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07화 (507/956)

미상(5) - 수정(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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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병신 새끼들아. 그거 하나를 제대로 못 해서 이 지랄이냐?”

슬리퍼로 머리를 내리치는 운종의 손이 꽤 매서웠다. 찰진 소리가 울릴 때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뒤를 이었다.

어둠이 찾아든 시간, 어지간하면 가로등이나 멀지 않은 곳의 불빛들 때문에 어두운 곳을 찾기 힘들다. 그런 불빛의 사각도 분명히 존재해서, 지금 운종과 아이들이 있는 곳은 하얀 눈동자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어두운 폐가의 담벼락이었다.

폐가라고 해서 다 낡아 쓰러지기 직전의 폐가가 아니다. 그냥 빈집이 된 지 오래되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 고쳐 쓴다면 앞으로도 수십 년을 더 살 수 있는 집이었다.

최근 도시의 빈집 현상은 점점 심해져서, 특히 장계동과 같은 서울 변두리 지역은 열 집 중 2집 이상이 빈집이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집은 보통 갈 곳 없는 아이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막는데 어쩔 수가···.”

“뭐?”

운종이 눈을 부라리자, 얼른 입을 막고 고개를 숙이는 스크래치.

“죄송, 합니다.”

“죄송하지? 죄송하지? 죄송한 줄 알면 그런 일을 안 만들던가, 잘하지 그랬어? 응?”

“죄송합니다.”

“씨발, 너는 죄송합니다 밖에 할 줄 아는 말이 없어?”

퍽, 소리가 나며 스크래치는 배를 감싸고 무릎을 굽혔다. 운종은 손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다. 가장 마지막에 서서 떨고 있는 우성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야.”

“······.”

“야.”

“예.”

“잘하겠다며?”

“······.”

“두 번 다시 실수 안 하겠다며?”

“···죄송합니다.”

“나한테 구라친 거네?”

“아닙니다.”

“아냐? 아닌데 왜 이렇게 됐을까? 응?”

“······.”

“와, 나 이거 참. 개새끼가 또 쌩까네?”

“아닙니다.”

“야.”

“예.”

“야.”

“예.”

“야!”

“···예.”

“죽을래?”

“······.”

윽, 신음을 내며 쓰러지는 우성의 위로 운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씨발, 대답 하란 소리를 몇 번을 해야 들을래? 내가 우습냐? 그래서 내 말 다 쌩까고 무시하고 구라친 거냐? 응? 개새끼야?”

“죄송합니다.”

“이 새끼들이 다 짰나? 야, 이 엿같은 새끼야. 할 말이 그것밖에 없냐고, 새끼야. 내가 그런 개소리나 듣고 싶어서 니들이랑 이 지랄 하고 있냐고!”

그 뒤로 손과 발이 무작위로 튀어나오며 우성의 몸 구석구석을 두들겼다. 우성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겨우 얼굴만 감싼 채 운종의 샌드백이 되었다.

밟히고, 차이고, 또 밟히며 머리가 공처럼 바닥에 부딪히고 튀어 오르는 상황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누구 하나 운종을 말리는 이가 없었다. 그저 자신이 우성과 같은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

“여기.”

“고마워.”

상미가 핸드폰을 받아들고 살폈다. 액정이 깨지긴 했지만, 작동은 제대로 되고 있었다.

“이거 어떡해. 힝.”

울상이 된 상미가 단유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본들 단유라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깨를 으쓱거려 보이는 단유에게 상미가 부탁했다.

“뭘?”

“우리 집에 가서 이야기 좀 해줘. 내가 깬 거 아니라고.”

“신용이 없구나, 집에.”

“이거 핸드폰 바꾼 지 얼마 안 됐단 말이야.”

“그럼 수리 센터 가서 바꿔 달라고 해.”

이왕이면 최신 핸드폰으로 바꾸고 싶었던 상미였지만, 단유는 단호하게 협조를 거절했다.

“명수야, 넌 괜찮아?”

“응. 이 정도쯤이야 뭐. 운동장에서 태클로 단련된 몸이잖아.”

“잔디밭에서 하는 거랑, 시멘트 맨바닥에서 하는 게 같을 리 없잖아.”

“내 몸 튼튼해.”

“알았어. 그럼 상미야. 명수 좀 부탁할게.”

“왜? 넌 집에 안 가?”

“난 잠깐 들렀다 갈 곳이 있어.”

“어디?”

“금방 갔다 올 거야. 넌 집에 가서 좀 쉬어.”

“알았어.”

단유는 두 사람을 먼저 보낸 뒤, 우성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상미의 그것처럼 액정에 금이 가긴 했지만, 고장이 나진 않았다.

