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개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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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하는 제토에게 단유가 간단히 오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제토는 과연, 이란 눈치로 단유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며 입꼬리를 늘렸다.
“친구가 힘이 좋아요. 어미 돼지도 혼자 업고 왔는걸요?”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며 제토가 좋아하고 있을 때, 단유는 긴 줄을 보며 물었다.
“혹시 마을에 우물이 하나야?”
“응. 좀 많이 붐비지?”
빈촌 정도의 규모라면 우물 하나로도 충분하겠지만, 이 마을은 빈촌의 몇 배는 더 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우물 하나로 모든 사람들이 식수와 허드렛물을 해결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매번 이렇게 긴 줄을 서서 물을 받는다는 것도 현대인으로서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물이라도 빨리 뜰 수 있다면 좋겠지만, 팔심이 약한 여자들이 들고 온 물통을 채우려면 시간이 꽤 걸릴 일이었다. 지금은 그나마 남자들이라도 있어서 먼저 온 이가 팔을 걷고 물을 길어주고 있는 형편이니 좀 나은 편이겠지만, 그마저도 사람이 많으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문득 단유는 우물 위에 어떤 이미지가 겹쳐지는 그림이 그려졌다. 아마 교과서에서 봤을 것 같은 그림인데 이 우물에도 그 ‘장치’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장치를 만들 도구도, 기술도 없고, 딱히 부탁할 사람도, 명분도 없다. 그저 편리함을 추구하고 이용하던 습관이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했다.
물통을 들고 집에 도착할 때 즈음, 단유는 제토에게 제안했다.
“재밌는 거 하나 만들어보지 않을래?”
“재밌는 거?”
레이도르가 없었지만, 그가 친구들과 함께 주점으로 가기 전에 저녁으로 먹을 빵과 치즈를 사 놓고 나간 터라 제토는 따뜻한 수프만 만들어서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는 사이 제토는 물었다.
“어떤 건데?”
단유는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아이디어들을 살짝 알려주었다.
“물을 쉽게 뜰 수 있게 돕는 기구, 랄까?”
“그런 게 있어?”
단유는 빵 일부를 뜯어내 수프에 찍었다. 빵이 수프를 빨아들이며 촉촉해지면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렸다.
“원래는 좀 복잡한데, 간단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어떻게 하는 건데?”
자급자족이 기본인 생활이다. 물론 잡화점이나 공방에서 물품을 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직접 만든다. 의자, 식탁은 물론이고 문이나 그 외 가구들도 직접 만들어 쓴다. 뚝딱거리며 무언가를 만드는 건 아이들의 시선에서 신기하고 재밌는 일과 중 하나였지만, 아직은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나이였기에 그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우선 나무가 필요해. 나무를 벨 도구가 필요하고, 고정할 못도 필요하고, 그러면 망치도 있어야겠고···.”
제토는 단유의 설명을 듣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못?”
아이들이 직접 ‘제작’에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는 열거한 도구들을 만질 권한이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제토 정도의 나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직 제토도 뭔가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 직접 해본 적이 없었던 때였다.
제토는 마침 아버지도 없는 틈에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나이인데도 단유는 제작 경험이 많은 것 같은데 자신이 한 번도 없다는 걸 알면 비웃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이게 자신의 첫 제작 도전기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괜히 들뜬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버지가 쓰던 도구들을 들고 왔을 때, 단유는 그 도구들을 보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척 봐도 쓸만한 게 없었다. 무엇보다 톱이 없었다. 도끼, 칼, 망치가 다인데 전부 제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냥용이었다. 단유는 일단 도구보다 자재가 우선이라고 생각해 제토에게 물었다.
“보니까 곧은 나무가 별로 없던데, 곧은 나무는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제토는 냉큼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면 곧은 나무들이 많아.”
“그럼 저녁 먹고 가보자. 우선은 가서 봐야 알 거 같아.”
“알았어.”
식사 시간이 짧아졌지만, 제토는 기분이 좋았다.
제토가 알려준 곳에는 꽤 곧은 나무들이 많았다. 처음 세리 산 근처에서 나무를 봤을 때, 곧은 나무가 별로 보이지 않아서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곳은 평소 알던 것들과 유사한 모양의 나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단유는 적당한 굵기의 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시간이 더 많다면 천천히 돌아다니며 더 좋은 나무를 고르겠지만, 이미 해가 거의 저물어 컴컴해진 마당에 더 돌아다니기가 어려웠다.
