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44화 (444/956)

개천에서 용났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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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넌 당분간 여기서 지내는 게 좋겠다.”

아잘은 바닥에 퍼질러 앉은 채로 진지한 이야기를 건넸다. 평소에 의자가 없으면 앉지를 않던 사람들도 이 집에만 오면 바닥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를 즐겼다. 때문에 기껏 준비해뒀던 앉은뱅이 의자는 언제부턴가 구석에 처박혀서 쓸 일이 없어졌다. 단유 본인도 이제는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할아버지들의 반대가 그렇게 심하신가요?”

오죽 심하면 단유를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까? 아잘의 말에 따르면, 단유가 할아버지들에게는 귀신보다 더한 존재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했다.

단유는 머리를 긁적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북적북적한 사람들 때문에 꽤 넓게 지었던 집이 지금은 너무 좁게만 느껴졌다.

소문이 나면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어머니들도 이 집으로 ‘놀러’ 왔다. 워낙에 아이들이 집에서 자랑을 많이 하니 궁금하기도 했고, 혹시나 아이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집을 방문했던 어머니들은 온돌방의 온기에 반해버렸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난 뒤, 아이들과 함께 광주리를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들고 온 광주리에 그릇들이 있다면, 어머니들이 들고 온 광주리에는 옷가지들이 있었다. 낡은 옷을 수선하거나 빨래할 옷들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겨울의 추위가 더해질수록 집 안의 온도도 점점 내려 가는 데다 벽난로에 불을 지펴도 난방 효과가 별로 좋지 않던 집에 살던 중이었다. 비록 지붕은 없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 때문에 망토를 벗어도 춥지 않다는 장점이 어머니들의 발길을 끈 이유였다.

“만약 그분들이 이 집에 오시면 생각들이 바뀌실까요?”

“그렇지 않겠느냐? 당장 저 사람들만 해도 매일 오는 것 같은데 말이다. 직접 보고 경험하면 생각도 바뀌실 것이다.”

단유의 시선을 따라 아잘도 주위를 둘러보며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어르신들도 이 모습을 본다면, 아니 이 집의 유용함을 깨닫는다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낙에 고집이 강하신 분들이라 쉽게 마을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번 모셔오려고 했지만, 오히려 지팡이를 휘두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물러서야 했었다. 게다가 마을 안은 분주히 움직이시는 분들이 마을 밖으로 나가려 하면 삭신이 쑤시고 무릎이 안 좋아서 오래 걸을 수 없는 연약한 노인으로 변하시니 방법이 없었다.

그런 완고한 고집불통은 이 세계나 저 세계나 똑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계탑을 반대하시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단유는 그분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단유네 반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있었다. 평소에도 성서 말씀을 자주 인용할 정도로 성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였는데, 한 번은 단유에게 전도를 시도하면서 대화가 깊어진 적이 있었다.

“요한 복음 20장 29절에 보면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했어. 모든 사람이 이성과 논리로 하느님을 재단하려 하지만, 사실 하느님의 존재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인간의 이성과 논리는 인간을 발전시켜온 도구야. 물론 아직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믿음을 강요할 순 없는 법이 아닐까?”

“신의 존재는 합리와 비합리로 구분할 수 없어. 오로지 절대적인 믿음과 진실한 기도로서 이루어지는 거라고.”

믿어라, 믿으면 복이 오나니.

하지만 철저한 과학 신봉자이자, 라티오(Ratio)의 신자(信者)로서 단유는 비합리적인 존재의 증명 하나 이루지 못할 이론에 마음이 흔들릴 까닭이 없었다.

그 친구도 딱히 단유를 반드시 기독교 신자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은 아니었던지,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교회 가서 목사님 말씀 들어봐’라는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했었다.

지금 그 친구와의 대화가 문득 떠오른 것은 마을 어르신들에게 이 집의 장점을 알리는 일이 마치 그 친구가 했던 ‘전도’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 탓이었다.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인간은 오감으로 경험하지 못하면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거꾸로 말하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느꼈을 때 믿음이 강해지기도 한다. 특히 완고한 어르신들이라면 그냥 말로 설득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리라.

“혹시 말인데요.”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이 있던 단유가 입을 열자, 아잘이 눈을 빛냈다.

