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Nigh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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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화탄소 중독 증상으로 착각한 가론과 에렘이 단유를 들쳐메고 밖으로 나왔다. 이전에 단유가 일산화탄소 흡입으로 인한 어지럼증이나 두통, 구역 등의 증상이 발현되면 그 즉시 환기를 시키고 환자는 공기가 깨끗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맑은 공기를 쐬도록 해야 한다고 일렀던 것을 기억해낸 두 사람이었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루치드? 괜찮아?”
가론의 등에 업혀 있던 단유가 가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요.”
여전히 통증을 느끼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였지만, 손을 내저으며 뜻을 전달했다.
“괜찮아? 정말?”
“네, 괜찮아요.”
땅에 내려준 후에도 단유는 무릎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지만, 에렘이 곁에서 부축해 준 덕에 꼴사나운 모습은 피할 수 있었다.
“난 또 네가 전에 말한 흑연(黑煙)에 쓰러진 건 줄 알았다.”
이래서야 무서워서 어디 석탄을 다루겠는가? 가론이 공방 안의 석탄 더미를 돌아보며 걱정을 표시했다.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야?”
“제가 전에 주의해준 사항을 잘 기억하고 계시니까요.”
“설마 시험해보려고 연기한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니에요.”
단유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가론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왜 그랬던 거야?”
“···그냥 머리가 좀 아팠을 뿐이에요.”
좀 아픈 게 아니라, 머리가 터져나갈 것처럼 아팠던 것이지만 굳이 걱정을 끼칠 필요는 없으리라.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가론은 몸이 불편하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며 단유를 돌려보냈다. 단유도 기력이 다한 것 같아 그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집으로 돌아온 단유는 아궁이에 불을 지핀 후, 바람을 약하게 불어넣어 불길을 빨리 일으켰다. 풀무질하듯 바람을 몇 번 집어넣으니 금세 방이 따뜻해졌다. 실내로 들어와 방 한가운데 드러누우니 절로 눈이 감기고 의식이 점점 멀어진다.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잠부터 자야겠다.
단유가 눈을 떴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아까는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해 눈을 감았었는데, 이번에는 미칠 듯이 허기가 졌다.
‘먹을 게 있을까?’
아주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방’을 자주 찾게 되면서 소일거리만 들고 올 뿐 아니라 간단하게 먹을 간식거리들을 싸 가지고 오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그날 가져와 그날 다 먹는 식이지만, 더러 남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남는 것들을 바구니에 담아 벽 한쪽에 걸어놓곤 했다. 그 바구니를 뒤졌더니 먹다 남은 파이 반쪽이 남아 있었다. 이거라도 감지덕지다. 단유는 파이를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곧 겨울바람이 단유의 외출을 반겼다. 개천 위를 훑다가 들이닥친 바람이라 그런지 더 차갑게 느껴졌다. 단유는 몸 주위로 바람의 벽을 둘러 차가운 기운이 닿지 않게 했다. 단유 주위에 회오리처럼 바람이 움직이니 바닥의 모래가 슬쩍 말려 올라간다.
단유는 그대로 개천으로 향했다. 개천의 물을 두 손으로 떠서 입을 축인 뒤,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검은 개천을 들여다보다가 적당한 지점에 회오리를 일으켰다. 고깔 모양의 회오리는 강력한 흡입력으로 물을 빨아들여 위쪽으로 올라가게끔 하였다. 물론 물만 빨려 올라가지 않고 그 안의 여러 가지 것들, 예를 들면 떠내려오던 나뭇잎이나 바닥에 얕게 박혀있던 수초나 작은 돌멩이, 그리고 더러 물고기들이 말려 올라왔다. 사람이 있을 때는 못하지만 보는 사람이 없을 때는 이렇게 마법으로 물고기를 사냥했다. 개천을 몇 번 휘젓다 보면 송사리는 물론 손바닥만 한 민물고기도 몇 마리씩 낚아 올릴 수 있었다.
이번에도 개천을 휘저으니 공중에서 파닥거리며 정신없는 물고기 몇 마리가 보였다. 발치에 뒀던 바구니로 ‘이동’된 물고기가 3마리 정도 되었을 때, 단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화로에 불을 붙이고 물고기를 구워 먹었다.
