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울 때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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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죠. 학생의 시간을 계속 뺏을 순 없으니까요.”
보통은 반대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교장은 설핏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안경을 벗었다.
“학생을 불렀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교육부에서 요청이 있어섭니다.”
요청?
“혹시 자유학기제 홍보모델 말인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물론···단유군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자칫 그 인상이 너무 강해서 자유학기제라는 메인이 흐려질 우려가 있지요.”
좋게 말해서 ‘인상이 강했다’는 거지, 사실 고춧가루를 뿌린 셈이었다. 거기에서 단유가 홍보용 광고를 찍어봐야 좋지 않은 말들만 덕지덕지 붙을 것이다.
“학생의 이야기는 별로 틀린 말이 없었지요. 우리 사회는 능력 중심 사회로 가자고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학벌과 스펙 위주의 채용 관행들이 판을 치는 사회니까요. 해가 지날수록 많은 젊은이들이 선택의 기회도 받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들이 무엇을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치 낙오자인 것처럼 취급하는 시선들 때문에 힘들어하죠.”
등급으로 구분하고 학교로 계급을 나누는 차별적 시선들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다’고 교과서에서 떠든 들, 사회가 그 가르침을 부정하는 마당이다. 어떤 교육 정책을 내놓는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결국 겉도는 정책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을 이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죠.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천천히 한 걸음씩, 할 수 있는 만큼 바꿔나가는 것이 이 나라 교육 정책의 바른길일 겁니다.”
단유는 그 내용만큼이나 교장의 태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원칙이 중요하다고 말했었죠?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은 바로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이라는 욕을 먹더라도, 학생들에게 꿈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이 교육입니다.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변화되어야 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바르게 사는 법, 함께 사는 법, 옛것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교육입니다. 미래 핵심 역량이라고 일컫는 창의력, 융합적 사고력을 길러 능력 있는 인재가 되도록 돕지만, 동시에 화합과 평화에 대한 바른 세계관을 갖도록 돕는 것이 교육입니다.”
얼핏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 싶지만, 꼼꼼히 짚어보면 중요한 이야기다. 개인의 역량 강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회다 보니, 학교보다 학원 등의 사교육이 발달했다. 치열한 경쟁만을 부추기는 사회다 보니 이기는 것만 중요하고, 이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만들었다. 비리 판사, 돈만 밝히는 의사, 탐심에 눈을 가린 정치인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올해부터 교육부에서 미래를 대비한 적극적 교육 정책을 펼치려 하는데, 거기에 학생이 학생 모델로 나와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다양한 수업 제공’, ‘모든 학생의 학습권 보장’, ‘차별 해소 정책’, ‘건강하고 안전한 학교 환경’ 등의 모토로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라는데, 거기에 학생 모델로 참여해 달라는 교육부의 공문을 보여주었다.
“학생의 이미지가 교육부의 정책 캠페인에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저 역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굳이 그걸 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없지요. 당연히. 저는 그저 학생에게 이런 요청이 들어왔음을 알려주고 학생의 의견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강요는 없어요.”
단유는 교장이 내민 공문을 받았다. 적힌 내용은 별것 없었다. 올해부터 시작될 캠페인에 ‘장계중학교 김단유 학생’을 모델로 기용하고 싶으니 의견을 물어봐달라는 정도의 내용이었다.
“몸은 괜찮나요?”
“네?”
“몇 달 전에 혼수상태에 빠졌었다고 들었는데.”
“아, 네. 지금은 괜찮아요.”
“몸을 보니 운동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혹시 알리지 않은 병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네. 병원에서도 병은 없다고 했어요.”
교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단유를 바라보았다.
“다행이군요. 사실 아까 이야기의 연장선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이 줄어요. 새로운 기술과 도구들이 등장해도 신기하다는 생각만 들지,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게 어떤 원리를 적용한 것인지 궁금해하는 호기심은 생기지 않아요. 그저 그러려니 하는 거죠.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언젠가는 진짜 달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 버리는 거죠.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호기심이 전혀 없지는 않아서 가끔 학생 같은 친구들을 보면 호기심이 생깁니다.”
가만 보면 교장의 얼굴에도 주름이 많았다. 하지만 교장의 이미지가 워낙 단정하고 바른 모습이라 그런 주름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렇게 보이는 기운 같은 게 있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그런 거겠지만. 과연 이 학생은 10년 후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이 학생은 미래의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갈까. 또 이 아이는 5년 뒤에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것들이 궁금해져요. 그래서 그 친구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요.”
‘스토커처럼 따라다니지는 않아요’라는 농담이 뒤따라 붙었는데, 웃음을 흘릴 만큼 웃기지는 않았다.
“학생도 궁금해요. 과연 학생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말이에요. 그래서 부디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건강하게 자라서 어떤 모습으로 이 늙은 선생의 호기심을 자극할지 기대가 됩니다.”
“작년의 전 교장 선생님은 절 보고 사회지도층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던데요.”
단유의 말은 웃겼던 모양이다. 교장은 눈이 동그래지더니, 허헛, 하고 큰 웃음을 터뜨렸다.
“죄송해요. 체통 없이. 아무튼, 재밌는 이야기네요. 사회지도층이라. 학생도 그렇게 되고 싶나요?”
“아니요. 전 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왜요?”
“당시에 교장 선생님은 사회지도층을 엘리트라고 표현하셨어요. 그런데 전 그런 특권계층이 되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특권계층이 되고 싶지 않다?”
