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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더 네임-443화 (443/956)

개천에서 용났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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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다 보니 비록 작은 손이더라도 벽이 높아지는 속도가 빨랐다. 제토와 어린아이 몇몇은 단유와 함께 진흙을 만들어 현장(?)에 투입하는 일을 도왔다. 진흙을 조물거리는 촉감이 좋아서 단유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엉덩이를 뗄 줄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얼굴이 사뭇 진지하기도 하고, 흥겨워하는 것 같기도 해서 단유가 물었다.

“재밌니?”

아이는 입을 옆으로 크게 벌리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응! 재밌어.”

“나도, 나도!”

가만히 살피니 벽을 쌓는 아이들도 힘겨워하기보단 재밌는 놀이를 한다는 듯 즐거워했다. 진흙과 돌을 같이 쌓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힘이 약한 아이들에게는 버거운 작업이기도 했다. 힘이 부치기 시작한 아이들은 진흙을 쌓는 대신 진흙에 쓸 돌들을 나르는 일을 했다. 그릇들을 담았던 광주리에 돌을 집어넣은 뒤 서로 맞들고 나르는 이도 생겼다.

하지만 하루 만에 끝날 일은 아니어서 적당한 시점에 단유는 작업 중단을 시켰다.

“씻자.”

아궁이 근처에 만들어놓은 돌 가마솥에 물을 길어다 놓았더니 뜨겁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데워져 아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물이 많지 않아 아이들이 충분히 씻기에는 부족했지만, 조금씩 나눠 쓰니 대충 더러워진 손과 얼굴을 씻어낼 수 있었다.

“우리 집에도 이런 거 있으면 좋겠어. 그럼 밤에도 안 추울 거 아냐?”

석판 위를 쓰다듬으며 열기를 느끼던 아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이 걸려 벽이 모두 완성되었다. 키가 되지 않는 아이들을 대신해 단유가 새벽에 나와 벽을 높이 쌓아 올렸다. 비록 지붕은 만들지 못했지만 바람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단유와 제토는 아침을 먹고 다른 이들보다 먼저 ‘놀이방’으로 향했다. ‘놀이방’이라는 명칭은 벽이 만들어진 이후,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는데 ‘놀이터’라는 이름 대신 불리기 시작했다.

제토가 산에서 땔감으로 쓸 나무들을 구해오는 동안, 단유는 간밤에 죽어가던 불을 살렸다. 아궁이 근처에 쌓아놓은 장작들을 집어넣고 불을 크게 지피면 두세 시간이 지난 후 석판이 데워졌다.

현대식으로, 보일러 관을 매설해 바닥을 데우는 방식을 택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전통적인 방식을 차용했다. 교과서에 나와 있던 구조를 떠올리며 단유 나름의 방식으로 만든 이 온돌방은 처음엔 구조적으로 너무 단순해서인지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열전도율이 좋지 않았다. 아궁이 근처는 너무 뜨겁지만, 연기가 나가는 빠져나가는 방향의 석판은 열이 미치지를 못했던 것이다.

시험에도 나왔던 문제라 ‘아궁이-부넘기-바람막이-개자리-굴뚝개자리-굴뚝’과 같은 순서를 외우고는 있었지만 실물로 보지 못하고 그저 이론으로만 아는 정도였던 단유는, 새벽에 홀로 나와서 석판을 들어내고 불길이 지나는 고래를 여러 번 수정해야 했다.

그런 노력 덕택인지, 벽이 완성될 때 즈음에는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난방 효과를 볼 수 있어서 단유는 기분이 좋았다.

“그냥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쓸 장작을 아궁이에 근처에 쌓아둔 제토가 바닥에 드러누우며 기분 좋은 소리를 입술 사이로 흘렸다.

“마을이랑 멀어서 불편할걸?”

“밤에 잘 때가 되면 이 집 생각이 난다니까.”

제토가 팔다리를 움직이며 파닥거리는 모습을 보니, 석판에 삼겹살이 구워지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먼지 많으니까 일어나.”

“따뜻해서 좋은데? 조금만 더 이렇게 있으면 안 될까?”

단유는 어깨를 으쓱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 가게?”

“금방 돌아올게.”

단유는 놀이방을 나섰다. 문도 없이, 마치 고대 움막처럼 뻥 뚫린 입구로 나선 단유는 산으로 시선을 던졌다. 겨울이라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경험 많은 사냥꾼도 사냥감을 쉬이 잡지 못하는데, 아무리 마법의 힘을 빌린다 해도 어설픈 단유로서는 사냥이 쉽지 않을 터였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좋지 않지.’

