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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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이 들리자 아이들은 동작을 멈추고 선생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날아오는 의자들을 막느라 헐떡이던 병억의 숨소리만 교실에 크게 울렸다.
“맞았나?”
“설마.”
“좆됐네.”
이제야 상황을 깨달은 아이들이 주춤거릴 때, 단유는 선생님께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희선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단유가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단유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너, 또 싸운 거니?”
단유는 대답을 피했다. 희선도 단유의 침묵이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했다. 교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비폭력 비저항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를 고민하며 들어오던 참이었으니까.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역시 씩씩거리며 자신을, 그리고 단유를 노려보는 병억의 모습이 보였다. 생활지도부실로 가지 않고 교실로 와서 또 사고를 친 모양이다.
그런데 병억의 모습도 정상은 아니었다. 의자 한두 개가 날아오는 것이었으면 어떻게 막아낼 수도 있었겠지만 여러 아이들이 한꺼번에 던져댄 의자나 물건들을 모두 쳐낼 수는 없었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것도 있고, 어깨나 다리에 맞기도 해서 지금 병억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교실의 소란에 다른 반 선생님들이 찾아오셨다. 남자 선생님은 엉망이 된 교실과 여전히 쪼그리고 앉아 있는 희선을 보고 화를 냈다. 남 선생님은 또 다른 의미로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하였다.
“여기가 교실이야, 싸움터야!”
누구도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새끼들이···.”
그때 희선이 무릎을 짚고 일어서려 하길래 단유가 부축했다. 희선의 무릎이 떨리는 게 아직 완전히 진정된 건 아닌 모양이었다. 희선도 단유의 어깨에 손을 짚고 의지하며 서서는 교실을 둘러보았다. 싸움터, 아니 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대체 이 혼란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 희선은 아찔한 생각에 무릎이 꺾일 뻔했다.
단유는 희선을 부축한 채로 교실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명수를 보호하기 위해 물러선 동안, 반 아이들이 집어던진 의자들로 인해 교실 뒤의 사물함에는 온통 찍힌 자국투성이였고, 게시판에 붙은 종이들도 찢어져 흩날리는 중이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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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교실로 안 들어가!”
복도에서는 몰려든 다른 반 아이들을 내쫓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로 요란한 가운데, 그 틈에 섞여 있던 우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복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교실 안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병신 새끼.’
학교에서 사단 일으키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했건만, 무식한 새끼는 손톱만큼의 주의사항도 지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저 녀석은 곱게 학교 다니긴 힘들 것이다. 단순히 학폭위 소환되어 처벌받는 정도가 끝이 아니다.
병억이도 결국 심부름꾼이다. 심부름꾼이 심부름을 제대로 못 하면 심부름을 시킨 사람이 가만히 있을까? 병억이는 학교 밖에서 제대로 운신하기도 힘들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강전(강제전학)이다.
우성은 교실 앞쪽에 담임 선생님과 함께 있는 단유를 바라보았다. 단유의 꼴도 말이 아니다. 이마 부근이 붉게 물든 것은 물론이고 교복도 바닥을 굴러 흉하게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그때 단유가 우연인지 우성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단유. 그 침착한 눈동자가 우성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새끼, 알고 있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단유는 병억의 뒤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되도록 어떻게 손 한 번 쓰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일로 돌릴 수 없다. 시작은 우성이 했지만, 이미 일은 손을 떠났다.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
우성은 피식 웃어 보인 뒤, 몸을 돌렸다.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비릿하게’ 느껴지길 바라며.
하지만 아쉽게도 단유는 우성의 미소에서 비린 맛을 느끼진 못했다. 그저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어설픈 어른 흉내나 내고 싶어 하는 ‘철부지’로 보일 뿐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일을 벌이는 이유가 뭐지?’
무턱대고 시비 걸고 싸움을 하자는 거?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일이 커질 이유도 없고.
선생님들이 복도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을 내쫓고 있을 때, 생지부 선생님이 도착했다.
“모두 강당으로 집합해!”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 밖을 빠져나가 강당으로 뛰어갔다. 단유는 머뭇거리는 명수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명수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과 함께 강당으로 향했다.
“넌 왜 안 가!”
