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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449화 (449/956)

Holy Nigh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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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도르래, 시계, 온돌, 자전거 등등을 만들어내다 보니 점점 더 많은 걸 시험해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마을 외곽에 놀이방, 이라는 이름으로 된 건물을 지어보긴 했지만, 이번에는 소규모 공장에 준하는 건축물을 짓고자 했다. 가론도 공방의 이전에 동의함과 동시에 기왕에 짓는 거 조금 획기적으로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는 말은 어느 순간 마을의 유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종이를 구해와서 단유가 나름의 구조를 생각하며 평면도를 그렸다. 각종 치수 등을 기재하며 평면도를 구성하자, 가론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에 가마를 만들 거고요, 여기에 담금질 통을 만들어놓으면 여기서 도르래로 끌어서 이쪽으로 옮기고 바로 물에 집어넣을 수 있게 되는 거죠.”

“괜찮구나. 그럼 풀무를 이쪽에 배치해야 하는 거냐?”

“풀무를 여기 배치하면 이동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이쪽에 공기구멍을 내서 길을 내고, 이쪽으로 풀무를 놓으면···.”

두 사람은 석판과 몇 장의 종이를 이용해서 의견을 교환하여 작업 공간의 효율을 올릴 수 있는 공방을 모델링 했다.

“물을 많이 써야 하니까, 이쪽에 짓고 여기서 물길을 끌어오는 방식도 좋을 것 같은데요.”

“물길을 끌어온다고?”

단유는 모델링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샘솟는 걸 느꼈다. 아이디어라고 해야 할까, 욕심이라고 해야 할까?

가론은 끝이 없이 나오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에 숨이 막힐 정도로 벅찬 동시에 흥분되었다. 단유의 설명을 들으며, 과연 인간이 꿈을 꾸면 어디까지가 한계인가를 궁금하게 여길 정도였다. 눈앞의 소년만 보면 마치 한계 따위란 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되도록이면 겨울이 가기 전에, 그러니까 마을의 노동력에 여유가 있을 때 하고 싶지만, 어쩌면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네요.”

“그 정도는 참아야지. 만약 이 공방만 만들어지면, 바깥에 우리 물건을 만들어 팔 때, 나도 한몫을 하겠다.”

그동안은 마을 내의 수요만 충당할 정도로 물건을 만들어낼 뿐이었지만, 만약 다른 어디보다 튼튼하고 강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팔아서 수익을 거두는 건 문제도 아니리라 생각됐다.

“니가 바로 금덩이로구나.”

가론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단유의 어깨를 퍽퍽 두드렸다.

눈이 오는 와중에도 마을 내의 변화는 계속되었다. 석탄의 발견만으로도 난방의 효율이 올라갔을 뿐 아니라, 나무를 자르고 가공하는 작업이 줄어 시간적인 이득이 생겼다. 이제는 마을의 몇 사람은 석탄이 충분히 가치를 한다는 것을 알고 그쪽으로 진로를 잡아 광부업으로 업종을 전환하기까지 했고, 덕분에 석탄 공급에는 문제가 없었다.

단유는 이번 일을 위해 몇 가지를 더 만들기로 했다. 무거운 자재를 높은 곳까지 쌓기 위해서는 기중기가 필수였다. 공방의 높이를 높이려는 것은 열의 순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인데 지붕을 높여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또 하나 만든 것은 벽돌이었다. 만약 석회암을 찾았다면 시멘트도 고려했을 테지만, 아쉽게도 석회암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벽돌로 벽의 견고함을 더해보기로 했다. 마침 석탄으로 화력의 도움도 받을 수 있으니 벽돌 생산도 이참에 시도해볼 만하다 여겼다.

벽돌을 본 아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돌을 만들어내다니!”

벽돌을 만들고 보니 단유는 꽤 많은 곳에 벽돌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당장은 건물을 짓는 곳에 쓰고 있지만, 길에 벽돌을 까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길에다 돌을 깐다?”

그렇지 않아도 길에 생긴 웅덩이나 얼어붙는 땅 때문에 보수가 급한 상황이었다. 벽돌로 바닥을 깔면 그런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이 지나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 와도 길에 물이 고이는 일은 없을 터이니 확실히 유용할 테다.

겨울 한가운데 시작된 건설 붐은 금광의 유행을 사그라뜨리게 하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온돌 난방식 집을 건설하는 것도 좋았지만, 우려하던 금 찾기 유행이 사라진 일이 더 좋았다. 게다가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에 벽돌로 만들어진 길이 생기는 것을 보고는 흡족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호오, 이런 길이 있다면 통행에 불편이 없겠구먼.”

