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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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키 많이 컸지? 그때도 중학생치고 키가 크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더 큰 거 같아. 너 이제 고등학생이니? 아직 중학생이야? 3학년? 그럼 도연이보다 한 살 어리구나. 그때도 너 피부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어쩌면 이렇게 좋아? 피부 관리하니?”
도연은 평소보다 하이 텐션인 도경을 보며 의아한 생각을 가졌다.
“아, 기억난다. 그때 내가 너 피부 좋다고 하니까, 수련이가 너보고 해를 안 봐서 그렇다고 했었지?”
“기억력 좋으시네요?”
“그래, 기억나네. 너 전교 1등이라고, 공부 잘하고 책 보는 거 좋아한다고 그랬잖아. 노래도 잘하고 공부 잘하고 피부 좋고.”
“그래서 사기 캐릭터라고 놀리셨죠.”
“놀리긴? 사실이잖아? 너 정도면 사기야, 사기. 어떻게 남자애가 여드름 하나 안 나? 이것 봐, 완전 애기 피부야. 건드리기가 두려울 정도야.”
그러면서 단유 얼굴에 연신 크림을 찍어 바르는 도경이었다.
“전교 1등이요?”
옆에서 이미 메이크업을 끝낸 도연이 물었다.
“아, 그때 수련이 그랬어. 전교 1등이라고. 그 이후엔 모르겠지만, 뭐 달라졌겠어? 계속 1등이지?”
단유는 미소만 짓자, ‘대답 안 하네. 지 자랑 같아서 부끄럼 타는 거니’라며 도경이 단유의 어깨를 툭툭 때렸다.
“아, 그런데 너 연예인 하는 거 아니었어?”
“아닌데요.”
“그래? 그런데 어떻게 이거 촬영하는 거야?”
“뭐, 어쩌다 보니···.”
“아, 정말? 그럼 소속사 없어?”
“없어요.”
“이야, 난 솔직히 너 계속 이쪽 활동할 줄 알았는데. 네 얼굴이랑 몸 정도면···. 도연아, 그렇지 않니?”
곤란해 하는 얼굴로 시선을 피하는 도연이었다.
“그럼 그때 수련이랑 나윤이, 맞지? 걔네들이랑 연락은 하고 지내니? 그때 보니까 수련이랑 되게 친해 보이던데.”
단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침 쿠션으로 턱부위를 두드리고 있던 탓이기도 했지만, 딱히 들려줄 만한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수련이가 태호 오빠 회사로 갔다던데, 알고 있니? 난 처음에 되게 놀랬잖아. 태호 오빠가 갑자기 회사 차린다고 해서.”
말을 잇던 도경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손을 마주쳤다.
“맞다, 그때 에이바운스의 갤럭시즈 애들 전부 태호 오빠네로 넘어갔다던데.”
도연은 갤럭시즈란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갤럭시즈가 누구예요? 퍼포먼스 팀?”
같은 업계에 있는데도 잘 모를 정도로 인지도가 낮은 걸그룹, 갤럭시즈였다.
“걸그룹이야. 몇 번 노래도 냈는데, 별로 인기가 끌지 못했지. 그래도 애들이 실력은 좋다고 그랬어. 그중에 메인보컬이 수련이라고 나중에 가디스R로 나왔잖아.”
“수련 선배는 들어봤어요. 수련 선배가 갤럭시즈라는 그룹 멤버예요?”
데뷔 1년 전에 나온 가디스R은 당시 꽤 많은 화제를 부르기도 했고, 노래도 좋아서 지금도 가끔 거론되곤 하는 걸그룹이었다. 다만 컴백을 하지 않은 채로 1년이 지나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있지만, 도연은 가디스R을 기억하는 이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때 노래 ‘리모트’ 알지? 그 노래 뮤직비디오에 단유, 얘가 출연했었는데.”
“아.”
도연은 도대체 어디서 봤던 얼굴인가 궁금했던 이유를 알아냈다. 바로 그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남자 ‘모델’이 바로 눈앞의 남자아이였던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그럼 중1 때 그걸 찍었다고요? 난 전문 모델인 줄 알았는데?”
동안의 소년이긴 했어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치? 너도 몰랐지? 대부분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도경은 단유의 머리를 손으로 빗기며 말을 이었다.
