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53화 (453/956)

스스로 긋는 한계(3)

-------------- 453/952 --------------

무슨 이런 뚱딴지같은 소리가 다 있나? 에저가 어리둥절하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며 단유의 얼굴을 살폈지만, 덤덤하기만 한 표정이었다.

“미래는 상상이에요.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하고 기대하는 것. 그리고 그 꿈같은 미래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뜻을 펼쳐 보려 하는 게 아이들, 이라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이세계로 오면서 경황이 없었다고 해도 줄곧 생각하던 문제가 갑자기 뇌리에서 잊힐 리 없다.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은 단유가 줄곧 고민하던 문제였고, 그 와중에 각 세대의 역할과 사회의 의미에 대해 교장과 치열하게 토론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이 마을의 부모세대는 그 뜻이 한 번 꺾였었다죠? 각자의 이유가 다르겠지만, 아마도 세상의 변화, 미래를 꿈꾸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돼요. 그래서 다시 돌아와 과거를 답습하고, 과거의 질서를 비판 없이 받아들일 뿐이겠죠.”

에저가 눈썹을 찡그리며 단유의 말을 받았다.

“너의 말을 들으면 마치 이 마을의 질서, 규칙들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단유의 말이 도전적으로 느껴졌던지 에저가 언성을 키웠다. 누워있던 어르신들 중 일부가 귀를 쫑긋하며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 뜻은 아니에요, 촌장님. 질서의 우열을 가리고자 드린 말씀도 아니고, 선악을 가르려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전쟁놀이하듯 우리 편 나쁜 편을 가르는 게 아니라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서로 돌아가듯,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그렇게 어우러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드리는 겁니다.”

“어우러져?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미 서로에게 충분히 이타적이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들이라고.”

단유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 입으로 사람들과의 갈등은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지만, 종종 이렇게 대화로 해결하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난감함 때문에 단유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였다. 기술을 전달하고, 변화를 보여주었으며, 미래를 꿈꾸게 했다.

“촌장님.”

나직하니 촌장을 부른 단유는 촌장의 시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으로 오기 전, 이와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도 저에게 촌장님처럼 말씀하시던 분이 계셨어요.”

문득 촌장은 눈앞의 아이가 분쟁을 일으키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누구였든 그 사람도 자신이 느끼는 것처럼 어린아이의 좁은 식견을 지적하고 있었을까?

“저는 그분과의 대화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그리고 정답을 드리지도 못한 채로 대화를 마쳐야만 했었어요. 그 기억이 제 행동의 기원(起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마을에 기술을 전달한 것, 그리고 그 기술에 의해 변화되는 마을을 지켜보는 것이 제가 구하는 답이었던 것이죠.”

단유는 촌장의 입이 열리기 전에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전에 놀이방에서 촌장님께 드렸던 말씀 기억하시죠? ‘아이들은 꿈을 꾼다’고요. 하지만 제가 본 이 마을의 아이들은 꿈을 꾸지 않았어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며, 오늘과 같은 내일을 기다리지 않아요. 이게 굉장히 슬프다는 것을 어른들이 알아주면 좋겠지만, 어른들은 그런 현실에 익숙하죠.”

익숙한 현실. 오늘과 같은 내일. 변화가 없는 세상. 단유가 정말 슬프다는 얼굴로 그 말을 뱉을 때, 에저는 물론 주위의 어른들도 모두 얼굴을 굳혔다. 단유의 말이 갖는 의미를 가장 뼈저리게 느낄 사람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시계탑을 만들려고 했어요.”

시계.

“시계는 사람이 시간을 다룰 수 있게 해주니까요.”

사람이 시간을 다룬다?

“한 사람이 독점하는 시간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공유하고 이용할 수 있게 끔요.”

언뜻 들으면 무슨 말인가 의미를 헤아리게 한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단유의 말은 너무나 혁명적이다. 시간은 인간이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버린 노인들에게 시간이란 초월적인 그 무언가였다. 그런데 그 시간을 사람들이 이용한다?

“아이들이 그 시간을 이용할 때, 변화는 더 크게 일어날 겁니다.”