10분 전, 우성의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었다.

“여보세요?”

―···누구야? 우성이 아냐?

“핸드폰 주운 사람인데요?”

―아 놔, 이 멍청한 새끼는 지 핸드폰을 질질 흘리고 다녀?

“···이거 돌려드리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져다 드리면 되나요?”

―(···야, 이 새끼 존나 착한 새끼다. 안 팔아먹고 돌려준다네?)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소리도 너무 잘 들린다. 고장이 안 난건 확실했다.

―그거 갖고 여기로 와라.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대뜸 반말로 나오는 대범함은 둘째치고, 이 핸드폰을 돌려주었을 때 과연 온전히 주인에게 돌려주기나 할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물론 돌려주지 않는다고 한들 단유가 마음 쓸 이유는 없지만 말이다.

단유는 주소를 기억하고 곧 가겠다는 말을 남긴 뒤, 전화를 끊었다.

‘발본색원(拔本塞源)이라 했었지.’

이제 못된 씨앗들을 수거하러 가야겠다.

****

단유가 통화로 들은 주소로 갔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만날 생각이 없긴 했지만, 이래서는 그들이 근처에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자전거를 적당히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세워두고 주변을 살폈다. 드문드문 가로등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어둡고 복잡한 골목이었다.

예전의 ‘공간이동’ 능력이 있다면 좀 더 쉽게 돌아다니며 찾아볼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 발품을 팔아야 했다.

뚜벅뚜벅 걸으며 주변 골목을 살피다 보니 곧 유난히 소란스러운 한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변 집들이 모두 조용한 데, 이 집에서만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거친 욕설이 섞인 고함과 신음이 간간이 들리니 단유는 그 집을 특정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꿈틀대는 우성과 무릎을 꿇은 고등학생 3명을 앞에 두고 쪼그려 앉은 운종은 담배를 입에 꼬나물었다. 워낙에 발을 많이 써서 그런지 발목이 시큰거리는 느낌도 들었다.

“야, 마실 거 없냐?”

운종의 뒤에 있던 아이가 얼른 냉장고로 향했다. 비록 전기가 끊어져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냉장고였지만 음료수나 물을 잠시 놔두기엔 적당한 상자였다.

“여기요.”

미지근하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닌 음료수였다. 벌컥벌컥 마신 운종이 빈 캔을 아무렇게나 던지니 벽에 맞고 튕기면서 요란한 소리가 어두운 집 안을 울렸다.

“야, 더운데 창문 좀 열자.”

몇몇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덜컹거리는 창문이 억지로 버티려는지 쇠 긁는 소리가 났다. 운종은 불쾌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야!”

운종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니 얼른 사과가 뒤따른다.

“죄송합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여튼 마음에 드는 놈이 없어.”

운종이 일어나 발목을 몇 번 돌리더니 창가로 향했다. 창틀에 팔을 기대고 연기를 뿜어내니 하얀 연기가 검은 하늘 사이로 흩어졌다.

운종이 뒤를 돌아보니 눈치를 보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야, 무슨 눈치를 보고 그래? 그냥 펴.”

“감사합니다.”

“감사는 개뿔.”

그마저도 명령이라 생각했는지 아이들은 다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없는 아이는 옆 사람에게 빌려서 입에 물었다. 라이터 몇 개가 오고 가며 불빛이 전염병처럼 옮겨 갔다. 곧 연기가 실내를 채우기 시작했다.

“진짜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놈들 구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창밖을 보며 하소연하듯 중얼거리던 운종은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들겼다. 아무래도 아까 발을 사용할 때 잘못 찼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저 시큰거리는 정도지만, 내일이 되면 절뚝거릴지도 모르겠다.

“에이 씨. 모양 안 나게···.”

짜증이 나서 담배를 또 하나 더 꺼내 들었다. 목이 점점 따가워진다는 느낌마저도 짜증이 났고,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상황이 짜증이 났다. 뒷탈 안 생기게 조용히 데려오라는 간단한 일을 하지 못해 쩔쩔매는 애들이 답답하고 짜증 났다.

문득 운종은 뒤가 괜히 조용하단 느낌이 들었다.

“뭐야?”

뒤로 돌아보았을 때, 실내는 자욱한 담배 연기로 시야가 많이 가려져 있었다.

“야!”

아이들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운종은 싸늘한 느낌을 받으며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졌다.

“이 새끼들이 단체로 돌았나···. 야!”

마치 연기가 소리를 잡아먹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신음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수상함을 넘어 정체 모를 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다. 운종이 걸음을 쉽게 떼지 못할 때, 연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어.”

