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아이(3)
-------------- 411/952 --------------
“흐음. 결국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됐군.”
올 게 왔군, 이란 표정의 하은은 팔짱을 끼고 미간에 골을 만들어 보였다.
“우리 때도 그런 고민을 심각하게 하던 친구가 있었지.”
고1 때 이미 대학 조기 입학을 고려하던 친구가 있었다는 하은은 그 친구가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검정고시를 쳐서 17살에 대학을 들어갔다.”
“가능한 거였네요.”
“가능은 하지. 다만 좋은 점만 있지는 않았어.”
그 친구는 친하다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던 탓에, 대학에 가고 나서 꽤 힘들어했다고 한다.
“본인의 성격도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대학에 가서도 주변의 교우관계가 그렇게 원활하진 않았었나 봐.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우울증도 겪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요?”
“음, 그 뒤로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어 모르겠네. 나 같은 경우야, 뭐 고2를 마치고 입학을 했으니 조기 입학이라면 조기 입학이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에선 조기 입학한 친구가 여럿 있었거든.”
그중 한 명이 연성 재단의 주영이었다.
“솔직히 니 나잇대의 아이들이 감수성이 좀 특별하잖니? 그래서 남들보다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하다 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래.”
하은은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문제는 니가 조기 입학을 하겠다는 문제인데, 난 솔직히 말하면 찬성. 너 정도면 조기 입학해도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야, 뭐 지금도 잘만 만들고 있잖아? 여자 친구도 알아서 잘 만드는데.”
그것도 연상의 여자를, 이라며 킬킬거리는 하은을 보며 단유는 왜 또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냐며 툴툴댔다. 하여튼 하은에게 틈만 주면 저렇게 의식의 흐름을 따라 브레이크 없이 내달린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단유 주위의 사람들이 단유를 보기에도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학교에서 바라보는 단유가 그랬다.
“자, 전국수학경시대회 역시 금상!”
담임은 단유가 들고 온 상장을 다시 단유에게 건네는 퍼포먼스로 단유를 축하해주었고, 반 아이들은 감탄의 눈으로 박수를 보냈다.
“너란 인간, 정말 대단한 놈이구나.”
이런 애가 나중에 서울대 가겠지, 라고 중얼거리며 도하가 눈을 빛내며 단유를 바라보았다. 그 낯뜨거운 시선이 민망해서 단유는 도하를 툭 밀었다.
“그냥 엎드려 자라. 이상하게 쳐다보지 말고.”
“왜 이래? 축하해주는 거잖아?”
“누가 축하를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식으로 해?”
“너 말고 나.”
“응?”
“이 평범한 인간 세계에 너 같은 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를 축하하는 거야.”
최근 도하가 지태 네랑 어울리면서 좀 평범해졌다 싶었는데, 역시나 도하는 도하다.
그 사이 선생님은 몇 가지 전달사항을 알린 후, 조례를 마치려 했다. 출석부를 교탁 위에 세워 탁탁 소리를 내서 주의를 환기한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최근에 단톡방에서 교복에 대한 문제로 말들이 많던데, 그 문제는 학교와 학부모회가 잘 조율해서 마무리할 것이니까, 너희들은 괜한 논란에 휩쓸리지 말고 시험준비나 잘해라. 2학년 마지막 기말고사가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 알지? 수업시간에 졸지 말고, 학교 끝나고 피시방 가는 것도 좀 줄이고, 집에 가서 인강 듣는 사람은 열심히 인강 듣고, 학원 가는 사람은 열심히 학원 다녀. 알겠지?”
선생님은 그 말을 끝으로 반장의 인사를 받은 뒤 교실을 나갔다. 아이들은 1교시가 시작되기 전의 짧은 휴식시간도 알차게 보내려는 마음인지, 서둘러 교실을 뛰쳐나가 일부는 화장실로 일부는 매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선생님이 던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거 말 되게 많던데?”
“다른 반 단톡방에서는 싸움이 날 정도라더라.”
“그냥 교복 바뀌는 건데 그게 무슨 싸움 거리나 되나?”