기계로 인한 삶의 편리함은 그저 편리함에 그치지만, 시간을 소유함으로 인해 삶에 ‘효율’이 생긴다. ‘효율’은 비교적인 수치이며, 상대적이다. 비교와 상대로 인해 ‘개선’이 생기고, ‘변형’이 생기며, ‘변화’와 ‘개혁’, 그리고 ‘혁명’이 나타난다. 산업 혁명이 그러했듯. 프랑스 혁명이 그러했듯. 역사에 있었던 ‘혁명’이 그러했듯.

“그렇다면 너는 왜 이 시점에 떠나는 것이냐? 충분히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냐?”

에저가 물었다. 단유의 말대로라면, 적어도 시계탑이 건설되고 시계가 활용되는 것을 지켜본 뒤에 떠나야 하지 않은가? 마치 도둑이 현장을 들키기 전에 떠나려는 모양새로, 서둘러 떠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단유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말았다가 떼었다.

“두려움이 생겨서요.”

“두렵다?”

“욕심도 생기고요.”

촌장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단유를 바라보지만, 대답이 이어지질 않았다. 마을의 변화가 계속되고, 자신의 생각대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마을에서 생기는 변화에 아이들이 호기심을 드러내고, 그 호기심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때로는 그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신이 메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식으로, 사상으로, 혹은 행동으로. 그리하여 아이들이 미래를 꿈꾸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자라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욕심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머무른다는 것이 욕심이다. 한순간에 변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 시곗바늘이 돌아가야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 이곳에 영원히 머무르게 될 것만 같은 두려움. 시곗바늘이 돌아갈수록 두려움이 커질 것이다.

시간은 때로는 축복이지만, 때로는 저주이기도 하다.

“돌아가야죠. 제가···있던 곳으로.”

고개를 숙인 채로 나직하게 자기 고백을 읊조리는 단유에게 물음이 던져졌다.

“돌아가기로 한 것이냐?”

“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아무것도 얻지 않은 건 아니에요.”

새로운 마법을 얻기도 했고, 책으로만 보던 것을 직접 만져보기도 하고 만들어보기도 했다.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런 경험은 결코 손쉽게 얻을 수 없다.

특히 미래를 꿈꾼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비록 꿈 없이 살아온 단유였지만, 그래서 마치 놀이터의 아이들처럼 그저 반복된 일상 속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듯 ‘생존 게임’을 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투영한 모습에서 단유는 자신의 꿈을 엿보았다.

“너무 귀한 것을 얻었는걸요.”

“그래도 시계탑이 완성되는 것은 보고 가지 그러냐?”

시계탑이 완성되는 순간, 그리고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순간 단유는 떠날 수 있을까?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이 마을에서 시계탑이 변화의 상징, 역사의 시작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어쩌면 저의 욕심이겠죠. 욕심은 채워지는 순간, 또 다른 욕심으로 변해서 절 유혹할 거예요. 그러면, 전 영원히 떠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떠나겠다고?”

“네.”

바닥을 내려다보던 단유의 위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더니 망토를 뒤집어쓴 사람이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누구?”

“맞네. 널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거라더니, 정말 재밌었어.”

“무슨 말이죠? 아니, 그보다 누구시죠? 촌장님은요?”

단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훈훈한 기운이 올라오던 노인 회관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집 안에 서 있다.

“여긴 어디죠?”

“흠. 별로 좋은 질문은 아니군.”

“여긴 어떻게 오게 된 거죠?”

후드를 뒤집어써서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끊임없이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는 기분 나쁜 사내였다.

“넌 알고 싶은 게 많구나?”

“무슨 말이에요?”

“이것 봐봐. 넌 모든 게 질문이야. 사실 좋은 습관이지.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건 말이야. 하지만 질문도 쓸모있는 질문이 있고, 쓸모없는 질문이 있어.”

“어떤 게 쓸모있는 질문이란 거지요?”

“늘 그렇게 분석하려고만 드는군. 시계를 만들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겠지.”

“네?”

“네가 말한 모든 것에 답이 있잖아?”

단유는 동문서답에 질릴 것 같았다.

