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08화 (508/956)

요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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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니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던 명수가 반겼다.

“왔어?”

“응.”

“왜 이렇게 늦었어?”

“아, 뭐 좀 하느라고.”

“밥은?”

“생각 없어.”

그렇게 대답하며 방으로 들어가는 단유. 명수는 단유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되게 피곤해 보인다?”

잠시 대답이 없다 싶더니, 겨우 들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나 씻을게.”

그 뒤로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네?”

뭘 하다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기력이 빠진 모습은 보기 드문지라 명수는 조금 걱정이 됐다. 하지만 세상에서 연예인 걱정이 제일 쓸데없다고 하듯이, 이 집에서 단유를 걱정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뭐. 그렇지 호빵아?”

단유의 방문 앞에서 킁킁거리던 호빵이 명수의 부름에 짧은 다리를 놀리며 뛰어왔다. 헥헥거리며 혀를 빼물고 명수를 올려다보는 호빵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어준 명수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TV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단유는 갈아입을 옷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옷 바구니에 새 옷을 올려둔 뒤, 입었던 옷을 천천히 벗었다. 그리고 샤워기를 틀고 그 아래에 섰다. 차가운 물이 몸에 닿자, 즉각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팔과 등에 소름이 돋으면서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것은 의지와 상관없는 자연스러운 신체 반응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그 차가움에 적응했고, 차가움은 시원함으로, 그리고 개운함으로 다가왔다. 별로 긴 시간도 아니었고 물줄기 아래 선지 몇십 초 만에 이루어지는 적응력이었다.

단유는 몸이 아닌, 정신도 그런 적응력을 보일 수 있을까 궁금했다.

누구나 말한다. 머리는 차갑게. 단유도 공감하는 말이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라. 그것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유일한 특성이며,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갖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종종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지, 전혀 이성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그런 사례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다. 이쪽 세계에서든, 저쪽 세계에서든. 아이든, 어른이든 특정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비이성적 행동을 보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좁은 식견과 무리한 추측으로 상대를 무시하거나 흠잡던 초등학교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 겨우 분풀이나 하려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소녀의 비밀을 폭로하던 동인,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고 말을 듣지 않으려던 순찰대장,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죽이려고 들었던 감옥에서의 죄수들. 복수의 감정에 치우쳐 결국 마법을 잃어버렸던 마법사.

그런 면에서 단유는 이제껏 감정에 치우친 행동을 행한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바꿔 말하면, 늘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해왔다. 사실 예전의 단유는 감정에 치우칠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돌아본 적도 없고, 느낀 적도 없었으니까. 늘 이성적으로 옳은 선택―물론 옳고 그름의 기준은 사회적 통념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을 했으니까.

그래서 과거 저쪽 세계에서 첫 ‘살인’을 했을 때도, 이곳에서 ‘정환’과 ‘숙희’를 죽였을 때도 단유는 후회를 하진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단유는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따졌고, 옳은 선택이라고 결정했기에,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

상대가 이제껏 상대했던 어른이 아닌 또래의 아이라서? 대화를 하지 않아서? 법을 어겨서?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과거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가해자의 가학적 욕망이었을까, 피해자의 정당방위였을까?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힘이 있으니까 그 힘을 쉽게 사용했던 것일 뿐일까? 아니면 피해자로서, 아니 잠재적 피해자로서 자신과 친구에게 가해질 위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변명하는 게 옳은 것일까?

“단유야? 뭐해?”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명수의 목소리에 단유는 정신이 들었다. 해석되지 않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며 분석을 하던 단유는 즉시 대답했다.

“씻고 있어.”

“괜찮아?”

“응.”

“혹시, 어디 불편하거나 아픈 데 있으면 말해. 혼자 앓고 있지 말고.”

“···알았어.”

지금 느껴지는 여러 복잡한 감정 중, 단 하나의 감정만은 선명하게 이해되었다.

‘미안하다.’

명수를 걱정시켜서 미안했다. 다친 명수를 볼 때, 명수가 버릇처럼 ‘미안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리라.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나오는 단유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명수에게 단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응. 조금 피곤해서 그래. 생각도 많고.”

“···그래, 너 좀 쉬어. 넌 너무 안 쉬는 게 탈이야.”

“알았어. 그런데 뭐 하고 있어?”

“나? 나야, 그냥 TV 보고 있지.”

“넌 너무 공부를 안 하는 게 탈이야. 기말시험 한 달도 안 남았어.”

“에이, 새삼스럽게 무슨 공부 타령이야.”

“그렇네. 그래도 너무 늦게까지 보고 있지 마.”

“걱정 마. 선생님 오시기 전에 끌 거야. 그런데 걱정이다. 선생님이 이거 보면 걱정하실 텐데.”

명수가 이마에 붙은 밴드를 가리켰다.

“상미를 구하려다 다친 거니까, 괜찮을 거야.”

“아, 그 새끼. 갑자기 생각하니까 열 받네. 할 짓이 없어서 핸드폰이나 훔치고 다니는 놈이 상미를 때리려고까지 하다니 말이다. 진짜 그런 새끼들은 모조리 잡아서 감옥에 처넣어야 하는데. 소년원 같은 데 말고 진짜 감옥 같은 데.”

단유는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느새 호빵이 다가와 단유의 발밑에서 고개를 쳐들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흑색의 맑고 촉촉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나 먼저 들어갈게.”

“그래. 들어가서 쉬어.”

