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03화 (503/956)

미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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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 일 더럽게 어렵게 만드네.”

눈썹의 가운데가 긁힌 것처럼 잘려나간 모습이 인상적인 그는 방금 물었던 담배의 필터를 씹으며 큐를 잡았다. 앞에 선 우성은 열중쉬어 자세로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우성을 흘깃 본 그가 큐로 우성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네가 왜 죄송해? 네가 했어?”

“아닙니다.”

“아니잖아? 아닌데 왜 죄송해?”

“…….”

“대답 안 해? 왜 죄송하냐고?”

“선배님 명령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네가 어겼어?”

“아닙니다.”

“그런데?”

“…친구가 잘못한 일은 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 친구가 잘못하면 바로 잡을 책임이 있어.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내가 어려운 걸 시켰어?”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왜 못해?”

“…다른 아이를 이용하겠습니다.”

“다른 애 누구?”

“…친구입니다.”

“친구라….”

단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도 없고, 친하다고 여길 만한 친구도 몇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를 지정한 장소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접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처음에 생각했던 것은 병억이었다. 병억은 단유와 앙금이 있다는 명분이 있었고, 그 명분을 이용해 단유를 부른다면 나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모범생인 단유가 학교에서 사고를 치려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진짜 모범생들처럼 약해 빠진 것도 아니니까. 우성이 직접 겪지 않았던가.

우성은 지금도 기억한다. 축구 경기장에서 자신의 목을 조르며 협박하던 단유의 모습을. 웬만하면 그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 않겠으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때를 되짚어야 했다. 그리고 그 덕에 우성은 단서를 얻었다.

“친구가 다치는 걸 끔찍하게 생각합니다.”

“친구 누구?”

“…상미라는 여자아이입니다.”

‘여자’라는 말에 그의 흐릿했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입맛을 다시는 그 모습에 묻지 않아도 무슨 상상을 하는지 짐작이 갔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어렵게 만들었다. 속으로 병억을 저주하는 우성이었다.

****

교장실에 교장 선생님과 교감, 그리고 생활지도부 선생님과 재단 법무팀장이 모였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뭐가 죄송합니까.”

“좀 더 엄하게 아이들을 단속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어요.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죄송합니다, 선생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요.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3학년 5반 전체를 대상으로 또 한 번 학폭위 제출용 진술서를 받아냈고, 사건의 개요는 대충이나마 파악했다. 이번에도 병억의 일방적인 폭력으로 시작된 문제지만, 다른 선생님들이 함께 고민하는 문제는 사고가 벌어지던 과정에서 발생한 ‘집단 린치’였다. 물론 병억이 잘못하긴 했어도, 그렇다고 반 아이들이 의자 등의 집기류를 던져 해를 끼친 것을 좋게 볼 수는 없었다.

“다 같이 미친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인지….”

학폭위 위원장을 맡은 교감은 학생폭력대책 위원회가 소집되었을 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곤란함을 미리 느끼는 중이었다.

“군중의 광기, 라는 것이겠지요.”

교장이 혼잣말하듯 대답했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일, 이성적으로 절대 할 수 없는 일도, 군중은 할 수 있다. 혼자라면 마녀의 집 앞을 지나는 것도 무서워 빙 둘러 갈지라도, 군중이 되면 마녀를 끌고 나와 화형식을 벌일 수 있다. 그 여자가 진짜 마녀든, 가짜 마녀든 간에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합니다. 쇠로 된 의자를 사람에게 던지다니요. 만약 문제 삼으면 일파만파로 커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법무팀장의 말에 모인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병억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병억의 부모가 문제 삼는다면 5반의 아이들 다수에게 특수 폭행에 가담한 죄를 물어야만 한다. 단순히 특수 폭행일 뿐일까? 어쩌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미수’ 혐의를 주장하는 상황도 상정해야 했다.

교장 선생님은 이마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학폭위는 제대로 열어야 합니다. 비록 교육청 감사가 끝났다 해도 아직 완전히 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학폭위를 열기 전, 충분히 관계자들과 만나 합의를 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학폭위에 반영되도록 해야겠지요.”

