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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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아껴 쓰라는 하은의 충고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수전노까지 돈을 모으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쓰려고 버는 돈, 이라는 게 단유의 생각이었다.
“이게 뭐야?”
“선물. 돈 벌면 사주겠다고 했잖아?”
“진짜?”
“응. 너 갖고 싶다고 했었잖아?”
단유가 명수에게 준 선물은 자전거였다. 지난번에 명수가 자전거를 갖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 뒀던 단유는 번역으로 번 돈으로 가장 먼저 명수의 자전거를 산 것이다.
“내 것만 샀어?”
“뭐, 일단은. 선생님 선물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서 사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네 건?”
“나?”
“아침에 학교 갈 때 같이 타고 다니면 좋잖아?”
“아.”
단유는 그 생각까진 못했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이것도 받아.”
단유는 자전거 뒤 안장에 박스를 하나 올렸다.
“뭐야, 또 이건?”
“축구화. 전에 쓰던 거 다 떨어졌잖아.”
“와, 정말 대박이다, 너.”
“고마우면, 열심히 연습이나 해.”
하지만 명수는 박스를 손에 쥐기만 할 뿐 쉽게 열지 못했다.
“···매번 받기만 하니까 미안하다.”
명수의 반응에 단유는 정색을 한 채로 말했다.
“인명수. 그런 말 하지 않기로 했잖아.”
뒤늦게 명수가 단유의 표정을 보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멋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아, 그래. 그렇지.”
“우린 가족이야.”
“맞아.”
명수가 웃으며 주먹으로 단유의 가슴을 툭 하고 밀었다.
“구경만 하지 말고 한 번 타봐.”
“그럴까?”
“뒤의 상자는 내가 들고 있을게.”
명수는 히죽 웃으며 단유에게 박스를 넘기고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제자리에서 한쪽 발로 페달을 돌려보며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좋아하던 명수가 단유에게 눈짓을 보냈다. 단유가 고개를 끄덕이자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가는 명수였다. 골목을 따라 앞으로 씩씩하게 나아가던 자전거는 두 블록을 지나 다시 돌아왔다.
“탈만 해?”
“괜찮은데?”
“높이는? 조절 안 해도 되겠어?”
“응. 괜찮은 거 같아. 근데 자전거 되게 가볍다?”
“자전거 파는 데서 좋은 거랬어.”
명수는 신이 난 얼굴로 오피스텔 뒷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그 모습을 보니 단유도 흐뭇했다.
단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자전거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이니까 조금 ‘실험’을 해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다음날, 명수의 자전거를 샀던 곳에 가서 가장 싼 자전거를 하나 구매했다. 실험용이니 비싼 자전거를 살 필요는 없다고 여겼지만, 그래도 10만원이나 들었다. 명수의 것에 비하면 10분의 1이니 싸다면 싼 편이지만.
“조심해서 타라.”
자전거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는 단유에게 경비 아저씨가 한 마디 던졌다.
“네.”
명수에게 사줬던 자전거는 접는 게 가능해서 엘리베이터에 가지고 올라가는 게 편했는데, 단유의 것은 접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다행히 오피스텔의 엘리베이터가 나름 큰 편이라 자전거를 대각선으로 세워 올리면 가지고 오르내리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가니 페달에서 나는 체인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명수는 이미 오전 중에 자전거를 타고 나간 상황이라 집 앞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다른 집들도 이미 직장이든 뭐든 나갔을 시간이라 이 시간에 뭘 해도 크게 눈에 띄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조심하는 편이 좋다고 여겨, 단유는 집 앞을 지나 비상계단 쪽으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한번 해 볼까?’
자전거의 프레임은 알루미늄이었다. 하지만 단유는 자신이 가진 마법으로 물성(物性)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었으니, 그 마법으로 자전거의 프레임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과 호기심을 풀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구현’만 가능했던 마법이지만, ‘탄소’와 ‘철’이라는 물질에 관한 공부를 이어가다 보니 특정 대상에 한해 물체의 성질을 바꾸는 ‘재현’ 마법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초의 ‘물성변화’ 마법은 제르아 오마 근처의 마을에서 목공방의 장인(匠人) 론에게 선물을 전할 때였다. 론에게 줄톱을 선물하면서 톱니의 끝부분을 녹슨 철이 아닌 ‘탄소 구조체’로 바꿔준 일이 있었다. 사실 그때는 우연히 발견한 마법이기도 했고, 아직 구조체에 대한 공부가 깊지 않은 때여서 고작 톱니의 끝부분만 살짝 바꾸는 데 그쳤다.
