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39화 (439/956)

친구야 놀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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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솔직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론이 ‘시간’에 맞춰 가게 문을 열고 식사를 하고, 외출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것이 꽤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게다가 그의 시계에 맞춰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그들에게는 남달리 느껴졌다.

‘시계가 중요하다.’

아잘과 가론은 그 의견에 동의했다.

“도와주신다면 고맙죠.”

단유는 아잘과 가론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마을의 전문 기술자들이 도와준다면 아무래도 시계탑 건설에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가론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달싹거리기만 하니, 단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내가 대신 말하지.”

아잘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가론이 말하려고 하는 건 말이다. 사실 우리 마을이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거든?”

그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도르래를 만들 때나, 시계를 만들 때 어떤 대가를 요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계탑이라고 하니 꽤 재료도 많이 들 거고, 그러면 돈이 많이 들지 않겠니?”

“아.”

단유는 너무 사소한 문제를 놓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시계만 해도 들인 재료와 노동비를 고려하면 꽤 많은 돈이 들어야 했지만, 재료를 구하는 일에도 단유가 도움을 많이 줬거니와 론이 돈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계탑은 엄연히 다르다. 건축물이기에 들어갈 재료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단유 혼자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노동력도 꽤 많이 들여야만 할 것이다.

“시계탑도 도르래라는 것 못지않게 마을에 중요한 의미가 되리라 판단은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가론의 말에 아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가론, 아잘과 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단유는 밤늦게 자리에 들고서도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비록 기술력이 떨어지는 사회라 해도 다들 경제 행위는 하고 살아간다. 즉, 어떤 일에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인데 단유는 그 점을 잠시 놓치고 있었다.

단순히 시계탑 건설을 위한 건설비 마련만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마을의 경제 활동에 대한 고찰이 필요했다.

농경을 위주로 하되, 공방을 중심으로 한 상업 행위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워낙 영세해서 마을 전체의 경제 규모는 자급자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라 봐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게다가 필수 자재라고 불러야 할 쇠를 외부에서 사와야 한다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었다. 아마 이번에 시계탑을 만든다고 해도 주요 부품은 목재이겠지만, 커다란 부품들이 많아질 예정이니 견고함을 고려한다면 아무래도 철이 많이 필요하다.

‘돈을 벌어야 하겠구나.’

문득 지구에서의 아르바이트가 생각났다. 2학기가 개학을 하고서도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며칠 빠지게 되었으니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남들보다 많은 양을 돌려서 지점장에게 기대도 많이 받았는데 이렇게 며칠을 무단으로 빠지게 되었으니, 어쩌면 다시 돌아가더라도 안 받아줄지 모르겠다.

‘꽤 괜찮은 일이었는데.’

단유는 씁쓸한 맛을 느끼며 누워 있던 자세를 바꿨다.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돈을 벌려면 일단 어떤 상품이 오가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뭐, 이렇게 무두질만 된 가죽 같은 것이나, 소소하게 이렇게 만든 것도 팔고 그렇지.”

아잘이 가판대와 가게 안에 널린 물품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레이도르 외에도 사냥 일을 주로 하는 사람이 몇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사냥해 오면 그 가죽을 아잘이 무두질로 1차 가공을 한 뒤, 그대로 외부의 마을에 가서 파는 게 대부분이었다. 외부 마을까지 꽤 거리가 먼데, 무두질을 해 놓지 않으면 가는 동안 원피(原皮)가 상할 우려가 있었다.

무두질은 꽤 많은 손이 가는 일이지만, 아잘의 밑에서 일하는 도제들도 있기 때문에 남는 시간이 생기면 아잘은 간단한 수공예품을 만들었다. 보통은 칼집이나 가죽조끼 정도지만, 그 정도라도 팔게 되면 1차 가공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난 남는 게 없어. 그냥 먹고 사는 일이 다지.”

단유가 어떻게 돈을 버냐는 물음에 장비들을 수리하거나 또는 주문받을 물품을 제작해주는 게 전부라는 가론의 대답이었다. 남는 돈으로 철광석을 사 오더라도 대부분은 다시 주문받은 물건을 제작하는데 들기 때문에 달리 잉여가 발생하지 않았다.

단유의 상식에서 쇠는 다루기는 힘들지만, 그 견고함이 다른 재료들에 비해 차원이 달라서 활용 가능성만 따지자면 무궁무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나 기술의 문제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이것은 좀 더 고민해 볼 문제다.

론의 공방은 다른 공방에 조금 여유로운 편이었다. 일단 자재 수급에서 자유로웠다. 뒷산에서 나무만 베어오면 될 일이었으니까. 다만 다른 공방에 비해 재료 가공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론 외에도 여러 사람이 일을 하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함께 손을 거들어도 1차 가공에만 며칠씩 걸릴 정도로 낭비가 심했다. 목재라는 재료 자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구의 문제도 있었다. 하다못해 ‘선반(旋盤)’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이 나간 톱과 몇 번만 쓰면 날이 상하는 대패와 칼 따위로는 빠른 가공이 불가능했다.

잡화상이나 포목점, 미곡점, 그 외 여러 가지 상점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외부와 거래가 활발한 곳은 별로 없었다. 충분한 거래 물량이 나올 만큼의 생산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광산을 개발해 볼 생각은 없었나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산인데도, 마을의 주력이 농사라는 게 의아하게 여겨졌다.

점심을 제공해주겠다며 친절을 베풀던 에드가 제토와 단유 앞에 그릇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예전에 광산으로 쓸만한 곳을 찾다가 포기했다고 들었다.”

