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울 때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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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이나 생활지도부로 가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담임은 단유를 데리고 1층으로 내려왔다.
‘교장실?’
담임은 교장실 앞에서 간단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뒤에서 지켜보는 단유에게로 고갤 돌렸다. 그제야 단유는 담임의 얼굴이 유난히 굳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이곳을 향해 온 것을 보면 교실로 들어오기 전에 자신을 데리고 오란 이야기를 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데려가야 할 아이가 싸움을 일으켰다면, 선생님으로서는 황당하고 화가 날 상황이긴 했다.
‘그래도 조금 침착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뭐가 문제일까? 왜 사람들은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침착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오히려 매번 냉정을 유지하는 자신이 이상한 걸까?
“김단유.”
“조심하겠습니다.”
단유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알고 선수를 쳤다. 선생님은 반쯤 열린 입술을 달싹이다 다물었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여선생과 소년이 들어오자, 창완은 들고 있던 차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교장 선생님.”
고개 숙여 인사하는 여선생에게 가벼운 목례로 답하는 창완의 모습은 거만하지 않았다. 가볍게 다문 입술은 편안해 보였고, 일부러 젊게 보이려 염색을 하는 요즘 트렌드와 달리 하얗게 센 머리 그대로인데 숱이 많고 정갈하게 빗겨져 단정하고 연륜있는 노신사라는 느낌이 있었다.
“어서 와요. 거기 학생도 들어와요.”
“네. 김단유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김단유 학생. 여기 앉아요.”
단유는 자연히 지난 교장과의 만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교장의 경우도 점잖은 학자의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완고하고 고루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새 교장의 경우는, 일단 첫인상부터가 남달랐다.
엄밀히 말하면 담임 선생님은 평교사이기에 직급상 교장 선생님의 아래다.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도 문이 열렸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는 자세는 상대를 직급이나 나이에 따라 낮춰보는 면이 적다는 것이 아닐까? 아니라면 상대가 누구든 그저 오랜 세월 몸에 밴 습성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상대에게 좋은 이미지를 준다.
“선생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앞서 앉아 있던 행정실장이 허리를 숙이자, 또 마주 목례를 하며 인사를 받아준다.
“나중에 또 이야기하죠.”
“네, 교장 선생님.”
행정실장은 몸을 돌려 나가다 단유와 눈이 마주쳤다.
‘저 아인가?’
행정실장은 곧 시선을 돌려 여선생과 눈인사를 나누고는 교장실을 빠져나갔다.
“선생님, 저도 물러···.”
“아뇨, 선생님. 선생님도 잠시 앉아 계시다 가시죠. 선생님 반 아이 아닙니까?”
“아, 네.”
희선은 손을 공손히 모으고 허리를 숙여 교장 선생님께 예를 보이고는 다소곳이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최대한 단정한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귀밑으로 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세상 천지에 상관과 자리하면서 편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게다가 아직 그 성향이 파악되지 않은 갓 부임한 상관이라면 더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다.
비록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은 하지만, 보는 사람은 누구나 알아볼 만큼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유도 담임의 그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교장은 아무렇지 않게 희선을 상대했다.
“차라도 드릴게요. 괜찮나요?”
“아, 예. 저, 괜찮, 습니다.”
담임의 괜찮다는 말은 ‘괜찮으니 마시지 않겠다’는 걸까, ‘차도 좋습니다’라는 걸까. 변화무쌍한 표정을 보여주는 담임에게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바라보는 교장과 마주 바라보게 되었다.
“학생, 단유군은?”
“차 좋아합니다.”
“다행이군요. 보이차, 마셔봤어요?”
“예, 예전에 몇 번 마셔봤어요.”
“그렇군요.”
희선은 오히려 단유의 침착함과 담담한 태도가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곧 교장실에 보이차의 그윽한 향기가 가득 차올랐다. 붉은 듯 맑은 보이차를 한 모금 마시니 따뜻한 기운에 몸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차를 즐길 줄 아는군요?”
“잘은 모르고요, 그냥 따뜻해서 편하다는 정도인데요.”
“그게 차를 즐기는 거죠. 허허.”
