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울 때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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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교사가 편할 거로 생각한다. 일반 직장인이 6시 퇴근 시간을 넘겨 야근을 해도 선생님들은 칼같이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와 맨발에 편안한 차림으로 TV나 보다가 잠들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는 서류철 한 뭉텅이를 들고 와 작성하느라고 눈이 돌아가는 데 말이다. 방학철에는 선생님도 같이 방학해서 해외여행이나 다니다가 돌아와 느긋하게 개학을 맞이하는 게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당직, 이라고 하면 방학 중간에 한두 번 나와서 커피나 마시면서 쉬다가 퇴근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지. 연금도 잘 나오지. 야근 안 하고 출근 시간 넉넉하고 1시간마다 쉬는 시간 정해져 있는데, 이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있냐?”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 중의 한 명이 바로 어머니였다. 희선이 보기에도 그런 생활이었다. 그래서 교직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희선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런 점에서 교사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그 기대감이 무참히 짓밟히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보기에 좋은 떡이라고 했던가? 알고 보면 선생님이란 직업은 생각처럼 쉬운 직업도 아니었고, 해마다, 달마다, 매일 고뇌와 고통을 옆에 달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었다.
교장 선생님 말씀처럼 교사는 서비스제공자가 아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부심 정도는 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학생들을 대할 때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나?’ 혹은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매번 해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한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해야 하는 경우가 숱하게 발생하고, 했음에도 모른 척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태평양 어느 섬의 활화산처럼 울화가 치민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희선이 ‘교사’라는 직업에 진절머리를 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직업적 회의(懷疑)란 어느 직업에나 있을 수 있다. 특히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고통받을 때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지금 스트레스를 받느냐고 묻는다면, 희선은 눈을 부릅뜨고 말할 것이다.
“네! 무척! 많이요!”
개학 첫날, 교실에 들어서니 난장판인 데다가 마침 주의를 들었던 학생이 ‘폭력 사건’을 일으켰음을 알게 된 상황이다. 담임으로서 첫 시작이 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장 선생님의 부름은 둘째치고 우선 사건의 정황부터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가서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왜 싸웠어?”
희선의 시선은 단유에게 머물러 있었다. 단유는 담담하게 사정을 전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는데, 이 친구가 와서 막무가내로 비켜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비켜주지 않았고, 그로 인한 의견 충돌로 부딪힌 겁니다.”
간결한 상황 설명에 더 물을 말이 없다.
“맞아?”
병억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럼 말로 할 것이지, 왜 주먹질을 한 거야? 학교에서 싸우면 안 된다는 사실 모르니? 그것도 학기 첫날부터? 넌 머리도 똑똑하다는 애가 그걸 몰랐어?”
“싸움을 피하란 말씀이신가요?”
“당연하지.”
“피할 수 없는 싸움도 있습니다.”
“뭐?”
희선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너 어디서 말대답이니?”
단유는 희선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금방 사과하는 단유의 모습에도 희선은 순간적으로 울컥했던 감정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넌 내 말이 우습니? 학교에서 싸우지 말란 소리가 네 귀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어?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몇 번이고 사고를 쳤었던 거야? 응? 그런 거야?”
반 아이들의 침묵 속에서 희선의 날카로운 목소리만이 단유를 집어삼킬 듯이 쏟아졌다.
“뭐?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어? 너 혼자 무슨 청춘 드라마라도 찍니? 물불 안 가리고 주먹질하는 게 멋있어 보여? 응? 그래?”
“선생님!”
그때 교실 뒤편에서 선생님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희선이 시선을 돌리자 얼굴이 그을린 덩치가 손을 번쩍 들고 바라보고 있었다. 명수였다.
“저도 싸웠는데요?”
“뭐?”
희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 뭐야!”
“저요? 인명수인데요.”
몇몇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누가 이름 물어봤어! 야! 너 나와!”
명수가 벌떡 일어나 교탁 앞으로 나오자, 선생님은 허리에 손을 얹고 명수 앞에 섰다. 얼굴과 덩치, 이름을 보니 누군지 금방 떠올렸다.
