실에 찾아오는 학생 자체를 찾기가 어렵다. 그러니 내쫓을 학생도 없었을 터.

“한창 바쁠 때 아닌가요?”

기말고사를 2주 뒤에 치르고, 4일 뒤,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 참석해야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내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반면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올림피아드 출전을 꺼리는 중학생이 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학교의 입장에서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참가 학생이라는 홍보는 다른 어떤 홍보 못지않게 큰 효과를 보인다. 그러니 참여 의사를 보이는 학생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괜찮습니다.”

“역시, 김단유 학생은 여유가 넘치는군요. 그래 무슨 일이죠?”

“국제수학 올림피아드 참가를 고사할까 생각해서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요?”

“최근에 심란한 일이 있어서요.”

“심란한 일이요? 혹시 반에서 벌어졌던 일 때문인가요?”

“관련이 없지는 않네요.”

교장은 굳어진 얼굴로 단유의 눈을 바라보았다.

“학교의 책임자로서, 학교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깊이 통감해요. 그리고 단유군이 그런 일을 겪은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미안하고요.”

교장 선생님이 사주한 것도 아닌데, 미안해할 거까지야.

“괜찮습니다.”

안타까움보다 미안함을 담은 표정은 교장 선생님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가를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단유군이 어떤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유군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포기할 이유는 못 돼요.”

“기회요?”

국제수학 올림피아드 대회가 단유에게 기회였을까?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나요?”

“하긴 했지만, 꼭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랬나요? 지난번에 단유군이 보여준 표정을 봤을 때는 상당히 기대하고 있던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죠.”

기대?

교장은 몸을 소파에 깊숙이 묻으며 단유 너머, 벽 너머의 어딘가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랐어요. 아이들이 많지 않은 동네라 학년 구분 없이 뛰어놀곤 했어요. 특히 이맘때면 학교 뒤의 동산에 올라 뛰어놀곤 했었죠.”

그때는 지금처럼 놀 거리가 많지 않았거든요, 라는 말을 이으며 눈을 감은 교장은 잠시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당시 또래 아이들이 가장 많이 즐겨 하던 놀이는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이었지만, 알고 보면 그냥 산에서 뛰어놀던 이야기죠. 봄에는 아버지가 지서장 하시던 친구와 산길에 난 진달래 따다 먹고, 여름에는 이장 아들 친구와 붉은 뱀딸기 여러 개를 한 손에 이렇게 모아다가 입 안에 털어 넣곤 했어요.”

말을 하다 보니 그때의 얼굴이 떠오른다. 얼굴에 검댕이 묻은 줄도 모르고 웃으면서 옥수수 구워 먹던 친구와 꽁꽁 언 땅을 뾰족한 돌로 파서 칡을 캐내던 친구. 지금 그 친구들은 수십 번을 기워입던 낡고 헐렁한 옷을 벗어 던지고, 자신처럼 목을 조르는 넥타이에 하얀 셔츠 차림으로 살아가고 있다.

잠시 말을 멈췄던 교장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단유를 바라보았다.

“늙으면 주책이라더니. 아무튼, 과거를 떠올려보면 그 시절이 참 아름다웠노라 이야기하게 돼요. 그때의 나는 지금에 비해 꽤 순수했기 때문일까요?”

딱히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리라. 단유는 조용히 교장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런데 그 시절이라고 마냥 아름답고 순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우리 역시 사소한 문제로 다투고 주먹질도 하고 했으니까요. 꽤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고요.”

그 정도는 어디나 다 마찬가지 아닐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지만, 당시의 저는 아름답다고 느끼지도 않았고,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데 의의가 있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제 또래가 꿈꿀 수 있는 미래란 그저 아버지, 어머니, 동네 삼촌들과 이모들이 보여주는 삶이 전부였거든요. 그래서 생각해보니 그 당시의 우리들에겐 교육이 ‘기회’가 될 거란 믿음이 없었어요. 그저 어른들이 배워야 한다고 하니, 우격다짐으로 배움을 이어나갔던,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죠.”