단유는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토가 깜빡 잠이 들었다 깨었을 즈음에 다시 놀이방에 나타났다.

“그거 뭐야?”

“물고기.”

결국 산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단유는 기왕에 물가에 있으니 낚시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물가를 거닐었다. 눈에 띄기만 하면, 건져 올리는 건 일도 아니니까.

“너무 작은 거 아냐?”

“그래도 맛은 볼 수 있을 거야.”

민물 생선이라 기생충이 염려되지만, 구워 먹을 예정이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그렇게 간단히 배를 채우고 석판 위를 정리하고 나면 적당히 석판이 데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아이들이 광주리를 들고 나타났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만든 집이라는 생각에 애착이 강해서인지, 벽이나 석판에 흠집을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 한가운데 몰리게 되었고, 단유가 뜨겁다며 건넸던 나무 의자도 마다한 채 석판 위에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이제 정말 소수의 아이들만이 사금 채취라는 이름의 놀이에 심취할 뿐, 대부분은 놀이방에서 그릇을 닦으며 추위를 피해 몸을 녹이는, 마치 찜질방에 온 아줌마들처럼 시간을 보냈다.

당연하지만, 단유와 아이들이 만든 ‘놀이방’은 또 어른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단유가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드러낸 아잘과 가론 같은 장인들은 물론이고, 부모들 역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놀이방을 보러 왔다.

“세상에.”

마을 사람들에게 그곳은 가히 신세계라 할 만했다. 바닥이 따뜻하니 지붕이 없는데도 추위를 느끼기 힘들었다. 아이들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궁둥이를 붙이고 있노라면 드러눕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였다. 하지만 차마 애들처럼 바닥에 눕지는 못하고 손바닥으로 석판을 쓸며 온기를 체감할 뿐이었다.

“도대체 이건 어떤 원리로 만든 거냐?”

단유는 아잘과 가론, 그리고 몇몇 호기심을 드러내는 어른들에게 원리를 알려주었다.

“이것도 니가 살던 곳에서 쓰는 방식인 거냐?”

단유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잘은 고개를 흔들었다.

“알 수 없구나. 도저히 같은 세상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지 않으냐.”

단유는 씁쓸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잘은 아궁이 옆에 쌓아둔 장작들을 보며 말했다.

“대신 땔감으로 쓸 나무가 많이 필요하겠구나.”

확실히 그런 점은 있었다. 과거 조선에서도 온돌 난방 방식 때문에 산림의 황폐화가 걱정될 정도였다지 않던가. 놀이방 하나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마을의 집을 모두 온돌식으로 바꾼다면 이 마을 주변의 산들이 모두 벌거숭이가 되고 말 것이다.

“요즘 어르신들이 마을의 변화에 관심이 많던데, 아마 이 집을 보면 또 무슨 말씀들을 하실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아잘은 말을 아꼈다. 하지만 옆에서 듣던 가론이나 다른 이들도 아잘의 걱정을 이해했다.

그분들에 비하면 어린 나이지만, 솔직히 이들도 아들이 장성해서 일손을 돕고 있는 처지였다. 말하자면, 살 만큼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마을 어르신들의 걱정과 우려를 모를 리 없다. 게다가 무슨 철 지난 반항기라고 어르신들과 반목하려 들겠는가.

다만 시계탑이든, 금을 찾는 일이든 전부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것일 뿐인데, 그걸 몰라주니 조금 섭섭하다는 감정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집은 어르신들을 위해서라도 하나 만들어두면 좋지 않을까요?”

단유의 제안에 어른들이 아이의 얼굴을 돌아보며 물었다.

“또 하나를 짓자고? 마을에?”

단유는 기왕에 ‘놀이방’도 만들었는데, ‘노인정’도 있으면 어떨까 싶어서 제안한 것이다. 이 마을의 건축술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 이런 온돌 방식을 각 집에 적용 시키려면 집을 아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건 아무래도 무리일 테니, 최소한 이런 난방 방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 정도만 만드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저도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사실 많이 미흡하거든요. 그러니 다 같이 만들면서 모두의 지혜를 빌려야 할 거예요.”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 지식을 전수하기에도 좋고, 또 직접 해 봐야 깨달음도 있다. 그리고 단유가 미처 몰랐던 지혜를 얻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제가 살았던 곳에서는 나이가 드신 분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그분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요.”

