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12화 (412/956)

거울 속 아이(4)

-------------- 412/952 --------------

[김 단유 학생은 교무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점심시간이 반쯤 지나, 급식을 먹고 교실로 돌아오던 중에 들린 교내 방송에 도하가 단유를 돌아보았다.

“사고 쳤어?”

“아니.”

단유는 느긋한 걸음으로 교무실로 찾아갔다. 담임 선생님도 막 식사를 끝내고 양치질을 했는지 자리에서 양치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께 가자.”

담임과 함께 교감 선생님께로 향하니, 서류 더미를 한가득 책상에 쌓아놓고 뭔가를 작성하고 있던 교감 선생님이 고개를 들어 단유를 확인했다.

“오전에 연락이 왔는데, 자유학기제 홍보대사 서류전형을 통과했다는 소식이다. 일주일 뒤에 면접이 있을 예정이니까, 준비 잘해서 꼭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

단유는 ‘부디 자랑스러운 장계중학교 학생임을 잊지 말아달라’는 교감의 주문에 대충 대답을 하고 물러났다.

“우선 면접 때 자유학기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네 나름대로 자유학기제를 찬성하는 논조의 1분짜리 글을 써 봐라. 국어 선생님이 첨삭지도를 해 주실 거다.”

담임은 자유학기제와 관련된 설명이 담긴 몇 장의 서류뭉치를 단유의 손에 쥐여주었다.

교실로 돌아와 서류를 보기 시작하자 도하가 호기심을 나타냈다.

“뭐냐?”

“자유학기제란 무엇인가, 에 대한 홍보 글이네.”

“그거 좋은 거야?”

“쉽게 설명하면, 대학처럼 학생들이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골라 듣는 거야.”

“그럼 체육만 듣고 싶은 사람은 그 과목만 골라 들을 수 있는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수 과목이 정해져 있어서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도 있어.”

중학교 교육과정 중 한 학기 동안만 적용되어 학생들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등 시험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는 취지가 가장 첫머리에 소개되는 홍보문을 보여주며 단유가 말했다.

“시험 안 쳐도 된대.”

“좋은 거네?”

“뭐, 그럴지도.”

토론과 실습과 같은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능동적인 학생들에게는 환영받을 시스템이었다. 또한 진로 탐색과 같은 여러 체험형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고민할 수 있게끔 시스템적으로 보장한다는 내용을 들여다보며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좋은 내용은 다 들어가 있네.”

2학년이 되면서 학과 수업에 흥미를 잃고 있던 차였기에 단유는 자유학기제라는 시스템이 이야기하는 바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유도 이제는 마냥 받아들이기만 하는 학생이 아니었고, 어쩌면 누구보다 비판적으로 시스템을 바라볼 수 있는 식견을 지닌 학생이었다.

“문제는 이 제도가 그만큼의 실효성이 있는가를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는 문제가 있겠지. 자유와 방종은 한 끗 차이라고 하니까.”

“방종이 뭔데?”

“제멋대로 하는 걸 말해.”

도하는 차이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것과 상관없이 또 하나의 문제라면 자유 학기제 역시 자유를 강제한다는 점이지. 강제된 자유가 과연 정말 자유일까?”

“됐다. 들어도 모르겠고, 괜히 머리만 아프네.”

단유도 더는 이야기하지 않고 펜만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당장은 자유학기제를 찬성하는 논조의 글을 써야 한다고 하니, 그 점에 치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뭐야, 저게?”

명수와 함께 등교하던 길에 학교 교문 앞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장면을 목격한 단유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서는 한 학생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소위 1인 시위라는 것이었는데, 피켓에는 ‘졸속 행정 반대, 교복변경 반대’라고 적혀 있었다.

“우와, 저런 거 TV에서만 봤는데.”

명수가 호기심을 드러내며 피켓을 든 아이를 지켜보았다. 3학년으로 짐작되는 학생은 등교하던 아이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못 진지한 얼굴을 하고 피켓을 든 채 묵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는 사명감이라고 느껴질 만한 힘이 느껴졌다.

