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47화 (447/956)

Holy Nigh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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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을 범하지만, 그런 실수와 잘못들을 반성하고 고치며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역사, 라고 배웠어요.”

단유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살던 사회에서는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 사회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바로 아이들, 후손들이니까요. 그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들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서로를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고민하게 하는 일들을 가르치는 거죠.”

이제 에저 뿐만 아니라 모인 어른들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물고 단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엄숙해진 분위기 탓에 아이들도 쉽게 떠들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그냥 하자고 해서 되는 건 아닐 거예요. 다시 어른들의 역할을 거론해야겠죠. 특히 촌장님과 같이 마을에서 사람들의 이견을 조율하고 지침을 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의 역할이 중요한 거고요.”

에저는, 물론 마을에서 자신의 위치가 높은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거창한 이야기의 끝에 자신의 역할론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단유는 촌장의 역할에 대해 달리 부연하지는 않았다. 거기까지 가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라 생각했다.

“비록 제가 이 마을에 사는 사람도 아니고, 단지 외부자일 뿐인데다 식견이 부족한 아이에 불과하니 제 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닐 겁니다. 이 마을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말이죠. 하지만 촌장님. 부디 제 뜻을 곡해하지 마시고 마을의 발전을 위해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어떤 선택이 마을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제가 볼 때, 이 마을 누구도 마을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에저는 눈을 감았다. 온몸이 노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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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단유는 아잘의 공방을 방문했다. 달리 살 것이 간 것은 아니었고, 아잘이 방문을 요청한 탓이었다.

공방 앞에는 자전거 한 대가 서 있었는데, 자전거를 바라보는 아잘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왔구나. 다름 아니라 이 자전거를 타다가 다친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아잘의 말에 따르면, 자전거를 타고 길을 지나다가 미끄러운 길을 지나면서 중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가죽끈이 풀리면서 벗겨졌다는구나.”

“많이 다치지는 않았고요?”

“그 전부터 길이 미끄러워서 넘어지는 일들이 있었거든. 그래서 조심해서 타도록 주의를 준 상황이라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그나마 큰 부상이 아니라니 다행이긴 했다. 단유가 살펴보니 단순히 가죽 체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나무바퀴에 노면의 충격이 고스란히 실리는 구조이다 보니 바퀴도 많이 망가졌고, 바퀴의 중심을 잡아주는 고정핀도 많이 찌그러진 상태였다. 차라리 바퀴가 빠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가죽 체인, 이라고 단유가 부르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체인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벨트라고 불러야 옳겠다. 아잘의 특별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홈이 생긴 가죽 벨트에 기어의 톱니를 끼워 맞추는 방식이니 안정성에도 문제가 있다. 게다가 자전거에 가해지는 자잘한 충격이 가죽에도 전해지니 홈이 조금씩 늘어난 면도 보였다. 헐거워진 홈 때문에 기어가 제대로 힘을 전달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페달이 헛도는 현상도 있었으리라. 부품의 내구성이 단유의 예상보다 훨씬 짧은 것이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힘들겠네요.”

단유의 설명을 들은 아잘은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방법이 없는 거니?”

굳이 방법을 찾자면, 소재의 변화를 꾀하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기술을 접목해 보는 것이리라.

“다른 기술이라니?”

아잘은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신기술의 세례(洗禮)에 환호성을 지르고픈 마음을 꾹 참으며 물었다.

“기본적으로 자전거의 원리는 페달을 돌리는 힘을 바퀴에 전달시켜 구동시키는 거예요. 힘의 전달에 관한 여러 가지 기술들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고려해 볼 수 있는 거죠.”

단유는 작은 돌을 하나 주어서 바닥에 그림을 그려 보였다.

“원래는 이런 모양의 체인으로 톱니에 걸어서 힘을 전달시키는 게 제가 생각했던 방식이에요. 하지만 이런 체인은 소재의 문제도 있고 제작의 문제도 있죠. 이렇게 세밀하게 공정(工程)할 능력이 아직은 안되니까요.”

아잘도 단유 옆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서 그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이번 기회에 그 기술도 전수해주는 게 어떠냐?”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건 저로서도 가능성을 점치기 힘들어요. 이건 단순히 모양만 따다 만든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정확한 치수에 맞춰서 정밀하게 똑같은 부품들이 수십여 개가 만들어져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가죽 체인처럼 톱니바퀴에서 벗겨지거나 혹은 톱니를 상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런 일이 벌어지면 곧장 사고가 날 것이니 지금의 가죽 체인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방법은, 이것도 사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긴 한데 잘하면 가능할 수도 있어요.”

단유는 ‘힘의 전달’을 언급하다 떠올린 아이디어를 털어놓았다.

“이런 식으로 기어를 연결하는 방법이 있거든요? 힘의 방향을 바꾸면서 전달하기 때문에 이렇게 긴 축을 연결해서 돌리면, 여기가 맞물리면서 돌아가는 거예요.”

“이런 모양이 돌아간다고?”

“시계 기어의 응용판이죠.”

단유가 그린 것은 ‘베벨 기어’였다. 삿갓 모양의 기어 두 개를 맞물려 회전시켜 힘의 방향을 바꿔주는 기어였다. 페달과 뒷바퀴 사이에 체인 대신 긴 축을 놓고 축의 양 끝에는 베벨 기어 방식으로 기어가 맞물리게 한다. 페달의 회전운동을 축으로 전달시키고, 다시 축의 회전운동을 뒷바퀴의 중심축에 전달시켜 뒷바퀴가 돌아가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바지 끝단이 체인에 방해가 되는 일도 줄어드니까 좋죠.”

“이렇게 좋은 방식이 있다면 진작에 쓸 것이 아니더냐?”

물론 그렇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단유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건 난이도로 따지면 체인 제작 이상일 수 있어요.”

