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Nigh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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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은 오래된 습지 식물이 지압과 지열로 수분을 뺏기고 압력을 받아 만들어지는 퇴적암으로 오래된 퇴적층에서 발견되는 게 일반적이다. 지구의 경우, 딱히 지형이나 날씨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고르게 발견이 될 정도다.
‘그러니 이곳에서도 주의 깊게 살피면 찾을 수 있는 확률이 커.’
금을 찾는 것보다는 석탄을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굳이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를 금을 찾기 위해 겨울 산으로 오르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 움직이지 않았지만, 석탄은 찾아볼 이유가 충분했다.
특히 해가 잘 들지 않고 습한 지형이라면 산의 북면 비탈을 특정해 볼 여지가 있으니, 금보다 발견 확률이 높다. 게다가 이 마을에는 산을 자주 타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훨씬 수고로움이 덜하리라.
“여긴 어쩐 일이냐?”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레이도르는 산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단유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혼자 온 거냐?”
“네. 아저씨께 여쭤볼 게 있어서요.”
“뭘 말이냐?”
“아, 그전에 이거···.”
단유는 들고 온 먹거리와 옷가지들을 건넸다.
“아저씨 뵈러 간다고 했더니 아잘 아저씨랑 가론 아저씨가 주셨어요.”
친구들의 호의를 대수롭지 않게 받으면서 되물었다.
“그래서 뭘 물어보고 싶은 건데?”
“혹시 산에서 검은 흙 같은 거 못 보셨어요?”
“흙?”
“아니면 검은 돌멩이나.”
과거에 석탄을 ‘불붙는 돌멩이’ 혹은 ‘검은 흙’이라고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단유는 물었다.
“검은 돌멩이는 잘 모르겠고, 흙이야 거의 검지 않느냐?”
“그냥 물에 젖어 검게 보이는 흙이랑 다르고요. 정말 새까만 흙이에요.”
‘검은 흙’이란 두루뭉술한 표현만으로는 단유가 찾고자 하는 것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단유가 먼저 말한 것처럼 물에 젖은 흙도 검게 보이고, 죽은 동물이나 식물이 썩으면 그곳의 땅이 검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유는 사냥꾼이란 직업을 가진 이들의 속성을 잘 아는 편이다. 그들은 늘 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살피며 산을 타기 때문에 지형의 변화와 특성에 대해 거의 외다시피 하는 이들이다. 그러니 이질적인 무언가를 본 기억이 있다면, 분명 사냥꾼은 기억할 것이다.
과연 그랬던지, 곰곰이 생각하던 레이도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으니 본 것 같기도 하다.”
“그곳이 어딘데요?”
“이조츠(Izotz) 산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레이도르가 가리킨 곳은 제르아 오마에 가까운 산이었다. 레이도르의 산장에서 두 개의 고개를 넘으면 만날 수 있는 산이었는데 옆에 있는 높은 산의 그늘에 가려 여름에도 서늘할 정도인 곳이라는 레이도르의 설명이었다.
“괜찮으시면 안내 부탁드려도 될까요?”
두 개의 고개라는 말에 가볍게 생각했던 단유는 꽤 험한 지형과 깊은 골짜기 탓에 그곳에 가는 데만 무려 2시간이 걸렸다.
“이곳은 맹수들이 많이 사는 산이다.”
맹수들의 가죽은 꽤 인기가 좋아서 마을 사냥꾼은 물론, 더러 외부에서 온 사냥꾼들이 이곳까지 찾아올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기도 했고, 과거에 많은 맹수를 잡은 탓인지 지금은 보기 어렵다는 레이도르의 설명이었다.
이조츠산은 미리 경고한 바와 같이 꽤 추웠다. 겨울임을 감안하더라도 골짜기 하나를 넘기 전보다 체감상 5도 이상 온도가 낮은 것처럼 느껴졌다. 단유는 입고 있던 망토를 새로 여미며 앞서가는 레이도르의 뒤를 따랐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넌 산을 자주 타본 것 같구나.”
단유는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굳이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진 않았다. 그때의 기억은 행복보다 슬픈 마무리로 더 기억되는 아픔이었다. 그 표정을 읽은 것인지, 레이도르는 더 묻지 않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인 데다 짐승들도 잘 다니지 않는 길인지 여간 험한 게 아니었다.
“여기다.”
마치 바닥에서 자라난 것 같은 크고 뾰족한 바위를 지나 미끄러지지 않게 힘주어 바닥을 디디며 도착한 그곳에는 정말 검은 흙이 있었다.
