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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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대화지.”
“대화?”
“저렇게 나가서 시위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냐. 저런 방식도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대화가 가능한 상황을 마련해서 대화를 요청하는 게 우선이라고 보거든.”
물론 학교가 학생들과의 대화를 받아들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대화를 거절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하지만 그럴 거라 미리 짐작하고 하지 않는 것은 편의적인 발상이었다.
“대화를 위해 먼저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야겠지. 이런 문제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먼저 듣고, 다수의 학생들에게서 같은 의견이 모인다면, 그때 그 의견을 학교 측에 전달하는 거야. 이런 문제로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서로의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이니 대화로 해결하자.”
도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단유의 대답을 생각해보았다. 언뜻 들어도 어디선가 많이 보던 장면 같았다.
‘아.’
가끔 길을 지나다 종이를 내밀며 서명을 부탁하던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 너무 일이 복잡해지는 거 아냐? 언제 학생들한테 일일이 묻고 그래? 그 사이에 교복을 두 번은 더 바꾸겠네.”
“복잡하지만, 그게 옳은 방식이고 정당한 절차야. 학교가 문제인 이유는 그 정당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고.”
학교도 당연히 그런 의견 수렴 절차를 모두 지켰어야 했다. 어떤 정책의 수립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없이 진행하는 경우가 어디 있던가. 구성원들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인데.
그런데 단유네 학교는 그 구성원들에게 의견 수렴을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을 무시하고 얕봤다.
“상대가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같이 편법을 저지른다면 결국 같은 꼴이잖아?”
상대가 죽창을 들었다고 같이 무기를 맞드는 것은 전쟁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장이 아니고서야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면 당하는 사람은 억울하잖아? 상대는 편법으로 이익을 얻을 때, 우리는 편법을 쓰지 않으면 손해 아냐?”
도하의 생각도 이해 가능한 부분이다. 이해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단유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 때는.
“상대와 같은 방식으로 대하면,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수 없지. 나 역시 잘못이니까. 그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의 잘못을 지적받을 수 있다는 뜻이야.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너를 때렸어. 그래서 너도 그 상대를 때린다면 그건 정당한 것일까?”
“정당방위지.”
“상대가 한 대를 때렸어. 그러면 너도 한 대를 때리면 정당방위일까?”
“당연하지.”
도하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도 그것은 옳은 말이다.
“니가 두 대를 때리면?”
“어, 그래도 상대가 먼저 선빵을 날린 거니까 그 정도는 정당한 거 아닐까?”
애초에 맞기 싫으면 때리질 말았어야지, 라며 한때의 과거를 떠올려 보는 도하였다.
“초등학교 1학년 생이 널 때렸어. 그럼 너도 그 초등학생을 때려야겠네?”
“응? 그건 다른 이야기잖아?”
“할아버지가 널 한 대 때렸어. 그럼 너도 그 할아버지를 때려야 정당할까?”
도하는 조금 어이없다는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다르잖아?”
“경찰이 널 한 대 때렸어. 그럼 너도 그 경찰을 때릴 수 있어?”
“무슨 예가 그런 식이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잖아, 라고 항변하고 싶은 도하였다.
“그럼 니가 말하는 정당방위란 것은 상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거네?”
단유의 물음에 도하는 고개를 좌우로 휘휘 저었다.
“아, 몰라.”
“법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하게 이야기되겠지만, 이건 법적인 이야기가 아니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당성은 내가 바르게 행동했을 때만 성립하는 거야. 같은 폭력을 휘두르면 정당성은 성립하지 않는 거야.”
“그럼 맞고만 있어?”
“만약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폭력에 대한 방위에 관한 문제라면, 맞든지 혹은 방어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 법적으로도 같은 폭력은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으니까.”
“뭐가 그렇게 어려워?”
“그 어려운 걸 해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정당성이란 나 혼자 옳다고 주장해서는 옳은 게 아니니까.”
괜히 복잡한 절차를 수행하도록 법이 정해진 게 아니었다. 그런 절차를 거쳐야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은 그래서 현대의 제도에 맞지 않는다.
상대의 잘못을 크게 키워서 자신의 행위를 옳다고 여기게 하는 게 동태복수법이다. 게다가 동태복수법은 상대의 행위를 평가하는 잣대를 자신에게 둔다. 즉, 자신이 옳으면 상대가 그른 것이고, 상대가 옳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행위가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오류를 저지르게 한다.
단유는 창밖으로 들려오는 구호 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던졌다.
“세상이 모두 자기 편한 대로만 움직인다면, 그건 이 사회의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어.”
혼자 살 게 아니라면, 법과 원칙은 지켜야 한다. 다만 단유를 진정으로 씁쓸하게 만드는 점은 그 법과 원칙을 만든 이가 교장과 같은 기성세대라는 점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지독한 오류의 순환이었다. 만약 젊은 사람들이 기성 세대에게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기성세대는 기존에 세운 법과 원칙으로 정당성을 강조할 것이다. 만약 세월이 영구히 지나도 인정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법과 원칙이 있다면 이런 문제를 고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절대’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 순간이었다. 단유는 머릿속에서 쾅, 터지는 폭음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은?’
순간적으로 떠올린 그 물음에 단유는 즉각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공간, 동시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그 속에서 오롯이 빛나는 단 하나의 점.
그것은 빛이었고, 어둠이었으며, 숫자였고, 그림이었으며, 모든 것이었으며, 아무것도 아니었다. 혼란과 질서과 함께 공존하는 ‘그것’은 일찍이 단유가 훔쳐보았던 진리의 한 단편이었다.
단유는 입을 벌렸다. 그 모습을 보던 도하가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왜 그래?”
하지만 단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점차 단유의 동공이 풀리더니 급기야 단유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야! 김단유!”
