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18화 (418/956)

배신의 계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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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관은 목을 조여오던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숨을 크게 쉬었다. 뒤늦게 자신을 지켜보던 눈들이 있음을 알았지만 당장은 숨부터 쉬고 볼 일이었다.

“어떤 기사가 났죠?”

직원은 핸드폰으로 기사를 찾아 보여주었다.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마치 베틀의 씨줄 꿰듯 좌우로 왔다 갔다 움직였다.

“하아.”

단순히 시말서 정도로 끝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정부의 행사 중 참가자의 돌발 발언에 면접관이 당황해서 급히 방송을 멈췄다는 이야기가 나온 마당이니 차라리 깔끔하게 자리를 정리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생각이 짧았어.’

하지만 이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혀 동요가 없었던 것처럼 해야 한다.

담당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에게 몇 가지를 주문했다. 직원이 서둘러 강의실을 나간 뒤, 담당관은 단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단유의 태연한 표정을 보며 첫인상이 떠올랐다. 처음 단유에게 질문을 던질 때, 단유는 바로 지금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는 긴장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표정을 연기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도 했었지만 줄곧 같은 표정인 걸 보니 여간내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김단유 학생?”

담당관의 낮은 목소리에 단유가 대답했다.

“네?”

잠시 단유를 바라보며 조금 전까지 이루어졌던 대화를 복기해보던 담당관은 눈을 빛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만 가보세요.”

단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만히 담당관을 지켜보았다.

“차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선생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담당관의 인사를 받기 위해 엉거주춤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담당관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을 먼저 나가려다 돌아섰다.

“그리고 김단유 학생. 아까 말한 내용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제 권한은 아니지만 ‘꼭’ 알아보도록 하지요.”

그제야 단유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허리를 폈을 때, 담당관은 이미 강의실을 나가고 없었다.

“선생님, 저희도 이만 가죠.”

고개를 들어 올린 선생님은 빈 강의실에 둘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급히 일어나 핸드폰을 붙들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상대가 전화를 안 받는지 연락이 되지 않자, 이를 갈더니 단유에게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김단유!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단유는 조금 씁쓸한 시선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뭐! 왜!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응? 뭐가 그렇게 불만이어서 이 지경을 낸 거냐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던지 선생님은 떨리는 몸을 주체를 못 해, 책상을 붙든 채로 단유를 노려보았다.

“불만, 없습니다.”

“없다고? 없는데 그런 소리를 해? 니가 뭘 안다고 교육 정책이니 뭐니 떠드는 거야!”

“선생님. 선생님께 학교는 어떤 곳인가요?”

“뭐?”

“교사란 직업은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선생님은 단유가 자신을 비꼬고 있다고 생각했다. 감히 하늘 같은 스승에게!

“김단유!”

“만약, 교사로서 돈을 벌지 못했다면,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건가요?”

“뭐야!”

단유는 선생님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선생님이 왜 제게 화를 내시는 거죠?”

“그걸 몰라서 물어!”

“네.”

선생님은 손이 치켜 올라가는 걸 억지로 참았다. 부들대는 선생님의 눈에 선 핏줄을 보던 단유가 침착하게 되물었다.

“만약, 제가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요?”

“뭐? 니가 교사가 된다고?”

기도 안 찬다는 듯 반문한 선생님이 단유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같은 놈이 교사가 되었다가는 이 나라 교육이 망하고 말 거다!”

“왜요?”

“왜라니! 왜···.”

왜지? 단유의 계속된 물음에 선생님의 머릿속에도 순간 물음표가 생겼다. 처음에는 화가 치밀어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할 생각도 없었건만, 계속된 물음에 저절로 반응한 것인지 선생님은 저도 모르게 궁리를 하고 말았다.

‘왜 단유는 교사가 되면 교육이 망할까?’

멋들어진 대답으로 단유를 엉망으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답을 찾던 선생님은, 그러나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단유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단유처럼 성적이 우수한 애들은 고등학교에서도 두각을 드러냈고, 그런 애들이 결국 서울대를 들어갔었다. 하물며 교사가 되겠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으리라.