교실 뒤편에서 의자 다리 하나를 붙잡고 씩씩대던 병억은 선생님의 지시에 불응하며 서 있었다.
“너도 가, 임마!”
교실 문을 빠져나가던 아이들이 멈춰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안 가?”
생지부 선생님이 팔을 걷어붙이며 소릴 질러도 병억은 요지부동이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그 묘한 대치 상황을 주시했다.
“씨발···.”
“뭐?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씨발 놈들···.”
병억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저 새끼들이 나한테 던졌단 말이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아니, 이놈이···.”
“···개새끼들, 내가 죽여버린다.”
교실 문에 멈춰선 아이들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병억의 저주가 아이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저 새끼, 뭐래.”
“병신, 니가 먼저 반장한테 체어샷 날렸잖아!”
“병신 새끼가 존나 골 때리네.”
생지부 선생님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이게 뭐하는 짓거리들이야! 선생님 말 안 들어! 강당으로 가지 못 해! 그리고 너, 어제 사고 친 놈이 또 사고를 쳐! ···그거 당장 놓지 못해?”
병억은 자신이 의자를 붙잡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지 아래로 내려보며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내려놔! 얼른!”
뎅그렁, 바닥을 구르는 의자는 다리가 휘어져 있었다.
“단유야.”
단유는 자신의 어깨를 짚고 있는 희선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대답했다.
“네.”
“너도 일단 강당으로 가 있어.”
“···네.”
천천히 몸을 빼니 희선은 부들거리면서도 자력으로 버티고 서려는 모습을 보였다.
“임 선생님, 괜찮아요?”
옆 반 선생님이 희선을 부축하려 하자, 희선은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단유는 교실을 나가려다 다시 고개를 틀어 교실 뒤편에서 여전히 대치 중인 병억을 보았다. 지금 선생님들은 모르지만, 병억의 발목에는 단유의 충동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압축된 바람의 칼날이 병억의 발목을 스치면서 낸 상처가 그를 광분케 만들었다. 그러니 이 사태에는 단유의 책임도 있다. 그래서 미안하냐고 묻는다면,
‘천만에.’
단유와 병억의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단유의 눈빛에 병억은 또 울컥했다. 저 혼자 잘났다는 듯, 자신을 무시하는 저 표정.
‘내가 딴 놈은 몰라도 너는 절대 안 봐준다.’
자신이 이 지경에까지 몰렸는데, 저놈은 뭐가 잘나서 저렇게 뻔뻔스럽게 멀쩡히 바라보고 있는가? 이를 악문 병억이 교실 앞으로 달려들었다.
“어? 야!”
생지부 선생님은 말릴 틈이 없었다. 이미 의자며 책상이며 전부 던져지고 나뒹구는 판이라 병억의 돌진을 막는 것도 없었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병억.
“이야아!”
단유는 가만히 기다리지 않았다. 바로 옆에 선 선생님 때문에라도 단유는 한 걸음 나와야 했다. 오른발을 한 보(步) 내디디고 왼발에 무게 중심을 둔 단유는 호흡을 정리했다.
“윤병억!”
희선이 비명처럼 병억의 이름을 불렀고, 희선을 부축하던 선생님은 희선을 감싼 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질끈 눈을 감았다.
이를 악문 병억의 오른발이 바닥을 세차게 딛고 왼발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서며, 동시에 오른 주먹이 단유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살벌한 공세에 모두가 움찔하는 순간,
‘두 번 실수는 안 해.’
단유는 무릎을 살짝 굽히고 앞으로 파고들었다. 두 손을 비스듬히 올려 병억의 오른팔을 감쌌다. 손에 잡히는 소맷귀를 강하게 잡아당기고 몸을 비틀었다.
“흡!”
기술은 잘 모른다. 그래도 한 번 해본 거라고 흉내는 낼 줄 안다. 단유는 호흡을 끌어모아 팔을 잡아당겼고, 병억은 공중을 휘돌아 바닥에 메쳐졌다.
“으억!”
등을 세게 부딪쳐 고통이 심했던지 병억의 몸이 뒤집힌 활처럼 휘며 바닥을 굴렀다. 단유는 다시 팔을 붙잡은 채로 병억을 제압한 뒤, 고개를 들었다.
“괜찮으세요?”