그때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뛰어오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우병석! 당장 그만두지 못해!”

투지를 불태우는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조례 전까지는 있을 겁니다. 불법도 아니잖아요.”

“이 자식이! 선생님 말 안 들을래?”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나쁜 행동입니까?”

“뭐가 부당한 일이야! 지금 네 행동이 더 잘못된 거란 걸 몰라?”

병석은 야무지게 피켓 손잡이를 고쳐잡고 힘껏 위로 뻗어, 더 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보게끔 했다.

“저희가 비록 학생이지만, 옳고 그름은 구분할 줄 압니다. 그리고 그른 일에 대해서는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헤치고 지나가 병석이 든 피켓을 뺏으려 했다. 그 광경에 구경하던 아이들이 우우, 야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다른 선생님은 주변의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며 교실로 내몰았다.

“얼른 교실로 가지 못해! 너희들 모두 징계받고 싶어?”

그래도 이 재미난 구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듯,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물론 몇몇은 관심도 없다는 듯 교문을 지나쳐가고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병석과 선생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선생님은 병석의 손에서 피켓을 빼앗았다.

“너 허위 사실 유포가 얼마나 큰 죄인지 몰라!”

“허위 사실이라뇨? 저희도 다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느 학교에서 교복을 변경하는 내용을 2달 만에 해치운답니까? 이건 졸속 행정이고 학교의 비리입니다. 학생들에게 바른길을 알려주셔야 할 선생님께서 이러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병석은 꿇리지 않는다는 듯 바르게 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다수의 학생들이 그에 찬동하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혹은 그저 선생님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그 광경 자체에 놀라움과 흥미를 보이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도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디 선생님 앞에서 큰 소리야? 위아래 없이 굴라고 누가 가르쳤다고 이러는 거야! 얼른 사과하지 못해!”

“제가 사과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 자식이!”

그 소란 중에 교무실에서 달려온 또 다른 선생님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두 세 명의 선생님으로는 교문 앞의 학생들을 모두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몇몇 선생님은 눈에 익은 아이들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호명하며 교문 앞에 모인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일을 우선했고, 또 몇몇 선생님은 병석과 선생님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걸 말리는 것과 동시에 병석을 데리고 교정 안으로 가기 위해 병석의 팔과 어깨를 붙잡았다.

다소 작은 몸집의 병석은 어른 두 사람의 힘을 감당하기 어려워 끌려갔고, 남은 선생님들이 모인 학생들을 교실로 보냈다.

교실로 들어오니, 교문 앞에서 벌어졌던 시위와 이를 막아서던 선생님들의 대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냐, 무슨 일 있었어?”

일찍 학교에 왔던 탓에 교문 앞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알지 못하던 도하가 볼에 흐르는 침 자국을 닦아내며 게슴츠레 단유를 보았다.

“3학년 선배가 교복 문제로 시위를 하고 있었거든.”

“시위? 데모 같은 거?”

도하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니가 생각하는 게 도대체 어떤 광경인지는 모르겠다만, 평화적인 묵언 시위였어. 말없이 피켓만 들고 있는 거.”

도하에게 대충 알려주자, 도하는 재밌는 광경을 놓쳐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교복 바뀌는 게 그렇게 시위를 할 정돈가?”

단유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누군가에게는 참을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어.”

“누군가?”

“정의롭지 못한 일,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는 거지.”

“그 말은, 교복 문제가 정의롭지 않다는 말이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니가 보기엔 어떤데?”

단유는 책을 정리하던 걸 멈추고 도하를 바라보았다.

“내가 보는 문제가 중요해?”

“그럼. 넌 우리 반에서, 아니 우리 학교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잖아.”

“정의를 판단하는 건, 똑똑하고 똑똑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냐. 개인의 양심에 관한 문제지.”

“그럼 지금 시위를 한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이란 뜻이야?”