중후한 목소리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니 교장실의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담임은 긴장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런데, 단유군 얼굴은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나요?”
담임의 긴장도가 갑자기 확 올라가더니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희선의 머릿속에 난리가 났다. 평소라면 가로세로 줄 맞춰 정리된 단어장이 폭탄 맞은 것처럼 이리저리 흩어진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단어들을 주워다 이어붙여 말을 해보려 했지만, 손에 쥐어지는 단어들이 없어서 입술만 달싹거리다 힘겹게 문장을 만들어냈다.
“사고가 조금 있었습니다.”
희선은 ‘사고’라고 표현했다.
“싸움이 있었어요.”
뒤이어 단유의 진짜 ‘폭탄’이 터져버렸다.
“싸움이요?”
찰나의 순간 교장의 눈에 빛이 서렸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의 눈빛에도 희선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조심하겠다며?
“그게···.”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선생님?”
교실에서였다면 ‘버릇없는’이나 ‘감히’ 같은 수사가 붙을만한 행동이었지만, 단유는 제대로 항변하고 싶었기에 담임의 말을 잘랐다.
“선생님께서 들어오시기 전의 일이어서 제대로 말씀드릴 시간이 없었어요. 저희 때문에 선생님께 곤란을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단유는 먼저 희선에게 사과를 했다. 그것은 앞서의 일들에 대한 사과이며, 동시에 교장에게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저를 데리고 교장실로 가셔야 하는 일 때문에 여유가 없으셨거든요.”
혹시 몰라서 단유는 교장 선생님을 향해서도 한 마디를 보탰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요, 단유군.”
교장은 달리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도대체 어떤 싸움이 있었던 거죠?”
“사소한 시비였습니다. 학기 초에 자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죠. 학생들 간에 일어나는 사소한 의견 충돌이었지만, 뜻이 맞지 않다 보니 주먹이 오갈 뻔했던 일이었어요.”
“오갈 뻔했다는 말은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기, 인가요?”
단유는 부어오른 볼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제가 실수로 맞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특별히 상해를 입힐 만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힘으로 눕히긴 했지만 상대를 진정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교장은 흥미롭다는 듯 단유를 바라보며 손깍지를 끼었다.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는 담담한 표정의 단유와 그 옆에 긴장된 표정을 지은 채로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마냥 고개를 떨군 희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학생의 말은 변명입니다. 그렇죠?”
“네. 하지만 당시에는 힘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저 나름대로는 그 힘으로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왜죠?”
“가끔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희선이 날 선 눈으로 단유를 훔쳐보았다. 누구 앞이라고 말장난이냐고 혼을 내고 싶었다. 대화가 안 되는 사람? 대화가 안 되면 힘을 사용한다? 그거야말로 후안무치한 논리 아닌가? 힘을 쓰는 상황을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키려는 핑계일 뿐 아닌가?
“대화가 안 되는 경우라.”
교장은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몸을 기울였다. 교장의 검은 눈동자가 단유의 눈을 겨눴다.
“왜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경우 있지 않나요? 상대가 대화할 의지가 없다거나, 혹은 대화를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경우요.”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대화 대신 힘을 선택하게 만드는 핑계는 되지 않아요.”
단유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그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괜히 등 뒤가 서늘해지는 기분인데.
“네, 그 점은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오로지 대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숱하게 겪었던 경험들, 대화가 안 된다고 여겼던 일들이야 제가 어리고 미숙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정 짓더라도, 현실에서 대화 대신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어떤 경우가 그렇죠?”
“정확하게 어떤 상황이라고 특정 짓긴 어렵지만, 예를 들면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를 대화가 아닌 전쟁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힘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요?”
“2차 대전은 반세기도 지난 이야기군요. 세계는 힘 대신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의지를 UN 창립을 통해서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전쟁은 계속 있지 않았나요? 아프간 전쟁도 그렇고, 쿠웨이트 전쟁도 말이에요.”
“중학생 두 사람의 문제가 세계적인 규모로 비화될 정도인지 궁금하군요. 하지만 거론한 두 문제도 결국 세계의 비판을 받고 있는 전쟁이죠? 힘보다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냐는 논란이 있죠.”
