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40화 (440/956)

개천에서 용났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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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토의 말에 시큰둥했던 아이들도 하나둘씩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묘한 열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리 내에서 나름 신망받는 제토였기에 아이들이 쉽게 무시하지 않는 것도 있었고, 제토가 내세운 핑계가 그럴듯하게 들린 까닭도 있었다.

“여기서 뛰나, 산에서 뛰나 똑같아. 게다가 만약 우리가 금을 발견한다면, 어른들도 우리한테 함부로 말 못할걸?”

부모들이 달려들어서 손찌검하는 대신, 무등을 태우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랑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아이들의 얼굴은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잠깐.”

단유는 제토를 가로막았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으로 바라보려 했지만, 이대로 정말 산에라도 갔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산은 위험한 곳이다. 하지만 겨울 산은 그냥 위험한 게 아니라 죽음과 맞닿는 곳이었다. 겨울의 초입부터 굶주린 짐승들이 결코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너희들 겨울 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는 있어?”

“눈도 안 내렸잖아?”

겨울이라 춥기는 해도,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온도가 많이 내려간 탓에 햇빛이 들지 않는 산비탈에 잘못 발을 디디면 그대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산이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도 그렇지만, 금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도 같은 이유야. 이 근처에서 금이 나오는 걸 본 적 한 번도 없지?”

당연히 아이들은 단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금을 찾는 건, 이 저 언덕 풀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똑같아.”

겨울이라 풀이 마르긴 했어도 잡초로 우거진 둔덕이었다. 그곳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다? 쉽진 않겠다.

“그 정도로 어려워?”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한 거야.”

“그럼 아까는 왜 금을 찾아보겠다고 한 거야?”

제토가 되묻자, 그걸 이제야 묻는 것이냐는 얼굴로 단유가 눈꼬리를 내렸다.

“산에 오르지 않아도 금을 찾아보는 방법이 있으니까.”

“정말? 그럼 그 방법을 말해주지 그랬어?”

제토가 발을 구르며 단유를 채근했다.

“어떻게 하는 건데?”

물론 단유가 생각한 이 방법도 무모하긴 마찬가지였다. 바로 사금(砂金)이었다. 과학 시간에 들은 바에 의하면, 금은 특성상 무겁기 때문에 풍화, 침식 등에 의해 붕괴, 모래처럼 파쇄(破碎)되어도 강바닥의 점토층에 모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접시 같은 것을 이용해 그곳의 모래를 퍼서 물과 담아 돌리면, 가벼운 모래와 흙은 물에 섞여 흘러나가고 무거운 금 알갱이만 남게 된다.

사실 단유는 제토가 기대하는 것만큼 금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금은 그냥 순간적인 호기심에, 그러니까 이곳에서도 지구와 같이 금을 희소광물, 귀금속으로 인정하는지를 궁금해했던 것일 뿐, 실제로 금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제토의 추궁에 대답하다 보니, 지구에서 배웠던 여러 가지 지식―이라기 보다는 잡학(雜學)이라 해야 옳을 것―들이 떠올라 이런저런 방법을 궁리하게 된 것에 불과했다.

“물에도 금이 있어?”

그냥 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 퇴적된 강바닥에 쌓인 모래에 금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해 보자!”

제토는 다시 흥미를 느꼈다. 산에서 뭘 찾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도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강에 얼마나 많은 금이 숨어있다는 것인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것이다.

‘투루루’게임을 하기 위해 벗어두었던 망토를 다시 입고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나무 접시를 하나씩 들고 나타났다.

