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17화 (417/956)

배신의 계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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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진 않다. 당연히 문제가 있겠지.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100% 완벽한 제도는 없다. 그러니 조금씩 수정하고 보완하여 완벽에 가깝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저 역시 그와 같은 의도로 발언한 것입니다. 다만 절차에 있어, 현 교육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를 먼저 개선한 뒤, 자유학기제가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자유학기제가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한 학기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전 학기에 걸쳐 적용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요?”

“너 스스로도 그게 답이 안 된다는 건 알 텐데?”

“알기 때문에 적용에 앞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결국 단유는 줄곧 같은 이야기를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 아이가 다른 속셈이 있으리라 의심을 하다 보니, 단유의 이야기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을 뿐. 담당관도 이제는 단유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아니 현실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네 생각은 알겠다. 하지만 아까 그곳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 네 생각이 그랬다면 자유학기제 홍보대사는 지원하지 말았어야 해.”

“그만두려고 했습니다만 두 가지 이유로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는 자유학기제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와 학생의 근본적인 변화만 있다면 충분히 선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었고, 두 번째는 지금과 같은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은 자리?”

“일개 학생에 불과한 제가 교육부라는 관청의 높으신 분들을 어떻게 뵐 수 있겠습니까. 이런 자리를 통해서 만나야죠.”

“···왜 보려고 했지?”

단유는 숨을 골랐다. 지금부터가 진짜 본론이었다.

****

인터넷으로 중계되던 ‘자유학기제 홍보대사 오디션 제1부’는 갑작스럽게 방송이 종료되었다. 물론 실시간으로 시청하던 사람의 숫자가 워낙에 적었기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방송이 종료되기 직전, 해당 방송을 보던 사람은 무려 4천여 명에 달했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유진의 말처럼 해당 영상의 내용을 SNS와 커뮤니티 등에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처음에는 참가자들의 뛰어난 외모가 주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긴장한 듯 버벅거리는 지원자들의 어설픈 모습들이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 세 번째는 유진과 같이 당당하고 말 잘하는 데다가 외모까지 받쳐주는 지원자들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내용이었고, 단유가 나오면서 그 파격적인 내용이 화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방송 종료 직전에 무려 천여 명이 더 몰리는 효과가 발생했으니, 화제성만큼은 애초의 기획 의도를 넘어선 셈이었다.

특히 교육 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단유의 발언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방송이 종료되기에 이르자 뜨거운 불판이 마련되었다는 듯, 중고등학생들 위주의 커뮤니티에서 난리가 났다.

「나 방송 못 봤는데 구할 수 없음?」

「인코딩 중.」

「능력자님, 미리 감사.」

조악한 화질이나마 단유의 1분 스피치와 면접관들과의 대화를 빙자한 토론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주 내용은 현 교육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내용을 떠나 면접관이라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소신 있게 자기 발언을 하는 단유의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쟤 모름? 가디스R 뮤직비디오에도 나왔는데.」

「그전에 일진을 무릎 꿇리다, 에 나오지 않았음?」

「그때는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걔 맞음. 그때 그 동네 일진이라고 소문났다가 소문낸 사람 인실좆 당함.」

단유에 관한 온갖 이야기와 증언들이 겹치면서 인터넷 불판은 점점 불씨를 키워갔다. 당연히 교육부 자유학기제 홍보페이지의 게시판 역시 뜨거워졌다. 다양한 게시글들이 밀려들며 한때는 게시판 서버가 잠시 멈출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사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비단 중학생이나 네티즌 뿐이 아니었다.

‘오케이, 오늘도 한 건 올리겠는데.’

자판을 두드리는 신나는 손가락의 주인공은 인터넷 신문사의 기자였다.

『자유학기제? 현 교육부터 고쳐라! - 교육부와 정면으로 맞선 중학생, 담당자들에게 일갈.』

늘 그렇듯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기사로 쓸만한 소재를 찾아 나서던 기자는 우연히 이 불판을 발견했고, 정부와 소년의 대립이라는 구도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마침 어떤 할 일 없는 사람이 해당 영상을 실시간으로 녹화해 놨다가 단유 부분만을 편집해서 업로딩한 덕분에 기자도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야, 아주 제대로 질렀네, 질렀어.”

특히 ‘붕당’을 비교 소재로 삼음으로써 비판의 강도를 높인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붕당보다는 중국 전국시대의 법가사상을 예로 들어서 법치주의가 통치보다 압제에 더 유용하게 사용되었음을 예로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법치주의보다 붕당이 더 임팩트가 있다. 붕당이란 단어에 ‘비리’, ‘부패’의 이미지가 내재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똑똑한데?”

뭔가 이 소년을 주제로 이야기를 써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1보로 기사를 작성해서 올린 후, 이 소년을 인터뷰하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와 이름까지 알고 있으니까 찾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다만 문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었으나, 기자는 아직 거기까진 생각을 못 하고 그저 신나게 자판을 두드릴 뿐이었다.

****

“현재 저희 학교에 교육부 감사가 와 있습니다.”

선생님이 헉, 소리를 내며 단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다급한 모습에 담당관이 눈을 빛냈다.

“아니, 저기 담당관님, 잠시만요. 아니 단유야, 잠깐만 저기 이야기 좀.”

선생님은 단유가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 불안함에 우선 이야기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담당관은 이미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마당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라는 호기심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불안감을 보이는 선생님의 반응에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계속 이야기해봐라. 무슨 감사지?”

단유는 학교에서 벌어진 교복 변경에 관한 일을 이야기했다.

