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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445화 (445/956)

개천에서 용났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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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제작에는 론 뿐만이 아니라 아잘, 가론 등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무엇보다 탈 것, 이라는 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가진 이들이었다.

시계 제작 때는 부품을 고정할 때 나무못이나 나무 핀을 만들어 사용했었지만, 이번에는 쇠도 적극적으로 사용해 보기로 했다. 역시나 복잡한 구조물은 만들기 어렵지만, 가론이 나름 적극적으로 나서서 단유가 지시하는 부품들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더니 만족할 만한 것들이 나왔다. 덕분에 자전거의 내구성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

가죽 안장을 만들 때도 아잘의 도움이 있었지만, 역시 그의 공이 가장 크게 들어간 곳은 바로 체인이었다.

초창기의 자전거는 체인은 물론이고 페달도 없었다. 수레바퀴를 줄인 것에 사람이 탈 수 있는 지지대를 올려 만든 자전거는 사람이 직접 바닥을 박차서 바퀴에 힘을 전달하는 방식이었기에 효율성 면에서 걷는 것보다 크게 나을 바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바퀴의 구동력은 체력이라는 약점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달리는 것보다는 빨랐지만, 현대식 자전거에 원리에 익숙한 단유가 굳이 그런 방식을 채택할 이유는 없었다.

크랭크-체인 방식을 선택한 것도 사실은 욕심일 수 있었다. 단순하게 만들자고 했다면, 그냥 크랭크-페달 방식으로 페달을 밟는 힘을 그대로 뒷바퀴에 전달하는 정도로 했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효율’을 무시할 수 없었던 단유는 ‘적은 힘으로 많은 거리를 갈 수 있는’ 효율이 없다면 자전거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조금 무리하더라도 크랭크-체인 방식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자전거 자체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도 힘을 줄이기 위한 선택의 이유가 되었다.

물론 쇠로 된 체인도 아니고 가죽으로 체인 역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설명을 듣던 아잘이 욕심을 부려보자며 오히려 단유를 채근했다.

기어의 비율과 거기에 맞게 체인이 맞물려 돌아가도록 길이나 간격을 계산하는 것은 단유의 몫이었고, 단유의 지시에 따라 만드는 것은 론과 아잘의 몫이었다.

“이건 어떠냐?”

아잘이 가져온 체인의 모양을 보며 단유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두 개의 가죽 벨트를 독특한 방식으로 꼬아 만든 체인은 언뜻 봐도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사이마다 일정하게 홈이 만들어져서 기어의 톱니를 조금만 높인다면 충분히 체인과 맞물려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을 듯했다. 활용성이 보이는 벨트라 차라리 거기에 맞게 부품을 제작하는 게 좋을 듯해서 단유는 다시 처음부터 계산을 하고 부품의 비율을 맞췄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했다면 며칠이 아니라 몇 달이 걸려도 만들지 못했을 자전거지만, 단유가 제시한 명확한 디자인과 정확한 계산, 그리고 여러 장인들의 손기술들이 어울려서 일주일 후 자전거가 만들어졌다. 물론 장인들이 밤을 새우며 만든 공로도 있었지만, 아무튼 놀랍도록 빠르게 만들어진 자전거였다.

“한 번 타보세요.”

하지만 장인들은 섣불리 시도하기를 꺼렸다. 타는 방식 자체가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자전거의 첫 시승의 영광을 단유에게 돌려주려는 마음씨 때문이었다.

“그럼 제가 먼저 타도 돼요?”

“그러거라.”

단유는 어차피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면 자신이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자전거에 올랐다. 지구에 있을 때 자전거를 몇 번 타보긴 했어도, 이렇게 무거운 자전거는 처음이라 과연 잘 굴러갈지가 의심스러웠다.

페달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균형을 잡았다. 나무 기어가 마찰을 일으키며 끼득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오오, 움직인다!”

“앞으로 간다!”

다 큰 어른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신기해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동네 꼬마들 같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신기한 모양의 ‘탈 것’이 몇 번의 발 구름과 함께 죽죽 나아가 멀리 달아나는 모습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작은 공터 앞에서 단유가 보이는 시연에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저런 게 저절로 움직이는 거야?”

새로운 ‘장난감’이 출현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몰려들 때쯤, 단유가 첫 시승을 마치고 아잘 앞에 섰다.

“어떠냐?”

“안장은 그런대로 괜찮긴 한데, 길이 좀 험해서 엉덩이가 조금 아프긴 하네요.”

“잘 굴러가든?”

“네.”

