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13화 (413/956)

거울 속 아이(5)

-------------- 413/952 --------------

감사가 오면 잘못한 것이 없어도 움츠러들기 마련인지라, 교무실은 평소보다 더 조용하고 분주했다. 어지럽게 널려 있던 교과서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선생님들은 혹시라도 말실수가 나올까, 혹은 예민해진 다른 선생님들의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한 탓에 최대한 말을 아꼈다. 상담실에서는 교육청에서 파견된 감사위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교육청에 보고된 서류와 교내에 비치된 서류 사이에 오차는 없는지, 그리고 몇몇 회의록들을 살피며 절차상의 문제는 없었는지를 살폈다.

그 탓에 홍보대사 면접 시에 발표할 내용을 점검받기 위해 교무실을 찾았던 단유는 상담실이 아닌 음악실에서 국어 선생님과 마주했다.

“잘 썼네.”

국어 선생님은 딱히 손 볼 곳이 없다는 듯 가볍게 칭찬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단유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그런 단유의 얼굴을 흘깃 본 뒤, 다시 처음부터 다시 문장을 훑으며 혹시라도 놓친 부분이 있는지, 사소한 단어 하나도 살피며 읽어나갔다.

“그런데, 여기 이 부분은 네 생각이니?”

선생님이 가리켜 보인 부분은 ‘학생들의 자율적인 협조가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이란 부분이었다.

“네.”

선생님은 펜을 잡은 손으로 코를 문지르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이 제도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조건을 단다는 게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심상을 심어줄 수 있을지 의문이구나.”

단유는 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은 채 선생님의 말씀을 끝까지 들었다.

“‘자유학기제가 교육 전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가진 모두에게 설득력 있는 개선방안이 될 것이다’라는 건 조금 어른스러운 표현 같긴 하다만, 썩 나쁘지는 않으니까 그대로 가도 될 것 같다.”

단유를 바라보니, 단유의 표정에는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아 선생님은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일단은 끝까지 검사를 마친 뒤에 풀 일이다.

“‘숙제와 시험에 지친’이란 표현은 너무 식상한 거 같은데 좀 더 신선한 표현이 필요하지 않을까? 면접관들은 반복되는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너를 어필하고 싶다면 다른 지원자와 다른 표현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중요해.”

요즘은 개성시대라고 하잖니, 라는 말을 덧붙이며 검사를 마친 국어 선생님이 용지를 탁탁 정리하여 단유에게 넘겼다. 단유는 두 손으로 공손히 용지를 받아 들었다.

“어때, 도움이 될 거 같니?”

내가 말한 거 다 고칠 거지, 라는 말을 둘러 표현했다.

“고치고 다시 검사받을까요?”

단유의 말에 선생님은 즉각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이를 곱게 접어 품에 집어넣었다. 뭐 고친다고 했으니 말은 따르겠다고 하는 것이겠지만, 느낌상 단유가 뭔가 불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유야,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라도 있니?”

라고 대놓고 물어볼 수 없는 건 자존심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음악실을 나가는 단유를 지켜볼 뿐이었다.

“무슨 일 있냐?”

하교하는 동안, 명수가 물었다. 지태, 채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단유의 안색을 살폈던 모양이었다.

“응?”

“썩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지태와 채윤이 명수의 말을 듣고 단유를 살펴보았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이라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음, 사실 아까 학교에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게 생각나서 그래.”

“선생님이? 왜 뭐 안 좋은 이야기라도 들었어?”

“아니. 안 좋은 이야기는 아니고, 조금 그래.”

“뭐가.”

단유는 한숨을 내쉬고 말을 고르더니 신중하게 생각을 밝혔다.

“자유학기제 홍보대사 건으로 면접을 봐야 하는데, 그때 면접관에게 이야기할 1분짜리 스피치를 짜라고 하셨어. 그래서 나름 취지에 맞게 글을 썼지. 그런데 난 단순히 홍보대사라는 이유로 장점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 물론 자리가 자리니만큼 그쪽 입맛에 맞게 써야 하겠지만, 그걸 이야기하는 당사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잖아? 난 결코 없는 말을 지어내고 싶지도 않았고, 한쪽에 편중된 시선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싶지도 않았어. 그래서 나름 균형에 맞춘다고 생각하고 글을 썼지.”