“아직 감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터라, 해당 일의 시비를 나눌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들에게 어떤 설문조사 한 번 하지 않고, 교복 변경 및 선정 위원회가 구성되고 디자인이 결정되는 과정이 이해가 가시나요?”

“그런 점도 감사에서 다 드러날 일이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마치 교육부의 감사를 의심하거나 믿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사실 교복이 변경되는 일은 저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저희는 졸업할 때까지 현재의 교복을 착용하면 되니까, 경제적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새로 들어오는 신입생들도 현 교복을 물려받거나 혹은 새 교복을 구입할 수 있도록 선택지가 주어지기 때문에 부담이 없지는 않지만,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단유는 차분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말이죠, 설령 이 교복 변경이 절차에 어긋남이 없다고 하더라도 제가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단지 학교가 학생들의 의사에 상관없이 추진하는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학생은 그저 학교가 추진하는 바에 따라 따라만 가야 하는 것이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학교는 그러겠죠. 너희를 생각해서 바꿨다. 너희에게 좋은 것이니 바꿨다. 학생들은 생각할 필요도 없고, 판단할 필요도 없이 그저 위에서 시킨 대로 따라만 가야 하는 건가요? 지금의 자유학기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육부에서 좋다고 하니까, 그저 비판 없이 따라만 가야 합니까? 무조건 좋다고 자신을 세뇌하며 따라가야 옳은 것입니까? 비판 없이 따르도록 하는 이 시스템이 제겐 가장 큰 문제라고 보였습니다.”

담당관은 할 말을 잃었다. 선생님은 살짝 넋을 놓은 듯 단유를 바라볼 뿐이었고.

문득 담당관은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공무원이란 관료제의 전형이다. 위에서 시킨 대로 해야 하고, 특별한 제안을 해도 위에서 거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욱 솔직히 이야기해서, ‘자유학기제’란 제도에 대해 특별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단순히 홍보담당관이란 직책을 가졌기 때문이고, 그 직책에 맞게 업무를 수행코자 열심히 수단을 강구했을 뿐이니 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은 대한민국 교육에 있어 늘 나오는 문제이지 않나요? 그 부분을 함양할 준비는 하지 않고, 무작정 좋은 제도라고 들이 밀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당장 저희 학교를 봐도 내년부터 자유학기제를 시행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준비가 되었는지 의문입니다.”

담당관이나 자리에 동석한 몇몇 직원들이 단유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나 처음과 같은 못마땅한 표정만은 아니었다. 단유의 비판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이해 가능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그런 생각도 금방 잊혀질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공무원이고, 행사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윗분들에게 문책을 받아야 하는 위치였으니까. 그렇더라도 단유를 그저 기분 나쁘다고 비난할 순 없었다. 저런 이야기를 듣고도 단유를 비난한다면, 그건 성숙한 어른의 자세가 아니다, 라고 다들 생각했다.

‘그래도···.’

왜 하필 그 자리에서 꼭 그래야만 했었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아 결국 다들 침묵을 지키는 선에서 시간을 보냈다.

“담당관님!”

한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인터넷에 기사가 떴습니다!”

담당관은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

교장 선생님은 교장실 소파에 앉은 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교감은 어쩔 줄 몰라서 주저하는 중이었고, 이사장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교장을 노려보았다.

“지금 웃음이 나오십니까?”

“그럼 화를 내야 한단 말입니까?”

“지금 이게 화가 나지 않는다면, 교장 선생님의 속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겨우 중학생 아이입니다.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기도 하고, 그저 책으로 세상을 안다고 착각하는 어린애의 일입니다. 그런 일에 화만 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이 일이 가볍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지요.”

이를 가는 이사장의 표정에도 교장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비록 예측 불가의 일이지만, 현명하게 넘길 방도를 찾는 게 어른입니다.”

애들처럼 씩씩대며 고자질하러 온 것 마냥 안절부절못하는 교감과 이사장을 꾸중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저희보다 교육부가 더 문제겠지요. 아주 전국적 망신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게요.”

이사장은 교장의 여유로운 표정을 지켜보다 물었다.

“계산이 있으신가 보군요.”

“계산이라. 글쎄요.”

능청을 떠는 교장에게 이사장은 되물었다. 교장은 일단 차부터 마시면서 진정하자는 듯 시간을 끌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차를 준비하러 돌아서는 교장의 얼굴은 조금 전과 달리 심각하게 굳은 채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얼굴이기도 했다.

“자, 마시면서 들으세요.”

다시 미소를 띠며 차를 건네던 교장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육부는 사실 굉장히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관료들입니다. 수차례의 개정과 개혁 속에서도 변함없이 일관된 기조로 일하는 이들이지요. 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바뀌죠? 그건 변화무쌍하다는 말보다는 기준이 없다는 뜻입니다. 기준이 없음에도 존속 가능한 이유가 뭘까요? 그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인 기관인 겁니다.”

통렬한 비판? 아니 그냥 교육부라는 제도권에 대한 모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교장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라 이사장은 살짝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번 사건은 그들로서도 꽤 충격이 있을 것입니다만, 언제나 그렇듯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요. 하지만 추측 가능한 부분은 있습니다.”

교장은 따뜻한 차로 입술을 적셨다.

“마치 전혀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꾸미려 한다는 것이지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교장은 머리를 가리켰다.

“구체적인 방법이야 그네들이 생각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전 그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일 거로 예측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저희 학교에도 영향이 없을 거라는 것입니다.”

“영향이 없다고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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