“당신이 하는 말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여긴 어디죠? 난 어떻게 여기 온 거죠?”

“넌 두려움이 많은 친구야. 모든 걸 두려워하지. 그중 하나가 바로 시간이지.”

“제가 시간을 두려워한다고요?”

“말은 잘하더구나. ‘시간을 이용하면 변화가 생길 것’이다!”

망토 사내의 거친 웃음소리가 듣기 불편하다.

“하지만 정작 너 스스로는 시간을 통제하지 못해 불편하고 어려워하지 않았더냐.”

“통제?”

단유는 자신이 시간을 통제하려 했던가 떠올려보았지만, 딱히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지. 마치 그냥 흐르는 시간을 참기 힘들어하는 것처럼.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미친 듯이 시간을 사용해. 한 시간? 일 분? 일 초?”

그게 바로 효율이 아닌가? 누구에게나 공평히 흐르는 시간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

“누가 뭐래? 다만 너의 강박적인 사고에 미소를 짓게 될 뿐.”

사내가 팔을 활짝 펼치자 망토가 펼쳐지며 거대한 암막이 드리워진다.

“두려움 많은 아이야. 그래서 넌 너의 주위를 벽으로 두르고 마음에도 벽을 둘렀느냐?”

벽이라니?

“그러니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냐? 너의 과거도, 너의 미래도.”

“···무슨 뜻이죠?”

“모든 건 명명백백 드러나 있다. 다만 니가 보지 못할 뿐.”

사내에게서 공간을 울리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신(迷信)을 믿으니, 자신(自信)을 잃은 아이야.”

미신?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니 남은 건 꿈이라. 하지만 그 꿈(迷夢)이 헛되니 낭비한 세월을 어찌 붙잡을까?”

“제가 시간을 낭비했다는 이야긴가요?”

그렇지 않다. 자랑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가? 누구는 영재라고 했고, 누구는 천재라고 불렀지만, 자신이 그런 영재도, 천재도 아니란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저 노력했기에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어찌 자만(自慢)에 빠지지 않고 버틸까.”

자만이라니. 겸손하려고 노력하진 않았어도, 자만은 경계하며 살았다고 자부한다.

“번번이 돌아갈 길 없는 곳에 이르러 헤매는 아이야. 이것들이 다 너에게 무슨 의미가 있더냐? 무수한 질문과 질문의 답을 찾다가 결국 넌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상처만 새기고 돌아가길 반복하는구나.”

“당신의 말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이해하길 힘들어하는 것이냐,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냐.”

망토를 천천히 내리니 그 뒤에 선 빛이 단유의 시야를 가린다. 그 빛이 너무 눈부셔 손을 들어가리니 이명(耳鳴)과도 같은 울림이 들린다.

“지금 네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가장 바라는 것?’

단유는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이곳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떠나면 갈 곳이라도 있느냐?”

당연히 있다. 자신이 왔던 곳, 자신의 집.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 곁으로.

“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느냐?”

당연히 있다. 명수, 가족과도 같은, 형제보다 가까운,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친구. 하은, 누나보다 살갑고, 엄마보다 다정한, 세상 누구보다 자신에게 많은 지혜를 나눠준 선생님. 그리고.

“아아.”

잊고 있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지? 왜 그 이름을 잊고 지냈던 것일까? 좋아한다고 말해놓고선, 마음으로 가장 경애한다고 되뇌어 놓고선 어떻게 그 사람을 석 달간 잊고 지냈을까?

“겨우? 네가 여기 머무른 석 달간 앞서 말한 이들을 제대로 떠올린 적이나 있더냐?”

없었다고? 생각을 안 했다고? 정말?

“알겠느냐? 넌 말로만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했지만, 실은 네 마음의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너의 진실이 진실이 아니고, 너의 자신이 자신이 아니다. 네가 말하는 감정들이 과연 너의 감정들이냐? 아니면 타인의 감정들이냐? 네가 진실로 느끼는 것들이 무엇이냐? 결국 넌 네 마음의 위선도 제대로 볼 용기가 없었던 아이였느니.”

단유는 쪼그리고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혼란스럽다.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더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