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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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컷! 오케이. 괜찮은데? 어때요?”
“정PD가 괜찮으면 괜찮은 거지. 그런데 긴장 많이 안 한 거 같애? 많이 찍어 본 모양이야?”
촬영감독의 말에 단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많이는 안 해봤고요, 뮤직비디오 같은 거 찍은 게 다인데요.”
“그래? 근데 이미지가 잘 맞아. 카메라에 정말 자연스럽게 나오거든?”
일중은 스튜디오 옆에 놓인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동안 실시간으로 TV형 모니터에 송출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야, 넌 모델 해도 되겠어. 요즘 시크한 이미지 모델이 유행이잖아? 넌 딱이다.”
“내 생각에도 그래. 야, 내가 아는 PD 있는데 소개 시켜 줄까?”
촬영감독과 일중의 칭찬이 이어지면서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근데 연기 연습은 조금 해야겠더라. 목소리는 좋은데 발음이 살짝 뭉개지는 느낌이 있어.”
솔직히 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너무 칭찬만 하는 것도 좋지 않을 거 같아 애써 단점을 찾아 지적한 정일중 PD였다.
“몇 가지만 더 테스트해 보자.”
대본을 살피며 점검해볼 씬을 찾는 정PD의 뒤로 잠시 밖에 나갔던 도연이 도경과 함께 스튜디오에 돌아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 그 순간에 단유와 시선이 마주친 도연. 입술을 꽉 깨무는 도연이 단유의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테스트를 받은 날로부터 7일이 지나 다시 만난 도연은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컷!”
10분만 쉬자는 이야기에 단유는 몸을 돌려 교실 한편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에게로 걸어갔고, 도연은 정 PD에게로 걸어갔다.
“너무 부담가질 필요 없어요. 도연씨.”
도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연 씨 나이에 그 정도면 잘하는 거야. 이거 봐봐, 도연 씨 얼굴 괜찮지? 그런데 여길 봐봐. 잔뜩 긴장한 게 너무 눈에 띄니까 문제인 거예요. 여기 설명 뭐라고 되어 있어요? 활달한 소녀, 친구의 어깨를 치며 눈웃음을 짓는다, 고 되어 있죠? 그런데 도연 씨 눈이 웃지를 않잖아? 그럼 보는 사람도 이상하단 말이야. 마치 도연 씨가 이 친구랑 무슨 다른 관계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면 이 내용이 살지를 않아. 허심탄회하게 속을 털어놓는 두 친구, 가 아니라 속을 감춘 두 남녀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고. 응?”
“···네.”
“긴장해서 그러는 거 아니까, 긴장 좀 풀고 해요. 카메라 울렁증, 그런 거 아니죠? 무대 자주 서니까 카메라 익숙하잖아? 편하게 해요, 편하게.”
“네.”
“조금 쉬다가 다시 할게요.”
도연은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돌아섰다.
“괜찮니?”
도경이 도연의 곁에 서서 위로했으나, 도연은 대꾸도 없이 시무룩한 얼굴로 주먹만 쥘 뿐이었다.
평소처럼 하라, 는 주문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카메라 앞에서는 평소 같은 모습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는 옆에 누가 앉아있는지도 모를 정도니, 주위 사람들이 보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도연은 그런 모습을 토로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도 두려운 게, 마치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질 것만 같아서였다.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경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선을 돌린 틈에 단유가 명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명수의 시선이 간간이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느끼며 두 사람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혹시 자기 때문에 촬영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고 있을까? 아니면 얼굴 반반한 아이돌이라고 좋게 봤더니 연기를 개떡같이 못한다고 흉을 보고 있을까?
“단유야. 쟤가 너 쳐다보는데?”
“응?”
단유는 고개를 돌려 도연을 바라보았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냐?”
은근한 명수의 속삭임이 괜히 떠보는 듯한 목소리라 단유는 코웃음을 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왜? 혹시 알아? 예쁜 여자친···.”
“거기까지.”
단유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명수의 말을 잘랐다.
“장난이야.”
“알아.”
명수는 목을 긁으며 머쓱해 하는 얼굴로 둘러보다가 말했다.
“사인해달라고 하면 사인해줄까?”
