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났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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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번호 79번의 금(金)은 녹는점이 1064.18℃, 끓는점이 2980℃이며 11족 6주기 원소로 분류된다. 외형적으로 노란색을 띠며 연성과 가단성이 있는 전이 금속으로서 길게 늘이거나 얇게 펴는 게 가능하다. 지구에서는 금본위제도의 기반으로서 화폐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사치재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공학이나 기타 다양한 부분에 실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금속이다.
단유가 금에 대해 아는 지식은 이보다 더 많다. 그런데 그런 지식과 별개로 직접 금을 본 사례가 없어 단유는 눈앞에 있는 알갱이가 금인지 혹은 금처럼 보이는 다른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만약 순수한 금덩어리, 아니 금 조각이었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가 가져온 알갱이는 모래에 금이 살짝 묻어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 정체가 헷갈렸다. 금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모래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머리를 긁적인 단유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네. 하지만 모래는 아니니까, 이거 들고 가서 어른들한테 물어보자.”
희망(?)을 잃지 말라는 단유의 이야기에 아이는 늘어뜨렸던 어깨를 추켜 올리며 돌아갔다.
단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일단 흔적이라도 발견했으니 최대한 많이 건져 올려서 마을에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단유가 멀찍이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차가운 물에 손을 집어넣기 싫어서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들고 오는 알갱이들을 감별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대략 15명 정도의 아이들이 물가에 조르르 앉아 있으니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자 그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위치에서 경계태세를 취할 따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 알갱이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나왔다고 해서 같이 욕심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니, 단유는 금이 나왔던 쪽으로 아이들을 재배치하는 선에서 작업의 효율을 높여보기로 했다. 만약 저 아이가 있던 자리 근처의 퇴적층에서 꾸준히 금이 발견된다면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금맥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날 처음의 아이를 제외하고도 두세 명에게서 금 알갱이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발견되었다. 추위에 몸을 떠는 아이들을 위해 장작불을 더 키워서 다 같이 몸을 녹일 수 있게 해주었다. 모인 이들 중 몇몇은 망토 끝으로 사용했던 접시를 바득바득 닦아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물에 담갔다가 망토로 닦아내니 과연 새것처럼 반질반질한 접시가 되었다. 아마 저들은 설령 금을 못 캐내 가더라도 부모님께 칭찬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단유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 전에 알갱이를 캐낸 아이들에게서 아직 정체를 확신할 수 없는 그것들을 받아냈다.
“어른들께 물어본 뒤, 각자에게 그대로 돌려줄게.”
“진짜?”
“진짜야.”
단유의 말에 한 명은 반신반의하며 주저했지만, 다른 아이들이 서슴지 않고 자신의 획득물을 건네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것도 단유에게 건넸다. 그렇게 건넨 알갱이가 6개였다. 다 모아도 손톱 부스러기 정도밖에 되지 않을 양이었지만, 발견이 됐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는 양이었다.
단유는 아잘에게로 먼저 돌아갔다. 부싯돌을 빌린 참이라 돌려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단유가 알기로 마을에서 가장 식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에게 향한 이유도 있었다.
아잘은 단유가 건넨 알갱이를 보고 침음(沈吟)을 내뱉었다.
“이건, 금이 맞구나.”
손바닥을 눈앞에 두고 눈을 좁힌 채로 그 위의 조그만 알갱이를 관찰하던 아잘이 미간을 풀지 않은 채로 단유에게 말했다.
“설마 했는데, 물에서 금이 나오다니.”
단유는 아잘에게 자신이 아는 상식선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어떤 금속이나 광석이든 침식과 풍화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금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깎여나간다. 하지만 깎여나갈 뿐이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물에 흘러 떠내려가다가 모래가 쌓이는 지점에 같이 묻히게 된다. 그렇게 묻힌 금 알갱이를 발견한 것이 바로 지금 아잘이 보는 것의 정체다.