병억의 타겟이 단유라는 것을 느꼈지만, 달려오는 기세가 워낙 흉흉해 움츠러들었던 희선은 단유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대답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물음이 마치, ‘이런 상황에서도 대화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학교 전담 경찰관(SPO)이 출동하여 병억을 데려갔다. 생지부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강당으로 향했으며, 다른 선생님들은 각자의 교실로 돌아갔다. 단유는 담임 선생님과 함께 양호실로 향했는데, 관자놀이뿐만 아니라 온몸에 새로 멍든 부위와 이마 근처에 부풀어 오른 상처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희선도 잠시 안정을 취하라는 양호 선생님의 충고가 있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따를 수 없는 처지였다.
“괜찮니, 단유야?”
“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단유는 솔직하게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명수가 싸움에 끼어들까 봐 넌 막기만 했고?”
굳이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병억을 단유 본인의 손으로 처리하려 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불필요한 오해만 낳을 뿐이니까.
선생님은 단유의 상처를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싸움은 안 된다? 만약 아까처럼 병억이 무턱대고 달려든다면, 그리고 그 방향이 단유가 아닌 자신을 향했다면, 그 상황에서 희선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희선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으응?”
희선은 단유의 시선을 알아채고 두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손의 떨림이 쉬 가시지는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썹과 입매를 보며 단유는 희선의 감정을 추측할 수 있었다. 강렬한 악의에 노출된 사람이 보이는 전형적인 증상. 비록 자신을 향하지 않더라도 그 악의는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경험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싸움이 벌어진 거지? 병억이는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지?”
희선의 물음은 딱히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단유는 대답을 주었다.
“가끔 뉴스를 보면 학교폭력의 이유로 가정을 많이 이야기하죠. 편부 편모 가정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둥, 학대받는 가정에서 자라 삐뚤어진 사고관을 가졌다는 둥 말이죠. 또 폭력 만화나 폭력 게임을 즐기면서 폭력적 성향이 커졌다고도 하죠.”
학교 폭력 뉴스의 단골 메뉴다.
“하지만 전 그런 뉴스와 진단들이 어쩐지 과장되게 포장되어서 우리를 설득하려는 것 같아요. 가령 가정 문제는 현대 가족 사회가 파편화되는 문제를 꼬집죠. 또 젊은 부모들의 무책임과 방기(放棄)를 지적하고요. 하지만 그런 문제 지적의 이면에는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는 미화적 해석이 섞여 있어요. 흔히들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다, 같은 말이요.”
만화, 게임도 같은 해석이다. 과거의 만화가 꿈과 순수를 이야기했다면, 요즘 만화는 폭력과 외설적인 부분이 청소년들을 자극하여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물론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청소년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가 보는 만화, 그가 즐기는 게임 등을 근거로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이야기하는 이면에는 현대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과 옛것을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보수적 가치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과하게 지적하는 행위, 그리고 이를 위해 청소년들의 문제를 과장하는 행위.”
희선이 단유를 돌아보았다. 단유는 얌전히 앉아서 양호선생님의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어른들이 우리 나이일 때는 이런 폭력 사건이 없었을까요? 당시의 청소년들은, 그 나잇대를 지나온 어른들은 아무런 걱정도, 갈등도 없이 그 시기를 보냈다는 말인가요? 그럴 리 없잖아요.”
“이쪽으로 고개 돌려볼래?”
단유는 양호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양호선생님은 단유의 어깨와 목에 입혀진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
“현대 사회의 비정함, 가정 폭력, 규제받지 않는 대중 매체를 학교폭력의 근거로 삼음으로써 가정, 사회, 언론을 보수적 가치로 얽어매려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저만의 착각일까요?”
“하지만 전혀 근거 없다고 단정할 순 없진 않니?”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폭력의 이유를 그 틀 안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어른들의 시선을 말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보기에 그건 어른들이 직면한 문제로부터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처럼 보이거든요.”
희선은 의식적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오직 양호선생님만 아무렇지 않게 단유의 몸을 돌려 다른 부상이 없는지를 살폈다.
“수호해야 할 것은 옛것이 아니라 바른 것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희선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말을 이은 건 양호 선생님이었다.
“난 놈은 난 놈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