운종은 무슨 개소린가, 생각하다 지금 들린 목소리가 처음 듣는 목소리란 것을 깨달았다.

“누구야!”

목소리가 들리는 데 정확히 어디인지를 알 수 없었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살피는 운종의 귀에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실수, 라는 이유로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어디야! 어디 있어!”

“게다가 그 실수가 계속 반복될 거라면, 그리고 그 실수 때문에 피해를 받는 사람이 계속 늘어날 거라면, 그건 더 이상 ‘실수’가 아니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되겠지.”

“이 새끼야! 어디 있어! 나와!”

운종이 좌우로 팔을 휘저었다. 그러나 걸리는 것 없이 자욱했던 연기만 흩어질 뿐이었다.

“나와! 나오라고, 새끼야!”

곧 연기가 희미해졌지만 워낙에 어두웠던 실내라 보이는 게 없었다. 그때 뭔가가 휙 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와 동시에 오른쪽 팔뚝에 화끈한 느낌이 들어 살피니 피부가 칼에 베인 것처럼 갈라져 붉은 피가 솟고 있었다.

‘이 새끼가 연장을 써?“

마침 들고 다니던 주머니칼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우성을 비롯한 아이들에게 ‘참교육’을 집행할 때 잠시 빼놨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운종은 자신의 팔을 가르고 지나간 게 그 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만약 그게 진짜 칼이었다면, 떨어질 때 소리가 났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었고, 운종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사람을 때리고,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인격을 무시했으며, 타인의 물건을 탐내고 비열한 방법으로 뺏으려 했다. 특히 자신의 기분과 이익을 위해 타인을 상처입히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낀다는 것은 ‘실수’로 포장할 수 없는 ‘죄’임이 틀림없어.”

“너 누구야? 나와, 당장! 너 걸리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알겠···악!”

이번에는 왼쪽 팔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좀 더 깊게 들어온 상처였다. 피가 더 많이 나기 시작했는데, 아까처럼 단순히 손으로 감싼다고 해서 멈출 상처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계속 경계를 하고 있었던 터라 확실히 칼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뭔가 날아온다는 느낌도 없이 팔에 상처만 남았다.

“무엇보다.”

“악!”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 바깥쪽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꽤 깊은 상처였다.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렸어.”

마지막 말은 들릴 듯 말 듯 했다. 소리가 작지 않았더라도 운종이 비명을 지르느라 듣지 못했을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건 네가 자초한 결과야.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넌 알았어야 했어.”

왼쪽 허벅지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운종은 눈물과 비명을 쏟아냈다. 저벅저벅 단유가 다가왔다. 운종은 누군가 다가온다는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사, 살려줘!”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단유가 말했다.

“넌 살려달라던 아이들에게 어떻게 했었어?”

“살려줘, 살려달라고, 새끼야!”

“사람이라면 대화가 가능해야 하지만, 넌 대화가 안 되잖아. 대화가 안 되니까, 네 잘못을 설명해줘도 알아듣질 못하고, 개심할 생각도 없겠지. 설령 나중에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한들, 네가 한 나쁜 짓들이 모두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야.”

“무슨 개소리야, 새끼야!”

바닥에서 꿈틀대면서도 악을 지르는 운종.

“네가 만들어낼 수많은 피해자, 그 피해자 중의 한 명이 나이거나 혹은 내 친구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한 예방이 필요해.”

단유는 공기를 압축시켰다. 2㎟의 좁은 공간에 극도로 압축시킨 공기가 단유의 의지에 의해 발사되자, 900㎧의 속도로 쏘아지며 운종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화끈한 통증이 이어지고, 이내 모든 것이 암흑으로 바뀌었다.

“총이야?”

“아닙니다. 그런 의심은 들지만. 화약 반응도 없었고요. 사입구의 크기를 봐도 이런 구경의 총은 없다는 분석입니다.

주택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경찰을 혼돈 속으로 몰고 들어갔다. 평소 불량 서클 아이들이 빈집에 들어와 고성방가를 일삼았다는 주변의 증언이 있었지만, 시끄럽다는 이유로 아이를 죽인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일단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고, 혹시 총기류를 보관하고 있는지 알아봐.”

요즘은 워낙 인터넷이 발달한 터라, 외국의 사이트를 보고 수제 총을 만들어 사용하는 사례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소문 안 나게 주의해.”

“네.”

“왜 하필 우리 구역에서 일이 터진 거야? 젠장.”

책상 위로 던져진 사건 파일에서 튀어나온 피해자의 사진들이 책상 위로 흩어졌다. 운종을 비롯한 아이들의 얼굴 속에 우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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