“마을 전체에 이렇게 포장(鋪裝)을 할 예정입니다.”

“그래? 보기도 좋구나.”

바닥에 놓인 벽돌을 한 발로 통통 발을 굴러 밟으며 그 견고함에 웃음 짓는 어르신들 모습에 젊은이들도 흐뭇해했다.

온돌 난방식 집, ‘노인회관’은 비록 벽돌을 생산하기 전에 짓기 시작한 터라 벽돌을 이용할 순 없었지만, 대신 빠르게 공사가 완료되었다. 석탄으로 난방을 하다 보니 열효율도 좋아져서 단유의 집처럼 그냥 맨바닥에 앉을 수는 없었고, 그 위에 다시 진흙을 바르고 짚을 깔아야 했다. 허리가 불편한 이들을 위해 마차의 의자를 만들었던 방식으로 소파도 만들어 넣고, 의자도 구비해 뒀지만 대부분 어르신들은 앉아 있기가 불편하면 그냥 드러누워서 온돌을 즐겼다.

“여긴 우리가 관리하마.”

“어르신, 어르신들이 하기에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불편할 게 뭐 있나. 여기 ‘아궁이’에 흑석만 집어넣으면 될 일 아닌가?”

“너무 뜨거우면 다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때는 덜어내면 될 것 아닌가?”

노인들은 구태여 마을 젊은이들의 도움을 사양했다. 이 정도는 자기들끼리 해도 될 거라며 사양했는데, 사실 이전에 괜한 고집으로 반목했던 일이 부끄러웠던 탓도 있었다.

“자네들은 지금도 마을에 ‘포장 공사’ 때문에 일손이 부족하지 않은가? 거기 일도 바쁜데 괜히 우리한테 시간 쓰는 게 미안해서 그러니, 가서 일보게.”

노인들은 아궁이 옆에 마련된 삽으로 창고에 재워두었던 석탄을 한 삽 떠서 아궁이에 집어넣었다.

“거 참. 봐도 봐도 신기하네. 불이 저절로 알아서 붙으니 용하다 용해.”

“동생, 거기 추운데 서 있지 말고 불 넣었으면 어서 들어와.”

“네, 형님. 들어갑니다.”

삽을 석탄 더미 옆에 세워두고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노인회관 안으로 들어가는 노인이었다.

****

점점 심해지던 추위가 한풀 꺾이고 길가에 포장된 도로가 점점 늘어나던 무렵, 공방의 건설이 마무리되기 시작했다. 공방은 마을 변두리에 크게 지어 올렸는데 그곳에서 개천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단유는 직접 물길을 내는 작업에 동참했다. 그냥 땅을 파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치형의 벽돌을 구워 땅에 심는 공사까지 진행했다. 이를테면 복개천이다. 물론 서울의 개천들처럼 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관개수로 정도였다. 공방 사람들의 참여로 작업은 3일에 걸쳐 완성되었고, 졸졸 흐르던 물이 공방에 이르러 미리 만들어둔 구덩이에 담겼다. 그곳에서 물을 퍼서 사용만 하면 되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었다.

“이거 이런 식으로 해서 논에다가도 만들어두면 좋겠는데?”

아잘이 턱을 쓰다듬으며 묻자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땅이 얼어 있으니 하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날이 풀리고 나서 하는 거라면 몇 사람 정도만 투입되어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마을 외곽의 논밭에도 수로는 있었지만, 종종 수로 옆벽이 침식되어 흙이 무너지면 물길이 막히곤 했었다. 벽돌로 된 수관을 만든다면 적어도 그 점에서는 안전하겠다.

“이거 목마를 때 그냥 마셔도 되겠는걸?”

별로. 그것까진 권하고 싶지 않았다.

마을 바깥의 공방은 여전히 건설 중이었고, 가론은 그 건설현장에 직접 가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여전히 바빴다. 단유도 물길을 내는 공사를 도울 때와 공사 진행을 감독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가론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기존의 공방에서 가론은 단유와 함께 쇠와 석탄을 실험하는 일에 열중했다. 단유는 곁에서 가론에게 조언을 하며 실험을 도왔고, 가론의 큰아들이자 공방의 책임 기술자 중 한 명인 에렘(Errem)은 종이에 실험 내용을 기록하며 관찰했다. 단유는 특히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은 우리가 온도를 정확히 측정할 도구도 없고, 결과를 측정할 장치도 없어요. 오로지 가론 아저씨의 감에 의존할 뿐이죠. 그래도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내려면 에렘 형의 관찰과 기록이 중요해요. 그래야 이후에 똑같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석탄의 종류도 냄새와 연기 등으로 분류해보고, 어떤 석탄을 넣었을 때 화력이 센가, 그리고 어떤 석탄과 철이 반응했을 때 강철이 나오는가를 일일이 기록해야 했기에 에렘은 한 시도 눈 돌릴 틈이 없었다.