“지금 말고 나중에 해. 지금은 별로 기분 안 좋아 보이니까.”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거든?”
그때였다. 도연이 일어나 단유에게로 다가왔다.
“저기,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명수가 입을 헤 벌리고 있다가 단유가 팔꿈치로 치자, 그제야 아, 하며 정신을 차렸다.
“나 상미랑 잠깐 이야기할 게 있는데.”
고작 생각해낸 핑계란 게 참으로 조악하다만,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
명수가 도경의 옆에서 메이크업 도구들을 구경하는 상미에게로 향한 뒤, 도연이 말했다.
“여기 말고 밖에서 이야기할래요?”
“네.”
도연이 먼저 앞장서고 그 뒤를 단유가 뒤따랐다.
“죄송해요.”
도연이 가장 처음 꺼낸 말이었다.
“뭐가요?”
“저 때문에 촬영이 계속 길어지고···.”
“괜찮아요. 제가 뭐라고요. 저도···별로 다를 바 없는데요.”
단유의 말은 본인 역시 출연자이니 같은 처지라 이해한다는 취지였지만, 도연은 실수 없이 컷을 받는 단유가 겸양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전에 들어보니까, 카메라 연기 몇 번 해보셨다고 하던데.”
“저요? 아뇨. 뮤직비디오만 출연했을 뿐인데요. 그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런데 되게 익숙해 보이시더라고요.”
“아뇨. 솔직히 별로 안 익숙해요.”
“긴장 별로 안 하시는 것 같아 보이는데.”
“보이는 것보다 더 긴장하고 있어요. 그나마 전 억지로 표정을 꾸밀 필요가 없는 역할이라 ‘그쪽’보다 좀 편할 뿐이죠.”
그리고는 단유가 볼을 긁적였다.
“그런데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요. 도연 씨, 라고 불러야 하나요?”
도연은 얼굴을 붉혔다.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촬영장에서 다들 자신에게 ‘도연 씨’라고 부르는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에게는 ‘도연 씨’라고 부르는 스태프들이 단유에게는 ‘단유야’라고 부른다. 단유를 부르는 호칭에 비하나 경시의 의미는 없을지라도 상대적으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무슨무슨 씨’라고 불리는 게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고작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말이다. 원래 과장된 존대는 불편한 법이다.
‘그렇다고 말을 놓으라고 할 수도 없으니 참.’
어쨌든 한 살이 많으니까.
단유는 도연의 표정을 살피다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촬영하는 교실의 아래층으로 내려왔더니 엑스트라들과 지원 스태프 몇몇이 대기하고 있어 이야기를 나누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건물 밖까지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공립고등학교 한 곳을 빌려 촬영하는 중인 이곳은 단유가 다니는 중학교보다 훨씬 크고 넓은 운동장을 가지고 있었다. 명수도 처음 운동장을 보고 소리를 지를 정도였으니. 몇몇 사람들이 공을 차며 운동을 하는 중인데 미리 스태프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은 없었다. 촬영에 지장만 가지 않는다면 운동을 하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었으니 그대로 둔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니 간간이 공을 뻥뻥 차는 소리가 기분 좋은 울림과 함께 들렸다.
“저기, 그런데요.”
단유는 다시 도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 노하우, 같은 거 있나요?”
“노하우요?”
“카메라 앞에서 떨지 않는 법, 같은 거요.”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요.”
아마 도연은 답답한 마음에 물어본 것일 테지만, 경험으로만 따지면 도연에게 한참 못 미칠 단유가 그런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제가 사실은요, 조금 많이 긴장해요. 처음 가수 데뷔했을 때도 긴장을 많이 해서 실수를 몇 번 했었거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나아지긴 했는데, 이번에는 쉽게 나아질 것 같지가 않아서요.”
단유는 도연을 가만히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저기요.”
“네.”
“아마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그럴 거예요.”
“네?”
뜬금없는 단유의 말에 도연이 눈을 껌뻑거리며 바라보았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같이 할 때는 옆에서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별로 긴장을 안 하다가 ‘혼자’라고 느끼면서 심하게 긴장하고 몸이 굳어버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아마 ‘도연 씨’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네요.”
“······.”
“그룹이라면서요? 혹시 지금도 같은 숙소를 쓰시나요?”