3마리를 모두 먹고 나니 그제야 허기가 가셨다. 두 손을 뒤로 짚고 상체를 젖히니 낮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부랴부랴 만든 지붕이라 허접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굵은 겨울나무 가지를 엮어 만든 지붕이라 쉽게 바람에 날아가진 않을 것 같았다. 지붕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의 찬 공기도 실내의 공기 순환에 도움이 되니 나쁘지 않았다.
허기도 해결하고 정신도 맑으니 이제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을 확인해 볼 차례다.
‘탄소’를 떠올리자 머릿속에 명확하게 ‘이미지’가 떠오른다.
‘포르마(forma).’
핀체노의 설명을 되새겨보면, ‘라티오’에 존재하는 ‘원형’이다. 그 자체로 완벽한 의미를 내포한 원형의 이미지는 ‘샤락티라스’-고유성질을 모두 파악해야만 ‘아나그노리시’-인식이 된다. 즉, 단유는 탄소의 원형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간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물질의 원형을 파악한 사례는 이번이 최초였다.
단유의 머릿속에 떠오른 탄소의 이미지는, 예를 들면 빛과 같았다. 흰색에 가깝지만 달빛처럼 은은하고 별빛처럼 눈 부시지 않은 빛이었다. 하지만 광원(光源) 속에서도 뚜렷이 그 모양이 구분되며, 그 속에 탄소에 관한 무한한 정보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단유가 지금껏 공부한 내용들을 정리하기 위해 써내려갔던 지식이 담긴 노트가 그 빛 원자에 함축된 것 같은 모양새라, 단지 그 이미지만 떠올렸음에도 탄소에 관한 정보들이 한순간에 파악된다.
“으음.”
하지만 단유는 이내 눈을 감고 고통에 이맛살을 찡그렸다. 한꺼번에 수많은 정보가 출력되는 상황에서 뇌가 감당하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오랫동안 떠올리고 있기가 힘드네.’
그래도 이왕에 떠올린 김에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최초의 구현(具現)마법인데.
핀체노가 제일 처음 설명한 마법도 구현마법이었지만, 단유가 이제껏 사용한 마법은 재현(再現)마법이었다. 물질의 고유성질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이 쉽지 않은 탓이었다.
다시 포르마를 떠올린 단유는 해당 이미지를 연속으로 떠올리며 각각을 결합시켜 나갔다.
‘사면체 구조였던가?’
눈을 감고 집중하는 단유의 이맛살이 재차 찌푸려졌지만, 이번에는 꾹 참고 계속 작업을 이어나갔다. 수십 개에서 수백 개로, 수천 개로 확장해나가며 이미지를 결합시켜 나가니 점차 거대한 구조물이 만들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머릿속을 꽉꽉 채우고 있던 정보들인데 결합이 이어질수록 수많은 정보가 갱신되고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뇌가 마치 고압에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터질 것만 같았다.
「sp3 오비탈 구조, 12.01 g/mol, 굴절률 2.418」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질 때쯤, 단유는 ‘챕터’―성질 추가를 중단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진 ‘피구라’―특정 성질에 의해 정의된 이미지―를 ‘컨슈메’―재현해냈다.
머리를 압박하던 그 통증이 무색하게, 소리 없이 나타난 하얀 결정이 공중에 아래로 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그 결정을 집어 올리니 손가락 한 마디보다 조그맣다. 피식, 웃음 지은 단유는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최초이지 않은가. 언젠가는 핀체노가 컵을 마법으로 만들어냈던 것처럼 특정한 형상의 물체도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턱 끝으로 떨어질 듯 매달린 땀방울을 소매로 훔쳐낸 뒤, 단유는 보석‘들’을 지붕을 엮고 있는 나무 기둥에 박아 넣었다. 화로의 불빛이 흔들릴 때에 맞춰 영롱한 빛깔을 반사 시켜 보인다.
처음의 결정을 만든 이후, 총 7개의 결정을 더 만들어낸 단유는 달리 둘 곳을 찾다가 나무에 박아넣기로 했다. 천장에 박힌 일곱 개의 결정이 마치 별빛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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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날 무렵, 변두리에 짓던 공방이 완성되었다. 내부의 작업장도 미리 계획한 모양에 맞게 새로 지어서 작업의 효율을 최대한 높일 수 있게 꾸몄다.
“이건, 꿈의 대장간이야.”
가론이 몽롱해진 눈으로 실내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게 대장간이라고?”