“일단 기억나는 곳 중의 하나가 여긴데, 이게 네가 찾는 거냐?”
단유는 흙을 한 줌 쥐어 비벼보았다. 석탄이란 것도 글로만 배운 터라 이렇게 만져본들 알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석탄이란 게 흙이랑은 다른 광석이니 촉감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 쥐어보는 시늉을 했을 뿐이다. 조금 퍼석한 느낌이 느껴진다.
“불을 붙여봐야 알 것 같은데요.”
레이도르가 그 말을 듣고 배낭에서 부싯돌을 꺼냈다. 단유는 황급히 레이도르를 말렸다.
“여기서 바로 불을 붙이면 안 돼요.”
만약 여기가 대규모 석탄이 매장된 노천광산이라면 자칫 이 산을 홀라당 태울 염려도 있었다. 흙 한 줌을 쥔 채로 자리를 이동한 단유는 커다란 바위 근처로 이동했다. 적당히 넓은 바위를 찾은 뒤, 그 위에 흙을 올리고 부싯깃에 불을 붙여 흙 위에 불을 옮겨 보았다.
별 반응이 없어 보이는가 싶더니 곧 타닥거리며 흙에 불이 붙었다. 레이도르는 또다시 단유가 이룬 ‘기적’같은 현상을 눈으로 목격하게 되며 혀를 내둘렀다.
****
단유는 좀 더 본격적으로 매장된 석탄을 확인하기 위해 도구를 준비하러 마을로 돌아갔다. 처음에 올 때야 위치를 몰라 걸어왔지만, 다시 올 때는 ‘이동’ 마법으로 손쉽게 올 수 있었다. 가론에게 빌린 삽으로 위의 덮인 흙, 아니 석탄 가루들을 퍼냈다. 한참을 퍼내다 단유는 삽을 손에 놓았다. 파도 파도 계속 흙만 나오니 혼자서 무식하게 삽질을 하다가는 어느 세월에 광맥을 찾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다. 게다가 단유는 마법사지 않은가?
최소 범위의 공간을 설정하되 조금씩 깊이 파 내려가게끔 바람을 쏘아냈다. 압력에 비례해 쏘아져 나가는 공기의 힘이 커지니 마치 공기총의 원리와 비슷했다.
바닥을 뚫고 들어가던 구멍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더 깊이 뚫고 들어가려면 아마도 더 강한 압력과 힘이 작용해야 할 듯하지만, 단유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찾았다!’
대략 지면에서 2미터 즈음 파고 들어간 지점에 광맥이 있었다. 그 윗부분을 모두 덜어내니 시커먼 광맥 덩어리가 눈에 보였다.
단유가 건넨 석탄 덩어리를 신비롭게 쳐다보던 가론은 고로에 넣고 화력을 파악했다. 현대인에 비해 기초 과학 지식이 부족하고 상식이 없다 해서 멍청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과 불을 다루는 면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혜를 간직한 이가 가론이었다. 목탄보다 더 강한 화력을 뿜어내는 석탄의 가치를 몰라볼 수 없었다.
단유는 가론에게 석탄에 관한 몇 가지 지식을 전달했다. 특히 석탄을 태울 때 나는 연기가 매우 유독하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더워도 마스크를 꼭 하시길 바랍니다.”
당연히 연기가 잘 배출될 수 있도록 환기시설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그 외에 연기가 안 나는 ‘무연탄’과 ‘유연탄’의 구분이 있음과 쇠를 가열할 때 유연탄으로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정보를 전해주었다. 유연탄을 아탄, 갈탄, 역청탄 등으로 구분하지만, 그 구분법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어 대략 냄새가 너무 독하거나 하면 쓰지 말라는 정도의 경고만 해줄 뿐이었다.
이후에 가론은 공방의 몇 사람을 석탄 매장지로 보내 석탄을 캐 오도록 했다. 일단은 공방에서만 쓸 일이라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여긴 탓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에는 마을에서 몇몇 사람들이 석탄을 캐와서 팔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석탄은 목탄보다 훨씬 효율이 좋은 연료였다. 사람들이 석탄을 사용했을 때가 훨씬 따뜻하고 열이 오래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단유는 마을 사람들에게 석탄의 위험성을 여러 번 강조해야 했다.
단유는 가론의 공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작업을 지켜보았다. 철을 녹여 거푸집에 넣고 주물로 만들어내는 작업과 담금질을 하며 쇠의 강도를 시험하는 일까지 일일이 참여했다.
“일단 쇠를 녹이는 일이 꽤 쉬워졌다. 확실히 열이 강하니 쇠가 빨리 녹는구나.”