“일종의 귀족이잖아요? 특권이 주어진 만큼 의무도 다해야 할 텐데, 전 그 의무를 이행할 능력이 안 되니까요.”
교장은 다시 눈을 빛냈다. 흥미로운 대화의 주제로 돌아온 탓일까?
“조금 전에 전 학생에게 ‘동등한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학생은 마치 이 사회에 귀족이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군요?”
“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단유는 잠시 입술을 다물고 길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보면, 과거의 귀족은 왕과 가문으로부터 인정된 권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권력으로 아랫사람들을 부리고 착취했죠. 그 권력은 어떤 실체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그 권력이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귀족에게 대들지 못했고 저항하지 않았어요.”
“권력의 존재론적 의미라.”
“현대에는 과거와 같은 방식의 계급은 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귀족, 혹은 그에 준하는 계층은 있어요. 특히 현대 귀족은 특별한 권력을 소유합니다.”
“그게 뭐죠?”
“실체화된 권력, 돈이죠. 돈은 보이지 않던 권력과 달리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실감할 수 있는 실체에요. 그러면서도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한 권력성을 보여주죠. 하지만 믿음이 아닌 실체에 의존한 권력이기에 변동성도 강해서 누구나 돈만 있으면 귀족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사실 현대 사회는 이미 돈에 의한 계층 구조가 과거 귀족의 때보다 더 공고하게 확립된 상황이죠. 소수의 귀족이 공고하게 자리를 잡은 가운데, 일부 부유한 중산층들이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고···하네요.”
“재밌는데 왜 말을 흐리죠?”
“실은 거기까지 밖에 읽지 못했거든요.”
교장은 무릎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책을 좋아하는 친구로군요. 그런데 무슨 책인데 그런 내용이 나오죠?”
“외국의 사회학자 분께서 쓰신 책인데, 그 책의 일부에 그런 내용이 나왔어요.”
“그럼 그 내용에 동의하나요?”
“어느 정도는요. 물론 제 식견이 짧아서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능력도 되지 않고, 제대로 비판할 지식도 없지만 대체로 그 내용이 제가 느끼는 사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하긴. 교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요즘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진다. 워낙에 많은 미디어에 노출된 세대다. 넘치도록 흘러나오는 정보들은 주워 담기가 버거울 정도인데, 그런 정보들의 세례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의 지식과 식견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게다가 가끔씩 눈앞의 아이처럼 튀어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놀랍다 못해 무시무시할 정도다.
“그런데 귀족이 되기 싫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데요.”
“현대의 귀족도 단순히 돈만 많아서 귀족의 칭호를 얻는 게 아니잖아요? ‘사회지도층’이란 별칭을 얻었다는 건, 그만큼 특별한 사회적 의무를 지고 있다는 뜻일 텐데, 전 그런 의무를 이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으니까요.”
“사회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게 싫다는 뜻인가요?”
“의무로 해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뜻이죠. 몰래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건 좋지만, 매년 뉴스에 나와서 불우이웃돕기 합니다, 광고하는 건 부담스러운 거죠.”
교장은 웃으며 찻잔을 집어 들다 놓았다. 이미 다 식은 차라서 맛을 볼 이유가 없다.
“시간만 있다면 학생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게 아쉽네요. 게다가 교장으로서 한 학생을 편애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자주 부르지도 못할 것 같고요.”
면담을 마치자는 이야기로 들렸다.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1교시가 마치기 직전이었다.
“교육부 건은 언제까지 답을 드리면 될까요?”
“이달 내로 생각하고 결정하세요. 그리고···원래는 담임 선생님께 결정한 내용을 알리도록 할 생각이었는데, 이왕이면 직접 와서 이야기해 줄래요? 온 김에 늙은 선생의 대화 상대나 해주면 더 좋고요.”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마침 1교시 마침을 알리는 종소리가 학교에 울려 퍼졌다. 먼 곳에서 아이들이 복도를 뛰쳐나오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이만 가보세요.”
“네, 선생님.”
단유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뒤, 교장실을 벗어났다. 나가기 전 교장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교장 선생님의 눈이 웃고 있었다. 단유도 모처럼 ‘대화’를 나눈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뭐야?”
“뭐긴 뭐야? 니가 반장이라고.”
“내가 왜?”
단유는 얼떨떨한 얼굴로 명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잠깐, 아니 잠깐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빠진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반장이 되어 있다니?
“내가 추천했어.”
명수가 자랑스럽게 엄지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쿡쿡 찌르며 입꼬리를 늘렸다. 이 친구야. 단유는 명수의 어깨를 짚었다.
“···그냥 반장 안 하고 조용히 살면 안 될까?”
“반장 하면서 조용히 지내면 되지, 뭐가 문젠데?”
에휴.
“아, 그리고 쟤도 너 추천했어.”
누구, 하면서 고개를 돌리니 명수의 손가락이 가리킨 아이가 마침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1, 2학년 때 모두 같은 반이 아니었던 아이였다. 혹시나 명수는 알까 싶었는데, 명수도 처음 보는 아이라고 했다. 전혀 모르는 데 왜?
그 아이가 일어나 다가왔다. 일단은 그 태도와 당당한 표정에서 성격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적극적이다.
“반갑다. 나, 김관영이라고 해.”
“응. 반가워.”
의례적인 인사였지만, 관영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난 네가 우리 반 반장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왜?”
“민주주의를 실천한 셈이거든.”
“뭐?”
옆에서 듣던 명수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