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81화 (481/956)

커넥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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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화장을 고치고 올라온 도연은 매니저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너무 긴장하지 마.”

말이 없는 도연을 향해 매니저가 다시 충고했다.

“데뷔하고 처음이지? 혼자 스케줄 뛰는 거.”

“그렇긴 한데요. 별로 긴장은 안 했어요.”

약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언니들과 함께 있을 때는 어리광도 부리고 애교도 피우는 포지션이지만, 혼자 있을 때는 의젓하게 보이려 노력했다. 자신의 사소한 행동과 말이 그룹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이고, 부모님께도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연은 다른 친구들과 달리 부모님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데뷔를 했다. 부모님은 도연이 연예인 같은 것보다는 공부를 계속하길 바랐다.

“머리도 좋은 애가 왜 그런 걸 하려고 그래? 연예인이 보기에나 좋지, 실상은 얼마나 힘든지 아니?”

도연이 연예인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그렇게 반대하셨고, 아버지는 문을 닫고 안방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으셨다. 시쳇말로 ‘딸바보’라고 불러도 허허, 웃고 넘길 아버지였지만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딸의 선언에는 쉽게 허락을 하시지 않았다.

“이 아빠는 네가 연예인이 되는 게 달갑지 않구나.”

“꼭 성공할게요.”

“설령 성공한다 해도 아버지는 반대다.”

“제 꿈이에요.”

“딸이 힘든 길을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근거도 없이 반대만 하시는 거예요.”

“아빠도 나름 알 만큼 알아봤다. 반짝 성공에 취해서 인생 망치는 경우도 있었고, 그마저도 못해 젊음을 낭비하는 이들도 있었다. 게다가 오래도록 나이가 들어서도 승승장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짧은 시간에 불타올랐다가 식어버리는 삶을 딸에게 추천할 수 없다.”

딸은 울었고, 아버지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학교 성적이 떨어지면 그대로 끝이다.”

아버지는 조건부 승낙을 했다. ‘리본소녀’가 나름 인지도를 올리고 바쁜 활동을 벌이는 와중에도 도연이 개인 활동을 하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년 연말에 많은 행사가 들어오는 와중에도 도연은 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민은 쌓인다. 중학교야 어떻게 성적을 거둘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는 다르지 않겠는가.

이런 상황은 사실 팬들에게도 알려진 사실이었다.

「도연이는 오늘도 안 나옴?」

「방송 무대만 하고 다른 행사는 같이 안 하나?」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냐?」

「도연이 기말시험 준비 중-오피셜」

「기말시험? 중학교 기말시험?」

「오피셜은 뭔데? 관계자임?」

「나 도연이랑 같은 반.」

「오오!」

「도연님이랑 같은 급식? 부럽!!」

「도연이 공부 잘함?」

「도연이 부모님이 공부 못하면 연예인 못하게 했다고 하던데 트루임?」

「나도 들었다. 성적 떨어지면 머리 삭발시키고 연예인 못하게 했다고 들었다.」

「에이, 설마. 지금 리본소녀 정도면 돈 많이 벌지 않나?」

「이제 겨우 데뷔 1년 차라 정산도 못 받는데 무슨 돈이냐?」

「정산받으면 많이 벌지 않을까?」

「분기마다 히트곡을 만들어내도 정산받는데 3년 넘게 걸린다. 어떤 그룹은 5년이 지나도 정산 못 받았다더라.」

「그런 비교가 뭐 필요하냐? 도연아, 무럭무럭 자라만 다오.」

「내꺼티브 반대.」

어쨌든 도연에게는 공부와 연예계 활동을 병행하는 모범생 이미지가 생겼고, 귀여운 외모와 방송 노출도가 적은 희귀성이 팬들의 집중도를 높였다. 그런 이미지가 이번 교육부 홍보모델 선정에 도움이 된 면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 리본소녀 도연이고요.”

“안녕하세요! 리본소녀 막내 도연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매니저 윤제순입니다.”

매니저의 명함을 받으며 담당관도 마주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여기로 오시죠.”

담당관의 안내에 매니저와 도연이 뒤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단유를 만나게 되었다.

****

“오늘은 일정 끝났어요?”

“그래, 일단은 끝났어.”

“다행이다.”

4월 말에 있을 첫 중간고사를 대비하여 공부할 시간이 필요한 도연이었다. 비록 활동 때문에 수업을 다 듣지는 못하지만, 교과서와 문제집을 들고 다니면서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차에서도 틈틈이 책을 붙들고 있지만, 피곤하기도 할뿐더러 차에서 책을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같이 출연하기로 한 애 어땠어?”