단유가 방에 들어간 후, 명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단유가 다시 기운을 차리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장계 중학교 교무실은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교장 선생님, 어떻게 하죠?”

교감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교장에게 의견을 구했다.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습도가 오른 탓인지 비가 오지 않을 때보다 더 더웠다. 비록 교장실에는 에어컨 때문에 시원하긴 했지만, 교감의 땀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 않잖아요? 일단 학교 전체에 소문이 크게 나지 않도록 선생님들께 각별한 주의를 당부해주세요.”

호기롭게 교장직을 맡았으나 연이어 터지는 이런 사건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학교 밖에서 나는 사고까지 감당하기엔 교장의 권한과 권위에 한계가 있다.

“경찰에서는 뭐라던가요? 혹시 범인이 누군지는···.”

“그것까지는 말해주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눈치로는 경찰도 아직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도 학생이지만, 그 고등학교는 아주 난리가 났겠군요.”

피해 학생 총 6명. 그중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아무래도, 살인 사건이니까요.”

“그런데 그 학생 소문이 좋지 않다고요?”

“예. 학교의 일진으로 소문난 학생인데, 학교 안은 물론 밖에서도 소문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사법적 제재가 필요했던 아이라는 소문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학교 내의 일이라 정확히 어떤 일을 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들려온 소문은 그랬다. 폭력, 절도, 강도, 강간 등 생각할 수 있는 소년 범죄의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긴 학생이라는 소문. 그래서 어떤 이는 당해도 싸다거나, 언젠가 이런 일이 날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워낙에 그 학생에게 당한 피해자가 많았기에 범행동기만으로 범인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학생은요?”

“3학년 유우성이란 학생인데, 후두부에 강한 충격을 받고 쓰러져 현재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설마···죽는 건 아니죠?”

“병원에서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이런.”

주먹을 쥔 손으로 가볍게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는 교장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교감이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요, 교장 선생님.”

“말씀하세요.”

“5반의 일 말입니다.”

교장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왔다. 시선 끝에 무거운 추라도 달린 듯 정수리를 짓누르는 무게감에 교감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대로 말을 이었다.

“처벌 수위를 조절하는 게 좋겠습니다.”

“······.”

“불량 청소년 살인 사건은 곧 뉴스에도 날 테고, 그러다 보면 그 사건에 우리 학교 학생도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소문날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 학교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는 이야긴데, 작년의 일에 이어 올해까지, 결코 학교에 좋을 일이 없는 이야깁니다.”

“······.”

교감은 슬쩍 눈동자를 들어 대답 없는 교장의 눈치를 보았다.

“계속하세요.”

“아, 예. 저기, 그래서, 그런 와중에 5반의 일까지 거론되면 보통 시끄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학교 폭력과 일진의 문제가 언론의 손을 타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테고 말이죠. 사실 학교의 명예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내신과 미래가 걸린 일 아니겠습니까?”

“학교폭력대책 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주시는 말씀인가요?”

교감은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일단, 학폭위 위원분들과도 이야기를 어느 정도 나누긴 했습니다.”

당연하다. 사실 교감의 생각이 아니라, 학부모들의 거센 압력과 전방위적인 로비(?)에 의해 학폭위 위원들이 먼저 교감에게 꺼낸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처벌하면, 피해 학생은 어떻게 합니까?”

“아, 그 부분은 학부모님들 사이에 적당한 합의가 이루어질 거라고 합니다.”

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감이 저도 모르게 반응해 움찔하는 것도 무시하고, 교장은 창가로 향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유리창에 부딪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은 머리 위로 두 손을 올리고 달리면 비를 많이 맞지 않고도 운동장을 지나갈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폭우가 되면 두 손을 올리든 올리지 않든 몸이 젖는 것은 물론이고, 운동장의 흙탕물이 바지를 온통 적실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학교를 나설 때 학생들은 고민할 것이다. 지금 이 비가 보슬비인지 소나기인지, 아니면 태풍이 몰고 온 폭우인지. 어떤 비가 내리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대처도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학교도 그런 학생들을 위해 방법을 내어놓아야 한다. 보슬비라면 집에 빨리 가라고 지시하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폭우가 내린다면 학교는, 학생들이 비를 맞으며 뛰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리고 보호해야 한다.

“난 내가 우산이 되어주리라 생각했어요.”

“교장 선생님께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교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산이 아닌 우산 장수가 되었어요.”

“네?”

우산 장수는 우산을 파는 사람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파는 이만큼 고마운 이가 어디 있는가?

“장사꾼이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교장을 맡은 지 이제 겨우 6개월밖에 되지 않았건만, 남모를 스트레스에 아침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니, 나이 든 아내가 매일 한숨으로 배웅하고 있다.

“매 순간의 선택이 장사꾼 이윤 계산하는 모양이니 말입니다.”

어쩔 수 없다. 같은 교육계에 있더라도 교장은 지금껏 상위 기관에서 편하게 지냈다. 반면 거친(?) 현장에서 20년 이상을 보낸 교감은 교장의 고민이 부질없다 여겼다. 아마 교장도 1, 2년 더 있다 보면 자신이 느끼는 것과 똑같이 느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니까.

“그렇게 하세요.”

“네?”

“5반 문제, 말씀하신 대로 하시라고요.”

어차피 교장이 반대한들, 학부모와 학폭위에서 더한 압력을 넣을 뿐이지 다른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원칙? 현실에서는 그저 바지를 더럽히는 흙탕물 같은 것이다. 융통성을 발휘해서 바지를 더럽히지 않는 길을 찾아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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