“그냥 바뀌는 게 아니잖아. 엄연히 원칙과 절차라는 게 있는데, 그런 걸 무시하고 바꾸는 건 말이 안 되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어떤 세상인데?”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인실좆 당하는 세상?”
“그래도 교복 문제는 좀 그렇지 않나? 학교에서 정한 걸 뭐라고 그래?”
“그런 사고방식이 위험한 거다, 짜식아. 너 만약에 국회에서 이상한 법 만들어서 통과시키는데도 우리 일 아니라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거 다 우리한테 돌아오는 거야.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은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
“아 몰라, 임마. 왜 나한테 화내고 지랄이야?”
“너한테 화를 낸 게 아니고, 현 시국이 지랄 맞아서 지랄한 거다.”
“시국 걱정할 시간에 니 성적이나 걱정해, 새끼야.”
“대신 걱정해줘서 고맙다, 새끼야. 이번 기말에 너는 얼마나 잘 나오는지 보자.”
“너보단 나을 거다, 새끼야.”
“안 나오면 뭐 걸래?”
“걸긴 뭘 걸어?”
“니 플스 걸어라. 새끼야.”
“그럼 너는 니 자전거 걸어라. 새끼야.”
“씨발 그 자전거 존나 비싼 거야, 임마.”
“내 플스도 비싸다, 새끼야.”
사이좋은 친구들이 오붓하게 정담을 나눌 때, 도하가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유야.”
단유는 노트를 보던 시선을 돌려 도하를 보았다. 턱을 괴고 교실을 보던 도하는 턱을 괸 탓에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왜들 저럴까?”
단유가 흘깃 아이들을 보고, 그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조금 듣다가 대답해주었다.
“공정성에 대한 의심 때문이겠지.”
“공정성? 그게 뭔데?”
“누구나 올바르다고 판단하는 거?”
“그럼 교복이 올바르지 않다는 말이냐?”
“교복이 올바르지 않다는 게 아니고, 교복을 변경하는 문제가 올바르지 않다는 말이지.”
이제 알겠냐는 듯 도하를 쳐다보자, 도하는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멱살잡이를 할 것처럼 장난치는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난 저런 데 관심이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라 그런데, 교복 바뀌면 우리도 옷 새로 사야 하나?”
불의가 아니라 ‘불이익’ 아닐까? 도하 본인에게 불이익이 있을까 걱정하는 것 같아 단유는 그럴 일 없다고 말해줬다.
“3년간은 현재 교복과 바뀌는 교복을 혼용해도 된다고 하니까.”
“혼용?”
“같이 입어도 된다고. 이걸 입든 저걸 입든 상관없다는 뜻이야.”
“그래? 그런데 왜 다들 저렇게 열을 내나?”
도하는 아이들이 저러는 이유가 도저히 이해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단유는 별다른 대꾸 없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들은 적어도 도하처럼 불이익이 없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이 저렇게 열을 내는 것은 순수하게 ‘불의’에 직면한 때문일까?
“아직도 말이 많이 나온다고요?”
이사장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식탁에 놓인 회 한 점을 집어 들었다.
“곧 가라앉을 겁니다. 학부모회 내부에서도 이제 거의 진정되어간다고 하니 말입니다.”
교장은 차분한 표정으로 짐짓 여유를 부리며 오초코(おちょこ, 사케 전용 잔)를 입술에 대고 맛을 음미했다.
“나 참. 이게 이렇게 말이 나올 일인가, 이 말이에요.”
“요즘은 사소한 것도 문제가 됩니다. 애초에 말씀드렸잖습니까.”
교장의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사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교장은 살짝 입가를 늘리며 이사장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걱정 마세요, 이사장님. 만약 누군가가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해서 교육청에 고발이 들어간다고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좋겠군요.”
“···학교가 시끄러워지는 일은 피해야지, 그게 어떻게 더 좋다는 이야깁니까?”
