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22화 (422/956)

주홍글씨(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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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그래, 교육부. 마침 잘 됐잖아? 교육부 폐지론도 오가는 판국인데 말이야.”

어느 나라인들 안 그러겠느냐마는, 특히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교육은 가장 중요한 국가 정책 중의 하나이다. 한데 그간 교육부의 존재는 여러 단체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국가 행정 기관의 하나로 교육부가 존재하기에 행정 수반의 영향력을 많이 받는다는 점과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는 등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지적을 많이 받았다.

물론 교육정책의 추진과 중앙 콘트롤타워의 기능을 담당해야 할 교육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곳도 있지만 말이다.

“교육부도 개방적인 이미지를 가져가야 돼. 비판을 수용할 줄 알고, 개혁에 앞장선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하거든. 마침 잘 됐잖아. 이 정도 해프닝으로는 크게 타격받을 일도 없고, 적당히 이미지 쇄신이란 이름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담뱃재를 톡톡 털어낸 김 과장이 홍보담당관의 멍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성실하게 일하는 건 좋아. 하지만 너무 공무원 티는 내지 말라고. 요즘 같은 시대에 공무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인 것 같나?”

김 과장은 별로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듯, 곧 답을 이야기했다.

“바로 유연성이야.”

담배를 입에 문 뒤, 빈손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리는 제스처를 취한다.

“여기가 꽉 막혀서는 살아남을 수 없거든? 공무원 집단도 이제 유연하게 사고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사고 터졌네, 어쩌지? 막아야지. 여기 뛰고, 저기 뛰고. 그거 다 옛날 방식이야. 요즘은 뭐야? 솔직함이 대세라잖아? 인정해버리는 거지. 우리가 중학생의 의견도 소중히 생각한다. 우리는 이 나라의 교육을 위해 어떤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런 메시지를 던져주는 거야. 효과? 장담은 못 하지만 억지로 막는 것보단 좋을걸?”

“위에서 허락하실까요?”

“결과만 놓고 보는 거야. 결과만. 그 중학생을 홍보 모델로 쓰면, 그 소년의 이야기를 우리가 가져올 수 있어. 포장지 새로 씌어서 시장에 내놓으면 그게 우리나라 건지, 외국 건지 알 길이 없잖아? 팔아먹는 사람이 돈 버는 거지.”

김 과장의 이야기는 홍보담당관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평소 김 과장을 보면서 ‘공무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특히 행정고시를 거쳐 올라온 이였기에 7급 시험 치고 이 자리까지 온 홍보담당관으로서는 그의 ‘똘끼’가 오만함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똘끼’가 이제는 시대의 변화처럼 보였다. 이 시대에는 저런 사고와 추진력이 살아남는 법이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그런데 그 소년이 만약 홍보대사를 고사한다면요?”

“그건 그쪽 소관 문제고.”

“네?”

김 과장은 담배를 비벼끈 뒤, 홍보담당관을 쳐다보았다.

“일이잖아?”

아, 그렇구나. 홍보대사를 시키라고 지시가 떨어졌으니, 자신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 아이를 발탁하면 될 일이다.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것도 기본은 지킨 뒤의 일이지.”

홍보담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꽁초만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넣었다.

“아, 그리고 장계중학교에 지금 교육청 감사가 들어가 있다고?”

“네.”

홍보담당관은 교복 변경과 관련한 감사에 관한 내용과 이를 단유가 언급한 일까지 모두 보고를 한 상황이었다.

“내가 전화 좀 넣어둘게. 생색은 진 담당이 내라고.”

“감사합니다.”

“뭐, 이 정도로 그래.”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젓던 김 과장은 옷깃을 여미며 다시 본관으로 향했다. 몇 해 동안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냈던 기억이 있던지라, 이번 겨울 역시 그 맹추위를 어찌 견뎌야 할지 걱정이다.

****

교장 선생님은 단유의 이야기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적막한 교장실에 교장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단유 군.”

“네.”

“제가 단유 군을···‘간판’으로 쓸려고 했다는 건, 추측이죠?”