우중충한 대장간의 이미지와 달리 새로 지은 공방은 천장이 높기도 하거니와, 벽돌을 야무지게 쌓아 올려서 언뜻 봐도 견고함이 보통이 아니라 아잘과 론은 그저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구경할 뿐이었다. 게다가 벽에는 도구 걸이용 타공판을 설치하여 다양한 공구들을 매달아 둘 수 있게 했는데, 론이 가장 탐내는 물건이었다.
“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굴러다니지 않도록 정리해두면 보기도 깔끔하지만, 작업 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간단하게 철판에 구멍을 뚫고 그사이에 고정용 핀만 꽂으면 쉽게 도구들을 걸 수 있도록 한 그 제품을 본 아잘과 론이 선주문을 넣었다.
“이런 곳에서 그저 농기구들만 만들기엔 너무 아까운데?”
아잘의 물음에 가론이 피식 웃었다.
“이제는 모양만 같다고 똑같은 삽이 아니야.”
“무슨 말인가?”
가론은 씩 웃더니 진열대에 올려놨던 낫 두 개를 들고 오게 시켰다. 에렘이 한 개의 낫을 붙잡고 작업대 위에 올렸다. 가로로 눕힌 낫 위로 가론이 망치를 들고 내리치니 낫이 쨍,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깨져 버렸다.
멀쩡한 낫을 왜 부수나, 싶어 아잘과 론이 어리둥절해, 할 때, 가론은 다른 낫을 다시 작업대 위에 올려두고 망치로 똑같이 내리쳤다. 망치를 자랑할 모양인가, 라고 생각할 때 앞서와 같은 금속 마찰음이 들렸다. 하지만 이번의 낫은 깨지지 않았다.
“응?”
가론이 입꼬리를 늘리며 다시 한번 망치를 내리쳤으나 낫은 깨지지 않고 대신 약간 휘어졌다.
“이런, 여기를 받치고 있어서 휘었나 보다.”
쯧, 혀를 차던 가론이 낫을 들어 이리저리 쳐다보는데 아잘과 론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가론과 낫을 지켜보았다.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어 아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찌 된 건가? 어떻게 부서지지 않은 거야?”
아잘의 상식으로 철은 세게 두드리면 깨지는 게 옳다. 웬만큼 두껍게 만들지 않는 이상, 낫이나 칼과 같은 얇은 제품은 사용 중에 부러지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데 방금은 망치로 두어 번을 내리쳤는데도 깨지기는커녕 겨우 휘기만 할 뿐이지 않았는가?
가론이 너털웃음을 짓더니 에렘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는 아잘의 물음에 답을 했다.
“지난 겨울 내내 루치드랑 아들 녀석이랑 다 같이 쇠를 시험하지 않았나?”
“그럼 진짜 그 실험으로 이런 쇠를 만들어냈다고? 다른 금속으로 만든 게 아니고?”
이 정도면 철이 아니라 다른 금속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루치드 말로는 이게 ‘강철(鋼鐵)’이라더군.”
“정말 대단하군.”
쇠가 다 좋은데 종종 너무 쉽게 깨져나간다는 게 문제였다. 밭을 매다가 돌에 치이면 쟁기날이 날아가고, 도축을 위해 칼질을 하다가도 간혹 단단한 뼈에 날이 걸리면 날이 부러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강철로 만든다면?
“외부의 어떤 마을에서도 이보다 단단한 쇠는 다룬 적이 없을걸?”
“그 말은 장사를 본격적으로 해보겠단 소린가?”
“아무렴. 이런 칼은 값을 높여 불러도 살 사람이 있을 거야.”
아잘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론의 생각에 동의했다. 아잘과 론처럼 도구를 자주 사용하는 이들은 더더욱 그랬다.
“나라도 지금 당장 주문해야겠는걸. 이거 참. 친구의 새로운 작업장을 축하해주러 왔다가 주문만 잔뜩 하고 돌아가게 생겼어.”
론도 마찬가지라 모인 세 사람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단유가 공방에 들어오면 무슨 웃음소린가 궁금해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웃음을 지으며 타박하는 가론에게 단유가 미소 지으며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며칠 전 얻어간 종이가 들려 있었다.
“뭐지 그건?”
아잘은 궁금해했고, 가론은 조심스럽게 종이를 받아들었다.
“설계도에요.”
“설계도?”
단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절삭용 기계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