단유는 다른 한편에서 단유가 알려준 굵기의 나무를 찾고 있는 제토를 슬쩍 본 뒤, 다시 눈앞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원래는 톱이든 도끼든 이용해서 나무를 베어낼 생각이었지만, 제토가 보여준 것들을 보고는 마음을 바꿨다. 뭉툭한 날의 도끼를 쓰는 것도 곤란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 단유는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 머리를 굴려 방법을 찾고 있었다.
확실히 사람은 필요성을 느껴야 생각을 하는 법인가보다. 평소에도 나름 생각을 많이 하는 단유였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그래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을 떠올렸다.
‘압력과 힘은 정비례하지. 압력이 높을수록 힘도 커지겠지.’
평소에는 바람이 적용되는 공간의 단위 면적을 넓게 잡는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공간을 최소한으로 줄여도 가능하리라. 공간을 줄이고 줄이되, 풍력을 유지하면 단위 면적에 작용하는 힘이 세지지 않을까?
‘즉, 공기를 압축해서 한 방향으로 분사시켰을 때 그때의 힘은 과연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것인가?’
정육면체로 그려지는 공간을 위에서 누르면 그 안의 공기는 압축이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 공간의 압축은 이차원적인 ‘선’에 수렴할 수 있으니, 이때의 압력은 어마어마하리라. 그렇다면 그 힘으로 나무를 베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차원적 벡터의 작용을 계산하여 바람을 ‘쏘아낸다’는 식으로 계산했더니 결괏값이 너무 터무니없는 숫자에 다다른다. 만약 이대로 마법을 구현했다가는 감당 못 할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위력을 줄여야 했다. 압축은 그대로 하되, 면적을 줄여 힘을 약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마법을 구현하는 계산을 한 뒤에야 단유는 안심하고 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나무가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를 낸 뒤에야 제토는 단유 앞에 있던 나무가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에는 나무를 꺾거나 흔들거나 쪼개는 소리가 전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단유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시치미를 떼자, 제토는 나무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세상에.”
나무는 지름이 대략 10㎝ 정도였는데, 그렇게 얇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식하게 굵은 나무도 아니었다. 다만 나무가 꽤 길어서 앞뒤로 한 사람씩 들어야 들고 가는 게 가능해 보였다.
“이거면 돼?”
“응. 가자.”
손쉽게(?) 재료를 구해서 집으로 향하는 두 사람이었다.
“내가 할게.”
“조심해.”
제토는 손을 비비며 도끼를 잡은 뒤, 자세를 잡고 신중하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힘껏 아래로 내려쳤더니, 도끼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튕겼다.
“아야!”
나무를 잘못 겨냥해서 손에 반동이 심하게 왔는지 제토는 도끼를 던지듯 떨쳐내고는 손바닥을 오므렸다 폈다 반복했다.
“괜찮아?”
단유가 걱정스레 다가오자 잠시 입을 다물고 고통을 참아내던 제토가 손바닥을 뻗어 단유의 접근을 막았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제토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는 얼굴로, 바닥에 널브러진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비장한 눈빛으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한번 도끼질을 했다. 결국 서너 번을 더 반복한 뒤에야 나무에 제대로 홈을 남길 수 있었고, 그 뒤로 열 번을 넘게 휘두른 뒤에야 나무를 둘로 나눌 수 있었다.
“어때? 괜찮지?”
“응.”
단유는 적당한 길이로 잘렸다는데 만족했다. 그 작업을 한 번 더 해서 전체적으로 나무를 셋으로 나눴다.
“넌 이 나무의 가지를 다듬어. 난 이쪽을 맡을게.”
“응.”
“칼 조심하고.”
“내가 칼은 잘 쓰거든? 걱정하지 마.”
제토는 조금 전과 다르게 자신감이 넘친다는 듯 가슴을 툭툭 치고는 칼을 고쳐잡았다. 제토가 나무를 조심스럽게 다듬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단유는 자신이 맡기로 한 나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비록 칼을 들긴 했지만, 칼을 쓸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마법으로 다듬었더니, 다듬는 건 금방이었다. 게다가 이 나무를 기둥으로 삼을 생각이어서 땅에 박기 편하게 한쪽을 뾰족하게 다듬기까지 했다. 남은 또 한 나무에도 똑같은 작업을 했음은 물론이다.