단유가 생각한 정도로 잘 나가는 건 아니었고, 나무 바퀴라 그런지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손잡이를 잡은 손과 엉덩이에 가해지는 충격이 작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이 정도 기술 문화를 가진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면 꽤 놀라운 수준이라 자평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아잘이 시승을 하기로 했는데, 그는 중심을 잡는 것이 꽤 어려웠다. 그래서 단유가 진땀을 흘리며 자전거 뒤를 잡아줘야 했다.

“넌 쉽게 타는 것 같더니, 난 계속 넘어질 것 같더구나.”

“익숙해지시면 편할 거고요, 뒤에 마차를 달면 뒤에 중심이 잡히니 괜찮을 거예요.”

이미 자전거 제작과 함께 마차도 제작 중에 있었다. 마차는 무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처음의 생각대로 2인승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우선 만들어야 하다 보니 마차 제작이 늦어졌지만, 단순한 구조라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가론과 론도 중심 잡기가 쉽지 않다고 여기며 자전거에서 내렸다.

“자네가 타보는 건 어떤가?”

아잘은 마침 구경나온 레이도르에게 권해보았다. 레이도르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 없네.”

“자신 없긴. 이 중에서 가장 날쌘 사람이 자네 아닌가?”

다른 친구들과 단유가 레이도르에게 시승을 권하자, 마지못해 자전거에 오른 레이도르였다. 단유가 간단하게 타는 법을 알려주고 뒤를 잡아주었다. 처음 얼마간은 익숙하지 않아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워낙에 몸 쓰는 일에 특화된 직업을 가진 이다 보니, 금방 자전거를 홀로 몰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던 페달 밟기도 익숙해지자 힘을 온전히 실어서 바퀴에 속도를 더했다. 놀라운 속도로 길을 따라 운전하던 레이도르가 방향을 바꿔서 돌다가 다시 가게 앞으로 돌아왔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다 두 발로 바닥을 짚으며 자전거를 세운 레이도르는 꽤 흥분한 모습이었지만 애써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는 티가 역력했다.

“빠르군.”

만약 잽싼 동물을 쫓아야 할 때, 이런 자전거가 있다면 전혀 꿀릴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연히 산에서 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그저 공상에 불과했지만 레이도르는 산에서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좋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아, 그렇구나.’

레이도르는 그제야 예전 단유가 말했던 이야기의 진의를 깨달았다.

단순히 편리한 물건을 만들어 쓴다는 게 끝이 아니었다. 이런 물건들의 사용으로 인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다는 게 바로 지금 자신이 느꼈던 ‘필요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너무나 오랜 세월을 변화 없이 지내다 보니 뭔가를 꿈꾼다거나 변화를 꾀할 일이 없었다. 그런 의지도 없었고. 그런데 짧은 순간이지만, 단유로 인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꿈꾸게 되었다. 단유가 만든 ‘온돌 방식’의 집이 지금의 집보다 훨씬 겨울을 지내기 편하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더 편한 방식의 주택 구조를 궁리하게 되었고, ‘자전거’의 놀라운 속도를 경험하면서 탈 것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더 편리한 생활 도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설령 그런 필요성을 느끼더라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해결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이 신비로운 탈 것이 그 생각을 거듭 궁리하여 만들어진, ‘인간을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안일하게 살았구나.’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그 방법을 찾으려 하지 않고 살았던 과거를 반성하게 된 레이도르였다.

그렇게 반성한 사람이 레이도르 뿐만은 아니었다. 아잘, 론, 가론과 같은 기술자들은 물론이고 곁에서 지켜보던 많은 젊은이들에게도 영감을 준 순간이었다.

****

“이게 뭐냐?”

노인이 인상을 쓰며 눈앞의 기물(奇物)을 바라보았다.

“일단 여기 타시면 됩니다. 어르신.”

젊은 청년이 노인 앞에 공손히 서서 마차 안에 탈 것을 권했다. 마차 안은 앉아서 가기 편하도록 털갈이한 가축들의 털을 잔뜩 집어넣어 푹신하게 만든 소파가 만들어져 있었다. 겉은 마을 최고의 장인 아잘이 손수 한땀 한땀 들여 세공한 가죽 시트로 편안하고 안락함을 동시에 전달해줄 수 있게 했기에 어른들이 보기에 낯설긴 해도 꺼려지는 바는 없었다.

“으흠.”

일단 겉으로 봐도 앉을 수 있게 된 모양이라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앉았다. 푹신한 소파의 탄성에 편안함이 느껴졌다. 입술 사이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잠시 어르신을 모시고 갈 곳이 있으니 잠시만 앉아 주십시오.”