차에서 기다리던 스타일리스트가 궁금해했다.

“남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잘 생겼어?”

스타일리스트의 물음에 수첩을 뒤적이며 일정을 확인하던 매니저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하죠. 같이 광고 찍는다면서요? 이왕이면 잘 생긴 사람이랑 같이 해야 기분도 살죠.”

“기분으로 일하니? 프로답지 못하게.”

“에이, 도연이가 그런 거 하나 구분 못 할까 봐 그래요? 지금도 봐요. 책부터 붙잡고 있잖아요. 그리고 이왕에 하는 거 기분 좋게 촬영하는 게 좋죠. 도연아, 어때? 성격은 좋아 보이디?”

“얘보다 어리다.”

매 질문마다 끼어드는 매니저에게 눈을 흘기던 스타일리스트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왜 그렇게 까칠해요?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은. 일정이 빡빡해서 그래. 도연이는 회사에 내려주고 우리는 양평 가야 돼. 시간 맞춰서 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양평이요?”

“넌 안 가도 돼. 나랑 희준이만 가면 돼.”

양평에서 펼쳐지는 행사의 주최 측과 협의를 하기 위해 가야 하는 매니저였다.

“매니저 오빠, 바쁘면 저 여기서 언니랑 따로 들어갈게요.”

“응? 아냐, 그 정도까지는. 너 데려다주고 가도 돼.”

“왜요? 여기서 양평까지면 꽤 멀잖아요? 그냥 가세요. 언니랑 택시 타고 가도 돼요. 회사까지 별로 멀지도 않은데.”

“그럴까?”

“야, 너네 짐은 어쩌고? 옷이랑 신발도 다 회사에 가져가야 돼.”

“그건 내일 가져와도 돼요. 협찬받은 것도 없어서 당장 급할 것도 없어요.”

스타일리스트는 벌써 모자를 꺼내서 도연이 머리 위에서 푹 눌러 씌었다.

“형님, 괜찮을까요?”

로드매니저 희준이 옆에 탄 매니저를 보며 물었다. 아직 주차장을 나서기 전이다. 만약 양평으로 바로 간다면 방향이 반대쪽이니 지금 결정을 해야 했다.

“야, 그냥 회사 가. 아무리 그래도 얘한테 애를 맡길 수가 있어?”

“아니, 제가 뭐 어때서요? 제가 얘를 잡아먹는데요?”

스타일리스트가 앞 좌석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물었다.

“잡아먹을 것 같으니까 그래.”

그때 도연이 가방에 책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저 내릴게요.”

“도연아!”

“진짜 괜찮아요. 모자 쓰면 못 알아봐요.”

스타일리스트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도연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쩜, 우리 도연이는 이렇게 마음씨도 예쁠까?”

“언니, 우리 빨리 내려요. 매니저 오빠 결정 장애 일으키기 전에.”

“그럴까?”

가방을 둘러맨 도연은 다시 한번 모자를 고쳐 쓰고 밴의 문을 열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희준이 작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매니저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스타일리스트에게 당부했다.

“도경아, 애 데리고 엉뚱한 데 들르지 말고 바로 회사로 가야 한다?”

“알았어요. 걱정 붙들어 매세요. 아, 안전벨트도 꼭 매시고.”

차가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하고, 그 뒤를 도연과 스타일리스트가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룸미러로 그 모습을 보던 희준이 매니저에게 물었다.

“형님, 진짜 괜찮아요?”

창틀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괴고 있던 매니저는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을 리가 있나.”

“예?”

“가끔은 저렇게 풀어주기도 해야지.”

희준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회전 깜빡이가 꺼질 때쯤,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난 도연이 쟤가 참 걱정이야.”

“왜요?”

“일이랑 공부를 같이 하는 게 어디 쉽겠냐? 지금 받는 보컬이랑 안무 레슨만 해도 하루의 반이 다 지나갈 판인데, 그 와중에 또 공부하겠다고 저러고 있잖아? 내가 여러 애들 만나봤지만, 저렇게 사서 고생하는 애들은 처음 봤어.”

그럼 걱정을 할 게 아니라 칭찬을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체력과 정신력이 받쳐주겠냐 이거야.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치면 쓰러지기 마련이잖냐? 그래서 도연이 보면 아슬아슬해 죽겠어.”

포텐은 참 많은 아인데. 매니저는 씁쓸한 맛에 혀를 찼다.

“그건 그래요. 그냥 하나만 해도 충분할 거 같은데.”

