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21화 (421/956)

주홍글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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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가 입을 열려고 할 때, 교장 선생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묻기 전에 말이죠.”

“네.”

“생각을 충분히 하고 말을 하도록 하세요.”

인자한 미소를 그린 교장 선생님은 이것도 훌륭한 가르침이니 잊지 말게나, 라고 말하는 표정이었다. 단유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전교 1등이 아니었다면 절 이 자리에 부르지 않으셨겠죠?”

교장 선생님의 눈두덩이를 덮던 두꺼운 지방질이 밀려 올라갔다. 단유가 질문을 하겠다고 했을 때 상정했던 여러 가지 물음 중에 없던 내용이라 조금 당황했다.

“어떤 의도로 묻는 거죠? 혹시 내가 학생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여기는 건가요?”

단유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차별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나누는 선생님의 의견을 묻는 것입니다.”

“뭐라고요?”

단유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조금 전 선생님께서는 ‘엘리트’라는 단어를 언급하셨어요. 정확한 정의를 몰라서 교장 선생님과 제가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다수에 비해 특별히 많은 권력을 가진 소수 지도층이나 지배층을 엘리트라고 호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전 엘리트가 되려고 노력한 적도 없었고, 엘리트가 되고 싶지도 않아요.”

이제는 당황을 넘어 기분이 나빠졌다. 소파의 팔걸이를 두드리는 대신 소가죽을 두터운 손가락이 하얘지도록 짓눌렀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제가 아는 한 엘리트 교육을 지양하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단유 군.”

목에 진 주름이 울렁대며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네.”

“생각! ···을 하고 이야기하라고 했을 텐데요.”

“충분히 생각했습니다.”

단유는 담담하게 발언했고, 교장은 또 한 번 소파의 가죽을 짓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의도적인 발언이군요. 어른의 심기를 일부러 거슬려서 얻고자 하는 바가 있나요?”

교장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단유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단유는 얕게 숨을 토해낸 뒤 입을 열었다.

“어른들은 이해하기 힘든 대화 방식을 선호하네요. 대화는 서로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명확하게 뜻을 전달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굳이 중의적인 표현으로 질문을 하시네요.”

교육부에 계시던 어느 분도 저렇게 말씀하시던데. 대답 대신 소가죽이 짓눌리며 내는 소음이 났다.

“심기를 일부러 거슬리게 하려는 생각도 없었고 얻고자 하는 바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말을 끊은 교장 선생님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뱉으며 진정하려 애를 썼다.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교장이지만, 자기가 살아온 인생의 반도 살지 못한 꼬마가 자신과 눈을 마주하는 꼴을 보니 비위에 거슬려 더 화가 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말꼬리나 붙잡고 트집 잡으려는 생각은 말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세요.”

단유는 교장의 안색을 살피다 입을 열었다.

“국어 시간에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글을 읽으면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글의 행간을 읽어라. 글자만 보지 말고 그 속에 숨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야 그 글을 제대로 읽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교장의 눈빛은 여전히 서늘하게 단유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교육의 영향인지 사람들은 대화의 겉이 아닌 속을 보려고 하네요.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저 사람은 어떤 의도로 말을 꺼냈을까? 숨겨진 의도가 무엇일까?”

단유는 차를 바라보며 물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주신 이 차는 찻잎을 달인 물이겠죠. 차를 우려내서 이렇게 노랗게 보이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 차를 보고 이 차에 숨겨진 비밀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도대체 왜 노란색 차를 줬을까? 왜 이런 맛이 나는 차를 줬을까? 왜 이 차는 투명한 거지? 바닥이 보일 만큼 투명한 차를 준 이유가 있을까?”

단유는 차를 건네준 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시라고 준 차(茶)를 의심하는 행동은 불필요한 것이겠죠. 마찬가지로 대화의 핵심은 바로 말입니다. 말 뒤에 의도를 숨겨놓기보다는 말 그 자체로 상대에게 자신의 뜻을,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저도 그렇게 생각해야만 할 것 같네요. 교장 선생님은 과연 어떤 의도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일까요.”

교장 선생님은 점점 건방지게 구는 이 조그만 아이를 어떻게 혼을 내야 할까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처벌이 나오겠죠. 그 사실을 통보하기 위한 이유라면 그냥 담임 선생님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했어도 될 문제일 텐데 굳이 선생님이 절 불러서 이야기하시려는 의도가 뭘까요?”

