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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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같은 반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다행이다, 지긋지긋한 네놈 안 봐서.”
“와! 지랄, 또 같은 반이냐!”
“지랄하네.”
언제나와 같이 매년 첫 학기의 시작은 교실, 복도 가리지 않고 떠들썩했다. 3학년이 되었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오히려 더 시끄러우면 시끄러웠지 덜하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은 중학생. 이제 겨우 16살이 된, 혈기왕성한 남자아이들이었다.
“대박이다. 그치?”
명수는 헤벌쭉 웃으며 단유를 안았다.
“우리 처음으로 같은 반 된 거잖아?”
단유도 기분 좋은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 명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도 숙제는 네가 혼자 해야 한다?”
“당연···응? 그래도 조금은 도와줄 거지?”
그때, 교실 앞문이 벌컥 열리며 뚜벅뚜벅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그들의 등장에 잠시 긴장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옆 친구들과 수다를 떠느라 전혀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비켜, 새끼야.”
그냥 지나가도 될 것 같은데 일부러 시비를 걸며 발로 책상을 차는 아이들의 건들거림은 멀리서 봐도 그 의도가 느껴졌다.
“에휴. 또, 야?”
명수가 나지막이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명수의 말에 단유도 동의했다. 어떻게 매년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가, 도대체 왜 저렇게 과장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나 불만 많아요’를 얼굴로, 몸으로 표현하며 등장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연출에 진저리가 쳐질 정도다.
“너 쟤 알아?”
단유가 묻자, 명수가 적잖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5반인가에 전학 온 앤데, 소문이 별로 좋지도 않고 그래.”
“소문?”
“그 전 학교에서 사고치고 전학 왔다던가, 뭐 그렇데?”
교실 뒤로 오던 아이의 발걸음은 단유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쟤들은 꼭 이 자리를 좋아하더라.”
창가 쪽 제일 끝자리는 교실의 가장 구석진 곳이라 선생님의 시선에서 멀기도 하고, 점심시간 이후에는 햇볕이 잘 들어와서 잠자기 딱 좋은 곳이기도 하다. 아마 대부분 아이들이 탐내는 자리가 아닐까?
“인마, 일어나라.”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단유에게로 와서 시비를 거는 소년이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유난히 턱 아래가 거뭇해서 다른 또래에 비해 성숙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는 나름 불량스러운 표정을 지어도 어린 외모 탓인지 무섭다는 느낌이 덜 했다. 그런데 지금 찾아온 녀석은 명수의 말이 없었더라도 실제로 눈에서 드러내는 불량함이 남달라 사고 좀 치는 녀석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래 봐야 중3, 16세, 동갑내기 소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단유가 나설 이유도 없었다.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얼굴로만 따지면 절대 뒤지지 않을―최근 선생님으로부터 ‘산적 얼굴’이라고 놀림 받기 시작한―명수가 있으니까.
“우리 귀여운 명수 돌려내!”
라고 명수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던 하은의 모습이 생각나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 웃어?”
소년은 한쪽에 걸치고 있던 가방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 한 걸음 다가설 때, 명수가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 해라.”
“뭐?”
단유가 보기엔 여전히 귀여운 얼굴이다. 얼굴이 조금 검게 탔을 뿐, 여전히 장난기 많은 동그란 눈매에 둥근 턱과 두툼한 입술은 어릴 때의 명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짐짓 진지한 척을 해도 단유의 눈엔 ‘나 잘했어?’라고 금방이라도 애교를 부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대의 눈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소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우리가 먼저 앉았잖아? 늦게 왔으면 그냥 빈 자리 찾아서 않던가, 아니면 선생님 오셨을 때 말해. 괜히 애들 앞에서 어깨 각 잡고 뭐 있는 척하지 말고. 응?”
소년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명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뻗은 발길질에 명수의 책상이 거친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고, 명수는 빠른 운동 신경으로 물러섰지만, 책상 모서리에 허벅지가 찍혔다.
“아우, 아파라.”
허벅지를 문지르며 엄살을 부리는 명수의 모습이 희극적으로 보였던지, 뒤에 서서 구경하던 몇몇 아이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새끼야, 다시 말해봐라? 뭐라고?”