“그런데?”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어. 이런 점도 있고, 저런 점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 장점이 있고, 그 두드러지는 장점 때문에 자유학기제를 선택해야 한다, 는 식으로 말이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게 들리는데?”

“선생님도 나쁘지 않다고 하셨어.”

“그러면 뭐가 문제인데?”

“만약 자유학기제란 것도 지금처럼, 자유롭게 쓰기를 ‘강요’하고 선생님의 기준에서 ‘검증’한다면 어떻게 자유로운 선택과 창조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강요라고?”

“예를 들어서 직업 탐색이라는 활동 시간이 있어서, 각자 원하는 다양한 분야의 직업 활동을 체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를 통해 진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되어 있어. 그런데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직업과 관심 분야가 존재하니? 그런데 그걸 학교에서 몇 가지로 분류하고 정리해서 이 길을 알아봐라, 저 길을 알아보라고 결정을 짓잖아. 결국 다 아는 직업들, 예를 들어 판사, 변호사, 의사나 소방관, 경찰, 같은 특수 전문직이나 알아볼 뿐이겠지. 무역회사의 경리나 공항 환경미화원 등을 알아보진 않을 거 아냐.”

“그런 건 원하는 애들도 없을 거 같은데?”

“그러니 직업이 제한적인 거지. 학교에서 제시한 직업과 미래가 마치 좋은 직업이고 선택해야만 하는 것처럼 강요받을 수도 있고.”

“그래서 강요받는 기분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는 거야?”

단유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런 내용 때문에 자유학기제를 마냥 찬성해야 한다는 게 불편하다는 거고, 선생님과의 상담은 또 다른 의미로 조금 불편했지.”

“뭔데?”

“과거에 언론 검열이란 게 있었대. 언론사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글을 쓰도록 정부가 나서서 기사를 검열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뉴스에서는 온통 정부를 찬양하는 글만 쓰게 하고, 비판적인 내용은 쓰지 못하게 했다고.”

검열받는다는 행위 자체가 불편하다는 단유의 말이었다. 실제로 선생님이 그런 의도로 하지는 않았겠지만, 말 한마디도 심사위원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서 바꿔야 한다는 게 썩 좋진 않았다. 특히나 단유에게 ‘말’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무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는 터였다.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고, 비판적이거나 잘못을 언급하는 내용은 모두 도려내야 한다는 건 ‘아부’잖아. 홍보대사가 ‘아부’를 떨어야 하는 것이라면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명수가 단유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하지 마. 안 하면 되겠네.”

단유는 명수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그러게. 안 하면 될 일인데.”

다만 안 한다고 했을 때, 담임 선생님은 물론이고 교감,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서 뭐라고 닦달할지가 걱정되고, 그로 인해 피곤(?)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걱정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

토요일, 날씨가 무척이나 맑지만, 늦가을의 쌀쌀함에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아침이었다. 단유는 명수의 배웅을 받으며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 뿐만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이 교무실을 지키고 계셨는데, 감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탓이었다.

“왔니?”

“네.”

“교장 선생님께 인사 먼저 드리고 출발하자.”

“네.”

결국 단유는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고민은 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한 끝에 면접관을 만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서 떨지 말고, 평소처럼 하면 돼요.”

평소의 단유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넉넉한 미소로 단유를 격려했다.

“떨어져도 괜찮으니까 긴장하지 말고, 준비한 만큼만 하면 됩니다. 아시겠죠?”

“네.”

“똑똑하고 영민한 친구니 어련히 잘하겠죠. 그렇죠, 선생님?”

“그럼요. 잘할 겁니다.”

곁에 선 담임 선생님이 맞장구를 쳤다.

면접은 교육부 청사가 있는 세종특별시가 아니라, 서울의 모 사립대 강당을 빌려서 진행하였다. 10시부터 면접이 시작될 예정인데,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온 학생들을 우선 면접을 보고,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면접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학생과 관계자들이 강당을 채우고 있어 단유가 들어갔을 때는 꽤 시끌벅적한 상태였다. 단유의 외모도 남다른 외모라 생각했던 담임 선생님은 강당에 모인 ‘꽃미남’, ‘꽃미녀’들의 외모에 혀를 내둘렀다.