교장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전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중학교에 가기 위해 읍내로 나갔어야 했는데, 마침 제 짝이 군수의 아들이었거든요. 그 친구 덕에 전 시골에서 보기 힘든 것들, 문명의 이기들과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의 전, 커서 ‘군수’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었었죠.”

나이 든 이가 추억을 되짚으며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결국 저 ‘희망’이란 이야기일까?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희망을 가져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

“어렸을 때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 언제나 차악의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왜 그렇죠?”

“어렸을 땐 구체적인 상상력이 빈약하거든요. 어떤 미래를 상상하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의 틈이 커요. 그 공백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아요. 그래서 희망을 품게 되고, 밝은 미래를 꿈꾸죠. 하지만 어른이 되면 상상이 구체화됩니다. 어렸을 때는 겪지 못했던 경험을 쌓으며 공백을 메워나가게 되거든요. 그래서 어른은 아이들이 꿈꾸는 밝은 미래 대신 실패와 두려움으로 점철된 현실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최악보다 차악을 선택하기 위해 신중해지죠.”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어른은 그 반대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교장은 정반대란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곱씹으니 과연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교장은 입꼬리를 올렸다. 웃음이 나서 짓는 표정이라기보단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보고자 하는 노련함이 깃든 표정이었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단유군은 아이답지 않게 선택에 신중해요. 선택의 무거움을 알기 때문이고, 선택의 결과를 두려워할 줄 알기 때문이겠죠. 그런 단유군이 수학올림피아드 초청장을 받아들었을 때는 또래의 아이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더군요.”

단유도 기억했다. 처음 교장에게서 그 초청장을 받았을 때 느꼈던 가슴의 두근거림.

“그런데 지금은 다시 어른의 선택으로 돌아온 거 같군요. 현실의 두려움을 담은 표정으로 말이에요.”

단유는 대꾸하지 못했다.

****

경찰은 탐문 수사를 해봐도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주변의 집들도 시끄럽던 아이들이 조용해지기에 그저 아이들이 자리를 피했다고만 생각했지, 어떤 다툼이나 문제가 생겼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단다.

“혹시 다른 소리 들으신 건 없으시고요? 기억에 남는?”

“그런 건 별로 없었어요. 걔들이 하루 이틀 그러는 것도 아니고 매일 와서 떠들다 가곤 했으니 그날도 으레 그러려니 했죠.”

“저기···.”

형사는 뭔가를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곧 들고 있던 수첩을 덮더니 짧게 감사를 전했다. 사실 ‘총소리’를 듣지 못했냐고 직접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그것은 언론에도 공표되지 않은 문제인데다, 만약 ‘총기’로 의심되는 도구에 의한 살인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오면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질 뿐이다.

“총도 아니라면서요?”

파트너의 이야기에 형사는 입술을 삐죽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검시관의 말로는 총기라기보다 드릴 같은 것에 의해 관통된 상처라고 이야기했다.

“총기라면 사입구 부근이나 사창관에 뚜렷한 흔적이 남아요. 예를 들어 사입구에는 탄두가 피부를 뚫으면서 생기는 표피박탈륜(abrasion ring)이 보여야 해요. 피부가 밀리면서 안쪽으로 함몰되는 흔적이죠. 사창관에도 탄환의 속도와 진동에 의해 사창관이 심하게 훼손되고 화상을 입은 것 마냥 조직이 변질되는 경우가 보이죠. 그런데 이 학생의 경우에는 그런 상처가 보이지 않아요. 사입구, 사출구, 사창관이 모두 깨끗해요. 아니 아주 깨끗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총상이라고 보긴 어려워요.”