강은 마을에서 대략 2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강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개천 정도의 수심이 낮은 물줄기였다. 여기서 좀 더 가면 다른 지류와 합쳐지면서 강이 깊어지는 모양이지만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단유는 어설프게나마 사금을 채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유도 처음 하는 것이지만, TV에서 스치듯 봤던 장면을 떠올려 어설프게나마 방법을 알려주었다. 천이 흐르다 굽어지는 곳의 안쪽, 모래가 쌓이는 곳에 다가가 바닥 깊은 곳의 모래를 훑어 접시에 올린 뒤, 물을 약간 넣어 살살 돌렸다. 그러자 모래와 흙이 살짝 떠오르기도 하고 물의 흐름에 따라 빙빙 돌기도 했다. 그렇게 돌리면서 접시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것들은 대충 물과 함께 흘려보내고 가운데 남은 것들만 남겼다. 그리고 거기에 다시 새 물을 받아 앞선 작업을 반복했다.

접시에 담은 모래가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남은 것들은 반짝이는 것도 섞인 알갱이들이었다.

“이렇게 남은 것들 중에 금이 있는지 살펴보는 거야.”

“금 있어?”

제토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아니, 없어.”

단유는 접시에 남은 알갱이들을 손가락으로 뒤적거리다 물에 흘려보냈다.

“그럼 여기 없는 거야?”

지켜보던 어린 꼬마의 물음에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르지. 이건 한 번으로 금방 알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저 쌓인 모래흙 사이에 섞여 있을지도 모를 작은 알갱이를 찾는 거거든.”

제토는 대충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팔을 걷어붙였다.

“알았어, 해 볼게.”

제토의 뒤를 이어 다른 아이들도 너도나도 해보겠다며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원리를 정확히 몰라 모래를 펐다가도 금방 다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접시를 돌리다 보면 물과 상관없이 접시 가운데 남는 알갱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점점 요령이 붙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뭔가 묘한 경쟁이 붙어서 누구보다 먼저 금을 찾고 말겠다는 듯 열심히 접시를 돌렸다.

멀찍이서 보면 개천의 굽이에 조그만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접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단유는 괜한 걸 알려준 것 같았다. 이왕에 왔으니 단유도 해볼까 싶었지만, 처음에 하는 방법을 알려줄 때 외에는 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이 너도나도 다가와서 접시를 내민 까닭이었다.

“이거 금이야?”

“아니야.”

시무룩한 아이의 뒤로 또 한 아이가 접시를 내밀었고,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단유는 사금 채취를 포기했고, 개천 위로 흐르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단유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차라리 아이들이 애먼 짓 못 하게 감시하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이러고 있으니 예전 보육원에서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볼 때가 생각났다.

‘다들 잘 지내겠지?’

솔직히 말해서, 명수 외에는 특별히 정을 준 이들이 없었다. 그나마 지선이는 괜히 동생을 떠올리게 하던 기억에 가까이 지내긴 했어도, 그 외에는 특별히 정을 나누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있다 보니 괜스레 그때의 기억이 나면서, 그 아이들의 얼굴들이 한 명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과거의 단유와 지금의 단유는 달라진 면이 있었다. 여유가 생겼달까? 과거에는 그저 모든 것을 경계하고 관찰하고 거리를 두려고만 했었다. 표현되지 않는 두려움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았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마저도 불안해서 더욱 얼굴을 굳혔던 단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 지구에서도 그렇고, 낯선 이곳에서도 단유의 표정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이제는 불안감을 덜 느끼게 되었고, 어디에서라도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마법이란 힘에 의존하는 바도 있었지만, 머릿속에 든 지식이 많아지면서 세상을 덜 두려워하게 된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여유가 생기니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고, 사람과의 관계도 예전보다 너그러워진 면이 많았다. 그렇다고 곰살궂게 행동하는 것은 또 아니지만 말이다.

“형, 이거 금이에요?”

단유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냥 모래야, 라는 대답에 붉어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겨울의 개천이 얼마나 시릴까. 단유는 아이의 손에 온기를 전해주며 말했다.

“돌아가자.”

그날 아무런 소득도 건지지 못한 채 붉어진 손을 비비며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다음날 아무도 다시 가자고 하지 못할 것, 이라고 단유는 생각했다. 성과없는 일에 흥미를 진득하게 가지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당장 같이 살고 있던 제토는,

“여기서 멈출 수 없어!”