교장은 짧은 시간에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적어도 ‘존칭어’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은 회복했다.

“네, 추측입니다. 만약 그런 의도가 없으셨다면 사과드리죠.”

교장은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과···안 하셔도 돼요. 사실이니까요.”

교장은 일단 그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앞서의 권력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둘째로 두더라도 단유를 가까이 두려 했던 자신의 행동은 다른 말로 포장하기가 어려웠다. 어리니까 괜찮겠지, 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자신의 판단을 탓할 뿐이었다.

“하지만, 단유 군을 제 개인의, 사적인 욕심으로 간판처럼 다루려 했던 것은 아니에요. 자랑스러운 장계 중학교의 간판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지. 학생은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까요.”

단유는 말없이 교장의 말을 기다렸다.

“이미 말한 대로 학생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죠. 지금의 모습만 봐도 앞으로 이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리라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현재 이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활약을 하는 이들을 보세요. 그들의 프로필에는 꼭 출신학교가 나옵니다. 이런 사람을 배출한 명문 학교, 라는 자부심. 누군들 가지고 싶지 않겠습니까? 저만 그럴 것 같나요? 저에게만 좋을 것 같나요? 아니에요. 학생의 말처럼 이 학교는 학생의 것입니다. 학교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학교를 나온 학생들의 자부심도 올라가는 것입니다.”

말을 꺼내는 동안 교장은 침착함을 되찾았다.

“단유 군이 학교의 이름을 드높이면, 그로 인해 단유 군의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에게 그 영향이 갈 겁니다. ‘훌륭한’ 명문 학교를 나왔다는 자부심을요. 아직 어려서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이 사회에는 그런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경기고등학교, 경복고등학교 등 이름만 대도 사람들이 그 역사와 전통을 추억하고 존중하는 분위기죠.”

교장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단유의 곧은 눈을 마주했다.

“명문, 이란 이름은 단순히 허명만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세운 전통이 학생들에게 바른 가치관과 존경받을 습관을 마련해줍니다. 그런 학생들이 사회에서 큰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요. 우리는, 그러니까 이 학교의 교사들과 학생들은 그런 전통을, 규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러한 점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단유 군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이렇게 설명해 드리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단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선생님.”

교장의 눈이 짧은 순간 번들거렸지만, 그 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뭔가요?”

“선생님의 말씀은 이해하겠습니다만, 그렇다면 더 많은 오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네요.”

“오해?”

“학교의 전통, 그러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취지대로 바른 가치관과 존경받을 수 있을 만한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학생들의 자발적인 협력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죠.”

“학생들을 배제하고 세우는 전통은 전통이나 아니라 그저 강제하기 위한 규칙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학생들을 배제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학생.”

“지금 교복 문제 말입니다.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강행하고 있지 않나요? 학교의 일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는다면, 이 학교의 전통이란 것은 그저 강제적인 복종만을 당연시 여기는 문화를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려는 것 같다는 오해가 생길 것 같네요.”

교장의 홉뜬 눈이 단유를 노려보았다.

“점점 도를 넘는 것 같군요. 학생.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학생은 어른에 대한 예의를 먼저 배워야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교장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제적인 복종이라느니, 주입이라느니 하는 자극적인 단어만 일부러 사용해서 심기를 어지럽히려는 학생의 의도가 매우 불쾌합니다.”

단유는 그 순간 교장의 상태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교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듣는 척이라도 하는 것 같더니, ‘간판으로 쓰지 말아달라’는 단유의 선언 이후부터는 그저 단유가 하는 말의 특정 단어와 문장만을 문제 삼는 교장의 태도였다. 아마도 오랜 세월에 굳혀 형성된 그의 가치관 안에서 15살 소년의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을 내렸던 것인지도 몰랐다.

단유도 딱히 교장을 힐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기변명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무엇을 고치라고 지적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솔직하게 보이는 대로 생각한 대로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그 솔직함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결국 대화가 아닌 싸움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단유는 그런 싸움을 즐기지 않았다.

