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36화 (436/956)

친구야 놀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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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세 개의 팀으로 나눠야 돼.”

“세 팀?”

“이 전쟁놀이는 세 개의 진영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싸우는 놀이야.”

단유는 공터의 중간에 가서 동그라미를 하나 크게 그렸다.

“한 팀은 여기가 진영이고.”

몇 발을 더 들어가 세모를 그렸다.

“여기가 또 다른 한 팀.”

다시 방향을 바꿔 같은 거리에 네모를 그렸다.

“여기가 마지막 팀의 진영.”

단유의 걸음에 방해가 되지 않게 물러나 있던 아이들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세 도형의 진영은 크게 보면 삼각 구도가 이루어지도록 그렸다. 단유는 세 도형을 선으로 연결해서 그린 뒤 물러났다.

게임은 각 진영에서 시작한다. 각 진영에서 나와 공터에 나오면 외발로 뛰어다녀야 하고 적을 두 손으로 잡으면, 잡힌 사람은 공터 바깥으로 물러나서 구경만 해야 한다.

“동그라미의 적은 세모팀, 세모의 적은 네모 팀, 네모의 적은 동그라미야. 다시 말해서 동그라미 진영의 사람은 세모 팀을 잡아야 하지만 네모 팀으로 부터는 도망 다녀야 돼. 세모나 네모도 그런 식으로 잡거나 도망 다녀야겠지.”

진영 안에 있을 때는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지만, 진영 밖으로 나오면 무조건 외발이다.

“상대 진영의 바깥을 한 바퀴 돌면, 그러니까 이 공터를 잡히지 않고 한 바퀴 죽 돌아서 다시 자기 진영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때는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어.”

상대 진영을 먼저 다 잡는 팀이 승리. 자기 진영 사람들이 모두 잡히거나 혹은 다른 진영의 사람이 승리 조건을 획득하면 패배. 그리고 한 진영의 아이들이 모두 두 발로 걷게 되면 역시 승리한 것으로 간주한다.

“외발로 뛰던 아이의 다른 발이 땅에 닿아도 잡힌 것과 마찬가지로 공터 밖으로 나가야 돼.”

단유가 생각한 것은 초등학교 때 구경했던 놀이에서 힌트를 얻었다. 하나는 ‘오징어’란 놀이였고, 또 하나는 4학년 때 학교 수련회 때 했던 놀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외발이라는 핸디캡은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과 자신이 잡아야 하는 사람들 사이를 무사히 빠져나왔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했고(승급), 잡히지 않기 위해 자기 진영에만 있다가는 승리를 뺏길 수 있도록 설정해(패배조건) 게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복잡한 룰을 많이 만들기보다는 단순하되 많이 뛸 수 있도록 게임을 고안했다. 거기다 눈치 싸움도 필수다.

복잡한 룰이 아니어서 아이들은 일단 단유의 놀이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세 편으로 나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금방 진영이 정해졌다. 좁게 그려진 진영 안에 6~7명의 아이들이 서 있다 보니, 가만히 기다리고 있기도 쉽지 않았지만, 잡힐까 봐 진영 밖으로 나가는 것도 두려워 처음에는 누구도 진영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아이가 외발로 콩콩 뛰면서 밖으로 나오자 상황이 급변했다.

세모 진영에 있는 아이가 네모 진영을 향해 다가오자 네모 진영에 있는 아이들은 더욱 나가기 힘들었다. 금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서로 몸을 뭉치느라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사이 세모 진영의 소년이 콩콩 뛰다 동그라미 진영을 봤을 때, 동그라미 진영의 아이들도 눈치를 보며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세모 진영의 아이는 동그라미 진영의 아이들을 잡을 수 없으니 용기 있게 다가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저 진영만 주위만 무사히 빠져나와 다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면 두 발로 뛸 수 있게 되니, 그 유혹이 꽤 크다. 그렇다고 동그라미 진영 아이들이 당장 튀어나올 이유는 없다. 네모 진영 근처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입장이니 섣불리 외발로 뛰고 있는 소년을 잡기 위해 가기 어려웠고, 그 소년이 자기 쪽으로 온다면 그때 나서도 문제는 없다.

그런 상황을 알아챈 네모 진영의 한 소년이 용감하게 진영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오자마자 동그라미 진영으로 달려갔고, 겉에서 맴돌던 세모 진영의 아이는 생각을 못 했는지 급히 잡으려 하다가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긴 했지만, 이미 네모 진영의 아이는 동그라미 진영 근처로 간 상황. 이렇게 되니 묘한 대치 형국이 되었다.