“너도 싸웠어? 근데 왜 가만히 있었어? 응?”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고 나가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계속 말씀을 하셔서요, 그래서 손만 들고 있었는데요, 선생님이 안 보시는 거 같아서요, 그래서 선생님 부른 건데요.”
사실 명수는 처음부터 손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희선이 당황한 틈이라 명수가 손을 들고 있던 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싸운 게 무슨 자랑이라고 이렇게 당당하단 말인가.
희선이 쌍심지를 켜고 앞에 선 세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중학교에 갓 올라온 1학년 애들도 첫날부터 싸우진 않을 거다. 응? 너희들은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중 3이면 철이 들어도 될 나이 아니니?”
단유는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인 자세로 머리를 굴렸다. 처음의 시나리오와는 조금 다른 길로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애초에 단유가 상정한 상황은 시비가 붙은 정황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선생님께 처벌을 받는 길이었다. 폭력 사건이라고 해도 직접 타격을 받은 것은 명수의 발길질에 당한 병억과, 병억의 주먹질에 당한 단유 뿐이었다. 그 외에는 신체 접촉이 있긴 했어도 충분히 무마할 변명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처벌을 피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단유가 처벌을 두려워해서 몸을 사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인상을 병억에게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그런 사정을 봐줄 사람이 아닌 듯하다. 봐주긴커녕 변명 한마디도 듣기 싫다는 완고한 모습이다. 예전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과 비슷한 유형이었다. 이런 선생님은 학생들이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해진 답을 요구하고 학생이 그 답을 말하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명수까지 나선 마당이다. 비록 명수가 정의롭게 나서긴 했지만 선생님의 화를 돋우며 상황을 불리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자신이 이렇게 한 것도 명수가 나설 틈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 명수의 의리를 너무 얕본 모양이었다.
“폭력 사건은 이유 불문하고 학폭위 열어야 하는 거 알아, 몰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화를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선생님처럼 얼굴을 붉혀가며 화를 낼 정도의 일이었던가를 떠올리면 뭔가 이상하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선생님은 사건이 벌어진 이유보다 벌어진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왜 그 사건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그러니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표현에도 호기심 대신 역정을 낸 것이리라.
물론 폭력은 나쁘다. 특히 학교 폭력에 관한 문제는 뉴스의 단골 소재일 만큼 사회적 관심을 받는 부분이고, 그러니 학생들을 통제해야 하는 선생님으로서는 조금은 과하게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싸움이 벌어진 사정을 전해 듣고도 거기에 대한 반응, 이를테면 왜 ‘양보’를 하지 않았냐, 혹은 말 대신 주먹을 써야 했던 이유라도 있었냐고 묻는 것이 정상 아닐까?
단유의 생각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선생님의 호통 소리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자, 여기 차 한 잔 드세요.”
“고맙습니다.”
행정실장은 교장의 권유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맞은편 소파에 앉아 차를 손에 쥐었다. 차를 입에 가져다 대며 앞에 앉은 교장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미소를 살짝 입에 머금은 것처럼 온화한 표정이었다. 보통 저 나이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의젓함과 여유였다.
전(前) 교장도 표정은 온화했다. 하지만 교육자로서의 모습보다는 노련한 행정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반면 새로 온 교장은, 적어도 표정만큼은 근엄과 온화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품은, 속 깊은 어른이라는 인상이었다. 물론 인상일 뿐이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지 않던가.
“학교 행정이란 게요.”
차를 음미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던져진 말에 행정실장은 얼른 시선을 내렸다.
“아, 네.”
“학교의 행정이란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행정실의 지원이 없이는 좋은 교육도, 좋은 학교도 있을 수 없다고 여길 만큼이요.”
“아, 예···.”
의례적인 말일까.
“특히 이런 사립이라면 행정 실장님의 노력이 이만저만 들어가는 게 아니겠지요.”
사실 작년 전임 행정실장이 불의의 사고로 해임이 된 뒤에 들어온 터라 아직 학교에 대해 그렇게 파워를 발휘할 일이 없었던 행정실장이지만, 법인 재단 소속 사립학교이니 행정실장의 권한이 적다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인사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이지 않은가. 그리고 지출과 예산을 관리하는 행정실이니, 실질적인 파워는 강력한 편이다.