“그때 ‘리모트’ 남자 버전도 있었던 거 알아? 들어봤니? 그게 얘가 부른 거래잖아? 몰랐지? 얘가 이렇다니까. 노래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머리도 좋아. 이러니 사기라고 말할 수밖에.”
단유는 피식 웃었다.
“누나, 그때 저 보고 고민 많이 하라면서요?”
“내가 그랬어?”
“네. 한 연습생의 자살 이야기를 해주시면서요.”
“아.”
도경의 들뜬 얼굴이 찬물을 끼얹은 주물(鑄物)처럼 순식간에 굳었다.
“내가 참, 별 이야기를 다 했었네.”
“아니에요. 덕분에 저도 생각 많이 했었는걸요.”
“설마 그 이야기 때문에 연예인 할 생각이 없어졌다거나 한 건 아니지?”
“뭣들 하세요? 빨리 준비하고 나와요.”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조감독, 이라는 직급을 가진 ‘담배 냄새’ 나던 남자였다.
“네, 나갈게요.”
도연이 벌떡 일어났다. 단유도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나 때문은 아니고, 그냥 공부를 좋아해서 그래요. 연예인에 뜻이 없었기도 하고요.”
“그러니.”
조심스러운 도경의 대답. 단유는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대기실을 나섰다. 나서기 전 뒤에서 도경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수련이랑은 연락하니?”
단유는 멈칫 섰다가 돌아섰다.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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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보시고요.”
카메라 감독의 지시에 따라 이쪽저쪽을 보기도 하고, 조감독의 지시에 따라 앉았다 섰다 입을 크게 벌리기도 하고 얼굴을 찡그려보기도 한다.
총 감독이자 스튜디오의 대표인 정일중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이것저것 체크를 했다.
“강준아, 시선 카메라 쫓지 말라고 해.”
“네. 도연씨, 카메라 보지 마시고요. 카메라 아래쪽이나 옆을 보세요. 동공 흔들리면 불안해 보이니까, 주의하시고요.”
“강준아, 조명.”
모니터를 슬쩍 본 강준이 조명 감독에게 지시를 내렸다.
“형님! 빛을 살짝 뒤로 넘겨 주셔야겠어요. 얼굴이 너무 하얗게 나와요.”
“반사판 떼라.”
반사판을 들고 있던 스태프가 조금씩 각도를 조정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됐어요’, ‘아니, 조금만 뒤로’, ‘됐어요’, ‘조금 오른쪽으로’, ‘됐어요’, ‘됐어’.
단유는 감독의 옆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조명 가운데 선 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촬영장은 어디나 비슷한 모습이었다. 비록 가수도, 배우도 아닌 단유지만 몇 번 이런 현장을 경험했더니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긴장을 덜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부담이 없기도 했다. 자신이야 어차피 이번 한 번이면 끝이고, 굳이 뭘 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도연은 그런 강박관념이 있는지 표정이 쉽게 풀리지를 않았다. 특별한 주문을 받아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표정 몇 가지를 지어보면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을 뿐인데도 저렇게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 이 테스트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현장에서 저랬다면, 꽤나 시간을 잡아먹었을 일이다.
모니터를 보던 일중은 사무실에서 호탕하게 웃던 모습과 달리,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머리를 긁었다.
“강준아.”
“네.”
“좀 쉬었다 가자.”
“그럴까요?”
강준이 고개를 들고 ‘10분만 쉬었다 가겠습니다!’라고 크게 소리치자, 현장에 흐르던 묘한 침묵과 긴장감이 일시에 끊어지며 소란스러워 졌다.
도연을 부른 감독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잘하는데 카메라를 너무 의식하시네요. 가수라서 그런가 봐요.”
도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일중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일중은 말을 잇지 않고, ‘좀 쉬다 오세요’라는 말로 이야기를 맺었다. 도연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물러선 뒤, 일중은 혀를 찼다.
“어렵네.”
그러다 바로 옆에 단유가 대기하고 있는 걸 깨닫고는 표정을 고쳤다.
“어? 너 왜 여기 있어?”
단유는 강준을 쳐다보았다. 조감독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해서 기다릴 뿐이었다는 대답을 대신한 것이었다.
“야, 너도 저기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나중에 부를게.”
테스트일 뿐이라 금방 끝날 줄 알고 옆에서 대기하라고 했던 건데 본의 아니게 감독의 심기를 거스르게 된 것 같아서 강준은 시치미를 뗐다.
“어서.”