도하의 외침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호기심을 느낀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곧 웅성거리는 소리가 교실을 채워나갈 때, 담임이 교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한 아이가 외쳤다.
“선생님! 단유 쓰러졌어요.”
담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단유가 쓰러졌다는 소식은 빠르게 전파되었다. 가장 먼저 명수가 조회 중에 선생님의 제지도 뿌리치고 양호실로 달려왔다.
“단유야! 단유야!”
불러도 단유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이런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에 단유가 이렇게 쓰러지곤 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얘 혹시 지병이 있어?”
양호 선생님의 물음에 명수는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도 몇 번 쓰러졌었는데요, 병원에서 병은 없다고 그랬어요.”
땀으로 엉망이 된 양호 선생님은 심각한 얼굴로 창백해진 단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심장이 너무 느리게 뛰는데?”
말로 뱉지는 않았지만, 마치 가사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심폐 소생술을 시행해도 돌아오지 않는 맥과 심박동 때문에 119에 전화를 해 놓은 상태였다.
“예전에도 이랬어요. 병원에서도 의식불명 상태라고.”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고?”
“여러 번까지는 아니고 두세 번 정도.”
호흡이 느리게 이어지고는 있지만, 저 정도의 심박동이라면 뇌에 충분한 양의 피와 산소가 공급될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뇌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질 텐데, 명수의 말대로라면 과거에도 저랬다고 하니 이상하기 짝이 없다. 뇌에 수차례 충격을 받은 아이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다? 양호 선생님의 짧은 식견으로도 이는 의학계의 미스터리였다.
그 사이 명수는 하은에게 연락을 했다. 오후에 학원을 가기 때문에 지금쯤이면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역시나 곧 하은이 전화를 받았다. 명수가 짧게 단유의 상태를 알리자, 급히 전화를 끊어버린 하은이었다. 전화를 끊었을 즈음에 구급대가 학교에 도착했다. 수업 거부를 하며 운동장에 섰던 아이들이 영문을 몰라 구호를 멈췄을 때, 몇몇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단유의 일을 알게 되었다.
웅성대는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단유는 구급차에 실렸고, 명수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단유는!”
제대로 치장도 못 한 상태로 허겁지겁 나타난 하은이 붉어진 눈으로 명수를 채근했다. 곧 명수와 하은은 단유가 누워있던 침상으로 향했다. 마침 응급실 담당의가 단유를 검진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희 단유, 단유 어떤가요? 괜찮나요?”
하은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그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여상(如常)히 대하는 의사는 미간에 깊은 골을 새기며 말했다.
“괜찮지 않습니다. 솔직히 원인을 알 수 없어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이 상태가 오래 지속 되면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습니다.”
둘러 말했지만, 생명이 위독하다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저 학생이 이야기하기로는 예전에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죠?”
하은은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명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하은은 단유가 마지막으로 쓰러졌던 이후에 만난 사람이었다. 명수는 과거 단유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찾아보니, 저 학생 말대로 병원에 입원했었던 기록들이 있더군요.”
단유의 과거 의료 기록을 확인한 의사가 명수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 미스터리지요. 과거에도 이런 코마(coma) 상태를 겪었다는 뜻인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몸이 정상일 리가 없거든요?”
의사는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할 정도였다. 만약 자발적인 호흡이 없다면 당장에라도 인공호흡기를 연결해야 할 테지만, 기이하게도 단유는 비록 미약하나마 자발 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 호흡이 지나치게 길고 가늘어서 과연 저런 호흡이 가능할까 의심스러울 정도였지만.
“그런데도 지금까지 정상생활을 했다면···, 아무튼 일단은 지켜볼 문제이긴 합니다만 우선 입원 수속을 밟으시길 권해드립니다.”
하은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후, 명수를 바라보았다.
“제가 옆에 있을게요.”
하은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인 뒤, 입술을 깨문 채로 응급실 바로 옆에 위치한 원무 접수처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다, 다시 단유에게로 고개를 돌린 명수는, 마치 자는 듯 얌전하게 눈을 감고 있는 단유를 지켜보았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명수는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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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걱정을 사고 있던 단유는, 그런 상황은 전혀 모른 채 매우 느긋하게 주변을 파악 중에 있었다. 지금 단유가 있는 곳은 처음 보는 곳이었다. 처음 보는 곳인데 익숙했다.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곳이 땅인지 물인지, 그도 아니면 허공인지도 분간을 할 수 없었고 자신이 바라보는 곳에 있는 것이 나무인지, 바위인지, 혹은 동물인지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멈춰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단유의 상식으로 이런 건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니, 현실이 아니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단유는 느긋했다.
‘꿈이겠지.’
그렇지만 단유의 본성이 호기심이니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단유를 둘러싼 공간에 대해 파악을 해 보자면, 거대한 우주 공간인 것도 같고 아주 좁은 밀실에 갇혀 있는 것도 같았다. 정형적(定型的)인 것 같다가도 마치 생물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변형과 왜곡이 쉴새 없이 벌어지는 공간이었다.
‘어떤 의미일까?’
꿈속의 일이니 곧 자신의 의식에 관련된 문제이리라. 단유는 자신이 현재 ‘감각적으로’ 느끼는 이 주변의 현상에 대해 해석을 시도했다.
모든 것이 정물화처럼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니 마치 꿈을 꾸기 전의 자신이 느꼈던 혼란의 이미지를 그려낸 것 같다.
‘아.’
단유는 그제야 자신이 고민했던 화두를 떠올렸다. 절대적인 것,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궁리를 하던 중이었음을 깨달은 단유는 자신이 보는 만변(萬變)의 현상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단유는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쾌활한 목소리가 단유에게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