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놀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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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계가 만들어진 이유는 천문을 관측하기 위함이라고 단유는 학교에서 배웠다. 별의 운행과 변화를 알기 위해 만들어진 게 처음의 시계였다면, 이후에는 이슬람교에서 매일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해야 하는 의례 때문에, 그런 종교적 이유로 시계의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그리하여 기계적인 진자시계는 13세기 말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그런 종교도 없었고, 별을 관측하려는 호기심을 가진 이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농경을 주업으로 한 이들었고, 그들에게 하루의 일과는 해가 뜨고 지는 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계가 생김으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사람의 일과에 ‘계획’이란 게 생길 테고, ‘효율성’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단유는 일에 착수하기도 전에 또다시 벽에 봉착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로 해야 한다는 말이냐?”
단유가 만들려는 시계는 기어가 정교하게 맞물리며 돌아가는 진자시계였다. 진자의 규칙적인 왕복 운동으로 일정하게 회전하는 기어에 의해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원리인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밀하게 만들어진 기어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 펌프 때도 알던 문제였지만, 이곳에서는 정밀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도량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눈짐작으로만 할 뿐이고, 그마저도 공방마다 다르게 측정되니 문제가 많았다.
단유는 임시로나마 도량법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단유는 얼추 눈대중으로 익숙한 ‘㎝’ 단위를 나무에 새겨 자를 만들었다.
“이걸 기준으로 하면 언제라도 똑같은 길이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론은 조금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눈대중으로 같은 길이의 목재를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뭘 잘라내거나 할 때마다 ‘자’ 따위를 대고 길이를 잰다는 행위가 일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 거 같았다.
그러나 시계의 외형을 이룰 판을 짤 때, 자를 이용했더니 생각보다 덜 불편할 뿐만 아니라 정확하게 판자를 만들어낼 수 있어서 론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만일 시계를 만들지 못한다고 해도, 그리고 시계가 쓸모가 없는 것이라 해도 ‘자’ 하나면 충분히 보답을 받은 셈 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시계의 제작은 일단 철의 사용을 최대한 피했다. 아직까지는 쇠를 다루는 기술에 대해 단유가 알고 있는 바가 너무 적다는 게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나무로만 하다 보니 일단 단유가 필요로 하는 부품을 만드는 것의 난이도는 낮았다. 하지만 나무는 그 내구성과 정밀도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보니 시제품 제작용으로만 만족해야 했다.
단유가 매일같이 톱밥 냄새 날리며 집에 돌아오고, 제토가 매일같이 땀에 전 흙냄새를 날리며 집에 돌아오니, 레이도르의 고민은 날로 깊어만 갔다. 본업이 사냥꾼이고, 애초에 이곳에 온 것도 사냥감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들렀을 뿐인데 이대로라면 마을을 떠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잠시 이야기 좀 하자.”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레이도르가 단유를 불렀다.
“진작에 할 이야기였는데 미루다 보니 늦었구나.”
평소 약간 쳐진 듯이 내려가 있던 레이도르의 눈꼬리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우선 솔직히 말하자면, 난 아직도 너의 정체를 의심한다.”
달리 몰랐던 사실도 아닌지라 단유는 덤덤하게 레이도르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너를 이 마을에 두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지 말이다. 아니라면 너를 데리고 산으로 가거나, 아니면 아예 이 마을 밖으로 내보는 게 좋으리라 생각했다.”
레이도르는 소매 밖으로 나온 팔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네가 보여준 모습을 본다면 마냥 의심하며 경계할 일만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너를 이 마을에 둠으로써 이 마을이 전보다 훨씬 살기 편하게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 마을에는 레이도르의 친구는 물론,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촌장 역할을 했던 아버지와 달리 자신은 어떤 직위도 맡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을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하는 레이도르였다.
“물론 네가 가져올 변화가 모두 좋은 결과만 낳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때로는 어떤 변화가 사람들 사이에 분열을 낳기도 한다. 단유 역시 그 점을 모르진 않는다. 가령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나뉘는 결과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도르래장치는 대단했다.”
레이도르의 칭찬에 단유는 살짝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그래서 일단 물어봐야겠다.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냐?”
너무 진지한 분위기인지라 여태 말없이 지켜만 보던 제토도 그 대답이 궁금해 단유를 바라보았다. 단유는 신중하게 말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일단은 이곳에 머무르고 싶어요.”
“정말?”
제토가 반기는 가운데, 레이도르는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
“왜?”
레이도르는 단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되물었다.
“넌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차마 시간이 너무 흘러서 쉽지 않을 거란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이 마을에 아저씨 말고도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레이도르가 단유에게 제공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다 죽어서 마을 뒷산 부근에 묻혔다는 이야기가 레이도르가 건넨 이야기의 결말이었다. 그러니 단유는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마을에서 머무를 필요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피력한 셈이었다.
레이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유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제스처였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반대였다.
“그런 이유라면 설명이 부족하다.”
“그리고···이 마을에서 뭔가 이루고 싶은 것도 있고요.”
“여기에서?”