“요즘 아이들이 잘 먹어서 그런가, 우리 때보다 평균 외모도 많이 오른 거 같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단유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선생님은 물론이고 부모님과 함께 참석했다. 그래서 강당에는 학생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았고, 그네들끼리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도 보였다.

“저기 빈자리 가서 앉아 계세요.”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 안내원이 가르쳐 준 곳으로 간 단유는 옆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선생님을 슬쩍 본 뒤 고개를 돌려 강당을 여유롭게 구경했다.

‘평소라면 저 앞 교탁에 교수님이 나와서 저 넓은 칠판을 채워가며 강의를 하겠지.’

조용히 수업을 듣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을 그리며 강당을 볼 때, 선생님이 물었다.

“긴장되냐?”

“아니요.”

단유의 대답은 여유로웠다. 선생님은 별난 녀석 다 보겠다는 눈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내가 긴장되냐?”

“글쎄요.”

그때 앞줄 부근에서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여학생도 주위에 어떤 학생, 아니 어떤 ‘경쟁자’들이 왔는지 궁금해서 주위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마침 부산스럽게 떠들어대는 아이들 틈에서 어린 티가 나는 외모의 단유를 발견한 것인데, 여학생은 살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엄마, 엄마. 저기.”

“응?”

여학생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어머니는 곧 말끔한 외모의 한 학생을 발견했다. 사실 여러 아이들과 사람들이 섞인 틈이라 잘 찾을 수 없어야 정상인데, 신기하게도 그 아이는 눈에 바로 띄었다. 이유라면 그 아이 주변만 한산한 탓이었다.

“나 쟤 알아.”

“니가 어떻게 알아?”

“우리 기획사 사람들이 쟤 누군지 궁금해했었어.”

“쟤를? 연예인이야?”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미 기획사에 들어가서 배우를 준비 중인 그 여학생은 작년 겨울, 핫했던 한 뮤직비디오에서 저 소년을 봤었던 걸 기억해냈다.

“엄마가 가서 물어볼까?”

“응.”

어머니는 딸의 경쟁자가 될 소년에게 호기심을 품고 걸음을 옮겼다. 단유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어머니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어머니는 먼저 옆에 있는 보호자에게 인사를 했다. 청모중학교에서 온 누구누구 엄마라는 소개에 담임 선생님도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제야 단유에게로 시선을 옮긴 어머니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듣자 하니, 예전에 어떤 가수 뮤직비디오에도 나왔다고 하던데, 정말이니?”

“네.”

“정말이구나. 몇 학년이니?”

“2학년입니다.”

“어머, 그런데 키가 꽤 커 보이는구나. 키가 몇이니?”

“최근에 재었을 때는 179였어요.”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손뼉을 쳤다.

“세상에, 요즘 아이들은 정말 이렇게 잘 자란다니까요. 나중에 고등학교 가면 190도 넘는 거 아니니? 몸이 좋아서 모델해도 되겠다, 너.”

모델이 꿈이냐고 에둘러 물어보는 어머니였다. 단유는 그저 공손히 감사를 전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랑 두 분만 오셨어요?”

단유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대화의 상대를 선생님에게로 옮겼다. 선생님은 약간 낯을 가린다는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어머니의 대답에 곧잘 대답했다. 혼자 단유 옆에 멀뚱히 있는 것보다는 누구라도 대화의 상대가 있는 게 더 편했던 탓이었다.

그 사이에 단유가 고개를 돌리니,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여학생의 시선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을 마주하고도 시선을 피하지 않으니, 여간내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더한 건, 그 여학생이 일어나 단유에게로 향했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를 보내놓고도 궁금함을 참지 못해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옆 사람과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며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더는 앉아있을 수 없었던 여학생이었다.

“안녕.”

여학생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단유도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안녕.”

어깨를 살짝 넘는 길이의 머리를 찰랑이며 고개를 살짝 기울인 여학생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정유진이라고 해. 넌?”

“김단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