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408화 (408/956)

꽃보다 아름다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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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같이 터진 슛과 함께 난 엄청난 소리가 관중들을 벌떡 일어서게 만들었고, 골키퍼가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사이 골대의 깊숙한 곳을 찔러 들어가며 골망을 흔들어대는 공에 관중들은 열광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응원을 온 부모님들이 모두 손을 맞잡고 펄쩍펄쩍 뛰었고, 기쁨에 찬 환호성으로 쐐기 골을 환영했다.

하지만 축구를 좀 안다는 사람들, 특히 중등부 레벨의 축구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란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중에는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나온 이들도 있었다.

“저게 뭐야?”

“쟤 중학생 맞아?”

“방금 무회전이었나? 공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 같던데?”

“그것보다 힘이 엄청난 거 같은데, 저 선수 뭐야? 후반에 나온 거 보면 주전은 아닌 거 같은데?”

상대 팀 감독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얼이 빠진 얼굴로 경기장을 보다 몸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침울한 표정의 벤치가 보였다. 뭔가 한마디를 하려다 말았다. 지금은 그들을 위로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할 타이밍도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경기가 끝이 났다. 2:0. 스코어만 보면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경기였던 거 같지만, 실상은 꽤 비등한 경기였다 할 수 있겠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많았소, 이 감독. 결국 올해는 자네가 휩쓸었어.”

“별말씀을요. 제가 뭘 한 게 있습니까. 저 아이들이 잘해 준 덕분이죠.”

“내 앞에서 겸양 떨 필요 없네. 충분히 기뻐해도 돼. 최근 몇 년간 춘추 대회를 독식한 감독이 없었잖은가.”

“아직 경험이 일천한 풋내기 아닙니까.”

상대감독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흔들었다.

“그나저나, 마지막 그 아이는 누군가?”

저 정도 스탯을 가진 선수를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궁금했다. 아주 단편적인 부분만 봤지만, 충분히 명수라는 에이스와 맞설만한 실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 정도면 체력도 좋은 거 같은데, 왜 전반부터 넣질 않고?”

감독은 볼을 긁적이며 마주 잡은 손을 놓았다.

“특별 선수라서요.”

“특별?”

“올 한해만 뛰는 선수입니다.”

상대 감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 대회의 회식 때는 본인이 낄 자리가 아니었기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누구랄 거 없이 단유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통에 자리를 뺄 수 없었다. 애초에 빠질 생각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또 슬그머니 빠질까 우려했던 모양이었다.

여러 사람의 박수와 환호 속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 두 손을 올리고 소리를 같이 질렀다. 같은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리고, 같은 목소리로 ‘장계중 축구부 파이팅’을 외치고,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축하하고 축하받는 자리였다.

“많이 먹어.”

“알아서 먹을게. 그런데 너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냐?”

단유의 걱정에 명수가 불룩한 볼을 자랑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지.”

이미 먹어치운 양만 보면 간에 기별이 가는 문제가 아니라, 건강과 이별(離別)을 할 것만 같다.

“야, 오늘 골도 못 넣었으면서 고기가 입에 들어가냐?”

명수 옆에 앉아 있던 3학년 선배가 장난스럽게 명수를 타박하자, 명수가 단유를 가리켰다.

“얘가 넣었잖아요, 저 대신. 그래서 제가 얘 대신 먹어주는 중이죠.”

“와, 얘 뻔뻔한 거 봐?”

아이들은 명수의 너스레에 웃음을 터뜨렸다. 단유도 피식 웃으며 잘 구워진 고기를 명수의 밥그릇에 올려주었다.

“많이 먹어라.”

“그래, 많이 먹어줄게. 니 몫까지.”

명수가 눈웃음을 지으며 고기를 입안에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벌써 시간이 7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까지 마쳤을 때가 5시쯤이었으니, 무려 2시간을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할애한 것이다.

보통 때였다면 그 시간을 무척 아까워했을 단유였지만, 오늘만큼은 아깝지 않았다.

“명수 니가 축구를 하는 좋아하는 이유를 알 거 같다.”

“음, 그래.”

명수는 달리 대꾸를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꽤 피곤해하던 명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꾸벅꾸벅 졸았다.

“씻고 자.”

“나중에.”

명수의 방문이 달칵 닫힌 후, 단유는 발밑에서 혀를 빼물고 있는 호빵을 바라보았다.

“아, 너도 배고프지?”