이마를 벌겋게 달군 가론이 차가운 바람을 쐬기 위해 공방 밖으로 나온 틈에 입을 열었다.
“쇠의 강도는 어떤 것 같나요?”
“아직 네가 말한 온도의 변화를 정확히 찾아내진 못했지만, 가끔 예전의 것과 비교해서 단단해진 물건이 만들어지곤 있어.”
온도 변화를 주기 위해 석탄의 양을 조절하여 쇠를 가공해보니 가끔 의도치 않은 강철이 나올 때가 있었다. 아직은 몇 번의 실험 과정 중에 나온 것이라 정확히 어떤 조건에서 나오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거듭 실험하다 보면 정확한 조건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고맙다.”
뜬금없는 가론의 인사에 단유가 가론을 쳐다보자, 가론은 괜한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얼마 전 첫눈이 온 뒤로 자주 눈이 내려서 거리에는 눈과 진흙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아주머니들과 조심성 없는 젊은이들의 뜀박질 모습이 보였다. 곧 점심시간이라 다들 식사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너를 못 믿은 것도 사실이다만,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구나.”
만약 처음부터 단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마음가짐을 달리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쩌면 자기도 마을 어르신들처럼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변하는 중이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르신들을 존경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런 어르신들처럼 완고한 고집과 아집으로 세상을 살고 싶진 않았다. 특히 가론은 ‘공인(工人)’이다. 공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창의성은 비록 다른 사람들이 몰라주더라도 언제나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가론이었다. 그래서 론이 나무로 시계를 만들어내는 것을 봤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가.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앞으로 아저씨가 만들어낼 물건들은 이 마을을 더 좋게 만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할지도 몰라요.”
“세계를?”
“제가 살던 곳에서는 말이죠. 쇠의 발달이 곧 기술의 발달이나 다름 없었어요. 쇠를 쓰지 않는 곳이 없을 지경이었죠. 심지어는 집도 쇠로 지었거든요.”
“집을 쇠로 지어?”
세상에. 그럼 얼마나 많은 쇠가 필요하단 말인가? 게다가 관리를 잘못하면 금방 녹이 슬어서 부서지는 쇠인데?
“물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어야 했죠. 하지만 인간은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발전을 해요. 한 번의 실수에서 잘못을 깨달으면, 그 다음번에는 잘못을 수정해서 실수하지 않으려 하잖아요. 그게 누적이 되면 결국 성공에 다다르는 거죠. 빠르거나 느리거나 결국 성공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반성이 중요하다. 반성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그렇군.”
가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일 것이다. 아이가 살던 곳에서는 시행착오를 겪었다지만, 자신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기 전에 미리 길을 제시해 준 이가 있지 않은가. 나갈 방향을 알려주니 그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성공에 다다를 시간은 훨씬 빠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밥부터 먹자고.”
이 정도 여유는 부려도 되리라. 쇠꼬챙이 같은 턱수염이 옆으로 벌어지며 하얀 이를 드러내는 가론이었다.
대장간에서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단유도 그저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직접 망치를 들진 않아도―망치를 드는 일은 꽤 숙련된 스킬이 필요했다―집게로 주물을 집어 고정해주는 등으로 일손을 도왔다. 그리하여 대장간의 작업 프로세스를 익힌 단유는 그 과정에서 몇 가지 개선점이 보일 때마다 가론에게 일러 주었다.
대장간에 도르래도 설치했다. 이동식 도르래를 설치해 주물을 옮길 때도 도르래를 이용했더니 사람의 힘이 덜 들게 되면서 작업의 효율이 올라갔다. 그리고 환기시설을 갖춘 고로도 새로 만들 필요가 있었는데,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게 되었다.
“마을 바깥에 대장간을 새로 짓는 게 어떨까요?”
소규모로 대장간을 운영할 때와는 달라졌다. 지금이야 간단한 물품을 만들면서 쇠의 질을 높이는 실험 정도만 할 뿐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하고 복잡한 제품을 생산해낼지 모르는 상황이니 이전은 불가피했다. 특히나 석탄을 이용한 고로의 화력은 인근 가게와 민가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렇구나.”
건물을 하나 짓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마을 중앙에 온돌 난방식 집을 짓는다고 마을 젊은이들이 매달려 있는 입장인데, 대장간까지 옮긴다면 일이 너무 많아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었다.
“대장간은 튼튼하고 안전해야 하니까, 조금 체계적으로 모델링을 해서 지어보면 어떨까요?”
가론의 머릿속에 스파크가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