문제는 먼저 뛰어나갔던 세모 진영 소년의 체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외발로 중심을 잡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 것. 다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동그라미 진영을 돌아야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는 것도 아쉽다.

이때 세모 진영에서 두 사람이 한 번에 튀어나왔다. 그리고 금방 네모 진영 근처로 다가와, 먼저 나온 소년 근처로 갔다. 한 소년이 속삭였다.

“같이 한 번에 뛰는 거야.”

한꺼번에 뛰면 적도 자기들을 쉽게 잡지 못할 거란 것. 게다가 동그라미 진영에는 네모 진영 아이 한 명이 나가 있는 상황이니 쉽게 진영 밖으로 나서지 못할 거라고 추측했다.

셋을 세고 뛰어가기로 한 소년들이 동그라미 진영을 보며 눈치를 보다가 셋을 외치고 뛰기 시작했다. 동그라미 진영의 아이들은 조심성이 너무 많았던 게 탈이었다. 동그라미 진영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잡을 생각을 미처 못하다 자기 진영을 돌아갈 때쯤에야 진영 밖으로 나왔다. 사실은 그때쯤에 자기 진영 앞에 있던 네모 진영의 소년이 자길 잡으러 오는 줄 알고 도망가느라 앞이 비면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공터를 크게 빙 돌아 나가는 아이들을 잡으러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동그라미 진영에서 네 사람이 한꺼번에 나와 달아나는 세 사람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놓치고 말았다. 한 사람은 잡으러 달려오는 아이를 피하려고 격하게 몸을 움직이다 그만 중심을 잃고 두 발이 땅에 닿고 말았다.

“와! 넘어졌다, 넘어졌어!”

그런데 상황은 더 복잡하게 변했다. 네 사람이 나온 순간, 네모 진영에서도 아이들이 뛰쳐나온 것이었다.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지 아이들이 뛰쳐나왔고, 동그라미 진영 바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들의 술래잡기가 시작되고 그 틈에 세모 진영에는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된 아이가 둘이나 만들어진 것이다.

두 발로 뛰어다닐 수 있다는 조건은 너무나 유리한 조건이었다. 더 이상 진영 안에 있을 필요가 없었고, 동그라미 진영의 아이들을 무서워할 필요도 없었다. 아수라장 속에 끼어들어 서로 잡겠다고 뛰어다니는 통에 난리가 났고, 그 와중에 팀의 지원을 받으며 세모 진영에는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된 아이들이 늘어났다.

결국 게임은 적극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갔던 세모 진영의 아이들이 네모 진영의 아이들을 모두 잡아내면서 게임이 끝이 났다.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재미있다며 계속 게임을 했다. 소극적이면 다른 팀에게 승리를 헌납할 뿐인지라 적극적으로 게임에 임했고, 점점 아이들끼리 협동을 해서 플레이하는 전략도 생겨났다.

제토도 그 속에서 신나게 게임을 했고, 모처럼 ‘발명’을 잊을 수 있었다. 덕분에 단유는 한가롭게 오후 햇살을 맞으며 공터 밖 둔덕에 앉아 여유를 즐겼다. 급조한 것 치고는 아이들이 재밌게 즐겨줘서 다행이라 생각하던 단유였다.

사실 급조했다지만, 그 게임에는 최근 단유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가 반영되기도 했다. 하나는 기하학적 문제였고, 또 하나는 균형에 관한 문제였다.

‘원’은 가장 완벽한 도형, 이란 말이 있다. 수학적으로 원의 조화로움과 신비로움을 풀어 설명한 이도 있지만, 건축학적으로나 기술학적으로 원이란 도형은 여러 곳에 응용이 된다. 가장 단순하게는 바퀴의 활용일 테고, 다리나 집의 건축 시에도 아치형으로 짓는 등의 다양한 활용이 보인다.

단유가 만든 도르래도 역시 원을 활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원이란 기하학적 도형은 연구가치가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겠다.

‘삼각형’은 가장 안정적인 도형, 이라고 부른다. 세 변의 길이가 바뀌지 않는 한, 외부 힘에 의한 모양 변형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안정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다리, 지붕, 그 외 여러 가지 구조물에 활용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사각형’은 직관적인 도형이다. 사람의 시각에서 가장 정갈하게 다듬어진 모양이라 어디에서든 사각형을 찾을 수 있다.

단유가 이런 도형을 떠올리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시계 때문이었다.