단유를 바라보는 작고 검은 눈동자를 보며 웃음을 지어 보인 뒤, 호빵의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주고 물도 새로 갈아 넣어 주었다. 개도 주인을 닮았는지, 허겁지겁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단유는 그 옆에서 무릎을 끌어당겨 두 팔로 안은 채 호빵의 식사를 지켜보았다.

“너도 친구가 있으면 좋겠구나. 혼자라서 심심하지?”

호빵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넉넉히 부어주었건만 벌써 반이 사라졌다.

“혼자 있을 때는 구속되는 게 없어서 자유로운데, 함께 하면 즐거움이 배가 되는 거 같아.”

혼자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성취감보다 함께 움직여서 성과를 만들어냈을 때의 성취감과 기쁨이 더 크다는 사실을 단유는 깨달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지칭했다고 배운 바가 있었다. 곧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이루어진다는 말이라고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었다.

교과서의 활자는 솔직히 와 닿지 않았다. 단유는 애초에 사회적 동일체로부터 벗어난 존재였고, 지금은 단지 그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기에. 그래서 늘 경계하고 선을 그으며 자연스러움을 연기해야 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순수하게 기뻤고, 들떴으며, 흥분했었다. 늘 경계의 대상이던 주변 사람들이 오늘만큼은 ‘함께여서 다행인’ 존재들이었다.

어느새 물까지 다 마시고 식사를 마친 호빵이 ‘이제 나랑 놀아줄 차례’라는 듯 단유를 바라보며 킁킁거렸다.

“씻고 놀아줄게.”

오늘은 잠깐 놀아줘도 될 거 같았다. 아니 오늘만큼은 호빵의 ‘친구’ 역할을 해볼까 생각했다. 오늘이래 봐야, 이제 몇 시간 남지도 않았으니까.

****

“내가 갔어야 했어. 가서 봤어야 했어.”

나윤은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축구 잘 모르잖아요?”

“축구 보러 가니? 너 보러 가는 거지?”

단유는 매운맛이 강한 돼지고기 볶음 한 점을 집어 나윤의 밥그릇에 올려주었다.

“이렇게 보면 되지, 뭘 그래요.”

나윤은 입안 가득 우물거리면서도 할 말이 많다는 듯 말했다.

“그냥 보는 거랑 같니? 골도 넣었다면서?”

“그건 어쩌다 넣은 거죠. 그런데 바쁜 일 있어요? 왜 그렇게 급하게 밥을 먹어요?”

“아, 오늘 연습할 게 많아서. 사실 행사가 잡혔거든?”

컵에 물을 담아 나윤에게 건네며 물었다.

“어떤 행사요?”

“지방대학교 행사래.”

어쩐지 나윤의 얼굴이 밝아 보인다 했다. 지방의 어떤 대학이라도, 지난번처럼 시골 장터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는 분위기가 좋을 것이다.

“저도 따라갈까요?”

“됐어. 와 주면 좋긴 하겠지만, 거긴 너무 멀어. 그리고 너 공부할 시간도 없잖아? 너 ‘연구’한다던 그건 어떻게 됐어? 끝났어?”

“아뇨, 금방 끝나지 않네요.”

“그러니까.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그런 곳까지 따라오지 않아도 돼. 회사 사람들한테 눈치도 보이고.”

아직 나윤의 연애에 대해 회사 측에서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점을 보면 회사가 나윤에게 꽤 소홀한 것 같은데, 그래도 이렇게 행사를 잡아 오는 것을 보면 마냥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단유는 물로 입을 개운하게 씻어낸 뒤, 휴지로 입가를 정리했다.

“혹시 모르니까, 무대 할 때 주위를 잘 보세요. 제가 있을지도 몰라요.”

“야아, 그런 말 하지 마. 괜히 기대하게 되잖아?”

나윤이 투정부리듯 어리광을 부리니, 그 모습이 또 ‘귀엽다’고 느끼는 단유였다.

“알았어요. 언제인데요?”

“목요일.”

“주중이네요.”

“그러니까. 네가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거지.”

“알았어요. 아무튼, 그럼 바쁠 테니까 그만 일어나죠? 식사 다 하셨으면.”

“그래.”

나윤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던 단유는 나윤의 짧은 바지에 눈이 갔다.

“왜? 너무 야하게 입은 것 같아?”

나윤이 장난스럽게 묻자,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옷 너무 낡은 거 같아서요.”

“그렇지? 하긴 벌써 4년이 넘었어.”

그냥 입는 옷도 4년이면 긴 시간인데, 격한 안무를 연습할 때 막 입기 좋다는 이유로 계속 착용하다 보니 많이 낡은 티가 났다.