물론 자세한 건 부검의에게 물어봐요, 라며 떠나는 검시관은 마치 이제부터는 네 일이지 내 일 아니다, 고 말하는 것 같아 형사는 찝찝함을 느꼈다. 쉽게 끝날 일로 보이지 않으니 이번에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위장약을 먹으며 지내야 할까.

언론의 포화와 윗분들의 답답한 지시사항을 버텨내며 수사를 이어가야 할 자신의 운명이 벌써부터 그려졌다.

형사는 한숨을 내쉬며 좁은 골목을 걸었다. 전혀 정비되지 않아 마치 미로같은 좁은 골목을 누비길 며칠 째. 단서는 눈꼽만큼도 나오지 않았고, 그 흔한 CCTV가 왜 이런 곳에는 설치되지 않았는지 답답할 따름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파트며 부촌에서 살려고 하나 봐요.”

이런 동네에서는 사고를 당해도 보호해 줄 이가 없다. 억울하게 죽는다고 한들, 누구 하나 눈 깜짝하지 않을 것만 같다. 기껏해야, 치안을 불안케 했다고 항의하는 정도겠지.

“요즘 세상이 어느 땐데 말이야. CCTV 하나 없어? 이거 구청에 신고하면 달아주려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죠.”

“소를 잃었으면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소 주인 생각하니까 확 열이 오르네.”

“말조심 해라.”

“에이, 여기는 듣는 사람도 없는데요.”

“말도 계속하면 버릇 돼. 나중에 피해자 부모님이 경찰서에 오셨는데, ‘소주인’ 운운하는 게 들키면 어떡하려고 그래?”

“에이, 제가 무슨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됐으니까 조심해.”

“예.”

파트너는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놓고 형사의 뒤를 쫓았다.

범행 방법이나 증거에서 찾지 못한다면, 범행 동기를 되짚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죽은 운종의 학교에서부터 그가 만났던 사람, 그를 잘 안다고 소문난 사람들을 모아 조사를 벌였다.

“그 새끼,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그 새끼, 완전 미친 또라이에요.”

“솔직히 걔가 죽어서 잘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걸요?”

“잘 됐다고?”

죄질이 아주 심한 사람이거나 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을 두고 ‘잘 됐다’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걔 죽이고 싶어할 사람이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전교생 전부가 아닐까요?”

“전부?”

“네.”

평판은 무척이나 나빴다. 게다가 운종에게 노골적으로 복수심을 드러낸 이도 있었다.

“운종일 죽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람이 죽었는데 행복하다고?”

“걔가 학교에서 벌인 짓을 형사님이 몰라서 그래요.”

전교생들은 마치 짠 듯이, 운종을 욕했다.

“범행동기는 넘치네요.”

파트너의 말대로 넘쳐나는 범행동기 때문에, 형사는 범인에 대해서 1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 중학생 있잖아?”

“장계 중학교 학생이요?”

“그래. 거기도 한 번 가보자.”

“거긴 너무 아닌 것 같은데요.”

“일단 가보자.”

형사는 곧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거친 배기관 울음소리가 이제는 익숙하다.

****

“단유군이 가졌던 기대, 그것은 학생과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아니었나요?”

단유는 계속 입을 다물었다.

“대화가 통하는 또래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기대했던 거 아닌가요?”

그렇다. 단유는 자신과 비슷한 사고를 가진 이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수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물론 단유군에게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아요. 하지만 진짜 대화가 통하는 친구가 많나요?”

훅 치고 들어온 교장의 추측이 단유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아마 단유군이 생각하는 그런 친구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그런 기회를 포기하지 마세요. 그것은 매우 소중한 기회이고 단유군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단유는 교장이 단순히 학교의 입장에서 서서 설득하기보다, 단유 본인을 잘 배려하며 말을 고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고맙기도 하지만, 아쉽기도 했다.

아쉬운 건, 단유 본인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관한 아쉬움이었다. 어른은 차악의 선택을 한다고 했던가? 단유는 자신이 그런 차악을 선택했던 건 아닌지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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