“마을에 탈 것이 있나요?”

“탈 것?”

레이도르야 사냥꾼이고 아잘이나 가론 등은 공방의 기술자들이니 그랬지만, 농사를 짓는 다른 사람들은 가축을 기르기도 했다. 닭이나 돼지는 물론이고, 염소나 소도 있었다. 대부분은 집 안에서 키우거나 혹은 집 밖에 간이 축사를 지어 목줄을 매어두고 길렀다.

“말은 없나요?”

“말은 귀한 동물이야.”

큰 도시에서도 높은 분들이나 타는 귀한 동물이라 이런 마을에서 말을 기르거나 소유한 이는 없었다. 말은 오로지 달리는데 특화가 된 동물이라 이런 작은 마을에 쓰일 일도 별로 없었다.

“소를 타지는 않고요?”

아잘이 고개를 저었다. 소는 사람을 태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로 단유를 이해시켰다. 가끔 국어 교과서에서 보면 소 등에 올라타 피리를 부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모습을 연출하지 않나 보다.

‘뭔가 탈 것 같은 게 있다면 좋겠는데.’

아잘은 단유가 궁리하는 모습을 보며 이번엔 또 어떤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올지 기대가 돼서 저도 모르게 입술을 혀로 훔치며 기다렸다.

****

해가 지고 난 뒤, 뻥 뚫린 지붕으로 별빛이 겨울의 찬 공기와 함께 내려와 앉을 때 뚜벅거리는 걸음으로 레이도르가 나타났다.

“오랜만이네요.”

방 한가운데에 조그만 화로를 두고 거기에 불을 지펴 어둠을 밀어내고 있던 단유가 일어나서 레이도르를 반겼다. 레이도르 뒤에는 제토가 손을 흔들며 단유에게 인사했다.

레이도르는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석판 위로 올라섰다.

“아빠, 여기서는 신을 벗는 게 편해요.”

“신을 벗으라고?”

침대에 오를 때나 벗던 신을 여기서 벗으라고 하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레이도르는 아들의 말에 따라 가죽신을 벗었고, 제토가 냉큼 신발을 받아 입구 근처에 가지런히 놓았다. 이렇게 해놓으면 나갈 때 다시 신어도 따뜻한 신발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냄새가 조금 나긴 하지만, 그 정도를 불편해하는 건 여기서는 단유밖에 없었다.

신을 벗고 맨발로 석판에 발을 디디다가 놀란 레이도르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단유나 제토가 편안하게 석판 위에 앉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발을 바닥에 대니 그렇게 뜨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온기가 발을 감싸자, 한겨울 내내 산에서 추위와 싸우며 쌓였던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 느껴졌다.

“···신기하구나.”

마을에 식량을 구하러 들렀다가 가죽 공방의 아잘과 대장간의 가론, 잡화점의 체돌이 하도 떠들길래 궁금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직접 이렇게 체험하니, 그 신기한 체험은 둘째치고 다시 한번 단유라는 아이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여기 앉으세요. 뭐라도 드실래요?”

“먹을 것도 있느냐?”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심심할 때 입을 달래는 정도예요.”

단유가 신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바깥에는 돌로 만든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곳에 내장을 빼고 손질을 해놓은 물고기 몇 마리가 있었다. 긴 꼬챙이에 꽂아서 화로에 올리니 금방 생선구이가 만들어졌다.

“낮에 잡은 건데, 사람들이 좋아해서 몇 마리 안 남았네요.”

양념으로 쓸 게 없어 그냥 생선을 구워 먹는 정도였지만, 단유 말대로 입을 달래는 정도로는 충분했다. 그 밖에도 단유는 몇 가지 과일도 내놓았다.

“제법 세간살이도 갖췄구나.”

레이도르의 말에 단유가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주머니들이 조금씩 챙겨 주셨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단유 개인이 쓰라고 둔 것이라기보다는 아주머니들이 놀러 왔을 때 쓰려고 놔둔 것이라 해야 옳겠다.

접시에 생선과 과일을 담아 주니 제법 모양이 잡혔다. 생선 살을 조금 떼어 입에 넣으며 오물거리던 레이도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바닥은 따뜻한데 위는 차가워서 자기 불편하지 않으냐?”