단유를 부른 이유? 그야···.

“얼마 전 사회 시간에 국제 사회와 국제 정치라는 단원을 공부했거든요? 그때 사회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이지만 ‘헤게모니’란 단어가 있다고요.”

헤게모니는 본래 뜻은 주도권을 의미하고 주도하는 권력 혹은 권한을 의미하지만, 국제 정세에서 헤게모니는 보통 미국에 의한 세계 질서 체제에서 미국을 비판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면이 많다.

“기본적으로 모든 나라는 각자의 권력을 용인받길 바라고 한 나라에 의해 끌려가는, ‘헤게모니’적 질서를 반대한다고요.”

도대체 어떤 선생이 이제 중학생이 된 애들한테 ‘헤게모니’ 따위를 이야기한단 말인가.

‘이 작자를!’

그저 학생들에게 국제 정세가 복잡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을 뿐인 사회 선생님은 엉뚱한 이유로 교장 선생님의 저주를 받아야만 했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만 권력 다툼이 있는 것은 아니라죠? 저도 가끔 뉴스를 보면, 뉴스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은 ‘권력’에 관한 내용으로 이해되기도 해요.”

국회 정당 간의 대립. 회사 내에서의 대립, 더 작게는 가족 내에서의 대립까지도, 결국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이제부터는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상상으로 추정하는 것일 뿐이니 틀릴 수도 있어요. 그리고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단유는 잠시 숨을 돌린 뒤, 말을 이었다.

“전 교장 선생님이 의도를 가지고 절 불렀다고 생각해요. 그 의도가 처음에는 불분명했지만, 앞서의 대화들을 통해 몇 가지를 추정해 볼 수 있었어요. 첫째는 교장 선생님의 권위에 관한 문제입니다.”

권위? 뜬금없는 단어의 등장에 교장은 단유의 의도를 제대로 캐낼 시간을 갖지 못했다.

“교장 선생님은 저를 자유학기제 홍보대사에 들도록 선생님들께 지시하셨을 겁니다. 적어도 그런 문제를 선생님들이 임의로 정하지는 않았을 것 같으니까요. 그렇다면 거기서 왜 제가 그 대상이 되느냐는 문제가 나오더군요. 하지만 앞서와 같이 ‘엘리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면 이런 저라도 교장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적당해 보였을 거란 추측이 드네요.”

교장의 내면에 있던 계획의 일부를 집어내는 단유였다.

“하지만 면접장에서의 일로 교장 선생님은 곤란해지셨나 봅니다. 그것이 학교의 일이든, 뭐든 말이죠. 그러니 제게 ‘처벌’을 지시하시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절 이렇게 부르실 이유는 없죠.”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 두 번째 추측은 저와 사적 관계를 유지하시고자 하는 겁니다.”

“니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느냐?”

“그러니까 말이죠. 겨우 15살인 중학생에 불과한데요. 그런데 선생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권력’의 문제입니다.”

단유는 찻잔을 들었다.

“저는 권력이 뭔지 모르겠어요. 권력이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지도요. 권력의 속성이니 하는 이야기는 당연히 이해할 수도 없죠.”

식어서 미지근하게 변한 차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권력을 하나의 힘으로 가정하면, 몇 가지 도식을 그려볼 수 있겠죠. 예를 들면, 교장 선생님의 위치에서 권력이라 하면 교사와 학생들의 위에서 발휘될 것입니다. 당연히 아래에 놓인 이들에게 힘을 투사하거나 혹은 아래의 질서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지겠죠.”

교장 선생님은 천천히 등받이에서 등을 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의 권력은 완전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학교란 공간은 독립적으로 분리된 공간이 아니니까요. 바로 상위에 교육부와 교육청이라는 기관이 존재하잖아요? 당장 저희 학교를 봐도 교육청에서 내려온 감사에 의해 통제받고 있으니까요. 즉 교장 선생님의 권력―통제는 공고하지 않거나 혹은 생각보다 약하다는 뜻이겠죠.”