라고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선언을 해서 단유의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다 감기 걸려.”

“오늘은 준비가 덜 됐던 거야. 내일은 확실히 준비해서 나가겠어.”

지구에서처럼 두꺼운 파카를 입고 다닐 것도 아니고, 애초에 그런 옷도 없으니 낡은 옷가지를 겹쳐 입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제토는 망토의 끈을 조이며 다시 한번 도전할 뜻을 비쳤다.

그리고 뜻밖에도 다음날 놀이터에는 제토와 뜻을 같이하는 아이들이 몇몇 더 나타났다. 새로운 놀이에 굶주렸던 아이들에게 일상의 변화는 도전할 가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 이마가 붉어진 채로 등장한 아이가 있었다.

“엄마한테 혼났어.”

집안의 가재도구를 마음대로 가지고 갔다가 저녁을 준비하는데 접시가 모자라 어머니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아이들은 각자 집안 방식대로 혼이 났다.

반대로 접시를 한 뭉텅이 껴안고 나타난 아이도 있었다.

“간 김에 접시 다 씻고 오래.”

갑자기 반질반질해진 접시에 이유를 물었던 어머니가 다른 접시도 씻어오라며 넘겼단다. 대신 저녁 식사 준비 전에 돌아오지 않으면 혼날 거라는 경고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어떤 이유든,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이들이 접시를 들고 다시 강으로 향했다. 그에 앞서 단유는 가죽 공방에 들러 아잘에게 물었다.

“불 피워도 돼요?”

“피울 줄은 알고?”

아잘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단유라면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하며 부싯돌을 빌려주었다. 돌아올 때 반납하기로 하고 단유는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저런다고 금이 나오긴 하냐?”

아잘도 호기심이 일었지만, 어른 체면에 아이들과 섞여 뭘 한다는 게 어려웠던 탓에 슬쩍 물어보기만 했다.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금이 나올 수도 있지만, 나와도 모래보다 작은 알갱이 정도일걸요?”

“그래?”

혀를 차던 아잘이 무사히 다녀오라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만약 사금이 나온다면, 그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주변에 금맥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에 천을 거슬러 올라가 산금(山金)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 가능성은 현저히 낮기에 입에 올리진 않았다.

강가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는 사금 채취를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단유는 마른 풀과 장작을 마련해 불을 붙였다. 지구에서야 해볼 일이 별로 없어 하지 않았지만,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있을 때는 가끔 부싯돌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불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을 때도 몇 번인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돼 부싯돌을 써서 불을 지피곤 했었다.

처음 시도에는 실패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불똥을 만들어냈고, 그 후 또 몇 번의 시도로 불을 지피는 데 성공했다. 단유는 불을 키워 모닥불을 만든 후 아이들에게 일렀다.

“추운 사람은 여기 와서 몸 좀 녹여.”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접시를 들고 단유에게 검사를 받으러 왔다가 몸을 녹인 뒤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때아닌 작업장(?) 열기에 강가의 차가운 바람도 비켜 갈 정도였다.

“형, 이건 뭐야?”

엄마에게 혼났다는 아이가 접시를 들고 단유에게 왔다. 혼이 나서 접시를 들고 올 수 없었지만, 접시를 가득 들고 온 아이들이 몇몇 있어서 접시를 빌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단유는 도대체 어떻게 혼이 났길래 이마에 붉은 손자국이 여태 남았을까 생각하며 아이의 이마를 문질렀다.

“안 아파?”

아이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더벅머리를 한 아이의 웃음에서 순박함을 느낀 단유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이가 건넨 접시를 보았다. 섬세하지 못한 탓에 모래 알갱이가 가득한 접시였다. 몇 번 더 물을 풀어 모래를 걸러내야 했어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단유의 눈에 모래가 아닌 알갱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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