“정당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경우가 있더라는 얘기를 드리는 건데요.”
“그런 경우마다 비판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군요.”
교장은 결코 화를 내지 않았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조목조목 단유의 말에 답을 해주었다. 어른이라고, 교장이라고 윽박지르려는 태도는 전혀 없었다. 단유는 생각을 정리한 뒤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분명 폭력보다 대화가 유용할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필수적인 해결 방식인데 좀 더 편한 방식이라 여겨 눈을 가렸습니다.”
몸을 앞으로 기울였던 교장은 고쳐 앉으면서 앞에 놓인 차를 집었다. 입술을 축이는 동시에 끌어 올라가는 입꼬리를 잔으로 가렸다. 다시 잔을 내렸을 땐, 이전과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단유군은 듣던 것 이상으로 똑똑하고 영민한 학생이군요.”
단유는 교장의 말이 그저 놀리기 위함은 아니라고 느꼈다.
“과찬이십니다.”
“사실 여러분 나이대의 학생들은 혈기 왕성하죠.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나이기도 하고요. 천천히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도 흥분해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쉽게 힘을 쓰기도 하죠.”
교장은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 들으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희선에게 시선을 돌렸다.
“학생 말대로 가끔은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건 우리 선생님이 더 잘 느끼시겠죠.”
희선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교장과 시선을 마주하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시선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초조함을 느낀 건지, 무릎 사이에 놓인 손가락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분주하게 꼼지락거리는 중이었는데 본인만 느끼지 못하는 중이었다.
“가끔 학생들이 선생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있죠?”
없다면 거짓말이다. 굳이 학생과 선생의 문제일까?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 때 대화가 되지 않으니 힘을 써야겠다, 고 생각하는 선생님이 있던가요?”
단유는 기억을 더듬은 뒤, 고개를 저었다. 과거에 한 번, 초등학교 때 한 선생님의 팔이 올라가긴 했어도, 교장이 말한 경우와는 다른 문제였으니, 적어도 대화 대신 ‘힘’이라고 했던 선생님은 없었다.
“옛날에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계도’하기 위해 ‘사랑의 매’를 들었다지만, 체벌이 교육적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물론, 때리는 선생님을 가해자로 만드는 심리적인 문제가 지적되어서 이제는 체벌이 금지되었어요. 아시죠?”
“네.”
“지금의 선생님들은 어떤 경우에도 ‘힘’으로 학생을 억누르려 하지 않아요. 그런 선생님의 행동에서 학생들은 배워야 합니다. 대화와 인내가 인간 관계에 있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네.”
단유의 생각도 그와 다르진 않았다. 이전까지는.
“하지만 대화를 원치 않는 상대와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까요?”
희선은 놀란 나머지 팔꿈치로 단유의 팔을 툭 쳐서 낮은 목소리로 을렀다.
“단유야!”
희선은 제발 단유가 얌전히 ‘네, 네’만 하다 끝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빌었다. 정말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고작 중학생인 녀석이 한참 어른이신 교장 선생님과 저런 ‘무례한’ 대화를 나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걸 받아주는 교장 선생님의 속도 모르겠고, 이 대화의 끝이 어디로 흐를지도 따라갈 수 없었다.
“흠. 대화를 원치 않는 상대라.”
교장은 다시 찻잔으로 입을 가리며 목을 축였다. 코끝에 와 닿는 향기가 점점 진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의 대화는 어떤가요?”
다시 되돌려진 질문. 무슨 의도지, 라고 희선이 생각할 때 단유가 답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탐색을 받는 기분인데요.”
교장은 진심으로 참을 수 없었다는 듯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하, 죄송합니다. 재미있네요. 탐색을 받는다라. 그래서 학생은 일부러 수긍하는 척을 한 건가요?”
“일부러는 아니고요. 교장 선생님의 생각과 뜻이 같기 때문에 제 잘못을 시인한 거예요.”
“좀 더 재미있는 대화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희선은 어지러웠다. 두 노소(老小)가 벌어는 대화가 자신의 상식을 깨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