교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 저희 학교는 사립학교이니까 당연히 재단이 있을 테고, 재단의 이사회가 있겠죠. 사립학교 재단 이사회라는 곳이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립학교의 존립에 관계된 영역이니 아마도 교장 선생님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위치에 둘 수 있을 거라고 추측이 되네요. 그렇다면 당연히 권력이란 힘 역시 분산되거나 혹은 약화 되겠죠.”

뭐지, 이 녀석?

“교장 선생님의 권력이 약하다는 말은 반대로 하위에 있는 교사와 학생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영향도 있겠죠? 사실 선생님들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학생들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네요. 옛날에는 선생님들이 말 듣지 않는 아이들이 있으면 마음대로 때릴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잖아요? 통제권이 약화되었다는 점이겠죠. 또 학교 교복 문제는 적당한 예가 되겠네요. 교복 변경을 교장 선생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통제권이 약하다는 이야기고 반대로 학생들의 자율권이 높다는 이야기니까요.”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몇 가지 변수들만 조합하면 얼마든지 비교 가능한, 단순한 관계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단순한 관계도가 교장에게는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권위를, 권력을 다시 높이고 싶으셨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를 이용하기로 생각하신 거겠지요. 마치 과거의 권력자들이 스포츠나, 언론, 모델, 광고 등을 이용한 것처럼요.”

틀린 부분이 있으시면 지적해주시란 단유의 덧붙임에도 교장 선생님은 할 말이 없었다. 뭔가 아주 건방지고 대단히 불편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단지 기분만이냐고 묻는다면, 역시 할 말이 없다.

“저는 선생님의 광고판 노릇을 위해 불려온 셈이겠죠. 처음에는 홍보대사로 학교의 이름을 드높이는 역할로, 이번에는 학생들을 징계하여 통제하려는 의도로서 말이죠.”

아니다, 틀렸다, 뭐라고 지적해야 하는데 어느 지점을 지적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저는 선생님의 광고판이 아닙니다.”

단유가 마무리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냐, 그럴 수 있지, 뭐. 경위서는 다 썼고?”

“네.”

“그래. 알았어. 일 봐.”

홍보담당관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상사를 지켜보았다.

“왜 할 말 남았어?”

“아니, 그게 아니라···.”

김 과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냥 이렇게 끝내니까 아쉬워?”

“···아쉬운 게 아니라 뭔가 후속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후속대책?”

“당장 언론에 반박자료나 해명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이봐, 진 담당. 뭐가 그렇게 걱정이 많아?”

“네?”

“사람이 왜 이렇게 꽉 막혔대?”

김 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돌아 나왔다.

“잠깐 따라와.”

홍보담당관은 김 과장의 뒤를 따라갔다. 흡연실이라고 마련된 곳은 청사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가는 동안 김 과장은 홍보담당관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가르쳐 줄 시간이 충분했다.

“자네는 사건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축소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줄일 수 있으면 줄여야죠.”

키우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래, 줄일 수 있으면 줄여야지. 그런데 자네가 말한 것처럼 반박자료, 혹은 해명자료를 낸다고 생각해봐. 사건이 커질까 작아질까? 손뼉도 맞부딪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우리가 반박자료를 내면 소리를 키우는 꼴 아니겠어?”

“그럼 이대로 가만히 계실 겁니까?”

가만히 있기에는 몇몇 언론에서 재생산되는 뉴스가 눈에 걸린다. 아직 여론이 어느 정도로 형성되었는지는 가늠이 되지 않지만, 이 상태로 언론에서 재생산되는 뉴스는 막아서 더 커지지 않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사그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하책이고.

“누가 가만히 있는데?”

어느새 흡연실에까지 온 김과장은 품에서 담배를 하나 빼어 물었다. 덩달아 입에 담배를 문 홍보담당관은 연신 눈치를 보며 불을 붙였다.

“우선 표현부터 바꾸자.”

“무슨···?”

“사건이 아니라 ‘해프닝’.”

같은 의미인데 뭔가 작아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어차피 날 소리, 크게 키우자.”

“네?”

“그 친구를 교육부 홍보대사 시켜.”

“네?”

“교육 개혁을 위해 일하는 교육부의 이미지. 좋잖아?”

홍보담당관은 순간 놀라서 담배를 떨어뜨릴 뻔했다.

“자유학기제가 아니라, 교육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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