그러나 다시 지구로 돌아온 뒤, 여러 가지 일로 바쁜 와중에도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단유는 결국, 각고의 노력을 다한 끝에 변화마법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 노력의 산물이 나윤에게 줬던 선물이었다.
나윤의 어머니에게 졸업식 초청 연락을 받은 뒤, 괜히 들뜨고 두렵던 마음에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단유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남겼던 ‘선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줌으로서 깨끗이 자신의 마음속 ‘미련’을 떨쳐내고자 했다. 미안한 채로 헤어지는 것은 편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액세서리점에 들르기도 하고 금은방에 가기도 했지만, 마음에 드는 선물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윤이 뭘 좋아할지도 모르고, 자신이 가진 돈의 한계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능한 한도 내에서 적당한 선물―목걸이를 산 단유는 집으로 돌아와 목걸이를 바라보다, 그 목걸이 가운데 박힌 보라색 모조석이 눈에 걸렸다.
‘하얀색이 더 좋을까?’
어쩐지 보라색은 우울한 색감이라 밝은 분위기의 나윤에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톱으로 모조석을 빼려다 보니 모조석을 감싸고 있던 조그만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그 순간 충동적으로 단유는 마법을 떠올렸다. ‘변화마법’을 쓰긴 했어도 이렇게 ‘큰’ 모조석을 바꾸는 작업은 처음이었다. 물론 단유가 보석에 관련하여 지식이 많은 편이 아닌지라, 인터넷 등을 살펴 적당한 ‘구조체’의 탄소 구조와 외형, 성질 등을 이론적으로 숙지한 뒤에 마법을 실행했다. 그리하여 ‘마법 생산제 보석’ 펜던트가 완성된 것이다. 어쩌면 ‘다이아몬드’와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이론상 유사할 뿐 다이아몬드는 아니다.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그저 이론적으로 알고만 있던 것을 구조적으로 이미지―완성 시켜 만들어냈을 뿐이니 천연 다이아몬드는 아니고, 그렇다고 인위적 조작을 가한 것도 아니니 공업용 다이아몬드도 아니다. 하지만 맞든 안 맞든 그게 뭐 중요할까? 나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보석을 건넸으니 미련은 없다.
단유는 느긋하게 잡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떠올리며 곧 작업에 들어갔다.
****
“단유 네 거 맞지? 언제 샀어?”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명수는 집 앞에 낯선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오늘 오후에.”
“그럼 이제 같이 자전거 타고 다닐 수 있겠다!”
“응.”
명수는 신이 난 얼굴로 단유의 자전거를 살폈다.
“그런데 이 자전거는 왜 이렇게 무거워?”
“그게, 좀 싼 거라서 그럴 거야.”
“메이커도 안 나와 있던데?”
“내가 지웠어.”
“그래? 그런데 너무, 시커멓다.”
“보기 이상해?”
“아니. 나쁘지는 않은데···마치 검은색 스프레이를 뿌린 것 같이 그렇네?”
명수가 말하는 건 다름이 아니라, 괜히 자기 것만 좋은 거로 사고 단유 자신이 쓸 자전거는 싸구려 제품을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단유는 명수의 그런 마음을 미리 눈치채고 선수를 쳤다.
“안 바꿔 줄 거야. 너무 부러워하지 마.”
“에이. 진짜? 네게 나한테 더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봐봐 내 얼굴색이랑 자전거랑 잘 어울리잖아.”
“됐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네 거나 아껴 써. 그거 고장 나면 수리비도 보통이 아니래.”
“정말? 비싸?”
“근데 어지간한 건 내가 고칠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이, 참. 미안하게 시리.”
명수는 단유의 자전거를 살피다 또 눈에 띄는 게 보였다.
“그런데 이건 여기가 새하얗네?”
명수가 가리킨 것은 자전거 뒷바퀴에 달린 기어의 색깔이었다. 기어 톱니의 끝부분이 하얀 것이 마치 유리같이 보인 것이다.
