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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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자중하길 권했지만, 순순히 따를 아이들이 아니었다. 설령 교실 분위기를 잡기 위해 다소 강압적으로 험악하게 인상을 쓴다 해도 아이들은 입만 열지 않을 뿐 손가락을 분주히 놀려 단톡방에서 수다를 떨었다.
다수의 아이들이 단유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단유의 주장, 교육 개혁이라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몸으로 와 닿지도 않고 그저 말뿐인 주장이라 더욱 그랬다. 다만 단유가 어른들, 특히 교육부의 높은 직급을 가진 이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들이밀던 그 모습에는 모두 환호를 보냈다.
물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단유를 보는 이들도 없진 않았다. 잘난 척한다거나 버릇이 없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단유를 옹호하는 말들이 대부분이었고, 단유를 전교 회장 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했다.
사실 선생님들 사이에도 단유에 대한 시선은 갈렸다. 평화로운 직장 생활을 꿈꾸는 선생님들 입장에서 물의를 일으킨 단유가 곱게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단유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 그 취지마저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선생님 식사하셨어요?”
강구가 돌아보니 박헌영 선생님이 커피를 든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 박 선생님. 예, 방금 먹었습니다.”
“커피?”
“아뇨, 괜찮습니다.”
헌영은 싱긋 웃으면서 다가왔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눌까요?”
강구는 선배 교사인 헌영이 어떤 말을 할지 걱정되었다.
“날이 선선하니 좋네요.”
선선하다기보다는 쌀쌀하다. 이제 겨울이 진짜 다가왔다는 느낌이었다. 헌영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교정을 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정 선생님, 힘드신가 봐요?”
“네?”
“어깨 펴세요. 선생님이 잘못한 건 없잖아요.”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빈말 아닙니다.”
헌영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힘드실 거예요. 보통 애가 아니라서요.”
그제야 강구는 단유가 1학년 때 헌영의 반이었음을 떠올렸다.
“아, 예.”
“아시죠? 작년에 단유가 사고 쳐서 교장 선생님 면담까지 갔던 거.”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주변인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헌영을 바라봤었다. 고작 1년 만에, 입장이 이렇게 바뀌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때도 단유가 사고 친 건 아니었죠. 사고를 수습했던 거지.”
“그렇죠.”
“이번에도 같아요.”
강구는 걸음을 멈추고 헌영을 바라보았다. 앞서 걷던 헌영도 걸음을 멈추고 강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단유가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 선생님은, 단유의 말에 동의하시는 겁니까?”
헌영은 고개를 들어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취지에는 동의해요. 장소가 적당하지 않았다뿐이지.”
헌영은 다시 시선을 내려 어지러운 시선의 강구를 보았다.
“작년에 그 일이 있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어요. 제일 처음, 그러니까 폭력 사건이 있고 난 후,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해결을 했다고 보고를 했을 때요. 그때는 굉장히 화가 많이 났었죠.”
선생님의 통제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화를 낼 일만은 아니더라 이겁니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해결하는 게 뭐가 문제일까요? 자율과 선행(善行)을 강조하는 학교에서 말입니다. ‘학생자치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지켜나가도록 지도하는 마당에 말이죠.”
“하지만, 학교에는 학교의 규칙이 있지 않습니까?”
헌영은 강구의 반문이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묻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부드럽게 대꾸했다.
“어느 집단에나 지켜야 할 법과 규칙은 존재합니다. 이를 따르는 이유는 질서와 화합 때문이죠. 하지만 무조건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하냐고 묻는다면, 글쎄라는 말이 나오겠죠. 과연 법으로 강제하고 구속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그건 고대 중국의 법가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죠.”
강구는 왠지 익숙한 대화 방식과 마주한 느낌을 받았다.
“법에 의한 수직적 지배는 사람들의 창의성을 말살하고 자유를 억압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죠. 게다가 우리 교육에서는 더더욱이나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이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창의성보다 통제에 의한 획일성을 강조하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거기까지 말한 헌영은 벌써 식기 시작해서 김도 나지 않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우리.
“두 사람이 싸웠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고 싸운 사람에게 가서 화해를 요청했어요. 두 당사자가 모두 서로의 잘못을 인정했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며 손을 잡았어요.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장면입니까? 마치 소년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 아닌가요? 아니 요즘은 만화에서도 나오지 않습디다. 그런데 이 애들이 그걸 했어요. 잘못을 먼저 시인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상대도 그 화해를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이를 두고 서로 법을 지키지 않았으니 처벌하겠다? 오히려 상을 줘야 할 일이죠. 이 아이들은 조화롭게 사는 법을 터득한 아이들이니까요. 교육자로서 이보다 뿌듯해할 장면이 있을까요?”
하지만 헌영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전 그러지 못했어요. 아직도 그 아이들에게 가서, 잘했다, 칭찬 한마디 안 건넸어요. 왜냐하면, 자존심 때문에요. 선생이라는 자존심이, 학생들에게 칭찬 한마디를 못 하게 막더라고요.”
강구는 차가운 날씨에도 땀나게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헌영도 강구의 시선을 따라 운동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단유는, 어쩌면 우리가 교과서대로 가르친 대로만 움직이는 건지도 몰라요. 그 아이의 말과 행동은 문자 그대로 ‘교과서’ 적이니까요. 만약 그 아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우리가 잘못 가르친 거예요. 그렇다면 우린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현실? 세상은 교과서처럼 이상적이지 않다? 적당히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이상을 좇지 마라?”
헌영도 강구와 같은 고민을 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도 헌영은 선배였다. 강구보다 1년 먼저 경험을 했고, 치열한 고민을 했었기에.