제토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를 다 다듬고 난 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단유는 이미 자신의 할당량을 소리 없이(?) 마친 후 바닥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뭐야?”
단유는 제토가 작업을 마친 것을 확인하고 그를 불렀다.
“이렇게 만들 거야.”
제토는 단유가 보여주는 그림과 설명을 듣고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원래는 이렇게 생긴 게 달려야 더 좋은데 지금은 없으니까 임시변통으로 이렇게 쓰려는 거야.”
“그래서 저걸 만든 거야?”
“응.”
“너 정말 못 만드는 게 없구나?”
제토는 놀랍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걸 저 칼로 만들었다고?”
단유는 또 한 번 어깨를 으쓱거려 보인 뒤, 직접 칼을 들어 제토에게 보여준 것을 또 하나 만들어냈다. 칼이 부드럽게 움직이는데 마치 저절로 나무가 깎여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제토의 입이 다물어질 줄 몰랐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단유와 제토는 그것들을 들고 우물가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우물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제토는 단유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도왔다. 달빛에 의지해 작업을 이어나가는 제토는 힘들지만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듯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다음 날, 새벽에 우물가로 온 한 아주머니는 우물가에 세워진 낯선 기구에 의아함을 느꼈다.
“저게 뭐래?”
우물 양쪽에 단단히 세워진 기둥이 있고, 그 기둥에 수직으로 연결된 또 하나의 기둥이 우물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가로로 연결된 기둥에는 무언가가 달려 있었는데, 하나는 단순히 밧줄이 묶여 있을 뿐이었고, 기둥의 정 가운데쯤에는 동그란 장치가 밧줄에 묶여 달려 있었다. 그 동그란 장치에 밧줄이 감겨 한쪽은 우물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다른 한쪽은 우물 바깥의 한 기둥에 묶여 있었다. 그냥 묶인 게 아니고 또 이상한 장치에 감겨 있었다.
“뭐야? 누가 우물에다 장난을 쳐 놓은 거야!”
아주머니는 화를 냈다. 그녀가 보기에는 마치 물을 뜨지 못하게 하려고 줄을 묶어놓은 것처럼 보인 탓이었다.
“아, 안 늦었네.”
그때 아주머니 뒤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나타난 것은 제토였다.
“뭐야? 제토 아냐? 니가 이렇게 해 놓은 거야?”
“네.”
“나 참. 오랜만에 집에 왔다더니 왜 이런 짓을 한 거니! 너희 아버지는 대체 뭐하시고!”
제토는 아주머니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이브 아줌마. 이건요, 물 뜨기 편하게 하려고 만든 거예요.”
“이게?”
믿을 수 없다는 아주머니에게 제토가 직접 시범을 보였다.
“여기 이게 손잡이거든요? 이걸 잡고 이렇게 돌리면요.”
제토가 나무 기둥에 달려 있던 장치를 조작하자, 밧줄이 돌돌 말리면서 우물 속의 물통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소리만 나서 무언가 싶었는데 우물 속에서 커다란 두레박이 손쉽게 끌려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아주머니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된 거니, 이게?”
마치 무슨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한 손으로 손잡이를 돌릴 뿐이었는데 저 무거운 바구니가 손쉽게 끌려온다는 게 아주머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쓰는 거예요.”
손잡이를 또 교묘하게 조작한 뒤 제토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두레박은 여전히 물을 담은 채 공중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제토가 그 두레박을 붙잡아 끌어내자 줄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 두레박 속의 물을 아주머니가 가져왔던 물통에 붓자, 물통이 금방 차올랐다.
“해보세요.”
제토는 손잡이를 돌리는 것과 다 잡아 들어 올린 뒤, 손잡이에 걸쇠를 걸어 고정하는 걸 가르쳐주었다. 그 두 가지만 알면 전혀 어려운 게 없다는 설명이었다. 반신반의하며 손잡이를 돌리자 두레박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레박에 물이 담긴 것을 확인하신 다음에 다시 끌어올려 보세요.”
다시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하자 두레박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평소라면 힘껏 밧줄을 잡고 끌어올려야 할 것이 너무도 가볍게 느껴져서 마치 물이 담기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힘이 많이 안 들죠?”
제토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대단해!”
아주머니의 감탄에 제토가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저 웃음을 얻기 위해 지난 밤 단유를 도왔고, 아침 새벽부터 나와서 이 수고를 자청한 것이다.
도르래를 이용한 간단한 장치가 첫선을 보였고, 첫 고객에게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