“아, 나, 참. 어린 새끼가 벌써 귓구멍이 막혔나?”
명수가 허벅지에 손을 떼며 혀를 차다 단유의 눈치를 살폈다. 바로 옆자리에서 난 소란에도 담담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는, 정확히는 명수의 반응을 보며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너 왜 보고만 있냐?”
“네가 어련히 잘할까 봐.”
“와, 같은 반 됐다고 바로 부려먹네?”
“자전거.”
“잘 모시겠습니다. 형님.”
“이 새끼들이, 쌍으로 쳐 돌았나?”
소년은 명수와 단유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짧은 문장 속에 수많은 욕이 컬래버레이션을 이루며 튀어나오는데, 단유는 욕으로만 한 문단을 만들 수 있다는 경이로운 체험에 놀라워했다. 신선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소년도 섣불리 주먹을 쓰진 않았다. 일단 눈앞에 선 명수의 넓은 어깨와 날카로운 턱, 다부진 눈매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고, 앉은 채로 상황을 지켜보는 녀석이 그의 친구이기에 숫자로 밀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자칫 협공이라도 당하면 못난 꼴을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나마 앉은 애는 이 상황에도 멍청하게 앉아만 있는 것이 자신에게 쫄아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여차하면 무시하고 1:1로 싸울 수도 있을 것 같긴 했다.
“새끼가, 눈깔을 코에다 달았나, 누구한테 개기고 지랄이야, 씨발놈아. 뒤질래? 응?”
그 말에 단유와 명수 대신 뒤에서 반응이 나왔다.
“쟤 모르나 봐.”
“어떻게 모르지?”
“우리 학교에서 쟤들 모르는 애도 있구나.”
“전학 와서도 계속 결석했다던데?”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냐? 작년에 축구대회도 안 왔었나?”
‘축구대회?’
웅성대는 아이들의 반응 속에 ‘축구대회’란 말이 소년의 귀에 꽂혔다.
“축구부냐?”
얼굴 면상이 검은 게 딱 축구부긴 했다.
“새끼, 운동부면 운동부답게 얌전히 짜져 있어 새끼야. 까불다가 뒤지지 말고.”
운동부는 애들이랑 싸우면 처벌이 더 커지지 않던가? 폭력문제가 걸리면 미래에도 영향을 주니까 더 몸을 사릴 게 뻔했다.
소년이 이죽거리며 명수에게 다가가자, 명수도 질 수 없다는 듯 눈을 매섭게 치켜뜨고는 한 걸음 다가갔다.
“명수야.”
“응?”
단유가 불렀고, 명수가 대답할 때, 소년이 주먹을 날렸다. 빈틈이라 생각한 소년이 한 방 먹이고 시작하자는 듯 주먹을 뻗었고, 대답을 하던 와중에도 시선을 떼지 않았던 명수는 턱을 뒤로 빼며 주먹을 피하려 했지만, 애초에 주먹은 단유의 손에 붙잡혀 뻗질 못했다.
“이 새끼가···.”
소년은 오른손이 부지불식간에 붙잡히자, 반사적으로 왼손을 뻗으려 했다. 아무래도 싸움 경험이 조금 있긴 했나 보다. 보통은 잡힌 손을 빼려는 게 보통인 것 같은데. 하지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전에도 그랬듯이 단유의 놀라운 운동 신경과 또래를 압도하는 힘은 소년을 손쉽게 제압했다. 그저 잡은 소년의 팔을 세게 쥐기만 할 뿐임에도 소년은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절로 무릎이 꺾였다.
“아아!”
소리를 낸 뒤에야 창피함을 깨달을 정도로 비명은 통제를 잃고 터져 나왔다.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단유는 명수에게 말했다.
“넌 안 되겠다.”
“뭐가?”
“내 보디가드.”
“흥, 웃기시네. 니가 무슨 보디가드가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나설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오히려 단유가 나서서 명수를 보호해줘야 할 판이다.