“어딜 간다고?”

어딜 간다면서 앉으라니. 앉아서 갈 수 있다는 뜻인가? 젊은이는 노인이 ‘기물’이라 여겼던 마차 앞의 탈 것에 탑승했다. 들고 있던 뭔가를 뒤집어쓰길래 뭔가 했더니 모자였나보다. 다만 평소 보던 모자와 달리 얼굴 전체를 덮는 기괴한 모자였다. 눈구멍만 나와서 노인을 쳐다보는데 섬찟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눈웃음을 지으며 ‘편히 계십시오’라고 한마디 한 청년은 페달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페달을 밟기 시작하자 노인의 입에서 기함(氣陷)이 터져 나왔다.

“뭐, 뭐냐 이게?”

젊은이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혼자 탈 때보다 훨씬 힘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어서 다리에 힘이 많이 들었지만, 대화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자전거라는 겁니다. 사람이 걷거나 뛸 때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발명품’입니다.”

길이 고르지 않아 덜컹거림이 조금 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너무 빨라서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머, 멈춰라! 위험하지 않으냐!”

“위험하지 않습니다, 어르신. 천천히 달리고 있어요.”

젊은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운전을 하기 위해 달릴 때는 이보다 훨씬 빠르게 달렸다. 힘도 덜 들었고. 겨울 바람에 볼살이 갈라지는 느낌이 있었지만 손재주 좋은 아주머니가 만든 ‘안면 모자’ 덕분에 추위를 막을 수 있었다.

괘씸한 청년이 자신의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자전거를 몰아가자 노인은 어쩔 줄 몰라했다. 너무 빠른 탓에 감히 내릴 생각도 못 하고 마차의 벽을 손으로 단단히 짚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마차의 구조상 상체가 살짝 뒤로 젖혀지게 만들어진 터라 떨어질 리도 없고 만약 사고가 나더라도 뒤를 조심해야 할 판이었는데, 노인은 그저 뻥 뚫린 전면에서 쏟아지듯 지나쳐가는 풍경의 속도에 다리를 덜덜 떨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차가운 겨울바람 때문에 추워서 떤 것일 수도 있겠다.

마을 밖을 빠져나온 자전거가 덜컹거리는 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바로 단유가 만든 온돌 집이었다.

“다 왔습니다, 어르신. 내리시지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망토를 여미고 있던 노인이 젊은이의 부축을 받으며 바닥에 발을 딛자, 그제야 살 것 같았는지 깊은숨을 토해낸다.

“이, 이놈을···.”

“어서 오세요. 어르신.”

노인이 고개를 돌리자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아잘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의 수염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본 아잘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부득이하나마 어르신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 죄송합니다. 일단 날이 추우니 안으로 드시지요.”

“네놈이, 결국 이런 짓을 벌인단 말이더냐!”

“고정하시고, 일단 안으로 드세요.”

“시끄럽다! 네놈을 내가 가만히 두면···.”

아잘이 곤란해할 때, 아잘의 옆으로 지어진 집에서 솔솔 풍기는 따뜻한 수프 향이 노인의 코를 간지럽혔다.

“화를 내시더라도 일단 안에서 몸을 녹이신 후 내시지요.”

병 주고 약 준다는 표현은 없지만, 그 고약한 심사가 절절하게 다가오는 노인은 젊은이의 부축도 마다하고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고집을 부리려 해도 차가운 바람을 오래 맞고 있기에는 노구(老軀)가 견디기 어려웠다.

“여기서 신을 벗으시면 됩니다.”

“신을 벗으라고?”

갈수록 가관이다. 이쯤 되니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는 마음이 커졌다. 노인은 신발을 집어 던지듯 벗어젖힌 후 실내로 들어섰다.

이제까지의 놀람은 우스갯소리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노인은 놀라고 말았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 어설프게 나뭇가지를 엮어 덮어놓은 지붕 꼬락서니를 비웃으려 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발바닥을 통해 올라오는 은은한 열기와 차가운 겨울을 잊게 할 만큼 후덥한 공기에 순간 다른 세계로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벽마다 초를 여러 개 꽂아 마치 잔칫집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어서 오세요. 어르신.”

안에는 마을 젊은이들 몇몇과 아낙들, 동네 꼬마들 몇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노인이 입장함과 동시에 일어서서 반겼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낯선 얼굴의 청년이 노인을 반겼다.

“루치드, 라고 합니다.”

단유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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