“결국 단유의 말이 맞는 셈이죠.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자유 학기제 같은 제도가 다 무슨 소용입니까? 우선은 학교가 바르게 서고 나서 볼 일이죠.”
사실 일선에 선 교사로서는 할 말이 많은 게 제도권 교육이다.
“비록 저희가 월급을 받고 사는 월급쟁이지만, 한편으로는 ‘교사’입니다. 사명감으로 자존감을 높이기 전에 의무적으로 학생들을 선도해야 하는 직업이죠. 타의 적으로 지시를 받아 아이들을 세뇌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사실 남 말할 처지는 아닌데, 라며 너스레로 말을 마무리한 헌영이 종이컵을 꾸깃꾸깃 쥐었다. 헌영은 강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단지 난 이랬었고, 이런 생각을 한다, 고 전했을 뿐이었다. 선배라고 젠체하지 않고, 행동을 강요하지도 않으니, 강구는 헌영의 배려가 고마워서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단순한 호칭에도 의미가 부여된다. 학교에서는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교사라는 동류적 시선에 따라 선후배 할 것 없이 성에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여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선배’라고 부르니, 그 호칭에 존경과 감사의 뜻이 묻어났다.
“별말씀을요.”
헌영은 싱긋 웃음을 지었다.
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리며 진저리를 쳤던 단유는 수업이 끝난 후, 담임 선생님과 함께 교장실로 향했다.
“너무···걱정하지 마라.”
단유는 딱히 걱정하는 바가 없었지만, 어쩐지 굳은 각오를 다지고 전장에 나서는 병사의 그것처럼 비장함을 드러내는 담임 선생님에게 다른 대답을 하기가 석연치 않아 고개를 끄덕여만 보였다.
곧 교장실에 들어선 담임은 단유를 먼저 앉히고 그 옆에 앉아 자리를 잡으려 했다.
“정 선생님은 나가서 일 보세요.”
“네?”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로 엉거주춤 교장을 바라보며 되묻는 담임 선생님에게 교장이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쁘실 텐데 나가 보세요.”
단유와 독대를 하겠다는 교장 선생님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담임으로서 자기 반 학생을 변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각오를 다진 게 무색해질 상황이었다. 교장은 보고 있던 서류들을 정리한 뒤, 책상에서 일어났다. 시선이 마주치자 담임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나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수고하세요.”
교장은 후후 웃음을 지으며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오른편에 놓인 소파의 끝쪽에 앉은 단유를 가까이 앉도록 시킨 교장은 따뜻한 차를 단유 앞에 놓아주었다.
“따뜻한 차가 마음을 녹이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그러나 아직 차 맛에 익숙하지 않은 단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교장실의 침묵을 채워나갔다. 곧 교장 선생님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입을 열었다.
“1년 만이죠?”
“네.”
“그때도 범상치 않은 학생이라 생각했지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아 단유는 교장 선생님의 눈을 통해 의도를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오랜 연륜과 두꺼운 지방에 싸인 눈빛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교장도 그 시선과 교차하여 단유의 맑고 투명한 눈을 들여다보았다. 눈빛만 보면 중학생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깊이가 느껴졌다. 요즘 아이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봐야 아직은 어린애지.’
그리고 어린애는 어린애답게 굴어야 제맛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면 무섭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하는 게 어른의 의무이고 교사의 역할이리라.
“학생의 본분이 뭐라고 생각하지요?”
단유는 잠시 말을 고른 뒤 대답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 아닐까요?”
“맞아요.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요. 학생은 아직 자신의 지식이 부족함을 자각하고 이를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요. 지식이란 단순히 국·영·수의 지식만을 말하는 게 아니란 것쯤은 알 거로 생각합니다.”
팔걸이 위에 올려진 교장의 손이 톡톡 나무틀을 쳤다.
“만약 사람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이 사회가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개개인의 노력과 사회적 약속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약속과 노력에 관한 것이에요.”
몸을 기울여 찻잔을 집어 들던 교장이 그 자세로 단유를 보았다.
“학생은 바로 그 약속에 대한 주의가 부족했어요. 그리고 경솔하게 행동했고요. 학생의 짧은 식견을 자랑해서 스스로는 뿌듯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곤란한 처지에 처하게 됐어요. 특히 우리 학교의 이름이 좋지 않은 의미로 거론되었죠. 마치 우리 학교는 개혁이 시급한, 문제 있는 학교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어요.”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그런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은 원치 않았을 것 아니냐는 교장의 물음에 단유는 얕은 한숨을 지었다.
“단순히 단유 군만의 문제가 아니란 게 더 큰 문제입니다. 당시의 방송을 본 학생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요? ···학생의 경솔함을 따라 하지 않을까 걱정될 수밖에 없기에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조치를 취할 겁니다.”
본보기를 세워야 한다. 경솔한 행동에 대해 이런 처벌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학생들에 알려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은 단유군을 반면교사로 삼아 바른길로 나아갈 겁니다.”
아직 처벌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곧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처벌을 결정할 것이다.
“전 개인적으로 단유군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어요. 얼마든지 바르게 성장할 잠재력을 가진 학생이니까요. 남들보다 뛰어난 머리도 아직은 덜 여물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지식과 세상을 담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으니까요. 학생이 이번 일로 반성하고 바른 마음을 먹는다면, 우리 나라를 위해 헌신할 최고의 엘리트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학교의 처벌을 순순히 받으라는 뜻일까?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앞에 놓인, 딱 한 번 입을 댄 차를 들여다보았다. 개나리처럼 샛노란 색의 차는 비록 색깔은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지만, 맛은 모르겠다.
“몇 가지 여쭤도 될까요?”
“···그러세요.”
교장은 입꼬리를 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