시계는 굉장히 복잡한 구조라는 인식이 있지만, 스위스에서 만들어진다는 고가의 초정밀 시계를 만들 게 아닌 이상,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단유는 생각했다. 수학적 계산을 통해 정밀하게 기어(gear)비를 맞추기만 한다면 나름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도 어렵지는 않으리라.

시계를 만들려는 생각을 가진 것은 녹스 때의 경험도 있지만, 사람들의 기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다.

여기 사람들도 시간의 흐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시계에 의해 분할된 시간의 인식은 일과의 효율성을 높여줄 것이다. 또한 그런 시계를 제작함에 있어 여러 가지 기술의 활용은 이 마을 사람들에게도 기술의 중요성과 개발의 필요성을 자각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향후에도 단유가 무엇인가를 할 때,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

단유는 먼저 아잘을 찾아갔다. 마을에서 단유의 이야기에 가장 관심을 많이 가져주는 이가 아잘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계?”

아잘은 단유의 설명을 듣고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잘은 시계가 왜 필요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반대를 하진 않았다. 단유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에 호기심을 느꼈고, 그것이 어딘가에는 분명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잘이 단유를 데리고 간 곳은 목재 공방이었다.

“이게 뭐라고?”

“시계라고, 시간을 파악하는 장치에요.”

“시간? 그걸 왜?”

아잘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론,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만들어나 보라고.”

“아니 필요도 없는 걸 왜 만들겠다고 이 난리를 피운대? 차라리 우물에 있는 도르래처럼 필요한 걸 만들라고.”

“이봐, 론. 자네는 도르래를 만들 수 있겠어?”

“못 만들 게 뭐 있어?”

이미 실물이 있으니, 그걸 보고 따라 만드는 것쯤이야 어렵진 않다.

“그래, 그거야. 따라 보고 만들 수 있는 게 있으니까 자네도 만들 수 있는 거지. 시계라는 것도 당장은 어디에 쓰일지 모르지만, 일단 만들어보면 나중에 비슷한 장치를 만들 때 도움이 되지 않겠나?”

단유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식으로라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은 단순히 사용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필요성을 느끼고, 활용해야만 앞으로의 행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식사를 언제 하세요?”

“식사? 그야 배고플 때 하지.”

“혹시 식사 때를 놓친 적도 있지 않나요?”

“그야, 일을 하다 보면 놓칠 때도 있지.”

“잠은 언제 자세요?”

“피곤하면 자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론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을 잡니다. 만약 잠을 제때 못 자면 그다음 날 피곤하죠?”

“잠을 못 잤으니까 그렇겠지.”

“밥을 제때 못 먹으면 배가 고프고, 몸에 힘이 떨어지니까 제대로 일을 하기 힘들죠.”

“그렇지.”

“만약 잘 시간, 밥 먹을 시간을 꼬박꼬박 알려주는 기계가 있다면 어떨까요?”

론은 물론이고 아잘도 단유의 물음에 대답을 궁리해 보았다.

“···편하기는 하겠네.”

론이 그래도 뭔가 미심쩍다는 듯 툴툴대는 말투로 대답했다.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까지 정확히 알려주는 시계가 있어요. 그 시계에 맞춰서 아침에 일어나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에 밥을 먹고 시간에 맞춰서 일터로 나가요. 하루 일하는 시간도 시계가 알려주는 거예요.”

“시계가?”

“특히 해가 뜨지 않는 날, 흐린 날에도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죠. 언제 밥을 먹고 언제 잠을 자야 하는지도 알려주죠. 그 시간을 따르기만 해도 몸이 피곤하다거나 힘든 일이 줄어들겠죠.”

흐린 날, 어두울 때 시간을 알 수 있다는 건 꽤나 매력적으로 들렸다.

“게다가 또 다른 활용법이 있죠.”

“뭔데?”

아잘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예를 들어, 아저씨가 친구분과 저녁을 같이 먹자고 약속을 한다고 가정해봐요. 시계가 없을 때는 각자의 저녁 시간이 다르니 정확한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겠죠. 하지만 시계라는 기준이 있다면 정확한 시간에 만나는 일도 가능해지는 거죠.”

“호오.”

“두 분은 공방에 있으니까, 이런 경우도 가능하겠네요. 손님들이 맡긴 물건을 찾으러 올 때요, 언제까지 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때, 정확히 몇 시에 오라고 시간을 정해놓으면 찾으러 오는 사람도 헷갈리지 않을 것이고, 아저씨들도 그 시간까지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되니까 편하겠죠?”

아잘과 론이 서로 마주 보고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다른 부분은 그냥 대충 좋겠다는 정도였지만, 마지막의 이야기는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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