비록 자신이 이사장으로 선출이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이사 라인의 힘은 살아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계속 끌려다니는 수밖에 없으니 얼른 가시적인 성과를 끌어내야 했다. 물론 자유학기제 홍보대사와 같은 이벤트와 수학경시대회, 추계축구대회의 우승 등으로 학교의 이름을 알린다는 계획은 꽤 성공적으로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교복 변경은 학교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데도 의미가 있지만, 새로운 재단 이사회의 출범을 공식화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다. 물론 실속을 챙기려는 마음도 있지만 말이다.
“교육청에서 나와서 감사를 하면, 뭐 조금 고달플 수는 있지만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증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졸속으로 진행했지만, 절차상의 문제는 전혀 없다. 아니 경고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교복 변경이 취소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미 준비도 끝났으니, 만약 누군가가 교육청에 감사를 요청하게만 한다면 깔끔하게 마무릴 될 겁니다.”
요청하게 한다? 교장은 자신의 잔에 또 사케를 조르르 따른 뒤 잔을 들었다.
“학부모회는 모릅니다. 위원장도요.”
천천히 음미하듯 사케를 마신 교장인 입술을 달싹거리며 남은 술의 여운을 즐기더니 말을 이었다.
“교복 선정 위원회 때 학부모회 위원장에게 졌던 빚, 이번에 갚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요?”
교장은 젓가락을 집어 식탁을 톡톡 두드린 뒤, 살이 도톰한 회를 한 점 집었다. 입에 넣고 씹는 모습을 보니 이사장은 우득우득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위원장은 자신이 학부모회 내부를 정리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 교육청 감사에까지 이르게 되죠. 그렇다면 위원장 역시 감사 대상이 됩니다. 그걸 저희가 적당히 막아주는 거죠. 교육청 감사를 막지도 못했고, 감사 대상에서 빠지게 도와주기까지 했으니, 어떨까요?”
역시 교장이다, 라는 생각에 이사장이 허벅지를 탁, 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랜 시간, 단순히 의자에만 앉아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과 동시에 이전 이사장이 교장을 끼고돌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이렇게 정치적 계산이 빠른 인물이 가려운 곳을 기가 막히게 긁어주니 어찌 고맙지 않았을까?
“허허, 교장 선생님이 여유를 부리는 이유가 있었군요.”
교장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온화한 교장의 얼굴이 마치 보살처럼 보인다고 이사장이 생각하고 있을 때, 교장의 미소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이사장은 자신을 여유롭다고 평하지만,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사장은 그저 교복 변경에 관한 건을 제의했을 뿐이니, 이 건이 자연스럽게,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모든 절차를 감독하고 빈틈이 생기지 않게 서류 등을 신경 쓰느라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노년에, 무사히 정년을 마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사장에게 자신이 이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여유 있는 척을 했던 것이니, 속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다.
이사장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교장의 빈 잔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며 말을 꺼냈다.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이 교복가지고 말이 많다고 들어서, 괜히 신경이 쓰이더란 말입니다. 도대체 애들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떠든단 말입니까. 이제 겨우 중학생인데 말이죠.”
“요즘 아이들이 어른인 척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요. 그게 다 어른인 척 흉내를 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런 아이들의 헛소리에 어른들이 휩쓸린다는 게 문제죠. 뭐 SNS니 인터넷이니 하는 곳에서 이말 저말 꺼내서 분란을 일으키는 게 그 아이들의 주 종목이라죠? 그래서 학교에서 핸드폰 같은 걸 못하게 해야 하는 겁니다. 아, 생각난 김에 말이죠. 우리 학교도 수업 중 핸드폰 소지 금지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단순한 이사장이니 핸드폰이 없으면 말도 안 나올 거라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교장은 또 이사장의 의견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십니다. 학부모들에게 학생들의 학습 의욕 저하를 이유로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게 한다고 설득하는 것도 방법이겠고, 수업 중 핸드폰 사용이 수업 방해가 되어서 자녀들의 성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를 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그렇습니다! 역시 우리 교장 선생님은 올바른 교육자의 모범이세요. 바로바로 이렇게 정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하하, 앞으로도 교장 선생님만 믿고 가야겠습니다.”
“별말씀을요.”
교장 선생님과 이사장은 잔을 들어 부딪쳤다. 작은 사기잔의 울림이 조용한 별실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