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14화 (414/956)

배신의 계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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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얌전히 앉아 있지 왜 왔어?”

어머니의 타박에도 유진은 그저 샐쭉 웃으면서 능청스레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반갑구나.”

유진은 다시 단유에게로 고개를 돌려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 너 뮤직비디오에서 봤는데.”

단유는 달리 대꾸할 말이 없어 볼을 긁적였다.

“너 소속사가 에이바운스야?”

“아니. 난 소속사 없는데.”

“어? 그럼 소속사 옮기는 거야?”

“아니. 애초에 소속사가 없었어.”

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어떻게 출연했던 것이냐고 물었고, 단유는 친분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난 너 연습생이나 데뷔조일 줄 알았는데. 그럼 지망이 어디야?”

“지망?”

“연기나 노래, 둘 중 하나일 거 아냐? 아니면 그냥 모델?”

대충 봐도 ‘모델삘’이 나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위아래를 훑는 유진이었다.

“아니. 아직 연예인 생각은 없어.”

“아직? 그럼 나중에는 연예인 할 수도 있다는 소리네?”

“모르지. 미래에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는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단유에게 관심을 보이는 유진의 모습이 어머니는 부끄러웠던지, 괜히 유진을 타박하며 선생님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우리 애가 너무 잔망스럽게 굴었네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저 나잇대 애들이 다 그렇죠.”

선생님은 별거 아니라는 듯 허허 웃음을 지으며 어머니의 너스레를 받아주었다. 어머니는 눈치로 유진에게 주의를 준 뒤, 유진의 팔을 잡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면접 잘 보세요. 면접 잘 봐라.”

“네.”

단유는 살짝 엉덩이를 들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어머니와 유진이 자리로 돌아간 뒤, 선생님이 단유를 새삼스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널 알아보는 사람이 있구나.”

“그렇네요.”

쑥스럽다는 듯 단유가 대답할 때, 선생님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단유에게로 향한 몇몇 시선들이 있었는데, 단유를 알아보고 호기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고, 경계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연예인 생각은 없고?”

“네.”

“하긴, 그 머리로 연예인만 하기는 아깝지.”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굳이 애써 변명하긴 싫었다.

“그런데 연예인 지망하는 애들이 오는 경우가 많은가 보구나.”

과연 잘생기고 예쁜 아이들은 모두 모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러 몇몇은 ‘머리가 엄청나게 좋을 것만 같은’ 외모의 아이들도 있었지만, 다수는 아역배우 뺨치는 외모를 드러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옅게 화장이라도 한 듯 화사한 얼굴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서류전형 시에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우수학생 인증 따위가 다 무소용이었던 건만 같아 씁쓸했다. 결국 홍보대사라는 거창한 이름도 사실은 ‘모델’을 달리 부르는 말일 뿐이니, 모델이라 하면 잘 생기고 사람들의 호감을 잘 이끌어내는 얼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리라.

“단유야, 너 1분 스피치는 다 외웠니?”

단유는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예.”

하긴 머리 좋은 아이니까 그 정도는 문제도 아니리라. 그렇다면 정말 할 것도 없고, 준비시킬 것도 없고, 달리 긴장하고 있는 기색도 아닌 애에게 뭔가 말을 건넬 화젯거리도 없으니, 선생님은 몸을 뒤로 살짝 젖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핸드폰을 꺼내 들 뿐이었다.

딱히 핸드폰으로 할 것도 없지만, 괜히 지난 문자들을 확인하면서 뭔가를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정시에 시작된 면접은 3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보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중계되니까 그 점 참고해주세요.”

사전에 들은 바가 있어, 딱히 당황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모두가 단유같지는 않았다.

“엄마, 나 괜찮아?”

“보자, 눈 밑에 살짝 덧칠만 하면 괜찮겠다.”

“얘, 너 립밤 좀 바르자. 너무 입술이 건조해 보여.”

“머리 괜찮아?”

“괜찮아. 거울 줄까?”