학폭위의 회의 결과에 따라 처벌이 결정되면,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 때문에 그 전에 적당한 합의가 나와야 학폭위에서도 합리적인 처벌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학폭위가 열리는 기간은 보통 1주에서 길게는 2주가 걸립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이 사이에 관계된 학생들의 학부모들과 모두 만나서 합의를 볼 수 있습니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보도록 해야죠. 무조건.”

교장이 선언하듯 말을 던지자, 교감은 푸르죽죽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법무팀장이 교감 선생님과 생지부 선생님에게 다시 조언했다.

“혹시 합의를 거절하는 학부모가 나온다면 꼭 이야기하세요. 이 문제가 커지면 소년 법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협박이라도 하란 말씀이신가요?”

“협박이 아니라, 현실을 말씀드리란 이야깁니다.”

이해 좀 하라고 머리를 두들기는 대신 탁자를 툭툭 두드린 법무팀장이 짧게 숨을 들이쉬고 말을 이어나갔다.

“병억이라는 학생의 부모님께도 잘 설명하셔야 할 겁니다.”

병억은 거의 강제전학이 확정되다시피 했다. 교감과 학교가 학교폭력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할 일은 적어도 병억이 퇴학 조치는 받지 않게끔 조절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경찰은….”

“그래서 합의가 중요하단 이야깁니다. 일단 발단은 병억이란 학생이었으나 경찰 수사는 전방위로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합의되어 원만히 해결되길 원한다는 학부모 측의 의사가 전달되면 아무래도 수사 진행에 다소 편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김단유 학생 말입니다. 그쪽이 가장 문젠데….”

교감이 말끝을 흐리자, 교장이 나섰다.

“그 학생은 제가 이야기를 해 보죠.”

“교장 선생님께서요?”

“일전에도 이야기를 나눠보니 저랑 잘 통하는 점이 있더군요. 제가 잘 이야기하죠.”

“교장 선생님께 짐을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해서 이거 원….”

“그런 생각 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무튼 이 일이 너무 확대 재생산되어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게 각별히 유념해주시고, 아, 특히 SNS에 일이 거론되지 않게 해주세요.”

“네, 선생님.”

물론 SNS를 완전히 막을 순 없을 것이다. 그 사태를 직접 목격한 사람만 몇인데 막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주의는 주는 게 좋을 것이다.

“다른 반은 몰라도, 우리 반에서는 이 일이 크게 소문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어.”

희선은 교탁 위에 서서 반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소문나봐야 서로에게 좋지 않을뿐더러, 본인에게도 좋은 일은 없으니까. 알겠니?”

“네.”

희선은 얌전히 대답하는 아이들의 면면을 살피며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저렇게 단정히 교복을 입고 있지만, 언제 또 돌변해서 미친 광기로 무장하고 집단 린치를 가하는 무자비한 폭도로 변할지 모른다. 새삼 아이들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는 희선이었다.

그러나 사실 학생들 입장에선, 희선의 트라우마는 물론이고 SNS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가장 큰 관심은 역시 학폭위의 결과였다. 바보도 아니고, 경찰까지 나선 상황에 자신들이 어떤 처벌을 받게 될 거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사회봉사 정도라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생활기록부에 붉은 줄이라도 그어진다면 가깝게는 고등학교 입학 때, 멀게는 대학교 입학 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하니까.

“이게 다 병억이 그 미친 새끼 때문이야.”

“솔직히 그 새끼가 우리한테 의자 집어 던지고 그러지 않았으면 우리가 그랬겠냐고.”

“그래도 의자 집어 던진 건 너무 심했어.”

날아오는 의자를 막겠다고 손을 휘두르던 병억의 모습이 떠오른 한 아이가 툭 한 마디를 꺼내자, 주위의 아이들이 들고 일어섰다.

“심하긴 뭐가 심해? 와, 너는 안 던졌다 이거지? 야. 솔직히 우리가 걔를 괴롭히고 싶어서 던졌냐? 다 너희들 같은 애들 보호하려고 나섰던 거잖아? 그럼 너희는 당연히 우리 편을 들어야 하는 거 아냐?”

“보호는 무슨….”