“이게?”

솔직히 체인은 정밀 사이즈의 주물과 일정 강도 이상이라는 조건만 맞는다면 제작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런데 베벨 기어와 같은 경우는 체인 이상의 정밀 가공이 요구된다. 기어비를 고려한 디자인 설계라면 단유가 어떻게든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치수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치수대로 만들어낼 기술이 없는 것이다.

역시 기술은 정직하다. 절대 새치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 이대로 해야 한단 말이냐?”

아잘에게 지금으로써는 어렵다, 고 말하려 했던 단유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아잘이라는 사람은, 지구에서라면 19세기,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의 지식과 기술을 지닌 시대의 인물로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호기심과 집념, 그리고 기술에 대한 선망은 현대인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교육을 받지 않은 현대인이라면 아잘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선진 기술의 도움도 있겠지만, 교육을 통해 사람은 발전한다.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단유는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단유는 개인적으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여러 공방을 오가며 현저히 낮은 기술력과 질이 떨어지는 제품들을 보며 선입견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만들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예상했고, 그래서 시도도 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만드는 방법과 거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단유는 아잘의 도움을 받아 론과 가론 등 공방 기술자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그리고 도량형에 대한 교육을 다시 했다.

“이거 아주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예요. 그리고 가장 기본이죠.”

단유는 나무판자를 칠판처럼 세워놓고 목탄으로 단위와 숫자를 써내려가며 설명했다.

“앞으로는 시계보다 더 복잡한 것들도 만드셔야 할지 몰라요.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죠. 의자 하나를 만들 때도 여러 가지 부품을 나눠서 조립하는 형태잖아요? 그런데 단위가 다르다면 각각의 부품들은 알맞게 조립될 수 없어요.”

언어가 서로 다르면 말이 통하지 않듯이, 치수가 다르면 부품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쇠를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죠. 지금이야 단순히 거푸집 하나를 만들고 주물을 부어 만들면 모두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는 정교한 물건을 만들기 어려워요. 가론 아저씨한테는 일전에도 설명해 드렸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는 시계를 쇠로만 만들기도 한다고요. 즉 거기에 들어가는 복잡한 부품들을 모두 쇠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론이나 가론은 이미 그 필요성을 절감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몇 번을 강조해도 좋을 말이라 단유는 불필요할지 모르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이후에 론에게는 정밀한 디자인의 설계도를 건넸다.

“이게 그 체인이라는 것이냐?”

“네.”

외부판과 내부판, 롤러와 체인 핀까지 모두 나무로 만들도록 했다.

“만약 잘 만들어진다면 자전거에 쓰인 가죽 대신 이게 쓰일 수 있어요. 그럼 보다 더 튼튼하고 효율적인 자전거를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내구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외부 날씨에 의해 나무의 변형이 일어나는 것도 고려하면 주기적으로 교체해야만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체인을 만드는 목적은 단순히 쓰겠다는 게 아니에요. 이런 제품도 목재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목재 가공술에도 한 단계 발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그리고 생각의 발전도 있을 것이다. 이런 복잡한 구조를 한 번 보고 만들어두면 어디엔들 응용할 곳이 생기지 않겠는가? 특히 원형 핀의 효율성은 다른 가구에 응용해도 좋으리라.

“그리고 가론 아저씨는 저랑 좀 더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요.”

단유는 기회가 난 참에 가론과 금속에 대해 연구를 해 보기로 했다. 사실 금속 분야는 단유가 잘 모르는 분야였다. 굉장히 얕은 수준의 지식만 있어서 어쩌면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제가 알기로 쇠에다가 어떤 첨가물을 넣으면 쇠가 단단해진다고 알고 있거든요?”

“쇠가 단단해져?”

“저도 정확히는 모르니까 실험을 해보는 게 어떨까요?”

얕은 지식이라도 가론에게는 도움이 된다. 지금보다 얼마나 더 단단해진다는 것인지 감은 잡히지 않지만, 더 단단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가론이 지금까지 해온 방식은, 굳이 말하면 단조(鍛造)였다. 철을 반 용융 상태로 달군 뒤에 망치로 두드리는 것이다. 거푸집에 부어 모양을 잡은 뒤, 철을 두드려 단단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완전한 형태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철은 굉장히 연하고 무른 금속이라고 알고 있어요.”

“맞다. 그래서 제대로 두드려주지 않으면 쉽게 구부러지고 끊어지기 일쑤지.”

“온도에 따라서도 금속의 성질이 변하기도 하고요.”

가론은 놀란 듯이 단유를 바라보았다.

“그런 것도 배우는 것이냐?”

물론 가론도 선대로부터 배운 바가 있으나, 그런 걸 대장장이도 아닌 단유가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저게 교육이란 것인가?’

단유가 말한 교육이 단순히 선대에게서 기술을 물려받는 걸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가론과의 대화로 단유는 단조의 절차와 담금질(quenching) 등의 열처리 방식을 대략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쇠에 어떤 첨가물을 넣어서 물성(物性)의 변화를 꾀하는 방식에 대해선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다. 망간이니 크롬이니 하는 것을 듣기는 했으니까. 문제는 망간과 크롬을 자연 상태에서 구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단유는 일단 단순하게 가기로 했다.

“일단 불의 온도가 더 높은 게 좋을 것 같아요.”

듣기로는 제철소에서 쇠를 녹일 때의 온도가 1,000℃ 이상이라고 들은 것 같았다. 그런 온도에 비하면 목탄을 이용한 지금의 방식은 꽤 낮은 온도다. 철의 불순물을 날려버리기 위해서라도(제선製銑) 더 높은 화력이 요구된다.

“석탄이 필요해요.”

“석탄?”

아무래도 금 대신 석탄을 찾으러 산엘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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