아잘은 당연히 이어질 질문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런 작은 금 말고 진짜 금도 찾을 수 있는 것이냐?”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가능성일 뿐, 100% 찾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우선 개천의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만약 많은 지류가 섞이게 되면 조사 범위는 생각보다 넓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지류가 없다 해도, 그 길을 죽 따라 올라가며 금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혹은 이미 금이 지난 세월 동안 모두 깎여 떠내려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아잘을 보니, 그의 입술이 씰룩이는 것이 여간 마음이 동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만약 계절이 겨울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사람들의 일감이 많이 줄어든 상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단유와 아이들이 물가에 가서 뭘 하는지는 몰라도 마을 소란할 일이 줄어서 좋다고만 여기던 어른들은, 그 아이들이 들고 온 금 소식에 놀란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진짜 금이 있다고?”
“아잘 아저씨가 확인했다던데?”
“그럼 물에서 금이 나오는 거야?”
“정확히 그건 아니고, 뭐라더라? 금이 쪼개져서 물에 흘러 내려온 거래.”
“···그럼 쪼개지지 않은 금도 있다는 이야기 아냐?”
“그건 모르지.”
찾아봐야 알 수 있는 일. 마침 겨울이라 산에서 땔감이나 구하는 일 외에는 특별히 소득을 올릴 일이 없던 차였으니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산으로 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그리고 그 무리의 앞에 가론이 있었다. 사실 마을 유일의 대장간이기에 쉴 틈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쇠를 다루는 일에 특화된 그는, 당연하게도 산에서 광맥을 찾는 일에 능숙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알겠어?”
대장간은 일을 배우고 있는 아들에게 맡기고 가론은 산을 올랐다. 그 외에 아잘과 에드 역시 산에 올랐고, 소식을 들은 몇몇 사냥꾼들도 산을 옮겨와 금맥도 찾고 사냥도 하는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모두가 이 금맥 찾기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일부 마을 사람들은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이들을 어리석다 여겼고, 또 일부는 대놓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에저’였다. 사실 에저는 레이도르의 아버지 다음으로 촌장을 맡은 이로써, 지금까지 30여 년간 이 마을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겨울이 되기 전, 마을 전체에서 생산한 것들을 외부의 도시에 가져다 팔기 위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마을을 떠나 있었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마을은 떠나기 전과 사뭇 달라져 있어서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게 뭐지?”
그의 아내가 자신을 데리고 가서 보여준 것은 바로 우물에 설치된 도르래였다. 아내가 간단하게, 한 손으로 손잡이를 돌렸을 뿐인데 우물에서 끼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레박이 올라오는 바람에 에저는 뒤로 넘어갈 정도로 놀랐었다.
그리하여 단유라는 외부인이 마을에 나타나 마을에 변화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단유가 한참 시계를 만들기 위해 목재 공방에서 톱밥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 에저는 직접 단유를 만나러 갔다.
“네가 우물의, 저 기계를 만든 아이냐?”
론의 소개로 그가 마을의 촌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단유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에저는 단유와 대화를 나눠 그가 시계를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을 자신의 반도 살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알고 만들까 놀랐고, 만드는 이유를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시간을 알기 위해서?”
“시간을 알면 좀 더 효율적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예요.”
단유의 대답은 에저에게 뭐라 표현하기 힘든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말대로 ‘효율적’인 것은 긍정적인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 걱정도 들었다.
오랜 삶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삶의 변화가 늘 좋은 결과만 낳지는 않았다. 물론 우물의 두레박처럼 편하게 물을 뜰 수 있게 만드는 정도라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사람이 마냥 편하게만 지내게 되면 일을 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에저는 그런 걱정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는 좀 더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길 바랐고, 그동안 단유가 가져올 변화를 지켜보고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만약 그 변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마을의 질서를 해친다면 그때라도 멈출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신중함이 이 마을을 여태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끌어 온 비결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신중함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마을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는 자신이 걱정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을 팽개치고 산으로 향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혀만 차고 있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
“어리석은 이들 같으니라고.”