“와, 미치겠네? 그래서? 그래서 넌 맞기도 싫고 도와주기도 싫어서 도망갔냐?”

“야, 내가 무슨 도망을 가?”

“뒤로 내뺐잖아? 그게 도망이지, 아니면 뭔데? 응? 뭔데?”

“말 그따위로 하래?”

“그따위? 너 방금 그따위라고 했냐?”

“야 야, 왜들 그래? 왜 우리끼리 싸워? 그만해.”

“씨발, 말본새 그따위로 해 봐, 어디. 가만 안 둔다.”

“가만 안 두면, 나한테도 의자 집어 던지게?”

“이 새끼가!”

드르륵 의자가 끌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단유가 일어서자, 소란스러웠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날, 단유가 병억을 메침으로서 단순히 당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음이 증명되었고, 아이들은 단유가 힘에서도 톱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들 조용히 해. 자습시간이잖아.”

단유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무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고, 단유는 교실을 둘러보다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잠깐은 쥐죽은 듯 조용했던 교실이었지만, 금방 속닥거리는 소리로 채워져 갔다.

“반장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아이들은 모두 ‘반장’, ‘김단유’를 지목했다. 처음부터 맞기만 했고, 친구를 감싸려다 부상을 입기까지 했다. 물론 상처만 보면 단유보다 병억이 더 많았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자잘한 상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셀 수 없이 많았던 병억이었으니까.

하지만 끝까지 명수를 지키려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선생님보다 앞에 나서서 ‘선생님을 보호하려’던 모습들이 단유에 대한 인상을 좋게 만들었고, 피해자지만 용감했다는 이미지를 남겼다.

물론 단유는 그런 인상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라도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들은 많았다. 예를 들어 마법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하는 점과 마법을 쓸 수 없을 때 몸을 보호하는 기술로 무술, 혹은 격투기를 배울까 생각하는 것들이 그랬다.

하지만 가장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싸움이 벌어진 원인이었다. 단순히 병억을 ‘분노조절장애자’ 정도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 둘째 날 병억이 단유에게로 다가올 때는 분명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생지부실로 가지 않고 교실로 왔던 게 단순히 반항심 때문일까? 만약 그 순간에 명수가 반응해서 일어서지 않았다면, 그래도 병억은 자신에게 주먹을 휘둘렀을까? 그리고 우성이 일부러 지어 보이던 그 미소와 표정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쩌면 도하가 건넨 정보 때문에 괜히 두 사람을 연결짓는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뭔가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끝나지 않은 무엇인가가 남은 느낌은 꽤 불쾌하고 불편했다. 딱 맞아 떨어져야 정상인 수식에 불필요한 소수점 이하 숫자들이 늘어서서 단유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정확한 답이 나올 때까지 계산하고 검산하고 증명하는 일을 반복해도 답이 틀리게 나오면, 그때만큼 심란한 경우가 또 없다.

‘왜 그랬을까?’

단유는 생각을 거듭했고 답을 찾으려 했다.

****

“잘 가!”

“안녕! 내일 봐!”

까르르 웃음 짓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싱그럽다. 팔짱을 끼고 재잘대는 여학생들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단어장을 손에 들고 공부를 하는 여학생들이나 하나같이 에너지가 넘친다. 조금 귀가 혹사당하는 기분도 있지만,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보노라면 그런 혹사 대신 눈과 마음이 즐거워지는 기분이다.

물론 아무런 사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다.

“쟤 맞지?”

“응.”

“얼굴 죽이네? 쟤가 진짜 걔 이거야?”

새끼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묻자, 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굴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전에 보기도 했지만, 워낙에 뛰어난 외모를 가진 여학생이라 스쳐 지나가도 알아볼 수 있다고 우성은 생각했다.

우성과 함께 온 아이들이 숙덕대며 히죽거렸다.

“아까운데?”

“그럼 끝나고…콜?”

“우리한테까지 오겠냐?”

“그건 가봐야 알지.”

“난 먹다 남은 건 싫다.”

“배부른 소리 하네.”

우성은 그 대화에 끼는 대신 손짓으로 팀을 인도했다.

“얼굴 익히셨으면 작업 들어가죠.”

소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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