“하여튼 눈도 좋아. 별거 아냐. 그만 구경 끝내고 들어가자.”
“야광, 같은 거 아냐? 밤에 타면 여기서 빛이 나서 막 돌아가는 그런 거.”
“애들 킥보드에 들어가는 LED 등처럼?”
“LED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뭐 그런 비슷한?”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꺼.”
명수는 단유의 떠밀림에 밀려 집으로 들어갔다. 미안한 마음은 나중에 갚기로 하고, 우선은 모레 개학 때부터 같이 학교에 타고 다닐 생각에 기분이 즐거워졌다.
“나는?”
“선생님은 자동차 있으시잖아요? 자전거 탈 일도 별로 없으시면서.”
“나도 자전거 사줘.”
“에이, 선생님. 무슨 애처럼 그래요.”
“너 돈 많잖아? 나보다 많잖아? 나보다 많으면 선생님한테 선물 하나 사줄 수 있지 않니? 어떻게 너희 둘만 그렇게 알콩달콩 그러니? 언제는 선생님뿐이라더니 그때 그 말은 모두 거짓이었어? 그런 거야?”
“···진짜 사드릴까요?”
어색한 침묵이 지난 뒤,
“···에이, 또 농담을 진담처럼 받는다. 단유 너 그러면 못 써.”
“선생님이 과하셨어요.”
“과했어?”
“네.”
“그래도 적당히 받아주지 그랬니?”
단유는 히죽 웃고 하은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말했다.
“선생님한테는 나중에 더 좋은 거로 선물해 드릴게요. 이런 블라우스보다 더 좋은 거로.”
“···됐어. 내가 진짜 선물이 받고 싶은 그런 줄 아니?”
“아니라도 줄 거예요. 진짜.”
하은은 시원한 안마를 받으며 미소를 머금었다. 최근 그녀에게 생긴 꿈이 있다. 단유와 명수가 결혼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데서 지켜보는 것. 두 사람이 결혼해서 각자의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자신의 역할도 비로소 끝이 날 것 같았다.
‘그때까지는 내가 너희들의 엄마고, 누나고, 선생님이야.’
하은은 그녀의 꿈을 고이 접어 가슴 속 깊이 묻었다. 그리고 그 날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
“부럽지?”
“응.”
“너무 솔직하네?”
“치사하게. 야! 그럼 우린 그냥 걸어가고?”
“부러우면 너희도 자전거 사던가?”
지태는 이를 갈며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맞추는 명수를 노려보는 시늉을 했다.
“근데 단유 네 것도 파는 거 맞아?”
“응.”
“마치 누가 만든 거 같은데?”
만들었다기보다는 개조가 옳은 표현이리라.
“광택 죽인다야.”
어두운 복도에서 볼 때는 몰랐지만, 아침 햇살을 받은 단유의 자전거 프레임이 묘한 광택을 내며 그 색을 뽐냈다.
사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조금 튼튼한 구조체를 구상하다 보니 다면체 형상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구조물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물론 단유의 지식이 아직 한계가 있다 보니 다른 어딘가에서는 단유가 만든 구조물에 관한 연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순수하게 단유의 상상과 창의력으로 물질이 탄생하였고, 나름 탄성과 강도를 갖춘 물질로서 기능했다. 다만 순수 탄소 구조체가 아니라 기존 알루미늄 프레임에 물성을 변화시키며 생긴 물질이다 보니 의도치 않은 색이 만들어진 것이다. 철의 경우에는 공부가 많이 되어서 ‘물성변화’를 유도하면 순수 탄소 구조체의 ‘어떤 것’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다른 물질의 경우에는 탄소 구조체가 가미된 ‘어떤 것’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향후 연구를 더 해봐야 할 것이다.
“안 되겠다. 먼저 가라.”
지태가 마치 파리 쫓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삐졌어?”
명수가 혀를 낼름 빼물며 물었다.
“삐지긴? 이 정도로 삐지냐? 나도 자전거 사달라고 해야겠다.”
“너 성적 오르면 사준다고 하지 않을까? 너희 어머니?”
“···그렇겠지? 에휴. 내가 내 무덤을 파고 말겠네.”
지태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학교로 향했다. 개학 첫날, 기분 좋은 아침의 시작, 평범한 일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