에저의 한숨을 듣고 그의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 마을 주변의 산을 타보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응? 만약 그곳에 금이 있다면 진작에 찾았을 것이다. 어떻게 물에서 금조각이 나왔는지는 몰라도 금맥이라니. 지금 젊은 놈들이 산으로 올라가는 건 자신들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모두 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거라고.”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는 남편의 등을 토닥이며 아내가 대꾸했다.
“혹시 모르지 않아요? 그동안은 금을 찾기 위해 산을 올랐던 게 아니니 옆에 있더라도 무심코 지나갔을 수 있는 거죠.”
“그게 멍청한 소리라는 거야. 사람들이 모두 장님도 아닌데 금이 있는 것도 모르고 지나갔으려고?”
“여보, 흥분하지 말아요.”
촌장의 현명한 아내는 늙은 남편의 건강이 염려되어 다시 한번 등을 쓰다듬었다. 아내의 주름진 손길은 세월에 상관없이 남편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난 이 마을의 촌장이야. 이 마을을 지켜야 돼.”
“그럼요. 당신은 지금까지도 잘 해왔는걸요.”
고집스러운 에저의 입술이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나왔다.
“꼬마 녀석의 말 한마디에 이랬다저랬다 하는 꼴이라니.”
“오래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가지겠지만, 아직은 덜 여물어서 그런 거겠죠.”
아내는 적당히 남편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에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고민이라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돌이킬 수 없을 거 같아.”
“겨울이 끝나면, 다시 싹을 뿌려야 하니 다들 돌아올 거예요.”
“만약 돌아오지 않는다면?”
에저의 물음에 아내는 대답하기 어렵다는 듯, 난감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일이라도 사람들을 모아서 회의를 해야겠어.”
오랜 세월 이 마을을 지켜온 ‘원로’들을 모아서 의견을 나누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에저는 아들을 불러 이를 지시했다.
“내일 아침 먹은 뒤, 우리 집으로 와서 차 한잔 하자더라고 알려라.”
“내일 몇 시까지요?”
“뭐?”
“그러니까, 그···요즘엔 시계라는 것 때문에 시간을 맞추는 게 유행이잖아요.”
“그놈의 유행은···.”
못마땅한 눈을 한 에저가 아들을 쳐다보자, 아들은 얼른 집을 나섰다.
어른들이 금맥을 찾아 산으로 뛰어갔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강가로 향했다. 다른 점은 아이들이 들고 오는 접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과 접시 외에 컵이나 각종 그릇들이 추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간 김에 설거지나 해 오라, 고 맡기는 것이다. 더러 어떤 이들은 아예 광주리에 살림살이를 끼고 나타나기도 했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여자아이들까지 끼어서 물가에 나타났다.
물가 주변의 수초를 따서 손으로 돌돌 뭉쳐서 수세미처럼 사용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그 모습을 보던 단유는, 세제가 없기 때문에 환경오염은 없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비누가 필요할까?’
비누 이전에 잿물이라도 있으면, 접시의 기름때를 벗겨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거기다 몇 가지가 더 첨부되면 비누도 만들 수 있을 테고.
머릿속으로 비누에 대한 지식들을 짚어보던 단유는 곧 아이들이 들고 온 접시들을 감별해주느라 생각을 멈춰야만 했다. 처음과 달리, 이제는 아이들도 모래와 모래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눈이 생겨서인지 단유에게 감별을 부탁하는 이들이 줄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은 일부러 몸을 녹이려고 다가오는 이들도 있어서 그 아이들과 어울려주느라 단유는 깊게 생각을 진행 시킬 틈이 없었다.
“형은 금 캐러 안 가?”
한 아이가 동그란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며 물었다.
“안 가.”
“왜?”
처음부터 금에 대한 아이디어가 단유의 것이었음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단유가 마을 어른들에게 금을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물었던 것이지만 단유는 피식 웃으며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금은 내 게 아냐.”
“그럼 누구 건데?”
“먼저 찾은 사람 거 아냐?”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금은 이 마을 사람들 거야.”
그리고 단유는 이 마을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 마을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욕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