그때였다. 소년의 다른 한 손이 단유의 손을 덮더니, 통증을 이겨내고 팔을 교묘하게 돌렸다. 그러자 잡고 있던 단유의 손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휙 돌아갔고, 힘이 풀리면서 저절로 손을 놓게 되었다.
“어?”
소년은 단유의 손을 덮고 있던 손을 끌어올려 단유의 교복 소매를 강하게 붙잡았다. 다른 손으로 교복의 팔꿈치 부분을 움켜쥐었다. 웅크린 자세에 몸을 돌려 등을 단유에게 대더니 잡고 있던 소매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단유도 대처할 틈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단유의 몸이 기우뚱하며 기울어졌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몸이 뒤집히며 시멘트 바닥에 부딪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등이 욱신거릴 정도로 강한 통증에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윽!”
“단유야!”
놀란 명수가 달려와 공을 차듯 발을 차올렸다. 거의 습관적인 행동이었는데, 수년에 달해 단련된 명수의 발차기마저도 소년은 얼굴을 틀며 들어 올린 팔꿈치로 막아냈다. 그래도 명수의 힘이 보통은 아니어서, 뒤로 걷어차이며 날아간 소년은 우르르 몰린 아이들의 다리에 부딪히며 넘어졌다.
“어어.”
아이들은 서로 끼지 않으려고 원을 그리며 물러섰다. 그 사이 명수가 단유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괜찮아?”
“···응.”
“진짜?”
“응. 괜찮아, 이 정도는.”
예상도 못 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단유도 당하고 말았지만, 설마 그런 기술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속수무책이었던 것도 있었다.
“새끼가···.”
명수가 이를 꽉 깨물며 일어나려는 걸, 단유가 붙잡았다. 명수가 내려다보자 단유가 말했다.
“싸우지 마라.”
“저 새끼가 먼저 시비 걸었어.”
정당방위라도 될 거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학교에서는 정당방위란 게 없다. 학교 밖 사회에서도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학교 내에서는 정당방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말이다.
“가만있어.”
단유는 경계 어린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며 일어나는 소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소년의 움직임을 눈에 담으며 일어났다. 슬쩍 눈동자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조례까지는 15분 정도 남았다. 3학년이라 교무실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 선생님들이 소란을 듣고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니,
“수습은 내가 할게.”
단유가 소년에게 한 걸음 내디뎠다. 단유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에 소년은 그가 전혀 쫄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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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방학 동안, 학교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정확히는 가을께부터 시작되었던 보복성 감사―라고 선생님들은 판단했다―에 교무실은 난리가 났다. 아주 오래된 채용 비리가 문제가 되는가 싶더니, 어떤 때는 학교 외부 업체의 로비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전부 실질적인 증거는 모자라지만, 회의록과 기타 서류들에서 발견되는 여러 정황 증거들이 의심을 불렀고, 교육청에서는 수사 기관에 의뢰하겠다고 소란이 일었다. 실제로 의뢰가 들어갔고, 수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몇몇 이사는 책임을 물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교장과 교감은 불명예 퇴직을 받아들여야 했다. 다행이라면 두 사람 모두 형사 입건은 피했다는 점인데, 지난 일들에서 욕심을 내지 못했던 것이 그 두 사람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했다. 돈 욕심보다 자리보전에 더 큰 욕심을 드러냈던 것이 일말의 도움이 된 셈이었다.
그리하여 겨울 동안 재단은 긴급히 이사진을 새로 꾸리고 학교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단유의 의식 불명 사태로 인해 교육부는 처음에 기획했던 단유의 모델로서의 기용을 보류해야 했고, 교육청은 기존 두 감사관이 형사 입건 당하는 치욕을 겪어야 했으며, 학교는 교복은 물론 여러 개혁 조치들이 흐지부지되는 상황에 부닥쳤다. 그리고 교감을 새로 정하지 못한 채로 새 학기를 시작해야 하는 사태도 감내해야 했다. 그나마 교장을 맡을 사람은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어렵게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반갑습니다. 장계 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된 허창완이라고 합니다.”
점잖은 목소리로 선생님들을 향해 자신을 소개하는 교장, 허창완에게 선생님들이 다 같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교장 선생님.”
허창완의 부드러운 시선이 선생님들을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