“네.”
“평소에는 같은 멤버들과 함께 있다 보니 그분들에게 의지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분들과 함께 촬영할 때는 긴장이 덜했던 것인지도 몰라요. 그러다가 혼자 하는 촬영, 특히 처음으로 연기하려고 하니 긴장이 배가 된 것이겠죠.”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죠. 실수했을 때 이를 커버해줄 수 있는 멤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두렵고, 그래서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몸을 옥죄는 거, 아닐까요?”
공부를 잘한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말하는 본새가 보통이 아니다. 전혀 중학생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오히려 무슨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쪽 계통 아니라더니 너무 잘 아는 것 같은데요.”
“들으셨잖아요? 갤럭시즈. 그 누나들이랑 친했었거든요.”
“아, 그렇구나.”
단유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점점 기울어가는 해의 위치를 가늠했다.
“혼자라서 힘들겠지만, 그래도 힘내세요.”
단유는 그렇게 말을 맺었다.
“들어가죠. 쉬는 시간 끝났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먼저 돌아섰다. 그러자 황급히 단유에게 말을 꺼내는 도연.
“저기 그러면요.”
“네?”
“···아, 아니에요. 고마워요.”
단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하지만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괜히 이유를 물어보면 말이 길어지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먼저 건물로 들어갔다.
“자, 슛 들어갑니다!”
스탠바이, 그리고 정 PD의 슛 소리와 함께 다시 촬영이 재개되었다.
“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단유를 바라보는 도연. 한껏 기대감이 녹아들어 ‘들뜬’ 목소리.
“뭐라도 되겠지.”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단유.
“에이, 꿈 같은 거 없어?”
“꿈? 그런 거 없어.”
“왜?”
단유를 향해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는 도연.
“꿈이 현실이 되지는 않잖아.”
“그렇다고 꿈도 안 꿔?”
“꿈꿀 시간에 교과서나 봐.”
애교 섞인 콧소리로 칫, 토라진 흉내를 내는 도연. 그런 도연을 흘깃 바라본 단유가 물어봐 준다. 마치 예의상 물어봐 준다는 태도.
“그러는 넌 꿈이 있어?”
“난 웹툰 작가가 될 거야.”
“웹툰? 그거 돈도 안 되잖아.”
“돈이 문제니? 내가 꿈꾸는 일을 하고 산다는 게 중요하지.”
단유는 고개를 틀어 도연과 시선을 마주했다. 도연의 눈에 일렁이는 감정들이 단유에게 다가왔다. 단유는 그 눈빛을 가만히 받아주었다.
“돈 안 되는 일에 힘쓰지 마. 그렇게 살다가 굶어 죽어.”
화난 척 단유를 째려보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는 도연.
“그렇게 말 안 해도 알거든. 그리고 자신도 없고.”
“왜?”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잘할 자신도 없고.”
휴, 하고 눈에 보일 것 같은 한숨을 내쉬며 눈썹을 아래로 내리는 도연. 단유는 덤덤히 말했다.
“그럼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봐.”
“어떻게?”
“글쎄?”
그리고 컷. 이후 ‘커리어넷에 물어보세요.’라는 CG가 나올 때를 대비해 카메라를 2초간 응시. 이후 고개를 들어 위로 시선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컷.
“오케이!”
결국 해가 지기 전까지 촬영을 마치는 데 성공했다. 본래 5개의 컷으로 나눠 가야 할 촬영이었지만, 너무 많은 NG가 속출한 탓에 정 PD는 컷을 더 쪼개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거의 대사 한 줄에 한 컷을 배분하는 형식으로 촬영을 이어갔는데, 이렇게 되면 후반 작업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영상의 리듬이 너무 정신없게 진행될 우려가 있지만, 불가피했던 작업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장의 스태프들이 진땀을 흘리며 서로에게 인사를 나눴다. 그 와중에 도연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를 가장한 사과로 마무리를 지었다.
“수고하셨어요.”
단유에게도 허릴 숙여 인사하는 도연에게 단유 역시 정중히 답례했다.
“네.”
고개를 들어 올린 도연의 눈에 일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그 결과가 못내 아쉽다는 안타까움,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미안함이 뒤섞여 울렁거리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단유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돌아서서 친구들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