희준의 ‘하나’는 당연히 연예 활동이다. 누구는 기회를 잡지 못해 몇 년씩 연습생으로 시간을 보내는 마당인데 누구는 저렇게 이른 나이에 연예계 데뷔를 했고 가시적인 성과도 거뒀다. 앞으로 조금만 더 이 기세를 이어나가면 돈 버는 건 일도 아니다. 아마 20대 초반에 건물 하나 사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일반인이 평생 돈을 모아도 자기 집이나 겨우 살 정도면 다행이란 소리를 듣는 세상인데, 매달 월세 받으며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애가 마음이 여려. 싫은 소리 잘 못 하기도 하지만, 부모님을 어찌나 생각하는지···. 그때 도연이 아버님이 회사에 왔을 때 너 있었어?”

“아뇨, 그냥 이야기만 전해 들었죠.”

“단호하게 ‘우리 딸 성적 떨어지면 활동 접기로 약속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옆에서 도연이가 그러겠노라고 순순히 대답하더라.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기회를 달라거나, 시간이 필요하다거나 하면서 저항이라도 할 법한데 말이야. 결국 대표님도 손을 들 수밖에.”

“···그런데 그게 지금 상황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매니저는 운전 중인 희준을 힐끗 바라보며 ‘눈치 없는 놈’이라고 한 소리를 했다.

“쟤들이 지금 바로 회사를 가겠니?”

“네? 그럼요?”

“도연이가 말려도 도경이 저 녀석이 도연이 꼬셔서 놀러 갈 거다.”

“예? 그럼 말려야지 왜 그냥 두셨어요?”

“말했잖아. 도연이도 좀 쉴 필요가 있다고. 그리고 도경이도 그렇게 생각 없이 노는 애는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디 자신의 예상보다 좀 더 생각이 깊은 도경이길 바랐다.

“어디 갈래?”

“···회사 가야죠?”

“어머, 얘? 능청스럽긴? 지도 생각이 있으니까 내린 거면서.”

그 말에 도연은 얼굴을 붉히더니 수줍게 입을 열었다.

“그럼요, 우리 햄버거 먹으러 갈까요?”

“햄버거?”

걸그룹 아이들에게 식욕은 영원한 숙제다. 특히나 한참 자라날 아이인 그들에게 다이어트라는 숙명은 만악의 근원쯤으로 치부될 정도다.

“햄버거 못 먹은 지 진짜 오래됐거든요.”

생각해보면 데뷔 후에는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던 음식이기도 했다.

“그래, 소원이라는데 먹으러 가자.”

“소원까지는 아닌데.”

“일단 먹고 또 생각하자. 아이고, 오늘 보니까 차가 많이 막히겠네. 회사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어.”

원래 광화문 광장 앞 도로는 번잡하다. 하지만 차가 막혀서 기어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걱정을 늘어놓는 도경에게 풋, 웃음을 터뜨리며 팔짱을 끼는 도연이었다.

“가요, 언니.”

도경은 도연이 쓴 모자의 챙을 꾹 누르며 대답했다.

“그래.”

두 사람은 햄버거를 먹고, 광화문 지하통로를 거쳐 청계천 쪽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은데, 괜찮아?”

“괜찮아요. 아까 가게 안에서도 못 알아봤잖아요?”

“너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래야 할 거 같네요.”

도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청계천에는 여러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의 커플도 있었고, 지방에서 왔는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중년 부부도 있었다. 등산복 차림을 한 노부부도 있었고, 친구끼리 왔는지 수다를 떨며 웃음을 터뜨리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리본소녀 도연이가 얘예요, 라고 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아는 척을 할까?”

“아이, 참. 그러지 마요.”

모처럼 책과 일에서 벗어나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지금이 너무 좋았다. 편안한 표정의 도연을 보며 도경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많이 힘들지?”

“다들 저만 보면 그러네요. 힘드냐고. 뭐,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좋아서 하는 건데요. 힘들어도 참을 수 있어요.”

“널 보면 괜히 내가 마음이 찔려. 난 공부가 그렇게 하기 싫었는데 말이야. 너처럼 그때 열심히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

도연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 후회를 하지 않으려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하기 싫은 순간은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해야 할 이유가 더 크기 때문에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내가 나름 이 바닥에 오래 있었거든? 그래서 대충 보면 안다고. 누가 뜰지, 말지 말이야.”

“저도요?”

“응. 넌 분명 성공할 거야.”

독한 사람이 성공한다. 도연이는 독한 사람이다. 그러니 성공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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