단유의 말에 아잘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공간이 있다면 나쁘지는 않겠다. 마을을 위해 헌신해온 그분들의 공덕을 기리는 차원에서라도 이런 집 한 채 마련해 드리는 것이 나쁘진 않으리라.

“그런데 이 집은 원래 지붕을 안 만드는 것이냐?”

뻥 뚫린 지붕으로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살짝 찌푸리며 손우산을 만들어 보이던 가론의 물음에 단유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지붕은, 사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잘 몰라서요.”

“난 또. 너희 동네에선 전부 지붕 없이 사는 줄 알았다. 지붕이 없으면 비나 눈이 올 때 어떡할라구.”

그러나 마을에 온돌식 집, 노인정을 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놈들아! 정신들 못 차리느냐!”

“아이고, 어르신! 왜 그러십니까, 대체!”

“네놈들이야말로 왜 그러는 것이냐! 지금 이 마을에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 게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걱정하지 마십쇼, 어르신. 그것들도 다 할 겁니다. 다.”

“이게 다 하는 것이냐! 이런 쓸데없는 짓거리나 벌여대는데 어느 세월에 마을 뒷산에 축대 세우고, 우물을 파겠느냐! 길 한복판에 파인 저 웅덩이는 보이지도 않고!”

“아버지! 언성 좀 낮추세요. 저희가 다 알아서 할게요.”

“어허, 이놈이! 아비가 말씀하시면 곱게 들을 일이지, 이제는 아비 말을 막어? 이제 좀 컸다고 아비를 무시하는 게야?”

“그런 거 아니래두요, 아버지. 제발 좀.”

터를 닦는 현장에 들이닥친 마을 원로들이 지팡이를 들고 팔을 부르르 떨며 고성을 질러대는 현장에서 젊은이들은 구슬땀 대신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어르신들, 이건 다른 일들보다 중요한 겁니다.”

한 중년 사내가 어르신들을 향해 사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어르신들은 콧방귀를 꼈다.

“이따위 쓸모도 없는 집을 짓는 일이 무에 중요하단 말이냐!”

“지금 당장 집 없어서 노숙하는 이가 있더냐, 세간살이가 불타서 내쫓긴 이가 있더냐?”

“어르신들을 위한 거라니까요?”

옆에서 끼어든 젊은 사내의 말에 또 한 번 어르신들이 역정을 냈다.

“필요 없대도! 니들이 감히 우릴 핑계로 이런 헛짓거리를 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그런 게 아닙니다, 어르신.”

처음 말을 꺼냈던 중년 사내가 다시 이유를 고했다.

“이 집은 단순히 우리가 지금껏 만들었던 집을 짓는다는 게 아닙니다.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하며 따뜻한 집을 만들어 보려는 겁니다. 겨울에 떨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집, 여름에 덥지 않게 지낼 수 있는 집, 깨끗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만들어 보고자, 그 기술을 시험해보는 집이란 말입니다. 이런 집을 만들어서 우리 마을의 기술로 삼아야 앞으로 더 좋은 집, 튼튼한 집을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능변은 아니지만, 진심을 담아 건설 취지를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집이 어때서 그러냐? 지금 집이 불만이더냐? 하기야 너희들은 전부 불만이었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 하여 밖으로 나돌지 않았느냐? 그래서 어떻게 했었느냐? 결국 돌아오지 않았더냐? 이것도 똑같다. 그래 다 좋다. 너희들이 우리들을 위해서 만든다고 한 말이 진심이라고 믿어 주겠다. 그렇다 한들, 그게 과연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느냐? 지금 니가 사는 그 집들이 그냥 뚝딱거려서 만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오랜 세월 동안 윗분들이 검증한 집들이었다. 비바람이 불어도 쓸려가지 않고, 따뜻한 일상을 지켜준 집이 바로 너희들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다. 그런데 그 집 어디가 부족해서 불만을 갖느냔 말이다!”

노인의 일갈에 젊은이들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자신들이 틀려서도 아니고, 노인의 말이 전적으로 옳기 때문도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이 상황이 답답해서, 대화를 계속할 이유를 찾지 못해 입을 다물 뿐이었다.

“정신들 차리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내일부터라도 뒷산 축대부터 다시 세워. 헛꿈 꾸지 말고!”

혀를 차며 뒤돌아서는 어르신들의 하얀 머리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인 젊은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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