“···네.”
단유는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일중의 시선을 모른척했다. 딱히 자기에게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당장에 할 말도 없고 말이다. 걱정한다손 쳐도 테스트를 한 뒤에나 할 일이다. 지금은 그저 구경꾼일 뿐인 단유였다.
“괜찮아?”
금방 끝날 줄 알고 가볍게 시작했던 테스트가 의외로 마음의 부담이 되어, 도연은 무척 지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스튜디오 뒤에서 구경하던 도경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도연은 애써 괜찮다고 대답하며 말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럴래?”
“저 혼자 갈게요.”
도경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운데 도연이 느릿느릿 문을 열고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지켜보던 도경이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다 단유를 보았다.
“단유야.”
“괜찮아요?”
단유의 물음이 도연에 대한 것이라 생각한 도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쟤가 조금 ‘완벽주의자’적인 기질이 있는데, 아마 상처가 많이 됐을 거야.”
‘완벽주의’?
“애가 마음이 많이 여려서 주위 사람들 고생하는 걸 못 보거든. 그래서 한 번 실수하니까 계속 실수를 하는 모양인가 봐. 어떡하지?”
“쉬고 나면 괜찮아지겠죠.”
“그렇겠지?”
도경은 불안한 얼굴로 스튜디오의 출입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가서 위로해주는 게 좋을까?”
단유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위로는 쓸모없을 거예요. 진짜 완벽주의자라면.”
“응?”
“완벽주의자들은 타인의 시선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아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기준이 자기 안에 있어요. 그래서 자신만의 기준에서 합격선을 넘지 못하면 감당하지 못하는 거죠. 설령 타인이 괜찮다고 해도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에 위로가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도경은 단유를 멍하니 바라보다 말했다.
“그, 그렇게까진 아닌 거 같은데.”
“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지는 않네요.”
“응?”
“완벽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고요.”
단유의 말에 도경이 되레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만약 완벽주의자라면, 애초에 저 앞에 설 생각을 안 했을 테니까요.”
도경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단유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도연, 씨는 자신이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감정을 제대로 감추지를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얼굴에 계속 자신감이 부족해서 불안해하는 모습이 나오는 거죠.”
감독은 카메라를 계속 본다고 투덜거렸지만, 사실은 계속 확인받으려는 시선이었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못하는지를.
“포기하지 않고 노력은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답답한 모양이에요.”
“그걸 어떻게 아니? 그냥 보면 알아?”
눈을 보면,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 그 정도는 다 알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어쩌면 관찰이 일상이었던 단유였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카메라 앞에서 주문받은 대로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오는 불안감이 모니터에서 불량 화소가 낀 것처럼 느껴지니 위화감이 들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감독이 신경질을 낸 것이리라.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만도 아니다. 애써 노력하려는 낌새가 보인다. 단유가 그렇게 느끼는데, 설마 베테랑 감독이 모를까? 그나마도 아이돌인 도연을 배려하기 위해 시선을 계속 꼬집어 이야기했을 뿐이리라. 시선만 고치면 된다고. 말인즉슨, 자신에게 확인받을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돌려 말한 게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알아듣기 힘들지 않을까?’
어느 정도 나이도 먹고 사회생활도 많이 한, 노련한 배우라면 감독의 배려를 눈치챌 수 있을지 몰라도 이제 고1, 어린 소녀가 그 배려를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럼 차라리 내 눈치 보지 마, 라고 이야기를 하던지.”
도경은 감독이 앉은 자리를 보며 툴툴거렸다.
“그럼 나가서 위로 좀 해줘야겠다.”
“그러세요.”
도경이 나가려다 멈칫하며 돌아섰다.
“너도 바람 좀 쐬지? 공기, 탁하지 않니?”
지하 스튜디오는 보통 그렇다. 환기시설이 있긴 해도 탁한 건 어쩔 수 없다.
“괜찮아요.”
하지만 단유는 괜히 나서서 얼굴 부딪히는 일은 없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자신이야 아무런 감정이 없다 해도, 상대는 불편해할 수도 있다. 마치 자신이 현장을 멈추게 한 것 같아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지금은 말이다.
“도연아, 괜찮아?”
혹시나 울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으로 나선 도경은, 말 그대로 바람을 쐬며 쉬고 있는 도연을 발견했다. 스튜디오 옆의 좁은 골목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도연은 설핏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도연의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