단유는 침묵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학교가 비록 오랜 역사를 가진 학교는 아니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교풍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사람이 무엇이냐? 어려운 사람을 돕고, 어른을 공경하며, 타인에게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 올바른 사람입니다. 즉 조화롭게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 올바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학생은 그 조화를 아직 배우지 못한 것 같네요.”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는 교장이었다.

“학생에 대한 문제는 이번 주 금요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눠야 하겠습니다. 그리고···생각보다 좀 더 엄한 교육이 필요할 것 같네요. ···이만 돌아가세요.”

단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보이고 곧장 교장실을 나왔다. 그 뒷모습을 노려보던 교장인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부모 없는 애들은 저래서 안 돼. 예의가 없어, 예의가···.”

괜한 심력 낭비 때문에 저녁에 있을 골프 약속도 못 지킬 것 같았다. 교장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핸드폰을 들었다.

“이사장님, 네. 접니다. 내일 시간 되십니까?”

****

그날 저녁, 늦게 돌아와 피곤한 얼굴의 하은이 단유를 불렀다.

“너 지난 토요일에 또 일냈더라?”

“에이, 선생님.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그래요.”

명수가 혀를 내밀며 핀잔을 주자 하은이 바빠서 그래, 라며 변명했다.

“오늘 학원 갔더니 니 이름을 언급하는 아이들이 있더라. 설마 하면서 찾아보니까, 세상에 또 인터넷에 니 영상이 떠 있는 거 있지?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어떻게 얌전히 지나가는 법이 없니 그래? 그리고 영상 보면서 내가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는지 알아?”

명수는 냉장고에서 300g 파인트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날도 추운데 그런 게 먹고 싶냐는 하은의 핀잔에 괜찮아요, 라고 짧게 대답했다.

“선생님이 왜 죄책감을 느껴요?”

단유의 물음에 하은은 단유를 돌아보았다.

“너 거기 면접 가기 전에 나랑 이야기하면서 했던 이야기들이었잖아?”

“어, 그랬어?”

명수가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퍼다가 물었다.

“응.”

“그럼 선생님이 단유한테 가르쳐준 거네요? 교육 개혁이니 뭐니 하는 거?”

하은은 턱을 괴고 명수를 바라보았다.

“그런 건 아냐. 그때도 단유는 그 점에서는 나랑 같은 의견이었으니까. 그나마 인권 이야기가 안 나와서 다행이랄까?”

“그게 뭔데요?”

하은은 잠시 말을 끊고 물끄러미 명수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단유랑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인권 이야기가 나왔거든. 학생들의 인권이 과연 학교에서 보장을 받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야. 요즘 학교는 내가 다니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말이야. 기본적으로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어. 자신이 가르친다는 행위 그 자체에 강한 의미를 두어서 학생들을 뭔가 모자란 사람, 혹은 부족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어. 그래서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적었지. 학생들의 이유 있는 불만도 그저 철부지 아이들의 투정쯤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도 했고.”

하은은 명수 근처에 있던 수저통을 가리켜 보였다. 명수가 그 뜻을 알아채고 숟가락 하나를 꺼내 하은에게 건넸다.

“아무튼 말이야. 그런 이야기까지 나오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었지.”

“왜요? 오히려 속 시원하게 그런 이야기도 질러버리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더 시원할 것 같다만.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인권을 이야기하면 너는 감탄을 하겠니, 아니면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겠니?”

글쎄요, 그런 상상은 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 명수에게 하은이 혀를 찼다. 그리고 명수의 품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뺐었다.

“어른들이 보기에 너희들이 딱 그런 꼴이야. 주제에 뭘 아냐고 무시당하거나 혹은 어디서 주워들은 걸 떠드는 주제에 잘난 척이라고 비난을 받겠지. 만약 단유가 그랬다면 온갖 욕이란 욕으로 인터넷이 도배되지 않았을까?”

아이스크림에 숟가락을 꽂고 한가득 퍼낸 하은은 그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리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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