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16화 (416/956)

배신의 계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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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관들도 담임 선생님과 다른 표정은 아니었다. 누구랄 거 없이 당황한 얼굴로 서로의 표정을 확인하는 세 사람과 어색한 표정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는 두 학생들 사이에서 단유 홀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과거의 사례들을 살펴보아도 이는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안 끝났어? 사람들의 경악 속에서 단유는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

“가령 조선 후기 붕당 간의 대립을 보자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붕당의 폐해로 인해 결국 세도정치로 흐르며 나라의 힘을 잃게 하였습니다만, 사실 붕당이라는 것은 현재의 정당 정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선용의 유용함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 시스템과 그 제도를 활용하는 이들의 미성숙함과 욕심이 그르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전교 1등, 이라고 감탄한 남학생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단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유진은 연신 면접관들의 안색을 살피며 이 사태가 어찌 흘러갈 것인지 조마조마해서 다리가 절로 모이고, 발끝이 톡톡 바닥을 두드렸다.

“단순히 좋은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적용하는 것만으로 좋아질 거라고 판단하기 전에 그 제도가 적용될 베이스, 즉 학교와 학생의 현실을 먼저 파악해서 고쳐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얼굴이 붉어진 면접관 중 가운데 앉은 이가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김단유 학생? 학생의 말대로라면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 상당히 불만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학생은 먼저 뭘 고쳐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나요?”

홍보담당관이라고 소개했던 면접관이 단유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답에 앞서 한 가지를 부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 상당히 불만이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불만이 많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먼저 확인하고 대답 드려야겠네요.”

“불만이 없다고요?”

왼쪽에 앉았던, 풍채가 좋은 면접관이 다소 큰 목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여태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저 목소리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늘고 높은 목소리였다.

“전혀 없지는 않지만, ‘상당히’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만큼의 불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질문에 대답을 하면, 바로 상술(上述)한 문장을 인정해야 하는 모양이 나오기 때문에 먼저 그 부분을 짚은 것이니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단유는 틈 없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주신 질문에 답을 드리자면, 뭘 고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저는 불만이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무엇을 고쳐야 하냐고 물으신다면 앞서 말한 내용을 반복하거나 혹은 전혀 다른 내용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 반복을 원하시지는 않으실 테니 그 부분을 뺀다면 달리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막힘이 없는 단유의 대답에 풍채 좋은 면접관은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운데 앉은 면접관이 말을 꺼냈다.

“학생은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대학 진학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라고 했습니다. 맞죠?”

“네, 그렇습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입시 경쟁 위주 교육이라고 하겠죠?”

“네.”

“바로 그 점을 수정한다는 의미에서 자유학기제가 도입되는 것이라고 보지 않나요?”

“그렇게 보는 게 맞습니다. 다만 그에 앞서 교육의 현실을 먼저 고려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유학기제가 되어도 학생들은 비싼 사교육비를 들여 학원에 다녀야만 할 것이고, 특정 직업에 제한된 진로 탐색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한, 학교라는 공간은 자유학기제의 자유로움이 들어올 수 없을 만큼 구속적인 공간이기에 학교의 변화가 있지 않다면, 자유학기제는 그저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제도로 남을 공산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남학생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자유학기제와 상관없이 2개의 단과 학원과 인강을 매일같이 듣고 있는 실정이니까.

홍보담당관은 거칠게 숨을 뱉으며 마른세수하듯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김단유 학생. 학생이 자유학기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교육에 대해서도 꽤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요. 앞서 학생이 이야기한 취미 생활을 고려한다면, 아마 학생은 현재 학교 교육 과정을 이미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선행학습이 가져온 편견이 아닐까요? 대부분 학생은 현재의 교육 과정에 맞춰 차근차근 자신의 지식을 쌓아갑니다만, 학생은 그것이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비판적인 입장에 선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두 면접관과 달리 끝까지 차분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홍보담당관이었다. 아니, 사실은 뒤늦게 이 장면이 방송을 통해 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머릿속에는 당장 이 중계를 끊도록 지시를 내려야 하나를 열심히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런 면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 크게 불만이 없다고 말씀드린 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자면, 현재의 ‘교육 과정’에 만족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비록 몇몇 과목에 있어 선행학습이 되었을지언정 대부분 과목은 다른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에서 교육을 받고, 성취를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 충분히 만족스럽기도 하고요. 그리고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단지 저만의 의견도 아닐뿐더러, 이제껏 여러 번 언론이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제기되었던 문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처음 듣는 소리 아니지 않냐, 라는 말임을 홍보담당관도 알아들었다. 그렇기에 얼굴이 또 한 번 붉어졌다.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마침 사태가 이상하게 불거지고 있음을 깨달은 교육부 직원 한 명이 면접장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즉시, 홍보담당관은 카메라를 가리켜 보인 뒤, 두 팔을 엇갈리게 겹쳐 방송을 중단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알아들었는지, 직원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면접장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직원이 다시 들어올 때까지 면접장은 침묵 속에서 묘한 대치 상태를 벌였다.

“방송 중지되었습니다.”