“양심과 양심적이란 용어의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은데? 개인의 양심에 관한 문제라는 표현에서 양심은 가치를 변별하고 정의를 판단하며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면, 양심이 있다는 건 기준이 명확히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기준은 누구나 다를 수 있잖아? 누군가에게 정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의가 될 수 있지. 반면에 네가 말하는 양심적인 사람에서 ‘양심적’이라는 표현은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바르고 선한, 이란 의미가 있으니 내가 말한 것과는 다른 이야기야.”

“어렵다, 어려워. 원래 머리 좋은 사람은 다 이러나?”

“정의(定義)가 다른 단어를 구별 없이 쓰면, 본래의 뜻과 달라지니까 오해가 생기잖아? 그러니 그걸 확실히 해야 하는 거지.”

“미안하다, 아침부터 내가 몹쓸 말을 했다.”

도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엎드렸다.

“선생님 오면 깨워줘.”

“오셨어.”

“아이 씨.”

도하는 얼굴을 잔뜩 구기며 허리를 세웠다. 담임 선생님이 출석부로 교탁을 탁탁 두드리며 엎드려 있던 몇몇 아이들을 깨웠다.

“반장, 인사.”

“차렷, 경례.”

조회 시간에는 다른 공지 사항에 앞서 선생님의 ‘당부’를 빙자한 ‘경고’가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기말고사를 준비하기도 바쁜 시기에 쓸데없이 학교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바르게 처리한 일인데도 유언비어에 휘둘려서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너희들은 절대 거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 알았지? 대답 안 해?”

학생들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단유네 반뿐만 아니라 학내 모든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병석은 그다음 날도 새롭게 피켓을 준비했고, 병석과 뜻을 같이하는 몇몇 학생들이 생겨났다. 동조자가 늘어나면서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몇몇은 수업거부와 피케팅으로 항의를 계속했다. SNS와 단톡방에 그 일과 사진이 퍼져나갔고, 곧 학교에서는 긴급대책회의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학생회 공개 토론’이라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학생 쪽에서 찬성과 반대 입장에 선 두 진영이 나와서 토론을 한다는 것인데, 이를 교내 방송을 통해 모든 학생들이 지켜볼 수 있게 만들었다.

“저는 찬성합니다. 저희 교복은 주변 학교의 교복들에 비해 오래전에 만들어진 디자인이어서 평소에도 시쳇말로 ‘구리다’는 말을 듣는 교복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이번에 새롭게 디자인된 교복은 학교의 상징에 맞는 색깔과 현대적 디자인으로 세련되게 만들어졌으니, 향후 우리 학교의 이미지를 고양하는데 일조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반대 측의 대표로 나선 병석은 절차의 문제를 거론했고, 다른 공립 중학교의 사례와 사립 중학교의 사례 등을 들어 바르지 못한 절차와 행정을 지적했다.

“저는 이 사례를 반드시 교내에서 고칠 것을 주장하며, 만일 이것이 제대로 시정되지 않으면 교육청에라도 이야기해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청이 거론되자 방송을 보던 학생들이 웅성댔다.

“진짜 교육청에 꼰지르는거야?”

“여태 안 꼰지른게 이상하지 않냐?”

“그런가? 그래도 교육청까지 가는 건 너무 오버 아닌가?”

“잘못된 건 고쳐야지.”

“그래도 학교가 또 시끄러워지는 거 아냐?”

“그걸 왜 우리가 걱정을 해? 위에서 걱정할 문제지.”

“야, 다른 학교에서 우리 학교 욕할 수도 있잖아?”

“웃기시네. 평소에 그렇게 애교심을 발휘했으면, 교가라도 제대로 외우고 다니던가.”

단유는 팔짱을 낀 채 방송을 보았다. 모니터 너머에서 열을 내며 토론을 나누는 두 사람 다 진심을 다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와, 되게 말 잘한다.”

중학생 같지가 않아, 라는 도하의 말대로 그들은 자신의 논리를 군더더기 없이 잘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시선은 결국 병석의 ‘반대’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병석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였고, 불의에 맞서는 ‘영웅’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마침내 교육청에서 감사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