「코끝이 매워지며 눈이 따가울 정도의 연기가 나는 돌은 겉이 약간 투명하여 햇볕에 비추면 눈동자가 어렴풋이 보일 정도이다. 이 돌을 바닥에 문지르면 다른 돌에 비해 쉽게 부서지고 가루가 되는 경향이 있다. 가마에 넣으면 다른 돌과 비슷하게 불이 붙긴 하지만 불빛이 새빨갛고 다섯 걸음 정도까지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40분 정도가 지나면 열기는 세 걸음 정도로 줄어들고, 불빛도 약해진다. 1시간이 지나면 한 걸음 이내에서 작업해도 열이 나지 않을 정도지만 여전히 붉은 빛을 낸다. 그리고 이때쯤에 가장 새까만 연기가 많이 나고 냄새가 지독해지는데 몸에 굉장히 해롭다는 루치드의 조언이 있어서 실험을 종료한다.」

처음에는 그저 비슷하게만 보였던 석탄도 그 품질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채굴장에서도 각각의 석탄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 채굴되는 것임을 확인했다. 그런 실험을 통해 가론은 어떤 석탄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것인지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10걸음 정도의 화력을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가마에서 빼낸 쇳물을 부어 주물을 만들면, 망치로 내리쳐도 쉽게 찌그러지지 않는 쇠가 만들어진다.」

「8걸음의 화력을 내는 쇳물로 주물을 만든 뒤, 10분 이내에 세 번의 담금질을 하면 10걸음의 화력을 낼 때의 쇳덩이보다 더 단단해졌다. 담금질의 횟수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다음에는 여러 걸음의 쇳물마다 담금질의 횟수를 다르게 실험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좋아요. 이런 의견이 필요했어요.”

에렘의 관찰 기록을 살피던 단유가 에렘을 칭찬하자, 에렘이 히죽 웃었다. 솔직히 에렘의 나이가 벌써 22살이었다. 턱에 난 수염이 아버지보단 못해도 꽤 풍성히 자랐건만 어린 단유의 칭찬에 붉게 볼을 물들이는 순수함이 있었다. 가론 역시 관찰 기록의 내용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렘. 잘 했다.”

모처럼 아버지의 칭찬을 들은 에렘이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단유는 나무상자를 들춰 석탄의 상태를 확인했다. 석탄은 관리가 매우 중요한데 물과 접촉하면 물속의 산소를 흡수하여 서서히 열을 발생시키고 급기야 자연발화가 되기도 한다. 혹은 공기의 유동이 많은 곳에서 풍화 현상에 의한 자연발화가 벌어지기도 하기에 보관에 특별히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탄소와 산소의 접촉으로 산화작용이 발생할 때의 에너지가 문제란 말이지.’

단유는 석탄을 살피던 중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탄소의 결합식이 이미지로 떠올랐다. 탄소는 산소와 함께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기본적인 원소, 원소 중 녹는 점과 승화점이 가장 높은 원소, 최대 4개까지 안정한 형태로 결합 가능한 원자, 탄소 형상에 따라 무한한 종류의 화합물이 생성 가능하다는 지식들이 떠올랐다.

‘Fe3O4 + 4 C(s) → 3 Fe(s) + 4 CO(g), C(s) + H2O(g) → CO(g) + H2(g).’

탄소에 관한 여러 가지 지식들과 탄소 동소체들의 구조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쯤이었다.

“아.”

단유의 입술 사이로 바람이 새어 나오며 탄식과 같은 소리가 나오니, 바깥에 나와 시원한 공기를 쐬며 얼굴을 식히던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단유를 보았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냐?”

가론의 물음에도 단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가론이 석탄에 뭔가 문제라도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단유를 재차 불러도 단유에게서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단유는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마치 거대한 회오리가, 아니 토네이도가 대륙을 쓸어담을 듯 휘젓는 모양새로 거대한 지식의 소용돌이에 단유의 머릿속이 뒤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단유가 보고 배우고 익혔던 온갖 지식들이 그 회오리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회오리에서 특정한 정보들만이 뽑혀 나와 뇌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지고 있었다. 아니, 그런 기분이었다. 과거에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숫자를 계산해낼 때의 통증, 그 이상의 아픔에 단유는 머리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루치드! 루치드! 무슨 일이냐?”

놀라 뛰어들어온 가론과 에렘이 아무리 살펴도 단유의 찡그린 얼굴은 쉽게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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