에드는 자신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광산을 개발하려는 노력들이 있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고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단유는 이들이 찾으려 한 광산이 ‘노천채굴(露天採掘)’방식 임을 깨달았다. 저렴하고 안전한 채굴방식이긴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없다면 채굴 자체가 어렵고, 채굴할 부분을 찾더라도 때로는 대량의 표토제거작업이 필요할 수 있는데 이를 진행할 손이 이 마을에는 모자랄 것으로 보인다.

단유는 비록 벽에 가려 다 보이진 않지만, 마을 뒷산 혹은 더 나아가 제르아 오마 근처의 산들에서 의미 있는 채굴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궁리했다. 하지만 아무런 기술도 없이 그저 눈으로 채굴광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단유 이전의 마을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포기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금’이 어때요?”

“금?”

에드의 되물음에 단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빵에 수프를 찍어 먹던 제토가 눈을 껌뻑이며 에드를 쳐다보았다.

“금광만 찾는다면, 내가 이 장사 당장에라도 때려치우지. 그리고 곡괭이 하나만 들고 들어가야지. 금 한 덩이만 캐서 아내랑 오순도순 지내야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는 표정을 짓던 에드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단유는 턱을 괸 채로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도 ‘금’은 높은 가치를 지니는 광물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과연 금을 찾기가 쉬울까?

“금 찾아보게?”

단유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찾는다고 찾아질까, 라는 고민이 드네.”

제토가 눈을 반짝였다.

“그거 찾기 쉬워?”

이번에는 단유가 눈을 끔뻑이며 제토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얘들아!”

놀이터에 등장한 제토가 소리쳤다.

“왜 이렇게 늦었어? 시간을 지켜야 할 거 아냐? 다들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한 아이가 제토에게 툴툴거리듯 말했다. 시계가 생긴 후, 얼마 되지도 않아 마치 새로운 패션이 유행되듯 온 마을의 점심시간이 정오로 통일이 되었다. 그래서 거의 같은 시간에 각 집의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식사를 한 뒤, 식사가 마치면 오후 일과가 시작되고, 그 시간에 맞춰 아이들은 놀이터로 집합을 했다.

“야, 오늘은 ‘투루루(karratu-zirkulu-triangelu)’ 말고 다른 거 하자. 투루루도 매일 하면 재미없잖아?”

“매일 해도 재밌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제토의 예상과 달랐다. 사실 제토도 단유가 가르쳐 준 ‘투루루’가 재미있었다. 눈치를 보며 기회를 엿보다가 적들의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서 달아나는 쾌감이 꽤 좋았던 탓이다.

“그래도 오늘은 다른 거 좀 해보자.”

제토가 히죽 웃으며 단유를 가리켰다.

“루치드가 이야기해준 건데.”

‘투루루’ 게임의 창시자, 단유의 이야기란 말에 다들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난 반대.”

“뭐야?”

무슨 이야기인지 듣기도 전에 단유가 반대를 외치니, 제토의 당황스러움은 둘째치고 다들 호기심이 일었다. 아이들이 추궁하니 제토가 ‘금’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아이가 단유에게 물었다.

“금 찾을 수 있어?”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단유의 단호한 대답에 이번에는 제토를 쳐다보았다. 제토는 항변하듯 말했다.

“찾아보면 있을 수도 있다며?”

“있을 수 있다는 거지, 꼭 있다는 말은 아니야.”

제토는 그 말이 그 말이지 뭐, 라며 아이들을 둘러 보았지만 이미 아이들은 단유의 대답을 듣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제토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술래잡기 같은 거야. 숨겨진 금을 찾는 거지.”

“그거랑 그거랑 어떻게 같냐?”

“같은 거야! 그리고 생각해봐. 금만 찾으면 부자 되는 거야!”

“부자?”

제토는 얼굴이 벌게지도록 열과 성을 다해 아이들을 구슬렸다.

“부자만 되면 잡화점에 있는 물건들 다 살 수 있고, 먹고 싶은 거 매일 먹을 수 있잖아?”

제토가 평소 가지고 있던 부자의 개념은 그런 것이었다.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 중에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도 있었고,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해하는 아이도 있었다.

“부자가 되면 일 많이 안 해도 되니까, 놀 시간이 더 많아질 거야!”

그 말에는 대부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진짜냐고 되물었다.

당연하지만 오후 시간에 여기 나와서 노는 아이들이 이 마을 아이들의 전부는 아니었다. 여기 나오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집에 일손이 모자라는 경우였다. 예를 들어 아잘의 아이들 경우에는 큰 아이부터 작은 아들까지 모두 공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 이 시각이면 점심을 먹고 나른한 기분을 쫓기 위해 가죽에 기름칠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 있는 아이들이라고 달리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들은 주로 오전에만 일손을 돕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힘이 약한 이들은 일손을 거들기는커녕 불편만 더할 뿐인지라 간단한 일과에만 동원되었다. 드물게 제토와 같이 15살이나 먹고도 노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것도 제토처럼 매우 특수한 일을 하는 아버지를 둔 경우였다. 그 경우에도 오전에는 집안일을 돕기 위해 오전에는 일을 해야 했다.

부자가 되면 일을 적게 하고, 놀 시간이 늘어난다는 제토의 허무맹랑한 말이 그들에게 솔깃한 제안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금을 찾으면 되는데?”

한 아이의 제안에 제토가 히죽 웃었다.

“산에 올라가서 찾아야 한대.”

“그냥?”

제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둔덕 너머의 산들을 지켜보았다. 산허리에 구름이 걸린 넓고 높은 산이 묵묵히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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