“아, 그럼 나중에 같이 옷이나 사러 갈까? 간 김에 니 옷도 사고.”

“제 거요? 전 괜찮은데?”

“아니야. 보니까 너도 옷이 아주 작은 거 같애. 일부러 몸 좋은 거 과시하려는 거 아니면, 새 옷 하나 사야 될 거 같은데?”

단유의 팔뚝을 찰싹 때리며 미간을 좁히는 나윤의 행동에 단유는 웃음을 터뜨렸다.

“과시하려는 의도는 없는 걸요?”

“아니야. 아무튼 나중에 행사 갔다 와서 같이 나가자.”

“그래요.”

단유는 웃음을 지으며 나윤과 함께 식당을 나섰다. 회사 근처에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온 단유와 나윤은 입구 부근에서 걸음을 멈췄다.

“들어갈게.”

“네. 집에 가서 연락할게요.”

“그래.”

나윤이 손을 흔들고 먼저 회사로 들어가려는 때였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사람 때문에 멈칫한 나윤에게 남자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밥 먹고 오는 거예요?”

“아, 네.”

종철이었다. 종철은 나윤의 뒤에 서 있던 단유를 발견했다.

“자주 보네.”

어쩐지 말에 뼈가 있다고 여겼지만 나윤은 대꾸하지 않았다. 어서 종철이 계단을 빠져나오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종철은 계단을 내려가는 입구에 서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행사 잡혔다면서요?”

종철은 나윤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물었지만, 단유를 향해 힐끔거리는 모습이었다. 나윤도 고개를 돌려 단유를 바라보니, 어쩐 일인지 단유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자신과 종철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괜한 오해를 할까 걱정되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네. 저 먼저 내려갈게요.”

나윤이 종철의 옆을 비집고 내려가려는 시늉을 했지만 종철은 비키지 않았다.

“나랑 이야기하기도 싫은 거예요?”

“네? 아뇨, 아뇨. 그런 거 아닌데요?”

“그런데 왜 그렇게 벌레 쳐다보는 것처럼 떨떠름하게 봐요?”

당황한 나윤에게 종철이 눈을 번들거렸다.

“사람 기분 나쁘게.”

그때, 단유가 한 발 내디뎠다.

단유가 자리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나윤이 연습실로 내려가는 모습을 끝까지 배웅하려는 게 아니었다. 모습을 드러낸 종철이 짧은 순간이나마 발산했던 불쾌한 ‘악의’에 반응한 탓이었다. 그 악의의 방향이 자신인지, 아니면 나윤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악의가 보이지 않았다. 악의를 감추고 있던지, 아니면 자신이 착각한 것이리라. 그래서 주의를 주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나윤과 종철이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점점 불편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시죠?”

단유가 종철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종철도 키가 큰 편이라 단유와 눈높이가 비슷했고, 오랜 안무 연습과 체력단련으로 몸이 좋은 편이라 단유의 덩치에 꿀림이 없었다.

“나윤씨 남자 친구죠?”

종철이 먼저 직구를 날렸다.

“네.”

단유 역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놀란 것은 오히려 종철이었다. 나윤의 당황한 얼굴을 슬쩍 바라본 뒤, 단유에게 물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회사에서 알면 어쩌려고?”

“회사에 이야기하실 거예요?”

단유가 덤덤한 어투로 되물었다. 종철이 피식 실소를 지으며, 마른 뺨을 쓰윽 문질렀다.

“안 하죠. 그런 짓.”

“그럼 상관없겠네요. 저 남자 친구 맞아요.”

“멋있는 남자 친구네? 좋겠어요, 나윤씨?”

나윤은 짐짓 화가 난 투로 대답했다.

“그만 하세요. 할 말 있으면 저한테 하시고요. 단유야, 너 먼저 가.”

가란다고 갈 수 있는 상황일까. 단유는 대답 대신 종철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길을 막고 계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길? 아, 길.”

종철은 천연덕스럽게 옆으로 한 걸음 옮기고는 나윤에게 손짓했다.

“지나가세요, 나윤씨.”

그런다고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겠냐. 나윤은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종철을 노려보았지만, 종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뻔뻔한 얼굴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됐죠?”

“장난 그만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저 그렇게 어수룩한 사람 아니니까요.”

단유가 덤덤한 표정으로, 하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니 속내를 까보라고.

종철의 눈이 또 한 번 번들거렸다.

“그렇게 말하니까 마치 내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그냥 행사 잡힌 거 축하해주려고 말 건 것뿐인데 말이에요.”

종철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두 사람 다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종철의 비웃음에 나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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