아이와 부모들이 모두 부산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비교적 일찍 번호를 배당받은 단유가 대기 줄에 섰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작은 목소리로 격려하는 선생님이 더 긴장돼 보였다. 하긴 말 붙일 상대가 없어 쩔쩔매는 모습을 계속 봤더니 되레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단유는 선생님께 잘 보고 오겠노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단유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등을 두어 번 토닥거려준 뒤, 대기실로 돌아갔다.

“너랑 나랑 같은 조야?”

유진이 다가와서 물었다. 번호를 확인하니 유진이 단유의 바로 앞번호였다.

“준비 많이 했어?”

유진의 물음에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너 원래 말수가 없는 편이야?”

“그러는 너는 원래 말이 많은 편이야?”

“응. 나 원래 말 많아. 말하는 거 좋아하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있어 의사소통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니?”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보이는 아무나 붙잡고 수다를 떨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난 너랑 친해지고 싶은데?”

“왜?”

“어쩐지 너랑 친해지면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예감?”

내가 원래 예감이 좋거든, 이라고 덧붙이며 살짝 이를 드러내는 유진이었다. 과연 배우 지망생이라 그런지 웃는 모습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너 여자친구 있어?”

“너무 사생활을 캐묻는 거 아냐?”

“이런 이야기라도 하면서 긴장을 풀자는 의도지.”

“긴장돼?”

“당연히 긴장되지. 비록 인터넷이라도 전국의 중학생들이나 관계자들이 모두 지켜볼 수 있다는 거잖아? 아까 엄마 핸드폰으로 확인해봤는데, 2천 명 정도가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고 있다고.”

고작 2천 명, 이라는 생각이 드는 단유였지만 유진은 그 2천 명이 꽤 큰 숫자라고 강조했다.

“그중 일부는 움짤이나 캡쳐 사진을 만들어서 SNS에 올리기도 할 거란 말이야. 그러면 2천 명이 아니라 2만 명이 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소리야. 2만 명이 2십만, 2백만이 되는 건 순식간이고.”

수백만 페이지뷰를 달성하며 한때 전국적 안티 집결지 역할도 했었던 단유였기에 별로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기 있는 애들 대부분이 그걸 노리고 있을걸? 솔직히 시간이 남아돌아서 홍보대사를 지원하겠니?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많이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러지.”

유진은 단유에게 한발 다가서며 귓속말을 했다.

“저기 저 애 보이지?”

금테 안경을 쓰고 나름 멋을 내기 위해 헤어스타일링도 했지만,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한 그 소년은 손바닥만 한 메모지에 적힌 내용을 암기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저런 애들은 그냥 순진하게 ‘자유학기제’라는 걸 홍보한다는 취지에 왔을 거야.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걸? 중요한 건, 교육부라는 정부부서에서 집행하는 행사라는 게 중요하지. 교육부 주관 홍보대사, 라는 한 줄이 이력에 한 줄 포함되는 게 얼마나 큰데.”

“어떤 이력?”

유진은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다.

“당연히 배우 이력이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외모와 단정한 몸가짐으로 정부 홍보모델도 맡은 바 있었다, 는 이력이면 충분히 수고할 가치가 있는 셈이야.”

아마 어떤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을 보고 영악하다고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영민하다고 칭찬을 하거나. 하지만 어느 쪽이든 ‘아이답지 않다’는 말이 될 테다. 아무리 조숙함이 요즘 세태의 풍속이라 해도 이런 계산은 어울리지 않는다. 단유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친구’라는 질문에서 화제를 잘 돌려냈다는 것에 만족했다.

“다음 들어오세요.”

어느새 단유의 차례가 되었다. 단유를 포함한 세 명이 면접장으로 입장했고, 그중 가장 앞선 번호였던 유진이 당당한 걸음으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들어갔다.

어디 교육장에나 가면 볼 수 있을 법한 작은 책상 3개를 이어붙인 긴 책상 너머에 3명의 면접관이 다소 지루한 얼굴을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면접관들의 뒤편에는 삼발이 지지대 위에 카메라가 설치돼서 면접자들을 정면에서 촬영하는 중이었다. 면접관들의 앞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3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그곳에 앉으면 되리라. 흘깃 옆을 보니 오른편에 커다란 화면이 있고, 빈 의자 3개와 그곳으로 향하는 면접자들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아마 카메라로 중계되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화면인 것 같았다.