단유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오해 없이,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제가 살던 곳은 기술적으로 굉장히 발달한 곳이에요. 지금 만드는 시계 같은 것은 우스울 정도고요. 지난번에 만들려다 못했던 펌프같은 것은 아주 과거에나 쓰던 물건일 정도죠.”
레이도르는 감히 상상도 가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 기술을 여기에 적용 시켜 보겠다?”
“아니요.”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감히 그런 생각을 했다가 실패한 게 바로 지난번의 일이었잖아요?”
단유는 그때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경솔했었다는 사실을 반성했다.
“그 기술을 그대로 옮겨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저도 거기선 일개 학생에 불과해서 그 많은 장치와 기술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다 알진 못하거든요.”
도르래도 만들어내는 단유가 고작 학생이라 다 모른다고 하니, 그럼 그런 것도 못하는 자기들은 뭔가 싶어 레이도르는 괜한 자괴심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가 누렸던 기술과 과학은 그저 편해지려고만 만든 기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편하려고 한 게 아니다?”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살던 곳의 기술과 과학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어요.”
‘인간답게 산다’는 말이 와 닿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다운 게 과연 무엇인가?
“설명하자면, 과학이란 자연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위한 논리를 가리켜요. 왜 비가 올까, 왜 지진이 벌어질까, 왜 구름이 움직일까, 왜 해가 뜨고 질까.”
레이도르는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땅에 심은 싹은 어떻게 자라는지, 나무가 모래처럼 삭아서 쓰러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강물이 흐르는 이유는 무엇이며 바람이 부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과학이에요.”
“그걸 알 수 있다고?”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완전히 알 수 있는 건 아니고 추정만 하는 경우도 있죠. 아무튼 과학은 그런 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는 내용이에요. 그리고 기술은.”
단유는 얕은 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기술은 자연을 인간이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한 방법이에요. 예를 들어 논에서 쓰는 쟁기는 땅을 훨씬 쉽게 갈기 위한 기술이고, 아저씨가 쓰는 활은 짧은 팔을 가진 인간이 사냥을 유용하게 하려고 공격 범위를 넓힌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현재 사용하는 것들을 예로 들어준 덕에 레이도르는 단유의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 식탁이나 의자도 기술이죠. 만약 식탁과 의자가 없다면,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스푼을 들어야 했을 거예요.”
“그렇겠지.”
“그런데 이 식탁과 의자가 과연 편하기만 하려고 만들었을까요?”
레이도르는 단유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웠다. 워낙에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사용했던 물건이라 달리 다른 존재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방금 예로 든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아서 먹는 것보다 편해서 이용한다는 이유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바닥에 앉는 좌식 생활이 더 편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 자세는 이 골반에 많은 무리를 줘요. 잠깐잠깐 앉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만 오래 지나면 허리나 골반에 문제가 생겨서 병이 될 수 있죠.”
“고작 바닥에 주저앉는 게 말이냐?”
“잠깐은 괜찮지만, 그게 몇십 년에 걸친 생활이 되면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그 밖에도 목의 뼈나 척추에도 좋지 않다고 하죠. 거기다 위생의 문제도 있을 수 있어요. 바닥에 음식을 두는 게 위생상 좋지 않다는 거죠.”
‘위생’에 관한 부분은 지난번 펌프 제작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언급한 바가 있어서 레이도르는 달리 설명을 요구하진 않았다.
어쨌든 그저 사용에 익숙하기에, 관습적으로 사용할 뿐인 식탁과 의자에 그런 의미가 있다고 들으니 뭔가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바로 그런 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아니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유가 이야기하는 인간다움이란 바로 ‘생각’을 하는 인간이었다. 필요한 것을 만들고, 개선 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단지 몇 사람의 노력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 공동체의 성장은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토론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한다.
“제토처럼 주변을 관찰하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찾아보는 노력들이 있어야만 그 사회가 발전을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단유가 기술을 전달한다고 해서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을까?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시계였다. 시계라는 기술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단유가 보건대, 시간은 ‘불’의 발견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게 너한테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단유가 말한 것은 듣기에는 좋았다. 하지만 그 사정을 그대로 믿기란 어른의 경험이 녹록지 않다. 비록 단유 만큼 똑똑하지 않지만, 어른으로서 살아온 세월이 있는 만큼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만큼은 단유 못지않게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이득도 없이 돕는다? 마을에서 함께 자란 죽마고우가 아니고서야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마을을 돕는 일은 곧 저를 위한 길이기도 해요. 여태껏 배운 바를 풀어 그것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길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도움?”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과연 자립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역설적이지만,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모두가 욕심 없이 서로를 돕고 도우며 살아간다는 것은 이상적인 망상일지도 모른다.
도움을 줄 때도 있겠지만, 도움을 주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고, 도움을 받을 때도 있겠지만, 도움을 받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공동체라는 묶음으로 인식되는 사회라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자기 몫을 해야 한다. ‘자립’이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니, 결국 ‘혼자 살 수 있는가’를 검증해야 한다.
지구에서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그 검증이 보류되는 형편이니 생각을 덜 하게 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검증받고 있으니 단유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자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