그렇다면 단유가 교사가 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분명히 문제가 발생하니까 ‘이 나라 교육이 망하는’ 결과를 예측한 것일 텐데.

‘사람을 열 받게 만드는 화법을 가지고 있으니까?’

왜 화를 내느냐고 되묻던 단유의 태연함에 화가 났었다. 머리도 좋은 놈이 상황 판단도 못 하고,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고 지껄이던 놈이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단지 머리만 좋으면 다인가? 기본적인 인성이 안 된 놈이 아닌가? 인성이 덜된 놈이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의 인성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 나라 교육의 기본은 바로 ‘인성 교육’ 아닌가?

‘교사란 직업은 어떤 일을 하냐고?’

바로 아이들의 인성을 바로 세우고, 이 세상을 잘 살아가게끔 만드는 일이다. 아이들이 세상 속에서 잘 화합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지식과 상식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인간관계와 넓은 교양을 갖도록 만드는, 이른바 ‘전인 교육’의 실천이다.

‘나에게 학교가 어떤 공간이냐고?’

바로 전인 교육과 인성 교육을 실천하는 장(場)이다.

그런데.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단유의 질문을 되짚으며 대답을 궁리하던 선생님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의자에 주저앉고 만 선생님의 눈은 초점을 잃었다.

‘개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존중하며 동시에 다양하고 균형적인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 교사.’

인격을 존중하는 교사, 정신적 육체적 성장을 돕는 교사. 방학 때마다 참여해야 했던 지루한 세미나와 커리큘럼에서 다루던 말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사명감을 가진 교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라고 강사가 떠들 때마다 뻔한 소리 한다며 혀를 찼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학교 밖에서는 친척들이며 주변 사람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를 높이 세워 주었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인식을 가진 직업을 가진 스스로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반면 학교 안에서는 일반 회사와 같은, 아니 때로는 일반 회사보다 못한 질서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저 굽신대고만 있었다. 학기마다 쌓이는 ‘페이퍼워크(paperwork)’에 짜증을 부렸고, 교감과 주임 선생님, 선배 교사 등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특히 학생들에게 자신은 그저 습관적으로 대하고 있지 않았나. 기계적으로 종이 치면 교실로 들어가 교과서대로 수업하고, 종이 치면 교무실로 향한다. 아이들을 성적으로 평가하고,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들이 있어도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의 삶의 방침이랄까, 세월이 흐르며 그가 가진 생각은 단 하나. 좋은 선생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보다 터치를 덜 하는 선생님. 관대한 선생님으로 남게 되었다. 학교 일에 최선을 다하기보다 선배와 상사의 눈에 벗어나는 일이 없게 적당히 처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선생님은 단유에게 화를 냈다.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 좋은 동료가 아니라 무능한 선생님, 무능한 동료로 낙인 찍힐까 봐.

선생님은 고개를 숙였다.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쩐지 단유는 자신의 속내를 모두 읽고 있을 것 같았다. 노린 것처럼 질문했던 내용을 상기해보면, 단유는 자신을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음이리라. 이런 아이 앞에서 유치하게 화를 내고, 어리석게 ‘망할 거’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듯, 자신이 해충이 된 것만 같았다.

****

담당관은 면접관들을 구슬려서 곧 면접을 재개했다. 동시에 방송도 다시 송출을 시작했고, 금방 인터넷 실시간 시청자 수가 5천 명을 넘어섰다. 사건이 터진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이 사건이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는 뜻이고 또한 뭐든 빠르게 전파되는 인터넷 시대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담당관은 입맛이 썼다.

다시 뒷번호 지원자들이 들어와 제 자리에 앉았다. 이번이 조금 전의 면접과 다른 점은 사전에 지원자들로부터 1분 스피치 대본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다들 1분 스피치를 위해 대본을 준비해둔 덕분에 이를 요구했을 때, 대부분은 쉽게 대본을 제공했다. 다들 조금 전의 사건을 감상(?)한 덕분이기도 해서, ‘원활한 진행을 위해 협조’ 바란다는 교육부의 안내에 잘 따라주었다.