“괜찮아요. 오히려 더 좋아요.”

“더 좋아?”

“몸은 따뜻하게 하고, 머리는 차가운 게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지구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 한의학적 상식이 풍부한 편은 아니라서 그 말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머리가 시원한 편이 생각을 깊게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 단유는 그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아무렴 어떻겠느냐마는. 어쨌든 마을에서의 일 때문에 니가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게 아닌지, 제토가 걱정이 많더구나.”

오는 길에 계속 제토가 단유에 대한 일을 늘어놓으며 걱정을 했던 모양이었다. 단유랑 같이 있을 때는 별로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아 몰랐다.

“괜찮아요. 보시다시피 넓고 깨끗하고, 따뜻하잖아요.”

하긴 이 겨울에 이렇게 따뜻한 곳에 잘 수 있다면 걱정은 없겠다. 제토가 이 집에서 자는 게 좋다고 자랑을 하길래 어느 정도일까 했는데, 이 정도라면 제토가 부러워할 만했다. 어색하게나마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 있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드러눕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이게 네가 하고 싶다던 그것이냐?”

레이도르가 산에 들어가기 전, 단유는 자신의 지식을 실험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반쯤은요.”

실상 이 집을 만든 건 만들겠다고 미리 계획을 세워뒀다기보다는 조금 충동적으로 시작한 일이라서 자신의 ‘실험’과는 조금 거리가 먼 것이었다.

“중요한 건 시계탑이죠.”

시계탑은 시간이 지나도록 건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리어 잘 됐다. 시계탑 건축에 대해 고민하고 정리할 시간이 마련되었으니까.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더 나은 방법, 더 좋은 시도를 고민해 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요.”

단유는 레이도르에게 시계탑 건설에 앞서 어른들에게 이 집과 유사한 집을 마을에 만들기로 한 계획을 알려주었다. 일종의 회유책이자 동시에 건축에 대한 기술을 마을 사람들에게 공유해줄 기회가 될 것이라는 단유의 이야기는 이미 아잘에게서도 들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막무가내로 진행할 수 없다.”

어른에 대한 존경과 공경은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품고 지내는 이들이 바로 마을의 젊은이들이었다.

“알아요. 그래서 그 어르신 분들을 이곳으로 한번 초대하고 싶어요.”

단유의 뜻은 이해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르신들이 이곳에 오는 것을 싫어하신다던데?”

“아마 거리도 멀고 움직이기 불편해서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쉽게 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쉽게? 어떻게 말이냐?”

“만약 말 같은 동물이 있다면 마차 같은 걸 만들어서 모실 수 있겠는데, 말이 귀한 동물이라면서요?”

“이 근처에서는 보기 어려운 동물이지.”

단유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인 뒤,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뭔가를 하나 더 만들어볼까 해요.”

“또?”

이렇게 많이 만들고도 또 만들 수 있는 게 있다고? 이제는 레이도르도 제르아 오마 너머의 세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뭔데?”

“그게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거긴 한데, 도르래처럼 힘을 적게 들이고도 많은 거리를 갈 수 있게 해주는 탈 것이에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레이도르 대신 제토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게 뭔데?”

“그게, 자전거라고 부르는 건데.”

단유는 두 사람에게 간단하게 자전거의 모양과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생선을 굽던 화로의 불빛이 세 사람의 얼굴 위를 일렁거리는 동안 밤이 깊어갔다.

초기의 자전거와 같이 단유가 만들려는 자전거도 일단은 나무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기어와 벨트로 힘을 전달하는 구동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일단은 아잘의 가죽으로 체인을 대신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시계를 만들며 기어에 대한 이해를 높인 론의 도움이 있다면 자전거의 기어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볍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사람이 타다가 부서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무게를 절감하는 것은 일단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바퀴가 마치 수레에나 쓰일 바퀴처럼 크고 묵직했다.

‘산악용도 이보다는 얇겠지.’

나무로 된 바퀴라서 내구성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능을 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향후에 다른 소재로 개선이 가능하다면 그때 생각해도 될 문제라 생각해 진행했다.

물론 자전거만 만들어서 어르신들을 태울 생각은 아니었다. 단유가 떠올린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자전거 인력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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