“별말씀을요. 저희야 어디까지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지내기 좋은 학교가 되게끔 뒤에서 지원해주는 정도인데요.”
“특히 이번에 인사이동이 많아서 꽤 바빴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죠.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대충 마무리가 되어서···한두 주 후면 마무리가 될 겁니다.”
“그렇군요.”
교장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내렸다. 보면 볼수록 묘한 인상이다. 주름진 눈꼬리의 인상과 달리 늙은 사람답지 않게 맑고 검은 눈동자의 깊은 속은 알아보기 어렵다. 반대로 자신의 속을 낱낱이 파헤쳐 보는 기분이 들어서 불쾌하진 않지만, 불편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네.”
“지난 감사 때 회계 문제로 고발당한 게 있다죠?”
“···네. 하지만 그 문제는 재단 이사회 쪽과 연관된 터라···.”
“제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어디 있었는지는 아시죠?”
알다마다. 교육지원청장으로 근속하다 퇴직하고 온 것이 아닌가? 즉, 장학관이었다는 이야기.
“이번에는 제가 힘써서 무마합니다만, 다시는 회계 문제로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고맙···.”
“실장님께 인사들을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 예.”
“적어도 제가 여기 있는 동안은 불미스러운 일이 없길 바랍니다.”
지금의 말은 단순히 행정실장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들은 바를 그대로 재단 이사회에 전하라, 그런 이야기였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마저 드세요. 실장님.”
실장은 빨리 마시고 나가란 뜻으로 이해했다. 행정실장이란 직급이 교감급에 준한다지만, 그래도 교장보다는 아래다. 아랫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한다. 그게 사회생활이다.
소파에 몸을 묻고 따뜻한 차로 입술을 적시는 교장의 위로 시곗바늘의 움직임이 보였다. 8시 50분을 겨우 넘긴 시간. 한참 아침 조회 중일 학교는 교장실만큼이나 조용하다.
“···알아들었어!”
“네.”
단유는 담담하게 대답하고, 병억은 입을 다물었고, 명수는 당당하게 외쳤다.
“네!”
희선은 뭐가 그리 당당하냐고 꼬집어 물으려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아차 했다. 시계를 보자 갑자기 머리가 확 식어버린다.
왜 그렇게 화를 냈냐고? 실은 화가 났다기보다는 당황해버렸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당황했지만, 당황한 티를 보이지 않으려 했더니 오히려 더 화를 내버렸다. 지금까지 애들을 세워놓고 했던 이야기들을 줄여 말하면 ‘왜 그랬어? 나보고 어떡하라고!’ 였다.
조회를 끝내고 단유를 데리고 가야 하는데, 왼쪽 뺨이 부어오른 단유를 데리고 가면 무슨 소릴 들을까?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그런 생각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한 놈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도 안 하면서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또 한 놈은 말대답이나 하면서 속을 긁는다. 그런데 또 한 놈이 지도 싸웠다고 자랑하듯 하니 머릿속 퓨즈가 끊어져 버렸다. 그런데 이 퓨즈라는 게 자연 회복 능력이 있어서, 시간이 좀 지나니 모르는 사이 연결이 된 모양이다.
어차피 이제 곧 1교시가 시작될 시간인데, 1교시는 학급회의 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김단유, 넌 나 따라오고 나머지는 얌전히들 있어!”
갑자기? 뭔가 두서없는 담임의 이야기들을 조립하다 말고 담임을 따라나서야 했다.
“왜 단유만 가요? 저도 싸웠는데요?”
눈치 없는 명수가 단유만 벌 받는 건 줄 알고 따라가겠다고 성화니, 희선은 성남 암사자마냥 짧은 숏컷트의 머리를 휘날리며 명수를 압박했다.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자리에 가 있어!”
“그런데 저도···.”
“인명수! 꼭 선생님이 소리쳐야 말 들을래!”
선생님의 뒤에 선 단유의 눈짓에 명수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자리로 돌아갔다.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병억이 그 뒤를 따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반 아이들에게도 조용히 교실에서 대기하란 엄포를 놓은 뒤 교실을 나섰다.
“따라와.”
“네.”
단유는 얼굴색이 몇 번이고 바뀌는 담임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