대본을 제출한 이에게는 1분 스피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대신, 대본을 제출하지 않은 이에게는 1분 스피치 대신 간단한 질문으로 대체해서 스피치를 하지 않도록 했다. 형평성의 문제가 거론될 수 있기에 질문은 ‘자유학기제’ 경험담이나 혹은 개인에 국한된―문제의 소지가 없을법한―대답이 나올 것들로 준비를 했고, 면접장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공지해서 원활한 진행이 되도록 했다. 이를 위해 파견 나온 직원들이 고생―사전 질문 제작, 전체 공지, 대본 미제출자에게 질문 전달과 협조 요청 등―을 조금 하긴 했지만, 짧은 시간에 졸속으로 준비한 것에 비하면 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오디션’은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방송’은 약한 수준의 악성 댓글을 제외하곤 문제없이 시청자들을 끌어모았다.

담당관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면접을 진행했으며, 다른 두 면접관에게는 질문 없이 점수를 매기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일렀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해야 했어.’

괜히 방송에서 작가들을 기용하겠는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대본을 만들고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그런지 실수가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 그것은 단순한 시행착오였을 뿐이다. 단지 그 시행착오가 낳은 결과를 어떻게 봉합해야 하느냐를 두고 골머리를 썩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학교는 관료제이다. 철저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갈리고, ‘교육’이란 서비스를 제외하면 행정적인 부분에서 다른 일반 관청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랜 세월을 관료적 행정 질서와 함께하다 마침내 교장이란 직위에 오르게 되면, 행정 감독과 하급자 통제라는 전문 행정직으로 변모를 꾀하게 된다. 오래도록 고수되었던 규칙과 방식이 지켜지길 바라며 늘 ‘질서 정연’하기를 요구한다.

원활한 ‘통제’를 위해서는 하급자의 자율권을 적당히 속박해야 했다. 하급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이는 곧 상급자의 통제력 위축으로 이어지게 마련,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돌아오셨다는 겁니까?”

평소의 교장과 다른 분위기에 담임 선생님, 강구는 얼른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소파의 팔걸이에 붙은 원목 받침대를 손톱으로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그 학생, 김단유는요?”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 아니, 설령 기다렸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와 나란히 있을 기분이 아니어서 그냥 대학교에서 헤어졌다. 학교에 연락을 취했다가 교장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에 아뿔싸,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다시 불러들이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생각하며 홀로 학교로 왔건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눈 딱 감고 부를걸.’

매도 나눠 맞으면 덜 아프지 않을까. 비록 나눠 맞을 상대로 학생을 생각했다는 것 자체에 또 한 번 죄책감을 느꼈지만.

“정 선생님.”

“네, 교장 선생님.”

“참으로···가슴이 아픕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선생님을 믿고 맡긴 거였는데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하시다니요.”

특정 단어를 강조하는 교장 선생님이 상체를 살짝 기울여 오른쪽에 앉은 담임 선생님에게로 몸을 향했다.

“학생이 자기 멋대로 실언을 하게 두는 건 감독하는 선생님의 직무유기입니다. 게다가 교육감들이 지켜보는 자리였어요. 그렇다면 당장 그곳에서 뭔가 손을 쓸 생각을 했어야죠. 그냥 이렇게 돌아오면 선생님을 믿고 보낸 저는 뭐가 됩니까?”

“···그게 말입니다.”

“변명, 하실 겁니까?”

선생님은 입을 꾹 다물었다.

“선생님도 아시죠? 제가 선생님을 얼마나 믿는지? 그래서 굳이 주임 선생님이 아니라, 선생님 반에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녀석을 넣어줬던 거예요. 선생님이라면 충분히, 잘 가르칠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믿음.

“정 선생님. 정말 실망입니다.”

실망.

“선생님에 대한 처분은 차후에 따로 고지해 드리겠습니다. 나가보세요.”

“교장 선생님.”

“나가세요.”

강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장실을 나올 때, 교장 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여 보일 때, 인사를 받지 않는 교장을 보며 강구는 마치 자신이 배신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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