직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가운데 앉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면접관이 벌떡 일어나며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야!”

“강 과장님, 진정하십쇼.”

홍보담당관이 같이 일어나 강 과장이란 사람의 팔을 붙잡아 내리며 진정시켰지만, 강 과장은 열이 올라 푸들거리는 볼살을 감추지 못했다.

“아, 혈압 올라.”

뒷목을 잡고 고개를 쳐든 채로도 단유를 노려보는 기세는 죽지 않았다. 홍보담당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면접장 입구에서 대기 중인 직원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직원이 서둘러 달려와 강 과장을 붙잡고 면접장 밖으로 향했고, 뒤이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달려온 몇몇 직원들에게 담당관이 지시했다.

“이후 번호는···지금 몇 시지?”

“11시 조금 넘었습니다.”

“그럼 점심 이후에 재개한다고 전해.”

마음 같아서는 취소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개인 행사도 아닌 정부의 행사였다. 그리고 감히 정부의 행사를 망쳐버린 단유의 행태가 몹시 못마땅했다.

“두 사람은 나가고, 넌 잠깐 따라와라.”

조금 전과 달리, 담당관의 말이 거칠어졌다. 카메라 앞에서 얌전 떨 이유가 없어진 때문일까?

복도로 나서니 행사 진행을 위해 왔던 교육부 직원들과 학부모 학생들이 얽혀 어수선한 가운데 수군거리는 소리가 뚝 멈췄다. 그리고 단유를 향한 묘한 시선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 담임 선생님이 있었다. 붉어진 얼굴을 한 선생님은, 담당관의 뒤를 따라 나오는 단유를 향해 뭐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는지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의 시선 교환 뒤 단유가 담당관 뒤를 따라가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멀찍이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혼자 왔나?”

담당관과 단유는 같은 건물 내의 빈 강의실로 향했다. 대학교 강의실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거 같다고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는 단유의 태연함에 담당관은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이곳까지 걸어오는 동안 많이 진정되었는지 안색을 되찾고 있었다.

“아니요, 담임 선생님이랑 같이 왔습니다.”

“담임 선생님? 부모님은?”

“부모님은 안 계십니다.”

“안 계셔?”

“초등학교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설명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담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에 사회 부적응자, 소시오패스와 같은 단어들이 떠다니다 사그라들었다.

“선생님은 어디 계시니?”

“아까 복도에서 봤습니다만, 담당관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다가오시진 않으셨던 것 같네요.”

담당관은 또 한 번 마른세수하며 달아오르는 열기를 식혀보려 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문가에 서 있던 직원에게 선생님을 모시고 오게 시켰다.

이윽고 선생님이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강의실로 들어오셨다.

“이리 앉으세요.”

“네.”

목소리가 잠겼는지, 이상한 목소리로 대답한 선생님은 애써 침착하게 보이려 성큼성큼 걸어 단유 옆에 앉는데, 그 모습이 마치 로봇을 보는 것 같았다.

“방송, 보셨습니까?”

“네, 죄송합니다.”

대뜸 사과부터 하는 선생님이었다. 힘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꽉 쥔 주먹이 허벅지에 올려져 있음을 단유는 확인했다.

“죄송할 일이라. 솔직히 대형사고이긴 하죠.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대답은 못 하고 그저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담당관은 혀를 차며 다시 단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태연한 단유의 표정을 보니 지금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 모르진 않으리라. 이렇게 똑똑한 녀석이 모른다면, 진짜 소시오패스일지도.

“넌 어떻게 생각하니?”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하시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데요?”

“···니가 조금 전 면접장에서 친 사고 말이다.”

“면접관님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한 거요?”

‘솔직’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를 좀 해보자. 그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를 해왔었니?”

“아닙니다. 저희는 그런 준비를 시킨 적이 없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단유를 대신해 대답했다. 교감 선생님의 지시로 국어 선생님의 감수까지 받아 행사의 취지에 맞게 스피치를 준비했었다고 열변했다. 그런 선생님을 비난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담당관이었다.

“선생님들 몰래 준비했던 거니?”

“아니요. 그냥 그 자리에 앉았을 때 생각나서 이야기한 겁니다.”

“···말이란 한 번 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채, 그저 카메라 앞이라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 같은데, 경솔한 행동이었다.”

소영웅주의적 심리, 라고 지적하는 담당관에게 단유가 반박했다.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니, 자신의 말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전 제 말에 어떠한 거짓이나 가식이 섞이길 원치 않습니다.”

입이 살짝 벌어지는 담당관이었다.

“제가 학교에서 배운 바대로라면, 과거 독재정권 시절 언론 탄압이 있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선생님은 물론, 교과서에서는 그 시절의 언론이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하지 못해 독재정권이 계속 커가도록 방치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국도 언론의 자유를 굉장히 중시하고 있다고 하고요.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원칙과 기본을 강조하고 가르치면서, 현실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니가 오해를 했나 본데, 원칙과 기본을 지키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례하게 느끼실 수 있겠지만 감히 여쭤봅니다. 담당관님은 현재의 교육 제도에 문제가 없다고 느끼시는 겁니까?”

담당관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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