“여기 앉으세요.”

학생들을 인도하던 스태프는 세 명의 학생들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뒤, 면접장을 홀로 나섰다.

잠시간의 침묵 속에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장 오른쪽에 앉은 근엄한 얼굴의 남자가 굵은 목소리로 면접자들을 환영했다.

“반갑습니다. 자유학기제 홍보대사 면접을 맡은 홍보담당관실 담당관 이제윤이라고 합니다.”

소개를 한 사람은 오직 그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서류와 화면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여러분들의 면접 화면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송출되고 있습니다. 각 학교의 명예를 대신하여 나온 자리이니만큼 최선을 다해주시고, 부디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첫 번째 학생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홍빈 학생?”

대기실은 조금 전과 다르게 조용했는데 아무래도 면접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긴장감이 높아진 탓인 거 같았다. 거기다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중이어서 실시간으로 학생들을 살필 수 있는 까닭에 몇몇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그 영상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다만 여전히 대기실에 남아있던 몇몇 학생들은 영상을 보지 않고,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낮은 목소리로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아마도 그 영상을 보고 더 긴장할까 봐 보여주지 않는 듯했다.

담임 선생님도 어차피 할 것도 없는 마당에 단유가 과연 면접을 잘 볼 수 있을지 기대도 되는 상황이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단유의 차례가 오려면 적어도 20분은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화면에서는 단유의 앞번호 학생들의 면접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화면을 보고 있는 가운데 옆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은 죄다 인터넷이야.”

“그러게요. 확실히 IT 강국답네요.”

“그런데 도대체 면접하는 모습을 왜 인터넷 중계를 하는 거지?”

“아무래도 요즘 오디션이 워낙 유행이잖아요? 그런 오디션 형식으로 홍보대사를 선출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지 않겠어요?”

“하여튼 이쪽 사람들은 뭐만 유행하면, 그걸 따라 하려고 한다니까.”

“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런 식인걸요. 새로운 걸 만들어낼 자신도 없고, 의지도 없으니까요. 그냥 요즘 유행하는 형식을 차용해서 이 정도라도 하는 게 어디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들 긴장해서 얼굴 굳어있는 이런 모습을 보는 게 무슨 재미가 있다는 거야?”

“아까 6번이었던가, 그 남자애는 재미있지 않았어요?”

“재미있기는. 면접장에서 장난스럽게 구는 모습이 전혀 진중해 보이지 않더구먼. 난 별로였어. 그보다는 9번의 여학생이 화면발이 좋던데, 그 애도 연예인 지망생이겠지?”

“보니까 여기 온 애들 대부분이 그런 거 같던데요?”

“세상 참. 이제는 애들한테 판검사 되란 소리도 못할 시대야.”

부와 명예를 다 가진 연예인들이 선망의 직업으로 우뚝 선 시대, 라는 말을 흘려들으며 선생님은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 사람의 말대로 화면 속 내용은 별로 재미있지 않았고, 만약 단유의 출연이 없었다면 굳이 이 지루한 영상을 보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런 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새롭게 아이들이 등장했고, 그 끝에 단유가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등장했다. 앞서 등장한 아이들보다 월등히 큰 키를 가진 단유였지만, 화면 속에서는 별로 티가 나질 않아 보였다.

앞번호 학생에게 식상하고 형식적이며 지루한 질문들이 몇 가지 건네지 1분 스피치 발언 시간이 주어졌다.

“···자유학기제를 통해 꿈을 찾고 목표를 세울 기회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이상입니다.”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앞서의 학생들이 말한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라 흥이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답답함만 가득했다.

‘단유 차례만 지나면 바로 꺼야겠다.’

보고 있는 게 시간 낭비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어떻게 이렇게 개성이 없을까? 현장에서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 있을 면접관들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표정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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